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룽징(榮靖, 미국 뉴저지주)
【명혜망 2004년 7월 29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미국 뉴저지주에서 수련하고 있는 룽징이라고 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체득은 “순진한 아이들과 함께 수련하는 것은 나의 영광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1. 기연(機緣)을 이용하여 내가 있는 학교의 미국 어린이들에게 홍법하다
나는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처음에는 임시 교사로 대리 수업을 할 기회가 많아서 다양한 학년의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미국 아이들은 에너지가 강하고, 타고난 성품이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며 배짱도 두둑해서 다루기가 아주 어렵다. 미국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법을 이해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 당시에 나는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었기에 아이들에게 홍법을 하는 문제는 내겐 작지 않은 도전이었다.
교편을 잡은 지 얼마 후에 미술 선생님이 몇 달간 출산휴가를 가는 바람에 학교에서는 내게 전교의 미술 수업을 담당하도록 했다. 실제로 나는 미술을 잘 못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아이들에게 홍법할 좋은 기회가 됨을 알았다. 나는 진지하게 수업을 준비하고 교재도 충분히 준비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자신에게 존재하는 수업에 대한 긴장과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였다. 이에 아주 빠른 시간에 나는 자유자재로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측에서도 좋은 평을 얻게 되었고, 후에 나는 전교 미술수업 시간에 “중국 문화의 달” 활동을 전개하여 다음과 같은 활동을 했다.
첫주에 나는 아이들에게 중국은 오천년의 휘황한 역사와 유구한 문화를 가진 나라라고 소개하였다. 특히 수도인 베이징을 말할 때 그곳에 천안문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아이들에게 홍법을 시작하였다. 나는 스스로 중국어와 영어로 “法輪大法 Falun Dafa”, “眞善忍 Zhen Shan Ren”이라는 글자를 썼고, 저학년들에게는 글자에 색을 칠하게 시켰고, 고학년 학생들은 색을 칠할뿐만 아니라 스스로 글자를 쓰게 했다. 아이들은 중문을 쓰는 것을 아주 재미있어 했고, 나는 칠판 위에 한 획 한 획 “法輪大法好”, “眞善忍”을 쓰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한편으로는 글을 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글을 읽고, 아이들은 배우면서 읽었고 이때 배경음악으로는 普度와 濟世를 틀었는데, 교실이 아주 질서정연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적지 않은 아이들이 중문을 처음 써봤음에도 불구하고 글자체가 아주 예뻤다. 그런 후에 나는 매 반만다 12분짜리 “뉴저지주의 파룬따파”라는 동영상을 틀어주었다. 나는 또 아이들에게 “파룬따파 하오”라는 노래도 가르쳐 주었다.
마지막 주에 나는 아이들에게 《홍음》을 가르쳤다.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비교적 짧은 시만 읽어 주었고, 좀 큰 아이들은 나를 따라서 전편을 읽게 했다. 방법은 내가 먼저 한구절 읽고 아이들이 따라서 한구절 읽었다. 이렇게 짧디 짧은 몇주 만에 나는 전교 4개 학년의 근 400명에 달하는 미국 아이들에게 대법의 복음(福音)을 전했다.
