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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노라

게이코 류 (뉴저지)

2000년 말에 수련하시는 다른 분들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바쁠 때 저는 법륜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저는 수련 처음부터 진상 알리는 활동에 자연스럽게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련 처음부터 법륜대법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는데, 왜냐하면 수련하기 전에 몇 달의 시간을 이용하여 을 보고 공부하면서 대법은 바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대법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하여 진상 알리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저는 모르는 사람을 향하여 말하거나 집회 등에 참석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였습니다. 저는 한 평생동안 다른 사람과 격리된 감을 느꼈으며, 수련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과 말을 나누는 것을 별로 기쁘지 않다고 생각하였고 혼자 있을 때 제일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제 이런 집착은 수련에 큰 방해가 될 것이라고 인식하였지요. 지금 저는 다른 사람과 만나보고 얘기도 해봐야겠는데 어떻게 해야하지?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제 생각을 문자로 써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고 특히 영어는 제 모국어가 아닌 제2의 언어였습니다.) 제 반본귀진의 길에서 꼭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저는 수련하는 다른 사람들과 상점에 가서 서명 받는 것을 기점으로 시작하였으나 효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시의회에서 제가 배운 체험에 대하여 발언을 요구하였을 때 첫 번째 떠오르는 생각은 가능성이 없는데…라는 것이였지요. 저는 이 어려움을 꼭 이겨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제 체험을 써내어 시의회에서 한편으로 떨면서 한편으로는 읽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 말을 나누어야 하는가를 배우기 위해서 저는 다른 동수들과 집회나 심득교류회를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끝임없는 법공부 끝에 저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목적은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닫고 자비심을 가지고 진상해야 한다고 인식하였습니다. 그러나 낯선 사람을 만나면 저는 긴장감으로 인하여 한 치의 자비심도 나오지 않았지요. 이리하여 진상 알리는 일은 긴 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잘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주동적으로 나서서 얘기해야 한다고 하셨고 저도 그렇게 마음을 먹었으나 말은 여전히 잘하지 못하였습니다. 갑자기 저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좌담회를 열 수 없을까? 저는 다른 동수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알고 있었고 제 생각을 펜으로 써내는 것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001년 가을에 저는 어느 한 공공도서관에서 좌담회를 열기로 계획하였습니다. 어느 한 수련생이 제게 말하기를 그는 이미 그 시(市)의 시장을 초청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문득 시장 한 사람만 참석하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을 하자 과연 시장 한 사람만 왔습니다. 저는 제가 홍보나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같은 곳에서 다시 한번 좌담회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이번에 저는 큰 대자보를 써서 붙이고 시(市) TV에서도 통보를 해주겠다고 동의하였고 도서관에서도 지방신문에 광고를 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노력을 많이 들였는데 적어도 몇 사람은 오겠지 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과연 몇 사람이 왔습니다.

한번은 제가 옆에 있는 시의회에 가서 법륜공 탄압을 반대하는 의안을 제기하러 다른 동수과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회의 지점은 시정부가 있는 빌딩에서 두 빌딩을 지나 있는 법정이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도착하였을 때 각 지점을 알리는 큰 도표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도표가 가리키는 곳은 실제로 회의를 하는 곳이 아니라 시정부가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수련생이 이 표적을 잘 못보고 시정부가 있는 건물로 가지 않을까 이런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과연 그는 시정부가 있는 건물로 가버려 기회를 놓쳐서 저 혼자 긴장한 마음으로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엔 또 스피커까지 망가져 제가 말을 할 때는 누구도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저는 자신이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진정으로 자신의 문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가 좌담회나 집회를 참석하는 것은 자신의 제고를 위하여 간다는 이런 생각인데 시작점이 자비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생각으로도 자신의 긴장감 때문에 여지껏 해온 것이 부정적인 작용을 하였고 그 부정적인 생각은 모두 현실로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에서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善)을 수련하기 때문에 대자비심이 수련되어 나오게 된다. 이 자비심이 나오면 중생을 모두 고생스럽게 보기 때문에 중생을 제도하려는 소원을 품게 된다.” 제 마음은 모두 무서워하는 마음으로 가득차서 자비심을 둘 곳이 없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제가 좀 변하길 원했습니다. 나중에 이런 일이 발생하자 저는 좀 변하게 되었습니다.

