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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법회, 정체승화하여 정념과 지혜로 조사정법

[밍후이왕] (밍후이 기자 리정 호주 시드니 보도) 2015년 호주 파룬따파 수련심득 교류회가 9월 6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에서 개최됐다. 호주 천여 명 파룬궁수련생이 함께 모였고 24명 수련생이 발표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안으로 찾고 자신을 수련한 체험을 나누었고, 어떤 신 수련생은 대법을 수련한 후 타인을 배려하고 원망하는 인연을 선해(善解) 한 체험을 교류했으며, 또 일부 수련생은 자신이 장쩌민 고소에 참여한 과정에서 수련 승화한 체험을 나누었다.

图1:二零一五澳洲法轮大法修炼心得交流会在悉尼新南威尔士洲大学(UNSW)内举行。

2015년 호주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가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에서 개최

图2-3:发言学员

수련생이 발표하고 있다.

협조를 잘하고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야

발언하는 수련생 중 7명은 호주 각 지역 여러 항목 협조인 또는 주요 협조인이었다. 그들은 교류에서 모두 협조할 때 우선 자신을 수련인으로 삼아야 하며 안으로 찾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들은 모두 협조인으로서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현지 정체(整體)제고와 중생구도 항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자신이 수련해 올라가면 전체 환경이 개변되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했다.

일찍이 중국 국제 방송국에서 기자와 호주 방송국 ABC에서 편집과 기자를 담당했던 멜버른 협조인 판(樊)씨는 교류에서 언급했다. “제1 협조인을 담당한 후 마주친 첫 번째 난은 바로 일부 사람이 협조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져 마음이 조금 불만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게 ‘마음의 용량을 넓혀주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협조인으로서 마땅히 수많은 하천을 용납할 수 있는 바다 같은 용량이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여러 장소, 여러사람들 앞에서자신을 반성했습니다. 법리를 명백히 이해하고 집착을 제거한 후 저는 이미 그런 불만스러운 마음을 철저히 내려놓았고 자아를 내려놓았으며 진정하게 내심으로 제고해 올라왔습니다. 전반 안으로 찾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 그런 홍대한 자비로 우리와 중생들을 대하심을 여러 차례 생각했습니다. 매번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제 눈은 눈물로 충만되었습니다. 저는 수련은 곧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고 타인을 개변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며 유일하게 개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호주인 니나(Nina)는 호주 한 지역의 주요 협조인이다. 1999년부터 수련한 그녀는 교류 중에서 말했다. “자신이 수련 중에서 줄곧 내려놓지 못한 것은 바로 자신감 부족이었고, 자신을 경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가끔 반응되어 나오는 집착심은 바로 진상 알리기 항목을 할 때 더욱 노력해 자신을 실증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늘 평형을 잃었고 저와 남편이 경영하는 사업과 일상생활 및 아이를 돌보는 일에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제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와 연공하는 것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이는 ‘진선인 미술전’ 개막식 중의 정부업무 협조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런 관념과 반응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저는 사부님 법리 중의 저에게 가르친 그런 정정당당한 태도를 품었습니다. 자신을 바로 잡자 그런 피드백이 없던 의원들이 모두 회신해 미술전에 참가할 것이라 표시했으며, 어떤 이는 또한 ‘미술전’을 위해 제막하고 축사까지 할 것이라 표시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자신이 담당한 임무에 대한 생각과 태도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인식하게 됐고, 한 줄기 에너지를 느꼈으며 사부님의 저와 모든 중생에 대한 무한한 자비를 깊이 느끼게 됐습니다.”

사람 구하는 것을 첫 번째에 놓으니 사존께서 능력을 부여하시다

바이(白)씨는 진상 항목의 협조 업무를 담당했다. 그녀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지도도 볼 줄 몰랐지만 매우 좋은 방향감이 있었다. 차 안의 모든 자료, 설비들을 각 진상 장소에 운송했고 어디로 가고 싶으면 곧 그곳으로 갔다. 더욱 광범위하게 진상을 전파하기 위해 그녀는 현지 주류 인사들로 하여금 대법 진상을 명백히 알게 하는 동시에 진상을 알리는 언론사 기자들을 도와 자발적으로 사진촬영, 취재 업무를 담당했고 언론사에 생생하고 상세한 1차 자료를 제공했다.