한번은 어느 반에서 아이들이 바닥에 앉은 모습을 보고 나는 무의식 중에 아이들이 반가부좌를 아주 잘 함을 발견했다.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정공(靜功)을 가르쳐 볼까?’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당시 아이들은 끊임없이 떠들고 있었고 다른 선생님이 계속해서 큰 소리로 “조용히 해! 떠들지 말고!”로 외쳐대고 있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으러 간 사이에 아이들에게 “우리 파룬궁을 배워보지 않을래!”라고 하자 모두들 따라 배우겠다고 했다. 처음에 나는 남녀별로 나누어 기초 동작을 분명히 가르치려고 했으나, 곧 시간과 장소가 적당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이에 스스로 수인(手印)을 보여 주고 아이들에게 따라하도록 시켰다. 아이들은 진지하게 배웠고 어떤 아이는 결가부좌를 틀기도 했다. 나는 끊임없이 그들을 격려하면서 “아주 좋아요. 계속해 보세요!”했다. 그때 갑자기 밖에 나갔던 선생님이 돌아와서 옆에 서서는 “참 이상하네, 얘들이 어떻게 이렇게 조용해졌을까? 좋아요, 아이들이 당신 말을 듣고 있으니 계속 연공하세요. 나는 잠시 후에 올께요.” 나는 이때야 비로소 떠들썩하던 교실이 이미 고요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대법은 정말 대단한 위력이 있구나!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나는 전교 아이들이 이미 파룬따파를 알고 음악도 들었으니 연공을 가르치면 얼마나 좋을까를 궁리하고 있었다. 그런던 어느 날 학교에서 갑자기 체육 선생님이 병이 났으니 나보고 대신 체육 수업을 맡아 달라고 했다. “뭐라고요?” 당시에 나는 아주 긴장했다. 상대방은 거의 명령에 가까운 말투로 “결정은 알아서 하시고 무엇을 가르쳐도 좋습니다.” 나는 갑자기 활연히 깨닫게 되었다. 드디어 나의 소망이 실현되었음을!
나는 30분짜리 연공음악 테이프와 몇장의 연공 사진 및 소형 녹음기를 준비했다. 다음 날, 5개 반에서 약 100여 명의 아이들에게 오장 공법을 가르쳐주었다. 내 경험으로는 아이들은 어른과 달라서 시간을 꼭 길게 할 필요는 없고 동작도 아주 정확하지 않아도 되지만 단, 한가지는 꼭 기억시켜야 한다. 즉, 이것이 바로 파룬궁이며 또한 파룬따파라고도 하는데 5가지의 공법이 있고 세계에서 1억 명 이상이 연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같이 연공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전교에서 유일한 중국인이었기에 아이들은 모두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미술을 가르치지 않은지는 이미 오래 되었으나 적지 않은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미술선생님이라고 불렀고, 짓궂은 아이들은 나를 중국 아가씨라고 불렀다. 그런데 오직 한 여자 아이만은 매번 나를 볼 때마다 아주 분명하게 “사부! 파룬따파”라고 했다. 내 눈에는 이 아이가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미국 어린이들에게도 대법이 필요하며 대법은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것은 실현 가능한 일이다. 단지 우리가 성심을 다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학교 몇 개 학년에 홍법하는 과정은 사실 내게 있어선 수련의 과정이었다. 아이들은 나의 거울과 같아서 나는 항상 그들에게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았다.
가령 처음 수업을 할 때 나는 두려움이 비교적 커서 수업도 딱딱하게 했더니 효과가 좋지 않았다. 어떤 경우 성질이 난폭한 아이들이 내게 불손(不遜)한 언행을 할 때면 심성을 지키기가 아주 어려웠다. 그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급훈을 쓰는 벌을 가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정말로 마음이 평화로울 때에는 멋대로 하던 아이들도 내앞에선 얌전해졌다. 대법의 위력과 사부님의 자비는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변화를 가져왔고 학교에도 이미 소문이 퍼졌다.
교장선생님이 직접 나를 찾아와서는 전교직원들에게 파룬궁을 가르쳐 달라고 격려해 주었다. 일부 인연이 있는 선생님들은 이로 인해 공법을 배웠으며 대법서적을 사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상춘 박사를 구하는 서명운동을 할 때는 우리 학교에서 부교장 선생님을 포함한 몇십 명의 선생님들이 서명을 하여 정의를 지지함과 동시에 중국 정부에게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박해를 즉각 중지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2. 명혜학교 사업에 참가한 일부 체험
미국에 오기 전에 나는 원래 중국에서 세관직원으로 10년 간 일했었다. 당시에는 업무 및 생활 조건이 비교적 양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리어 거의 만족을 느끼지 못했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온 후에 생활이나 학습의 압력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했다. 1997년 법을 얻은 후에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서 나의 관념은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 나는 예쁘고 총명한 아이들만 좋아했으며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만나면 속으로 아주 힘들어 하면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나 자신에게는 비록 아이가 없었으나 모든 아이들이 모두 내 자식과 같이 느껴지며, 수련 후에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길을 아주 소중히 여기고 있다. 천진한 아이들과 같이 있을 때면 너무나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에 나는 작년에 주동적으로 현지 보도원에게 명혜학교 사업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하고 제안을 했다. 지난 일년 간 명혜학교 수련을 거치면서 자신도 아주 많이 단련되었고 심성도 제고되었다.
