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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반에 갇힌 어머니 레이쭈잉(雷祖英)에게 보내는 편지

글/ 해외 파룬궁 수련생

[밍후이왕] 어릴 적에 어머니는 몸이 매우 허약해 퇴근해 집에 오시면 늘 침대에 쓰러져 잠들어 버려 집안일을 하시지 못하던 기억이 납니다. 병이 도지면 때론 며칠씩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고 나를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건강을 회복하려고 병원에도 다니고 기공도 배우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썼어도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했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아 2~30대에 벌써 심장병, 위장병, 경추가 어긋나고 신장결석 등을 앓고 있었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어머니는 점점 생기가 넘쳤고 직장에 다녀도 피곤해 하지 않으며 집안일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계셨습니다! 아침마다 나는 아름다운 연공음악에 깨어났고 저녁이면 법공부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습니다. 며칠 사이 병마의 고통에서 해탈된 어머니는 당신의 몸에서 일어난 기적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셨고 얼굴엔 항상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우리 가족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내가 말을 듣지 않을 때면 어머니께선 고함치지 않고 인내심 있게 이치를 이야기하시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에게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좋은 어린이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한 말이 맞으면 네가 들어야 하고 틀리다면 네가 알려 주렴. 네 말이 맞으면 나도 다음부터 고칠 테니까.” 이런 교육을 받으면서 나는 훌륭하게 자라났고 어머니와 다툰 적이 없었습니다.

1999년 7.20 이후 어머니와 우리 가족은 커다란 고험이 겪게 됐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시지 않고 베이징에 갔다고 어떤 분이 갑자기 전화로 알려주었습니다. 결국 10여 일 동안 직장의 한 초대소에 연금당해 ‘사상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 개월이 지났지만 어머니는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준 파룬궁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상사에게 영향을 끼칠까봐 많은 사람들이 흠모하는 공무원 직장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우리 집 경제여건이 여의치 않으니 마음대로 물건을 사지 말아야 한다. 다른 아이들을 부러워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네가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철이 들어 부모님이 나 때문에 걱정하시지 않게 해드려야 했습니다. 그해 나는 11살이었습니다.

어느 해 그믐날, 직장 지도자가 수이궈후(水果湖) 제1파출소와 결탁해 아버지를 세뇌반에 끌어갔습니다. 음력설을 어머니와 나만 쇠게 됐습니다. 그런데 또 조심하지 않아 키를 집안에 잠가 놓았습니다. 고립무원에 빠진 어머니를 도우려고 나는 여러 가지 엉뚱한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어머니께서 윗집 베란다에서 우리집 베란다로 내려오는, 위험하나 방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 한 가지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때 나는 어떤 곤란도 어머니를 가로막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내가 방안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거실에 나가보니 어머니는 이미 끌려갔고 파출소에서 왔다는 어른들만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해놓고 집안을 수색했습니다. 핸드폰, 컴퓨터, 대법서적 등, 심지어 내가 영어 공부하는 녹음기까지 몰수해 갔습니다. 나중엔 아버지까지 끌려가 나는 처음으로 혼자 밤을 지새우게 됐습니다. 눈물이 베개를 적셨습니다. 아버지는 이튿날 돌아오셨습니다.

보름이 지난 후, 우한(武漢)시 공안국 경찰 두 사람이 갑자기 우리 학교에 찾아왔습니다. 나에게 구치소에 가서 어머니를 만나보라고 하면서 ‘사상공작’을 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만나는데 동의했지만 그들을 대신해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으로 어머니를 격려해야 했습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구치소로 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하고 항거하면 엄벌한다’는 큰 붉은 글자를 흰 벽에 써 놓은 그곳 분위기는 숨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경찰들이 나에게 으름장을 놓아도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짧은 면회였지만 나는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며칠 전 멋진 파마머리가 짧은 단발로 바뀌었고 단추를 전부 떼버린 지퍼를 달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맹세했으나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말씀을 하지 않아도 나는 어머니께서 이 고비를 넘길 것이고 나도 자신을 잘 돌볼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또 몇 주 후, 어머니는 허완(何灣) 노동교양소 1년 교양을 당했고 우리집은 재차 수색을 당했으며 아버지도 다시 세뇌반에 납치당해 나 혼자만 남았습니다. 7개월을 혼자 지내야 했습니다. 그때 나는 12살이었습니다.

