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젊은 여인이 다시는 못 보게될지도 모를 그녀 아버지 이야기를 하다
(제네비브 갈루치오 Genevieve Gallucio 2002년 8월 1일 21:32)
샤오단 왕이 마지막으로 그녀의 빨간 스웨터를 본 것은 TV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16년형을 선고받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이것은 6개월이 넘는 동안에 샤오단이 즈운(Zhiwun)을 보았던 첫 번째 일별이었다, 잠깐 동안이긴 했지만 틀림없는 그녀의 스웨터였다. 밝은 색깔이 재킷 밑으로 살짝 들여다보였다. 스크린에 비친 그녀의 아버지는 노쇠해 보였다. 한때 검었던 그의 머리카락은 회색이 되어 엉켜있었으며, 그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고 멍이 들어 있었다. 그가 입고 있던 얇은 여름 바지는 추운 12월의 날씨를 막기에는 전혀 충분하지 않았지만, 그의 정신만은 분명히 그대로 있었다. 샤오단은 보았다. 빨간 스웨터는 마치 아버지가 자식에게 “딸아, 걱정하지 마라. 그들이 나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라고 말하는 비밀 메시지 같이 두드러져 보였다.
샤오단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태도와 조용한 음성은 그녀가 경험했던 비극에 반하여 첫 번째 두드러져 보이는 점이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토목 공학생인, 샤오단은 쉽게 전형적인 한 외국 학생으로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이다. “4년 4개월입니다.” 그녀가 미국에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는 질문에 재빨리 대답했다. “그리고 저를 그냥 다니엘르(Danielle)라고 불러주세요.”
샤오단 왕은 중국에서 파룬궁에 대한 박해 캠페인이 시작된 지 3년을 기록하는 워싱턴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그녀의 아버지가 중국 경찰에 의해 끌려 간지 3년을 기록하는 해이기도 하다.
다니엘르의 눈에는 그처럼 젊은 사람이 갖기에는 너무 많은 역사가 담겨져 있다. 단지 22세이지만, 그녀는 견고했고 그녀가 아버지와 교류했던 이야기를 할 때에는 집중했다. 그녀의 주목할 만한 여정은 그녀가 중국, 베이징에 있었던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가 미국으로 옮겨간 후에 아버지가 그녀를 키웠다. 그녀가 파룬궁이라고 불리는 명상 수련을 처음으로 배운 것은 베이징에서였다.
지방의 엔지니어였던 즈운(Zhiwun)은 조용한 삶을 살았고 친척의 도움을 받으며 어린 딸을 키웠다. 그와 딸이 법륜공을 수련한 후 전 가족의 삶이 좋게 변했다. 곧, 즈운의 아버지도 그의 가족들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수련을 시작했다. 기적적으로, 노인의 회색 머리칼이 다시 까맣게 변했고, 그의 고질적이었던 건강 문제가 해결되었다. 매일 아침 그는 그의 외아들과 어린 손녀딸과 함께 열심히 파룬궁의 5장 공법을 수련했다.
그들이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발견한 데 있어서는 왕 한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1995년까지 아주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배워 중국에서의 환경이 눈에 띄게 더욱 조화로워졌다. 파룬궁 수련생들의 원리, 眞, 善, 忍은 모든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을 배우며 善을 전파했다. 1997년에 있었던 정부 조사에 의하면 7천 만에서 일 억의 사람들이 수련하고 있다는 것이 발견했다. 그동안에, 즈운은 베이징 法輪大法(파룬따파) 법회를 위해 연락인으로 자원봉사 했다. 그는 그의 삶을 다른 파룬궁 수련생들을 돕는 것으로, 때로는 24시간 어떤 때는 점심과 저녁도 거르면서 헌신했다. 누군가가 어려움을 당하고 도움의 손이 필요할 때마다, 즈운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살았고, 어린 다니엘은 아버지의 이기심 없는 것을 표준으로 하며 자랐다.
다니엘은 1998년 미국에서 살기 위해 베이징을 떠났다. 슬프게도 이것이 그녀가 아버지를 본 마지막이었다. 실질적으로 하루 밤사이에 중국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이 범죄가 되었고, 그는 즉시 전국에서 체포의 표적이 된 적극적인 많은 수련생 중의 한 명이었다. 1999년 7월 20일 이른 아침에, 즈운은 경찰에 의해서 침대에서 납치되어 끌려갔다.