작년 5월, 당시 나는 뉴저지 인터넷 사이트에 명혜학교의 설립을 알렸고 절대 다수 수련생들의 찬성을 받았다. 그러나 정말로 일을 하려고 하자 상상했던 것처럼 쉽지 않았다. 처음에 우리 집에서 수업을 할 때 적지 않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왔었고 돌아간 후에 반응도 좋았다. 그러나 후에 활동 항목이 많아지자 어떤 수련생들은 아이를 명혜학교에 보내지 않게 되었다. 또 어떤 수련생은 “대법 일이 너무 많고 국내의 수많은 사람들이 구도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법을 얻었는데 꼭 명혜학교를 보내야 하는가?”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명혜학교는 꼬마제자들을 위해 개창(開倉)한 얻기 힘든 단체 수련의 환경이다. 꼬마제자들은 비록 인연은 있지만 어쨌든 아직 아이들이기 때문에 놀기를 좋아하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며 자각성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만약 부모가 바쁘게 되면 아이들은 수련을 게을리 하게 된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단체 법학습과 단체연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매우 중시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도 이런 수련의 환경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환경(環境)》이라는 경문에서 “……왜냐하면 당신들이 사회에서 접촉하는 것은 모두 속인이며 아울러 인류도덕이 급속스레 미끄럼질 치어 내려온 후의 속인이라, 이 큰 염색독은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물결치는 대로 표류하게 할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접촉하는 것은 속인 사회이며 아이들은 접수하는 능력이 아주 빠르므로 나쁜 습관에 물드는 것도 아주 빨라서, 단체 법학습 환경은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적지 않은 수련생들이 대법 일이 바빠서 자기 아이들의 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으며 어떤 수련생은 심지어 자기 아이들은 이미 법을 얻었으니 보험에 든 것과 마찬가지라고 인식하고 있다.
사실 일찍 법을 얻은 일부 꼬마제자들은 사부님의 설법을 듣거나 스스로 《전법륜》을 통독할 수 있으며 적지 않은 법회와 대법 활동에 참가하였음에도, 어떤 때에는 언행에서 대법 꼬마제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나는 기왕에 이런 문제들을 발견하였으며 또한 학교에 몸담고 있으므로 당연히 아이들에 대해 책임지고 대법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나는 속으로 결심을 내렸다. ‘비록 단 한 명의 아이만 있을지라도 나는 수업을 견지해 나갈 것이다!’라고
작년 연말에 뉴욕 명혜학교를 책임진 수련생이 출산을 하는 바람에 내가 다른 한 수련생과 함께 양쪽 명혜학교 일을 보게 되었다. 오로지 우리가 연합으로 수업을 하기만 하면 남편은 차를 몰아 나와 뉴저지 아이들을 태우고 뉴욕 콜롬비아 대학에 가서 수업을 했다.
다음에 나는 여러분들에게 뉴저지와 뉴욕 명혜학교에서 2년간 4차례 하계 캠프를 간 상황을 소개하고자 한다. 매번 하계 캠프기간은 겨우 4일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얻은 효과는 생각보다 컸으며 우리를 아주 크게 고무해주었고, 명혜학교가 더 앞으로 발전하는데 대한 믿음을 주었다.
작년 처음으로 하계 캠프에 참가한 인원은 15명이었고 두 번째는 27명이었다. 올해는 신청자 수가 약 40명이나 되어 우리는 두 번으로 나누어 진행해야 했다. 아이들의 연령은 6~15세로 다양했고, 우리는 매일 6~7시간의 단체 법학습과 연공, 발정념을 견지하여 아이들이 실제 생활 중에서 법으로 자신의 일언일행을 지도할 수 있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매일 하라고 하신 3가지 일을 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여 아이들이 정체적인 의식관념을 가질 수 있게 하는데 주의를 기울였다.
