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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당시 파리에서 청원하다(사진)

글/프랑스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4월 22일] 1995년,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 선생님은 국외에 가서 법을 전했는데 첫 번째 역은 프랑스였다. 당시, 프랑스주재 중국대사관 문화처는 ‘유럽타임즈’에 이 소식을 게재했다. 중국의 유명한 기공대사가 이곳에 와서 공을 전하고 설법한다. 파리에 살고 있는 캄보디아 화교 라오청(老成)과 온 가족들은 행운스럽게 리훙쯔 선생이 파리에서 개최한 9일 학습반 수련생이 됐다. 4년 후인 1999년 4월 25일, 만여 명의 파룬궁(파룬따파라고도 함)수련생들이 중난하이(中南海) 인근 푸유가(府右街)에서 단체 청원을 하고 합법적이고 느슨한 수련환경을 요구할 때, 대법수련 중에서 많은 수익을 얻은 라오청도 다음날 파리주재 중국대사관에서 똑같은 마음의 소리를 전달했다.


파리 파룬궁수련생 라오청(老成)

라오청은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캄보디아 화교로서 형제자매들은 여러 가지 보석장신구점을 경영하고 있다. 그러나 거액의 재산을 갖고 있어도 병마의 침입을 막지는 못했다. 처남의 큰 아들은 갑자기 중병을 앓았고, 알고 있는 모든 명의를 찾아봤지만 결론은 전부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에 그들은 중국 기공을 생각했으며 유명한 대기공사를 찾아 아이의 생명을 구하려고 사방으로 알아봤다.

‘유럽타임즈’에서 리훙쯔 대사가 와서 공을 전하고 설법한다는 소식을 본 후, 라오청 온 가족은 병이 든 아이를 데리고 리 선생님이 파리에서 개최한 9일학습반에 참가했다.

5장 공법을 연마한 후, 특히 ‘쩐싼런(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행동하고 일을 하자 여러 해 동안 라오청을 괴롭히던 요통이 나았고 세계관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비록 장사 속에 있었지만 마음은 도리어 돈과 재물에 눈이 멀지 않았다. 그는 또 늘 중국대륙으로 날아가 그곳 파룬궁수련생들과 수련심득체험을 교류했으며 그곳에서 아주 많은 수련생을 사귀었다.

1999년 4월 25일, 톈진(天津) 파룬궁수련생이 무고하게 체포되자 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은 자발적으로 베이징 중난하이 인근에 있는 푸유제 청원사무실 ‘신팡반(信訪辦)’에 가서 청원했다. 라오청은 전화로 국내 친구들에게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후, 정부를 신임하는 생각에서 출발해 프랑스주재 중국대사관에 가서 정황을 똑똑히 설명하려고 했다. 그는 연공 후의 자신의 감수와 수익을 그들이 국내에 반영해주어, 국가 지도자들이 한쪽 말만 곧이 듣지 말고 파룬궁을 잘못 이해하지 말기를 희망했다. 동시에 그는 또 친분 있는 국내 동수들의 안위를 걱정했고 정부에서 착오적인 결정을 내리지 말 것을 희망했다.

4월 26일, 라오청과 파리의 30여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은 함께 프랑스주재 중국대사관에 왔다. 대사관의 한 비서는 열정적으로 그들을 접대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사실 그대로 당신들의 생각을 상급에 반영할 것입니다.” 그는 또 자신의 처제가 바로 파룬궁을 수련해 병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은 아주 상화롭고 화기애애했다. 라오청을 비롯한 사람들은 진실하고 소박한 생각을 품고 왔고 ‘국내 파룬궁수련생들에게 합법적인 연공장소를 달라’는 단순한 염원을 품고 떠났다.

라오청과 모든 파룬궁수련생들이 전부 예견하지 못했던 것은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4.25’ 대청원이 뜻밖에 훗날 중공에 의해 왜곡되고, 파룬궁을 박해하는 구실로 된 것이다. 99년 7월 20일 이후, 프랑스주재 중국대사관의 대문은 다시는 파룬궁수련생을 위해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라오청은 모든 파룬궁수련생들과 마찬가지로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다. 그들은 파리에서 가장 유명 관광지인 에펠탑으로 나아갔고 그곳에서 십여년 동안 프랑스 국민과 세계인을 향해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죄목을 폭로하는 진상알리기 활동을 시작했다.

문장완성: 2010년 04월 21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22/221962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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