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5’를 회억하며
【밍후이왕 2010년 4월20일】(밍후이 기자 왕메이 밴쿠버에서 취재보도) 전 세계가 다 주목했던 ‘4.25’ 청원이 있은 지 이미 11년이 되었다. 그 해 청원에 참여한 파룬궁수련생들 대부분은 여전히 중국에 있고 또 일부는 대륙을 떠나 세계 각국에 분포되어 있는데, 현재 밴쿠버에 거주하고 있는 리유장(李尤江)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다. ‘4.25’의 11주년을 기념할 즈음, 밍후이 기자가 리유장을 취재했다.
리유장(李尤江)은 2009년 4월 25일 밴쿠버의 중국영사관 앞에서 박해를 항의하다(왼쪽1)
단지 정부에 가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를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리유장은 “당시 우리의 생각은 아주 간단했는바, 그저 정부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우리들이 수련 후 심신에서 얻은 실제 정황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고, 그들에게 파룬따파는 좋다(法輪大法好)라는 것을 알려 주려고 했던 것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밴쿠버에 거주하고 있는 리유장은 베이징에서 왔다. 그녀는 11년 전의 정경을 상기하며, 마치 눈앞에 선한 것 같다고 말했으며 ‘4.25’ 그날 아침 모두들 평소와 마찬가지로 단체 연공을 했고, 연공이 끝난 후 한 동수에게서 톈진(天津)에서 발생한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과학계의 망나니이자 어용학자인 허저쓔(何祚庥)가 톈진의 한 잡지에 파룬궁을 모독하는 글을 올리자 톈진 파룬궁 수련생이 확인 후 그 잡지사에 방문하여, 보도의 부정확한 내용에 대해 지적했다.
4월 23일, 24일 톈진 공안국은 300여 명의 경찰들을 동원하여 부정확한 내용을 바로 잡으려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때리고 해산시켰으며 45명을 체포했다. 일부 파룬궁수련생들은 피를 흘리며 부상을 당했다.
톈진의 파룬궁수련생들은 공안국에 방문하여 사람을 풀어달라고 했는데, 공안국에서는 “이 일은 우리가 결정할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베이징에 찾아가라” 고 했다. 뒤이어 많은 톈진 수련생들은 베이징의 국무원 민원관리상담사무실에 찾아갔다.
리유장은 “당시 같이 연공하던 수련생들이 상술한 정황을 듣고 모두 민원관리 상담사무실에 청원하러 갈 것이라고 했는데, 정부에 진상을 알리는 것은 바로 톈진 동수들을 지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기억에 우리가 베이징 푸유(府右)거리의 민원관리상담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9시 경이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민원관리상담사무실 부근으로는 들어 갈 수 없었다. 경찰은 우리를 맞은 편으로 인도했고 우리는 줄곧 경찰이 지정한 곳에서 머물렀는데, 어떤 수련생은 연공했고, 어떤 수련생은 책을 읽었고, 어떤 수련생들은 작은 소리로 교류하기도 했고, 또 어떤 수련생들은 오가면서 바닥의 쓰레기와 경찰들이 버린 담배꽁초를 주웠다.”
“처음에 경찰들은 아주 긴장해 했지만, 후에 우리들이 아주 온화한 것을 보고 그들은 개의치 않고 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잡담하거나, 어떤 이는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저녁 9시경에 이르러 어느 수련생이 소식을 전달했는데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다들 집에 돌아가라.’ 고 하여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파룬궁의 신기함을 몸소 체험하다
리유장은 당시 우리는 단지 정부가 파룬궁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이 잘못을 저지르지 말게 해야 한다고 느꼈고, 우리들이 바로 파룬궁의 탁월한 효과를 몸소 체험한 사람들이라는 하나의 심태를 품고 갔던 것이라고 했다.
수련 후 자신이 얻은 효과에 대해 언급할 때 리유장은 거침없이 말했다.
수련하기 전 그녀의 신체는 매우 나빴는데, 온몸 전체가 병이었고 바이러스성 심근염, 녹내장, 신장염, 관절염, 척추골증식, 좌측 등 부위 낭상근막염 등등으로 종종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곤란했고, 사지가 무력했으며, 자주 혼절했는데 1.5킬로그램의 물건조차 들 수가 없었다.