1년 뒤, 어머니는 결국 돌아오셨습니다. 워낙 왜소한 체구였지만 더 쇠약해진 모습은 믿기 어려웠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낙관적이었고 더욱 확고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 걱정하시는 당신에게 나는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바른 믿음이 있기에 나는 매우 큰 마난을 겪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머니, 1학기 기말고사 시험 때 나는 반에서 1등, 학년에서 10등했어요! 나는 자신을 잘 돌보았어요!”

일가족이 2년간 평화롭게 지내자 또 한 차례 마난이 덮쳤고 이번엔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직장에서 사업을 특별히 잘하셨고 아버지가 쓴 경제보고서와 연구과제가 몇 편이 국무원과 성급 지도자들의 인정을 받게 됐습니다. 후베이(湖北) 성위 서기가 이렇듯 우수한 인재가 파룬궁 수련생이고 신앙 때문에 직장을 포기한 사실을 알고 나서 수하에게 “먼저 사업문제를 해결하고 이후에 사상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한마디가 어머니를 또 고통의 심연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후베이성 610사무실의 지시 하에 수이궈후 파출소 사복경찰들이 어머니가 귀가할 때를 기다려 재차 어머니를 우창 양위안 세뇌반에 잡아갔고 한 달이 넘도록 감금시켰습니다.

노동교양소 세뇌반에서 당한 참혹한 박해에 대해 어머니는 언급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 어려움에 대해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10평도 안 되는 독방에 8개월 동안 갇혀 있었다. 주위는 철조망이고 창문은 종이로 발라 바깥을 전혀 보지 못하고 아무소리도 듣지 못했다. 햇빛을 전혀 볼 수 없고 먹고, 마시고 모든 것은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하루 24시간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며 세뇌를 시켰고 매일 2시간밖에 잘 수 없었다. 한 번은 3일간 밤낮 눈을 붙이지 못했다. 마치 통조림 같은 봉폐된 환경에서 사유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교란을 받아야 했다.”[우한시 허완(何灣) 노동교양소에서] “어느 여름날 저녁, 두 손을 전기실 벽에 묶어 놓아 모기밥이 되게 했다. 내가 단식으로 항의하자 나에게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했다. 여섯 명이 나를 땅에 누르고 볼을 힘껏 꼬집고 젓가락을 입에 쑤셔 넣어 물을 주입했는데 질식해 죽을 뻔했다. 이런 정경을 보고 나와 동반해 전향 임무를 맡은 동료가 놀랐다. 그녀는 충격으로 고혈압에 걸렸다”(우창 야위안 세뇌반에서) 이것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이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악한 일들이 우리 신변에서 일어나고 있단 말입니다! 존경하는 어머니, 당신은 도대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습니까? 평소 당신의 자애로운 얼굴과 낙천적인 정신을 보노라면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신변에서 발생했으리라 어찌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금년 6월 7일, 갑자기 어머니는 또 납치당해 겨우 안정을 찾은 우리의 평온한 생활이 또 흐트러졌습니다. 아침 버스를 타러 나간 어머니를 우창구 610사무실과 수이궈후 제1파출소의 경찰들이 또다시 납치해 양위안 세뇌반에 보냈고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놀랍게도 그 이유는 ‘6월 9일 후베이성에서 제 10차 당대표대회를 열기에 환경을 사전에 청리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저번에 당했던 처지를 알고 있는 나는 이번에 또 어떤 비인간적인 학대를 받을지 걱정되어 잠을 못 이루게 됩니다.

자신을 돌이켜 보면, 아직 어리니 나 자신을 잘 관리해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이 최대의 지지라고 생각했고 또 나는 해냈습니다. 지금 나는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많이 자랐고 미국이란 이 자유의 땅을 밟게 됐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위해 전 세계를 향해 호소하고 외치겠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어머니를 즉각 석방하라!’ 어머니께서 하루 빨리 자유를 되찾게 하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머니는 고독한 홀몸이 아닙니다. 나뿐만 아니라, 중국인이든 서양인이든지 막론하고 나를 아는 모든 친구들은 어머니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그 강대한 힘을 느끼셨습니까?

6月12日摄于纽约中领馆
6월 12일 뉴욕 중국 영사관 앞에서

며칠 전, 나는 자유여신상을 바라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언제면 당신이 든 자유의 횃불이 중화대지를 비출 수 있을까요?” 먼 곳을 응시하는 자유의 여신상의 확고한 눈빛에서 나는 그 날이 머지않음을 믿게 됐습니다. 그날이 바로 우리가 다시 상봉할 날입니다! 어머니, 꼭 그날까지 견지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딸 2012년 7월 4일 뉴욕에서

문장발표: 2012년 7월 7일
문장분류: 해외 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7/7/2599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