제 남편이 북경에 출장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집을 떠나는 남편보고 눈이 오면 조심해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북경의 기후는 건조하여 눈이 내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래도 모른다고 하면서 제 생각을 주장하였습니다. 북경에 간 남편은 저에게 전화해서 북경에 눈이 너무 많이 쏟아져 힘들게 호텔에 도착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은 북경이 십년 내에 내린 제일 큰 눈으로써 저는 제 “생각”은 정말 일정한 능력(생각만 한 것으로 모두 현실로 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두려움 마음을 제거해야 자비심을 베풀 수 있고 사유가 더 맑아질 수 있다는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나는 무엇을 무서워하지?” 없었습니다. 저를 무서워하게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자신의 매 한 순간의 생각이나 순간의 사유를 찾아서 더 순수하고 정직하게 수정하고 그것을 문자로 써서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심득 체험을 쓰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어서 기회가 있으면 자신의 체험을 말하였습니다.

2002년 2월 3월경, 저는 두 도시에서 좌담회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이번에 저는 긴장감을 풀고 정념이 가득찬 정신상태로 시작하였습니다. 한 시의 동사무소를 책임지시는 분이 저에게 홍보할 두 신문사를 추천해 주었으며 저는 도서관 앞에다 공고까지 냈습니다. 이리하여 20여명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쪽 도서관에서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나서서 4곳의 신문사에 홍보를 해주었고 저도 공고를 냈습니다. 30명 넘게 참석하였는데 모두다 좀 더 배우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여 저는 두 주 후에 한번 더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초청도 하지 않았는데 20여명이나 같이 따라와 참석하였습니다. 매번 좌담회에서 저는 동수와 같이 진상을 알리면서 만약 듣는 사람이 물어보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우리들이 먼저 제시해 주었지요. 저는 이전에 제거를 시도하였으나 없앨 수 없다고 생각했던 집착이 사라지고 정념도 점점 강해져 나갔으며 중생에 대한 자비심도 점점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심리상태는 점점 좋아졌으나 저는 시시각각 정념을 가져야 한다고 자신을 독려하면서 나쁜 습관을 허용치 않았습니다. 저는 언젠가 다른 한번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 집착을 버리고 높은 단계로 승화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있다고 믿습니다.

여름철 어느 날 제가 중국영사관 앞에 앉아 있을 때 한 수련생은 같이 UN일본대표사무실에 가서 한 일본인의 부인(가네꼬 요꼬)이 중국당국에 불법적으로 체포된 것에 대하여 구원을 청하는 것에 건의하였습니다. 저는 일년 반 전에 그 사무소에 가서 진상을 알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너무 긴장하여 말을 못하고 같이 간 수련생이 말을 다하였습니다. 이번이 기회라고 알아차리고 반드시 가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먼저 전화를 걸어 만나는 시간을 예약하였습니다. 저에게 건의한 수련생은 같이 가기로 하였고 그 수련생은 이런 상담에 매우 경험이 있었고 실제로 사건을 완벽하게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비록 말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마음을 온화하게 하였고 우리들을 대접하는 사람에게 자비심을 품었습니다.

이후 일본 총리가 뉴욕에 오게 되어서 저는 편지 한 통을 일본 총리에게 보내어 가네꼬 요꼬를 구원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다음날 대표사무실은 답하기를, 할 수 없다면서 영사관에서 이런 서류를 책임진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사실상 영사관에게 진상을 알릴 시기도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그 동안 이런 기회를 찾지 못할 뿐이었습니다.) 법에서 인식이 제고된 후 저는 속인 속에 들어가서 그들이 물어보는 문제를 대답하는 신심을 얻게 되었지요. ‘이것이 또 좋은 기회 아닌가?’

