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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항의 – 워싱턴 DC, 중공 대사관 밖에서 (사진)

글 / 명혜기자 양 쓰위안

[명혜망] 2007년 7월 19일부터 7월 21일 동안 전 세계에서 모여든 파룬궁 수련생들이 워싱턴 DC에 있는 중국대사관 밖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조용히 발정념을 하면서 지난 8년동안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박해에 항의했다. 이 모습은 워싱턴 DC 수련생들에게 그들이 처음 대사관에 와서 항의하기 시작했던 8년 전 7월 20일을 상기시켰다.


중국대사관 밖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의 평화로운 항의

1999년 7월 20일, DC 수련생들은 중공이 중국 전역에서 수련생들을 불법 체포, 감금, 소식을 접한 뒤 워싱턴 주재 중국대사관으로 갔다고 수련생 타오 여사가 회고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지만, 우리는 이곳에 와야 한다는 것만은 알았다. 왜냐하면 이곳은 중공의 외교관들이 외국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공이 우리를 박해하기 때문에, 중공대사관 앞에서 항의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날 400명 이상이 왔다.” 대사관 밖에서 연공을 하는 외에, 수련생들은 대사관 직원들에게 수련생들을 박해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메시지를 건네주었다. 점점 더 많은 수련생들이 워싱턴 DC로 왔다. 그들은 국회의사당에서 연공시범을 하고, 기자회견을 열고, 그들의 대표자들을 만나 파룬궁에 대해 그리고 중공의 파룬궁 박해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대표자들에게 부디 박해제지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 날 이후 줄곧 중국에서 박해가 끊이지 않고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각종 박해제지 활동이 그곳에서 벌어졌다. 매일 박해로 수련생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해외 수련생들이 어떻게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국대사관 밖에서의 항의활동은 1999년 10월에 시작되었고, 오늘까지 활발히 지속되고 있으며 한 번도 그친 적이 없다. 수련생들은 매일 중국대사관 앞에서 파룬궁 연공을 하면서 중공의 박해에 항의하고 있다고 타오 여사가 말했다. “우리는 단순히 박해제지 메시지를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박해가 계속되는 한, 그리고 사악한 당이 해체되지 않는 한, 우리의 항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개변되고 있다

타오 여사는 항의활동을 하던 초기에는 대사관에서 수 십 명씩 나와 연공하고 있는 수련생들을 괴롭혔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중공이 선전하는 거짓말로 수련생들을 확신시키려 노력했다. 거짓말 하나 하나가 가짜라는 것을 수련생들이 입증한 후, 대사관 직원들은 오랫동안 말문이 막힌 채 조용히 서있었다.

매일, 수련생들은 평화롭게 연공을 하고, 진상자료를 나누어 주면서,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 대사관 직원들은 정보를 더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수련생들에게 말을 걸었고, 자료를 받고, 그런 다음 대사관으로 돌아가서 그것들을 읽었다.

일부 대사관 직원들이 진상을 이해하게 되었고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인식했다. 한 번은, 타오 여사가 여러 사람들이 눈을 치우는 것을 보고 그들과 서로 인사를 나눈 후, “파룬따파 하오!” 라고 말하자, 그들도 즉시 “좋아! 좋아! 좋아!” 라고 대답했다.

많은 수련생들이 그들에게 왜 우리가 중공의 박해에 대해 항의하는가를 설명했다. 대사관 직원들은 다만 다른 중국인들일 뿐이다. 그들은 중공의 황당한 선전에 기만당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 역시 희생자들이다. 수련생들은 그들이 진정으로 파룬궁에 대한 진상을 이해하고 독재의 사악에 협조하지 말 것과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말기를 바란다.

경찰의 지지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련생들은 항의를 지속해왔다. 이는 워싱턴 경찰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어 이제는 솔선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수련생들을 돕는다.

2000년 비가 내리는 어느 봄 날, 타오 여사가 우의를 입은채 정공을 하고 있었다. 세 명의 경찰을 태운 경찰차가 멈춰 섰다. 그들 중 한 명이 걸어와 타오 여사에게 그녀가 춥지 않은지, 언제 떠날 것인지 물었다. 그런 다음 그가 말했다. “우리가 저기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에게 알려 달라.” 세 명의 경찰들이 한 편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저녁 때 타오 여사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경찰들이 다시 와서 말했다. “내일 봅시다.” 그들은 수련생들이 다음 날도 항의하러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곳을 순찰해오던 한 젊은 경찰이 한 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다시 모습을 나타냈을 때,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유럽에 갔었는데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나는 당신들이 입고 있는 옷과 똑같은 옷을 입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보았다. 그는 중공 깡패들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수련생들을 구타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화가 나서 그의 수갑을 꺼내들고, 중국대사관을 향해 말했다, “만약 그런 일이 워싱턴에서 일어난다면, 즉시 나를 부르시오. 당장 그들을 수갑 채울 테니까. 여기는 미국이다! 어떻게 그들이 감히!” 그는 또 그의 임무가 수련생들이 상해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9-11 테러사건 바로 직후, 경찰들의 업무량은 급증하였다. 한 번은 이 젊은 경찰이 항의 장소 옆 벤치에 앉아서 타오 여사에게 자신이 너무나 피곤하다고 했다. 그는 하루 12시간을 일하는데, 아직 쉬는 날이 없었다. 타오 여사는 그에게 대사관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녀는 그에게 수련생들이 무사할 것이라고 했더니 그는 “당신들은 단 몇 명이 있거나, 혹은 백 명, 천 명 또는 더 많은 사람이 이곳에 있더라도, 모두가 ‘진,선,인’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몹시 피곤할 때, 다만 잠시라도 앉아있기 위해 이곳에 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주 편안해 진다. 그래서 피곤할 때는 이곳에 와서 쉬는 것이다.” 라고 했다.

나중에 이 경찰은 승진하여 더 이상 순찰하러 오지 않았다. 한 번은 그가 평복을 입고 수련생들의 항의 장소로 왔다. 그가 수련생들과 환담을 하면서 말했다. “지금 근무시간이 아니다. 사실 나는 내 보직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만약 당신들이 내 전 상관을 보거든, 부디 그에게 말해주시오, 나는 보직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고. 나는 이곳에 있고 싶다. 나는 당신들과 같이 있고 싶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9-11 사태 이후를 포함한, 거의 8년 동안, 항의 활동을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9-11사태 다음 날 타오 여사가 다시 중국대사관 앞으로 왔을 때 경찰에게 말했다. “9-11 사태는 테러리즘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살해당한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아는가, 중국에서는 중공이 파룬궁 수련생들을 잔인하게 박해하고 있다. 그들이 실시하는 것은 국가 공포주의다. 오늘 나는 중공에 항의하러 이곳을 왔다. 괜찮은가? 경찰은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평소처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화로운 항의가 8년을 접어들었다. 중국대사관 앞에서 매일 항의하면서 발생한 일은 너무도 많다. 사악한 박해에 대면하여 수련생들이 전시한 견인함과 상화함은 각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이는 또한 사악이 철저히 실패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발표일자: 2007년 7월 28일
원문일자: 2007년 7월 28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7/7/23/159339.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7/7/28/880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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