미국에서, 다니엘르는 조국의 정부가 그렇게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상상하기가 아주 힘들었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그녀는 슬프고 생각에 잠긴 듯이 보였다. “내가 자라왔던 나라는 그렇게 밝았었는데, 그런데 장쩌민은 그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아직도 왜 그녀의 자상하고 이기심 없는 아버지가 범죄자처럼 끌려갔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매일 매일 즈운을 찾기 위해 전 가족은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가 어디 있는지 또 어떤 상태인지 알 길이 없었다. 결국, 그가 실종되고 삼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다니엘르와 그녀의 어머니는 중국 경찰로부터 체포 증명서를 받았다. 적어도 그들은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다음 석 달 동안 계속해서 기다렸고 의심 속에 살았다. 슬픔 속에서도 다니엘르가 가지고 있던 단 하나의 위안은 그녀의 아버지가 상황을 잘 견뎌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절대로 그가 그의 믿음을 포기하거나, 경찰의 잔인성에 보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1999년 12월 27일, 국제 CNN 뉴스방송이 네 명의 베이징 파룬따파 협회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보이기 위해 꾸민 재판을 보여주었다. 남자들이 眞, 善, 忍을 수련하는 것에 대한 심판을 받기 위해 서 있었을 때 그들은 분명히 얻어맞았고 멍이 들어 있었다. 재판에 참석했던 다니엘르의 아주머니가 즈운에게 다가가서 그의 엉클어진 머리를 빗겨주려고 했지만, 경찰이 그녀를 밀쳐버렸다. 다니엘르는 몇 달 전에 아버지가 집에서 불법적으로 체포당할 당시 그에게 입으라고 가족이 움켜잡아 주었던 친숙한 빨간 스웨터로 눈이 갔다. 그것은 그녀를 엿보기 위해 용감하게 퉁겨 나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즈운은 16년의 형을 받았고 중국 북동쪽에 있는 악명 높은 톈진 노동교화소로 보내졌다. 나중에 오늘날까지도 그가 있는 톈허 노동교화소로 옮겨졌다. 중국으로부터 다니엘르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흘러나오는 조그만 뉴스들은 분명하지 않고 연결되지 않은 것들이다. 편지는 쌍방에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가 음식, 물, 또는 잠을 재우지 않고 칠일을 계속해서 조그만 벤치에 강제로 앉아있었다고 들었다. 그들은 그가 파룬궁에 대한 그의 믿음을 포기하도록 계속해서 고문을 받아왔지만, 견정하게 굴복하기를 거절했다고 들었다. 어느 날 중국으로부터 다니엘르의 엄마한테 전화가 걸려왔는데 즈운이었다. 대화의 전부는 그들의 딸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이 거의 이년 동안에 받았던 마지막 말이었다.
아버지가 1999년에 형을 받은 이후, 다니엘르는 미국정부로부터 그리고 세계의 선량한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청원하는데 지칠 줄 모르며 일해왔다. 그녀는 대통령에게 반복해서 편지를 썼으며 그녀의 국회대표들과도 만났다. 그녀는 휴스턴에서 워싱턴 DC까지 인권을 위한 도보 행사를 조직했다. 그녀는 기자회견을 두 번 열었고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바로 아버지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박해에 주의를 끌기 위해서 캠퍼스에서 두 번 단식항의를 했다. 다니엘르는 학교에 파룬궁협회를 조직했는데, 동료 학생들에게 수련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며 박해를 종식하는 것을 돕기 위함이다.
그녀는 혼자서든, 다른 학생들과 함께든 매일, 비가 오든 해가 나든 밖에서 파룬궁을 수련한다. 과거의 비극은 아버지가 긍정적이고, 사심 없는 사람으로 키워준 그녀를 절대로 막지 못한다. 그녀는 중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발언권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 그녀는 모든 일에서 眞, 善, 忍을 따르는 파룬궁 수련생으로서의 그녀의 삶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의 다음 뉴스가 그의 석방 소식이기를 희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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