1994년 5월의 어느 날, 베이징 공안부 강당에서 ‘의로운 기금회’에 기부를 한 리훙쯔(李洪志) 선생에게 상을 수여했고, 현장에서 바로 리(李) 선생의 발표회가 있었다. 리유장은 올케의 권유로 발표회에 참여했는데 듣고 난 후 매우 좋다는 것을 느꼈으며, 파룬궁은 불법수련인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 ‘진(眞), 선(善), 인(忍)’ 세 글자가 특히 듣기 좋았다. 돌아온 후 『파룬궁(法輪功)』서적을 보았고 파룬궁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해했다.
두 달째 되던 1994년 6월 리유장은 지난(濟南)에 가서 리훙쯔 선생의 9일강의반에 참가했으며, 체계적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고, 정식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리유장은 연공하기만 하면 온몸 전체에 뜨거운 기운을 느꼈고, 마치 전류가 통하는 것 같았을 뿐만 아니라, 병을 물리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데 아주 좋은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기억에 연공을 시작한지 며칠 안 되어 집안의 하수구가 고장 나 물이 샜는데 우리 집은 1층인지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가봐 나는 끊임없이 물을 쓸어냈는데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허리에서 ‘두둑’하고 소리가 들려 병원에 가 사진을 찍어봤는데, 의사선생님은 말하기를 “아주 좋아요. 당신 허리의 골극(骨刺)뿌리 부위가 부러졌어요!”라고 했는데 그 후부터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또 한번은 단체연공 할 때 공법을 배우려는 신 수련생이 왔었다. 나는 그녀에게 공법을 가르쳤으며, 나의 방석을 그녀에게 주어 가부좌하게 했는데, 갑자기 나의 가슴 한가운데가 바늘로 찌르듯이 매우 아팠는데 머리 숙여 보는 순간 왼쪽 가슴 심장부위에 바늘구멍 같은 3개의 빨간 점이 보였으며 그때부터 가슴이 답답하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지난(濟南) 학습반에서 사부님께서는 또 한 번 나의 신체를 청리해주셨는데, 녹내장, 좌측 등 부위 낭상근막염 등이 모두 한 순간에 없어졌다.” 리유장은 함께 학습반에 참가한 친구 한 명이 자궁에 혹이 있었는데 강의를 듣고 그녀의 혹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수련하기 전 리유장은 해마다 수만 위안의 치료비를 썼으며, 병원에 입원하기만 하면 2 ~ 3개월이었다. 그러나 1994년 수련을 시작해서부터 그녀는 다시는 병을 치료하러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고, 한 알의 약도 먹지 않았으며, 전신의 병은 완전히 사라졌다.
무신론의 관념을 개변했다
수련한 후 리유장은 많은 신기한 현상을 체험했다.
지난(濟南) 학습반에 참가한 두 번째 날 밤 리유장은 천목이 열려 다른 공간의 광경을 보았고, 또한 하나의 큰 바위에 ‘하범인 (下凡人)’이라는 세 글자가 씌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그녀와 사업상 관계가 있는 싱가포르의 의사를 생각하는 순간, 즉시 천목으로 그를 보게 되었다.
리유장은 그녀가 초기 연공할 때의 사진에서 파룬이 자주 나타나곤 했다고 말했고, 자신의 사진에서 자신의 머리 위에 또 하나의 머리가 있는 기이한 광경을 보았고, 사부님이 연화장(蓮花掌) 하신 사진을 봤을 때 사부님 손가락 끝 부위에 아름다운 꽃송이가 있는 것을 보는 등등 이었다.
리유장은 과거에는 무신론 교육을 받았지만, 연공 후 직접 눈으로 신기한 일들을 볼 수 있었기에 천천히 그런 관념을 개변했다고 했다.
진(眞), 선(善), 인(忍)의 요구에 부합되게 노력하다.
파룬궁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수련자의 심성을 제고하도록 하는 것이며, 개인 및 전체사회에 대해 오직 이익만 있을 뿐, 해로움은 한 가지도 없었다.
리유장은 원래 성격이 안 좋았는데, 불 같은 성격에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 좋아했고, 특히 남편을 늘 탓했다. 그러므로 연공한 후 ‘인(忍)’의 고험이 특별히 컸다.