1) 이 환경을 충분히 이용하여 단체 법학습을 강화하다
내 기억으로는 작년에 27명이 하계 단체 법학습을 할 때 처음에는 상당히 어려웠다. 그 이유는 첫째, 적지 않은 아이들이 처음 법을 들었고 둘째, 어린 아이들은 금새 움직이고 떠들어 아예 앉아있지를 못했다. 이렇게 되자 정체적으로 입정에 들어가기도 매우 어려웠다. 이에 대해 우리는 먼저 스스로 마음을 고요히 하고 모든 아이들에게 단번에 거기에 앉아서 움직이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진지하게 법을 들을 수 있는 아이들에게는 미소로 격려해주었다. 고요해지지 못하는 아이들은 화를 내거나 귀찮아 하지 않고 가끔 그들을 신변으로 불러와서는 앉아있으라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내가 발견한데 의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아이들의 법학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그런 환경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며, 표준에 도달할 수 있을 때면 법의 위력은 대단히 강대했다. 우선 큰 아이들이 더 이상 작은 아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으며 집중해서 법을 듣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작은 아이들도 점차 조용해졌으며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모두 다 함께 조용히 앉아 법을 듣게 되었다. 그 후 몇 번의 하계 캠프에서도 모두 그랬다.
그렇다. 십여 명에서 이십여 명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짧디짧은 며칠 사이에 하나가 되어 자각적으로 장시간 앉아서 법학습을 한다는 것은 일반인이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이것은 오직 대법제자들의 학교인 명혜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서 신기하지만 진실한 장면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심으로 사부님께서 우리를 가호에 주심에 감사드린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2) 실속있는 수련을 중시하고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끊임없이 법으로 해결하게끔 인도하다.
매번 문제가 나타날 때면 즉각 토론을 조직하여 법리로써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었다. 가령 예를 들면, 한번은 세 아이가 장남감을 놓고 언쟁을 벌이고 서로 양보하지 않다가 그중의 한 여자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머지 아이들은 한편에서 큰소리로 평론하면서 자기 주장을 폈다. 이 사실을 알고난 후에 나는 우선 세명의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하게 했고 각자 일의 경과를 말하게 했다. 그 후에 “선(善)”을 이용하여 아이들의 선념(善念)을 계발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여러사람들과 나누고, 양보하고, 우애하는 것을 배워야한다고 알려 주었다. 모순이 발생할 때 여러분들이 참고 양보하며 너그러워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사부님께서 안을 향해 찾는 것에 대해 강조하셨음을 알려주었다.
“나는 늘 여러분에게 이러한 상황을 말하였다. 즉 두 사람이 모순이 생겼을 때에 각자 나름대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말하자면 나 여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자신이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모두 찾아야 한다. 만일 제3자가 그들 두 사람 사이에 모순이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 제3자마저도 우연히 당신더러 보게끔 한 것이 아니므로 당신마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왜 나더러 그들의 모순을 보게끔 하는가? 나 자신이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래야만 된다.”(《미국 서부법회에서의 설법》)
법을 들은 후 아이들은 모두 조용해졌으며, 각자 자기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던 세 아이들도 고개를 숙이며 연달아 주동적으로 “내 잘못이야,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라고 했다. 주위에 있던 아이들도 이전에 발생한 유사한 일들을 기억하면서 당시에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밖으로 찾았음을 자각했다. 이 기회를 빌어서 나는 또 아이들에게 사부님의 말씀을 알려주었다. 우리 수련생들은 하나의 정체이며 여러분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모두 인연이 있기 때문이므로 이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상대방을 형제자매와 같이 대하고 서로 돕고 사랑해야한다. 또한 일을 함에는 항상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은 나중에 해야 한다고. 아주 빨리 아이들은 사이가 좋아졌고 즐겁게 함게 놀았으며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외에 명혜학교와 학부모를 연락하는 문제는 홀시할 수 없는 문제이며 부모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아이들과 4일을 함께 하면서 나는 모든 아이들에 대해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부모에게 알려주는 것도 나의 책임이며 내게 있어서는 정(情)을 없애는 수련이었다. 나는 내가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마음뿐이며 누구를 질책하거나 원망하는 태도가 아니라면 부모들도 접수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들과의 교류를 중시하고 아이들의 문제를 소통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공동의 인식에 도달한 이것은 나와 수련생(부모)에게 있어 하나의 얻기 힘든 수련의 과정이었다. 올해는 필라델피아, 코네티컷 주의 수련생도 아이를 보내왔다. 어떤 수련생은 매일 네시간이나 차를 몰아서 아이를 데려왔다.
