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우한(武漢)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4월 30일】황자오는 갔다. 아름답고 선량하며 우아하고 내성적인 이 여성 수련생은 단지 眞善忍(진선인)에 대한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장쩌민 집단의 흉수에 의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황자오, 그녀는 1972년 4월생으로 집은 후베이성 우한시 차오커우구 상자커우 33호 3층(湖北省武漢市橋口區上閘口 33號 3樓)에 있으며 원래 우한시 차오커우구 식량공장 직원이었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그녀는 이미 다른 공법들을 연마한 적이 있었지만 정법(正法)을 얻지 못함을 괴로워했다. 1995년 하반기 그녀가 처음으로 法輪功(파룬궁)을 소개받았을 때 그녀는 다급하게 소개해준 사람으로부터 《중국 법륜공(수정본)》을 빌려 읽었다. 이후 《전법륜》을 얻은 후에는 마치 배고픈 사람이 허겁지겁 밥을 먹듯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할 정도로 애호하였으며 법을 암기하였는데 1999년에 이미 《전법륜》을 다 암기하였다. 이것은 나중에 그녀가 정법 수련을 하는데 있어 탄탄한 기초를 다져 주었다. 5년간의 잔혹한 박해 중에서 그녀는 시종일관 정법노정의 선두에 섰으며 종래로 사악에게 굴복하지 않았고 자신의 생명을 바쳐 조사정법(助師正法)이라는 휘황한 역사를 장식하였다.
황자오는 대법의 진귀함을 깊이 깨닫고 법을 얻은 지 오래지 않아 열심히 세인들에게 홍법을 했으며 여러 차례 우한에서 고향인 후베이성 이두(宜都)까지 홍법을 하였다. 일상생활 중에서 그녀는 곳곳에서 眞善忍을 지도로 하여 수련하였으며 남을 선하게 대했고 여러 차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예를 들어 우한에서 품팔이를 하던 고향사람을 몇 달간 기거하게 하며 전력을 다해 생활을 도왔고 자신의 언행으로 신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法輪大法(파룬따파) 眞善忍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게 하였다.
1999년 사악의 박해가 개시된 이후 정부에 파룬궁의 진상을 알리기 위하여 그녀는 99년 12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이 당시 국무원 청원사무실은 경찰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온갖 방법으로 수련생들의 청원을 방해했으나, 그녀는 견정한 신념으로 층층의 검문검색을 돌파하고 청원사무실에 들어가는데 성공하여 담당자에게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말했고 이로 인해 불법적으로15일간의 구류처분을 받았다.
베이징에서 돌아온 이후 그녀는 진상자료를 만들고, 표어를 쓰고 현수막을 걸기 시작했으며 고향이 이두에 돌아가 그곳에 있는 동수들이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명확히 알리도록 고무격려 하였다. 나중에 다시 한번 고향에 와서는 동수들이 공동정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2000년 설날에 나는 그녀와 표어를 썼으나 두려움으로 인해 나는 인적이 드문 곳을 선택했으나 그녀는 아주 대담하여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표어를 적었다. 한번은 그녀가 마침 표어를 적고 있을 때 내가 옆에 있다가 “사람이 와요”라고 했지만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표어를 쓰면서 내게 말했다. “일단 시작한 것을 중간에 그만둘 수는 없으니 두려우면 당신은 한쪽에 피해 있으세요.” 그 당시 황자오는 법공부도 아주 열심히 했으며 대단히 정진했다.
2001년 설 전날 사악의 무리들은 톈안먼 자살 사기사건을 꾸미기 위하여 각지 파룬궁 수련생들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는 것을 금지시켰으며 전국 각지에서 대량으로 수련생들을 잡아갔다. 그녀도 불법으로 잡혀가 차오커우구 세뇌반으로 보내졌다.
2001년 황자오는 진상 자료를 만들어 자살 사건의 거짓말을 폭로하다가 불법으로 우한시 제1구치소에 감금되었다. 구치소 안에서도 연공을 견지하다가 꼬박 7일 밤낮을 족쇄에 채워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정식 재판도 없이 불법으로 노동 교양 2년형을 받았으나 구치소에서 2차례나 노교소에 보내려고 하다 실패했다. 첫 번째는 압송 도중 차가 너무 요동을 쳐서 거의 전복될 뻔 했다. 두 번째는 병이 엄중해서 노교소에서 받기를 거부했다. 나중에는 보석으로 치료를 위해 석방되었으나 다시 세뇌반에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녀는 《전법륜》제 3강의 중에 나오는 “당신 자신이 구하는 것과 당신이 가지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간섭하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깨닫고는 반드시 빠져 나갈 것이며 박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정념을 내보냈다. 과연 얼마 후에 다시 엄중한 병업 반응이 나타나 가족들에게 인계되었다. 이것이 2002년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그녀는 이미 1년 동안이나 불법으로 감금되어 있었던 것이다.