저는 영사관에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는 그들이 사용하는 이메일은 이런 용도가 아니라고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영사관에서는 일본사람(영주권 소유자)만 관여한다면서 가네꼬 요꼬는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 누가 이 일을 처리할 수 있는지 모른다고 답하였습니다. 저는 메일을 보내면 그렇게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총리는 이틀이 지나면 돌아가는데 내일이면 마지막 기회였지요. 일본의 동수들은 가네꼬 요꼬를 구원하기 위하여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쓸모있는 자료가 많았습니다. 저는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외무성 장관에게 쓴 편지 두 통을 찾아내어 내일 아침 일찍 뉴욕에 갈 때 가져 가기로 하였습니다.(시간이 너무 없어 읽을 만한 편지를 쓸 틈이 없었음) 저는 이 편지에서 진상을 쓰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진상과 저의 수련 체험을 써서 첨부하였습니다. 편지를 쓰는 중에 저는 마음속으로 총리와 영사관 인원에 대하여 자비심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음날 저는 영사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이 한참 찾아서야 저를 접대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로 것을 보아 그들은 저와 같은 방문객을 전혀 접한 적이 없으리라고 생각하면서 회의실에 가서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저는 항상 자비심을 품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저는 자비심으로 저의 모국어-일본어로 그 분과 얘기하였지요. 그는 상당히 매너있게 저의 말을 자세히 들으면서 흥미있다는 듯이 여러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대화가 30분이 지나간 후에 그는 자신은 직접 총리에게 편지를 전하는 권한이 없는데 총리와 자주 맞나 상담하는 분에게 전하여 총리가 꼭 편지를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강대한 자비와 순정(純正)한 힘을 느꼈고 이것이 정념이라고 알았습니다.

가을에 사악의 두목이 휴스톤에 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더 광범한 지역에서 미국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필요가 있으며 매체를 이용하는 것이 제일 유효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제 영어 수준이 높지 않아 영어로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저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놓는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고 펜을 들어 쓰는 것에 부담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저는 누군가 도와주기를 바랬지요. 그런데 모두들 바빠서 저를 도와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우리들을 도와준 사람에게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시하려고 하였습니다. 저는 자주 그들의 도움을 받았으나 전혀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어요. 사실 중생을 구원한다는 것을 우리가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속인 사회를 원융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들은 우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려고 하지요. 저는 휴스톤에서 발생한 일은 신문사에 편지 쓰는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편지에는 그들이 우리의 대한 지지, 사악에 대한 폭로, 새로운 소식의 제공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더 많은 지지를 해줄 것을 써넣었지요. 저의 머리 속에는 정념만 가지고 시도만 하면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가졌습니다.

한 미국에 수련하시는 분이 저를 도와서 문장을 수정하여 주겠다고 하였지요. 제가 원고지를 받을 때에는 많은 좋은 의견이 쓰여져 있어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그의 뜻에 맞추어 많이 수정하였고 수정된 결과를 본 그 분은 좋습니다 부치십시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편지의 내용이 아직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우물쭈물 하였으나 세상 사람들이 진상을 알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시간을 더는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편지를 부쳤습니다. 편집자는 저에게 며칠 후 발표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안 저는 문득 그 편지 안에 정부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적지 않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내일만 발표하지 않으면 다시 편지를 보내면 되겠다는 생각에 느긋하였지요. 그런데 갑자기 다음날에 글을 발표하였고 더 놀라운 것은 문장에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삭제 수정하였으며 시장, 시의원, 다른 정부인원에 대한 감사의 글까지 적혀있었습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 뉴저지주에서 법륜공에 대한 지지와 정부인원들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등등 …이것은 모든 사람을 포함하였고 편지도 신기하게 완벽해졌지요. 저는 대법의 위력을 체험하였습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마음은 비록 없어진 것 같지만 저는 그 근원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정념을 지켜내지 못할 때마다 때때로 나타나곤 하지요. 사부님께서는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라. 보기에 안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그럼 당신이 한 번 시험하여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제9강)

사부님 감사합니다 저는 진짜로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위싱턴DC 법회 발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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