특별히 언급할 것은 올해 두 명의 비수련생 부모가 하계 캠프에 아이들을 보냈다는 것인데, 법을 얻은 두 아이는 일취월장하고 있다. 자기 아이들에게서 대법의 초상성을 목격한 그 부모들도 아주 큰 감동을 받았다. 하계 캠프가 끝난 후에 이 두 아이는 부모를 대동하고 다시 우리 명혜학교에 참가하였다.
또 한가지는 어떤 수련생 부모를 둔 두 아이가 캠프에 참가하기 전에는 수련도 하지 않고 중국어도 못 했는데, 캠프에 참가한 이후에는 진정으로 수련을 시작하였으며, 현저한 변화가 있었다. 짧은 4일 동안에 7~8편의 시를 암송해 내어 부모의 수련에도 적지 않은 촉진이 되었다. 이때부터 부부는 주동적으로 이후 하계 캠프의 숙식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었다.
명혜학교에서 활동을 한 이후 나는 이 환경이 단지 아이들의 수련에 유리할 뿐만아니라, 내게도 아주 좋은 수련과 제고의 기회였다는 깊은 체험이 있다. 우리는 단지 간단하게 일부 아이들과 함께 법공부, 연공하는 것이 아니며 속인의 학교와 같이 가르치고 배우는 그런 것이 아니며 우리의 책임은 중대한 것이다. 나는 늘 일종 무형의 압력을 느끼곤 하는데 그 압력은 내 자신의 법공부에 관한 고험에서 온다. 왜냐하면 우리의 언행은 직접적으로 아이들의 언행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수련상태는 아이들에게 소리없은 영향을 끼친다. 우리의 심성이 바를 때는 주위의 마당도 상화롭고 하는 말도 힘이 있어서 아이들도 잘 따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 단순한 설교와 명령은 헛수고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실속있는 수련만이 가장 우선적인 것이다. 대법은 일체를 포괄하며 사부님의 법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시에 법공부를 많이 하여 머리 속에 온통 법으로 가득하여, 자기 스스로가 대법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 있다면, 각종 문제가 발생할 때 합당하게 대법의 법리를 운용하고 아이들의 특성을 감안하여 도리를 설명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이런 문제들을 잘 해결하고 처리할 수 있다. 아이들은 백지와 같아서 어른과 같은 그런 관념이나 복잡한 사상이 없어서 일단 법리에 명백해지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만약 그들이 수련한다면 매우 빠른 것으로 그는 사람이 후천적으로 증가된 그 어떤 집착도 없다.”(《북미 제 1기 법회에서의 설법》)
사부님께서는 “나는 어린이를 보기 아주 좋아한다. 왜냐하면 어린이의 사상, 마음과 그의 신체가 너무나 순수하기 때문이다.”(《북미 제 1기 법회에서의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순진한 아이들과 함께 수련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영광이다!
여기서 나는 진심으로 내게 이런 수련의 길을 안배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는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으니, 우리가 사랑하고 인내하며 협조를 잘 하여 대법제자의 응집력을 충분히 잘 발휘한다면 앞으로 명혜학교는 반드시 잘 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스런 이 아이들이 정법 노정에서 대법 꼬마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작용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하자!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4년 워싱턴 DC 법회 발언고)
문장완성 : 2004년 7월 26일
문장발표 : 2004년 7월 29일
문장갱신 : 2004년 7월 28일 오후 9시 31분 44초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7/29/803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