“어느 한번 남편과 백화점에 물건 사러 가려 했는데, 어느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는 버스를 타고, 남편은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내가 그 장소에서 40분을 기다렸는데도 남편은 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남편은 약속을 잊고 서점에 책을 보러 갔던 것이었다. 남편을 만난 후 나는 너무 화나서 발로 차려고 했는데, 발을 들 수가 없었다. 순간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참아야 했다. 바로 사부님이 나를 관할하고 계시어, 나로 하여금 좋지 않은 일을 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었다.”
“수련 중에서 자주 고험에 마주치게 되는데, 평소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도 아주 좋았다. 어느 한번 친구들과 같이 식사하는데,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이 한결같이 나를 책망했지만, 나는 모두 참았고 화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는 그들이 나를 도와 심성을 제고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노동 교양소에서 갖은 박해를 받다
99년 ‘7.20’이후, 중공사당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미친 듯이 탄압을 시작했다. 사악의 중심에서 거주하고 있는 리유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1년 설날에 진상표어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그녀는 경찰에게 잡혀 구치소에 갇혔는데 그 후 강제로 일 년 반의 노동교양 판결을 받았고, 악명이 매우 높은 신안(新安)여자 노동교양소에 수감되었다가 2002년 4월에 풀려났다.
불법으로 수감된 기간에 리유장은 잔인하게 폭행을 당했으며,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하게 하고 세뇌를 당하면서, 여름에 한 달간 샤워 하지 못하게 하고, 고강도의 노동 등의 박해를 당했다.
당시 그녀는 혈압이 아주 높았지만 여전히 노동을 해야 했고, 아침 6시부터 줄곧 다음날 새벽3시까지 일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은 3 ~ 5분간 이었기에 세수와 용변 보는 일 중 한 가지일 밖에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샤워하지 못하게 하였기에 입고 있던 옷이 땀에 절어 뻣뻣했다. 밤에 잠을 잘 때 담요는 그저 두 장의 원단일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사악한 환경 중에서 리유장은 일부 파룬궁 수련생들이 고통으로 인해 정신병에 걸리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어느 한 여자 수련생이 잔혹한 구타로 다리가 부러지기까지 했던 것을 목격했다.
아울러 회사에서도 경제적으로 그녀에게 박해를 가했는데, 노동교양을 당한 후 회사는 그녀를 해고했기에 수입이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잡혀서 매 맞고 괴로움을 당하는 등의 충격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2002년 말에 세상을 떴다.
이러한 박해가 리유장의 신념을 동요하지는 못했다. 노동 교양소에서 나온 뒤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진상 알리기를 견지했고, 더욱 많은 사람이 중공의 사악한 일면과 파룬궁의 진상에 대해 분명히 알기를 희망했다.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중공사악의 본성이다
십 여 년의 이런 기구한 세월을 지나왔고, 11년간 중공이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한 인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하는 박해를 겪었다. 리유장이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해 ‘4.25’에 청원한 것은,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있어서는 성스러운 호법행위이며, 바로 자신의 신앙 자유의 합법적인 권익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며, 사악한 중공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하나의 사전 계획에 따라 계획적으로 모함하려 했던 것이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진상을 모르는 일부 중국 사람들은 늘 파룬궁 수련생들을 비난 했는데, 당신들이 중난하이(中南海)를 포위 공격했기 때문에 탄압하게 된 것이다 라고 했고 ‘4.25’ 청원을 하지 않았으면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견해는 마침 중공의 간계(奸計)에 넘어간 것이다. 리유장은 “당시 톈진공안국은 파룬궁수련생에게 ‘베이징에 가야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4.25’ 그날 파룬궁수련생들은 민원관리상담사무실 문 밖의 길가에서, 바로 경찰의 인도 하에 길 맞은 편으로 가게 되었고, 또한 경찰이 직접 대열을 원형으로 갖추도록 지시했으며, 게다가 나중에 공개한 사진에서 확인 했는바 중공당국은 파룬궁수련생들이 오게 될 거리에 미리 CCTV카메라를 설치해 놓았던 것이다.” 고 언급했다.
파룬궁은 ‘진(眞), 선(善), 인(忍)’을 말하고, 중공은 거짓(假), 악행(惡), 투쟁(鬪)을 논하고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중공사악의 본성이며, 파룬궁을 박해하는 원인은 절대 ‘4.25’ 평화 청원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 아니며, 더욱이 그 무슨 중난하이(中南海)를 포위 공격한 것으로 인한 것이 절대 아니다.
문장 발표: 2010년 04월 20일
문장 분류: 해외소식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20/2218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