2002년 말에 황자오는 또 한 명의 견정한 대법제자인 류닝(劉寧)과 결혼을 했다. 류도 여러 번 베이징에 법을 수호하러 간 적이 있으며 여러 차례 불법으로 감금된 적이 있는데 2001년 초에 불법으로 노동교양 1년형을 받았다. 우한시 허완 노교소에서 전면적으로 박해를 저지하고 노예노동에 참가하지 않으며 일체 활동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2002년 초에 보외치료(保外就醫 : 보석 받아 치료)로 풀려났다. 이 당시 류의 두 눈은 거의 실명되었고 전신은 거의 마비되어있었다. 황자오와 류닝은 대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서로 고무 격려하면서 공동으로 정진했다.
악인들이 끊임없이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고 보증서를 쓸 것을 요구하며 쓰지 않으면 다시 감금시키겠다고 위협하자 부부는 할 수 없이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면서 극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줄곧 대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명확히 알리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고 법공부를 기본으로 매일 3강의씩 하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절약하고 아주 곤궁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아주 엄격히 요구하며 늘상 하루에 두 끼만 먹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사과 하나로 끼니를 때운 적도 있었다. 2003년 여름 우한에서는 계속해서 몇 십일 동안 40도의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난 적이 있었다. 이때 황자오가 수박을 한 통 사왔다가 류닝에게 질책을 당했다. “수박이 얼마나 비싼데 이런 걸 사왔어? 이 돈이면 얼마나 많은 정법일을 할 수 있는데?”
2004년 4월 1일 심야에 차오커우구의 과장인 진즈핑(金志平)이란 자가 사람들을 데리고 그들이 사는 셋방에 침입하여 아무런 법률적인 근거도 없이 불법으로 집을 수색하고 부부를 잡아갔다. 3일 후 류닝은 가족들에게 인계되어 가택연금을 당했다. 가택 연금을 당한 며칠 후 류닝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집을 탈출하다가 복합골절을 당했으며, 이후 얼마 안 있다 장모를 만나다가 다시 체포되었다. 4월 4일부터 15일까지 황자오의 부모님은 여러 차례 공안국 직원들에게 딸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면서 체포한 법률적 근거를 대라고 했으나 공안들은 어떠한 법적인 절차도 밟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감금된 장소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4월 16일 공안은 가족들에게 그녀가 16일 새벽 3시에 우한시 제1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통지했다.
황자오가 체포되어 사망하기 까지 약 보름동안 인간 지옥에서 그녀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시달림과 능욕을 감당해야 했을까? 그녀는 도대체 언제 사망한 것인가? 왜 검사조차 허용하지 않는가? 그녀는 대체 병원에서 죽었는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사망한 후에 병원으로 옮겨진 것인가? 가족들의 입회도 허락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악한 자들은 자기들 멋대로 거짓말을 날조하였다.
물론 검은 구름이 언제까지나 태양을 가릴 수는 없으며 사람들이 모르게 하려고 기도하지만 어찌 뜻대로 되겠는가? 황자오의 사망에 관한 상세한 정황은 우리가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 낼 것이다.
황자오의 부친은 상이(傷痍) 군인인데 지금 유순한 딸이 단지 진선인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의 손에 죽었으니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황자오가 죽고 나서 공안들은 집 주위에 사복 경찰을 배치하고 집에는 사람을 파견하였으며 게다가 황자오는 자살한 것이라고 하면서 많은 친인들의 조문마저 금지했다. 또 전화는 도청 당했으며 공안, 지역 간부들이 돌아가면서 찾아와서는 죄악을 덮어 감추며 큰 일을 작은 일로 축소시키려고 한다.
황자오! 비록 그녀는 꽃다운 나이에 노부모와 할머니를 뒤에 남겨둔 채 사악의 박해에 떠나 갔지만 조사정법을 위해 남긴 발자취는 영원히 사람들의 가슴에 남을 것이며 미래 우주에 항고히 기록될 것이다.
문장완성 : 2004년 4월 27일
문장발표 : 2004년 4월 30일
문장갱신 : 2004년 4월 30일 11:43:48 AM
중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4/30/73537.html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5/15/481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