그녀는 자신이 만약 사람을 구하는 일을 첫 자리에 놓는다면 사존께서는 능력을 부여해 주신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그녀는 감개무량해 하며 말했다. “저는 이 일체는 모두 제자가 대법의 길을 바르게 걸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부여하신 능력 때문이므로 사존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종종 감탄하는데 만약 제가 가서 해야 하는 일에 부딪힌다면 먼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 능력은 어느 방면에 있는가?’를 가늠했는데 그러면곧 사람의 것들을 크게 보게 되었고자신에게 국한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사부님께서 구도하실 중생들을 첫 자리에 놓고, 사부님과 대법이 필요로 하는 어떤 일을 가서 해야 할 때 어떠한 사람의 관념도 움직이지 않고 한다면 곧 사부님께서는 진수(眞修)제자를 언제든지 도와주시고 가호해 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고 어머니와의 원망하는 인연을 선해

법회에서 발언한 수련생 중에는 10여 년간 수련한 노 수련생도 있었고 또한 수개월 전 대법을 기쁘게 얻어 수련의 길에 들어선 신 수련생도 있었다. 파룬따파 수련은 그녀에게 타인을 배려하는 것을 알려주었고, 어머니와의 원망하는 인연을 선해(善解)해주었다. 4개월 전 20여 세 왕(王)씨는 파룬궁수련생들의 서명 활동 장소를 지나가다가 대법을 알게 돼 수련에 들어섰다. 왕씨는 원래 기독교 신자였다. “교회에 다니는 2년간 저와 어머니의 관계는 기독교를 신앙하는 것만으로는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끊임없이 악화됐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언행과 행동이 모두 거슬렸습니다. 어머니 역시 제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상냥하고 친절함에 반감을 느끼셨고 어머니와의 대화는 견해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수련을 통해 저와 어머니의 몇십 년간의 원수 같았던 관계는 선해됐습니다.”

그녀는 말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저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새롭게 대했고 또한 제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철이 없었는지 인식하게 됐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제게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어머니는 환한 얼굴을 하신 적이 없고. 요리할 줄도 모르며, 일이 있든 없든 제게 소리를 질렀으며, 제게 부드러운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어머니 역시 부드러운 모성애를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을 저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악랄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생존하려 노력했고 이미 모든 힘을 다해 저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계셨지만 다만 제가 이해하지 못했고 오로지 자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현재 저는 자신이 매우 부끄럽게 느껴지며 여러 해 동안 어머니에 대해 얼마나 잔혹했는지 의식한 후 ‘어머니, 절 용서해주세요. 저는 예전에 아무것도 몰랐어요’라고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파룬궁은 정말로 매우 좋으며 어머니도 반드시 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제 행동에 놀라움과 감동을 느꼈는데 평생 제가 그녀에게 사과하리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어머니는 줄곧 파룬궁에 대해 깊은 오해가 있었고 접촉하려 하지 않았으며 대법 서적과 전단지 및 이메일을 받았을 때 여러 차례 보지도 않고 바로 처리하곤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는 ‘만약 파룬궁이 너를 개변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모두 믿으며, 무조건 믿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둘은 많은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모두 울었습니다. 마지막에 포옹하며 이후 다시는 상대방을 적대시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장쩌민 고소 과정에서 관념을 타파하고 정념을 유지

현재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룬궁 박해 원흉 장쩌민 고소 대 열풍에 호주 역시 일찍이 박해당했던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그중에 참여했다. 녜(聶)씨 역시 그중 한 명이며 그녀는 법회에서 자신이 장쩌민 고소에 참여한 과정에서 자신을 타파한 수련체험을 교류했다. “한동안 자신이 안일한 수련상태에 머물러 있었고, 표면적으로는 매우 정진하며 자신이 잘 수련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어떠한 일에 마주쳤을 때 자신을 찾을 수 있었지만, 모두 조건이 있어야 했고 얕게 찾았으며, 모순에 마주쳐도 법으로 가늠할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모두 다른 사람을 가늠했다. 법공부할 때 역시 일부 법리를 깨달을 수 있었지만 심성은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문제에 부딪히기만 하면 늘 일의 표면만 따졌고, 그 내포에 대해 깨닫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 때문에 어느 한 경지에서 배회했습니다. 장쩌민 고소 열풍 중에서 사악의 교란을 받았고 갑자기 생긴 신체상 난관은 저에게 자신은 진정으로 내심 수련을 하지 않았고, 근본적으로 ‘진선인(眞善忍)’ 이치로 자신을 수련하지 않았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했습니다. 법은 매 개인에 대해 모두 요구가 있으며 부동(不同)한 층차에 부동한 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인은 사람의 관념을 타파하지 않거나 자아를 내려놓지 않고 바른 사유를 할 수 없다면 승화할 수 없습니다. 오직 진정으로 부동한 경지의 ‘진선인’의 표준에 동화돼야만 진정한 득도자(得道者)로 됩니다. 장쩌민 고소와 마주친 한 가지 큰 난관을 통해 제 관념은 확실히 개변됐고 어떻게 정면으로 사유하는지 알게 됐는데 예를 들면 항목에서 마주친 일에 대해 매우 자연스럽게 넘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예전의 자아 관념에 따라 사람의 이치로 사유한다면 마음이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사존께 감사하며 저는 더는 일의 표면에 매달려 문제를 보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문제에 부딪히면 바른 사유방식과 법으로 가늠할 수 있으며 마음은 밝아졌고 공간장이 넓어졌으며 수련 중의 신성함과 즐거움을 체험하게 됐습니다.”

문장발표: 2015년 9월 8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9/8/3153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