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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파룬궁수련생 아태정상회담 전 버시라이를 기소

글 / 한국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6월 1일】2005년 5월 30일,한국 파룬궁 수련생들은 파룬궁을 박해한 책임자 버시라이를 기소하는 기소장을 서울 중앙지방검찰청에 올렸다. 5월31일 오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정식으로 기소장을 접수하였다.

소송은 집단학살죄, 특수체포감금, 특수폭행 등 죄명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책임자 버시라이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였다. 6월2일 한국 제주도에서 진행되는 2005년 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정상회담이 열리며 버시라이는 2005년 6월1일 한국에 도착하였다.

버시라이는 1993년 두 차례 랴오닝성 다롄시의 시장을 연임한 후 1999년 9월 중공 랴오닝성위원회 상무위원과 다롄시위원회 서기직을 맡았다. 1999년 파룬궁 탄압이 시작된 후 그는 장쩌민을 적극적으로 뒤따라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였다. 버시라이의 조종과 지휘로 다롄은 전국에서 가장 악명이 자자한 지역 중의 한 곳으로 되었다. 최소한 15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로 사망하였다. 버시라이는 이를 발판 삼아 쾌속 승진하였다.

2001년부터 랴오닝성 성장으로 부임하였다. 그후 버시라이는 또 랴오닝성을 파룬궁 박해가 가장 엄중한 성 중의 한 곳으로 만들었다. 그는 또 10억 위안이란 거액을 투자하여 파룬궁 수련생을 불법으로 수감하는 감옥을 건설하였다.

버시라이가 이렇게 갖은 노력을 다해 장쩌민의 파룬궁 탄압을 도움으로써 장(江)의 신임을 얻었으며 나중에는 한 개 성의 당서기에서 단번에 중앙행정부문의 상무부 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버시라이는 2004년 미국 워싱톤 DC에 갔을 때 집단학살죄 등으로 고소된 후 현재 이미 미국, 네덜란드, 러시아 등 세계 6개 나라에서 파룬궁 수련생에 의해 고소된 상태이다.

그외 버시라이는 또 청부 살인업자를 고용하여 호주 파룬궁수련생 David Liang을 암살하려고 한 혐의자이다. 암살 기도 사건은 버시라이가 2004년 6월28일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 주력인 쩡칭훙과 함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할 때 생긴 사건이다.

기소인은 중공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잔혹한 박해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버시라이를 고소 하는 것은 파룬궁을 탄압하는 악인들에게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세인들로 하여금 중공의 파룬궁 탄압을 제지함의 긴박성과 당위성을 알게 하며 이로써 하루빨리 진.선.인에 대한 박해가 결속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법을 알게 하여 그를 소중히 여기게 하며 동시에 세인들이 선념, 정념으로 복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사건은 2,3일 내에 담당 검찰관에게 내려 가게 된다.

문장완성 : 2005년 05월 31일

문장발표 : 2005년 06월 01일
문장갱신 : 2005년 06월 01일 11:07:47

문장분류 : [해외소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6/1/103132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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