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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눈은 모든 것을 보고 있어 노인과 어린이를 도탄한 자들은, 반드시 엄한 징벌을 받을 것이다

글 / 가패(嘉貝)

[명혜망]

강(江)씨집단에 의해 모살 된 왕려선(王麗萱)과 그의 8개월 되는 아들

아빠를 잃은 법도(法度)와 그의 엄마

3세 어린이 융융(融融)

4세 어린이 호호(虎虎)

“자기의 부모님을 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부모님을 대하고, 자기의 자식을 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자식을 대하라” 이 말은 춘추전국 시기의 사상가 맹자(孟子)가 위(魏)나라를 방문했을 때 국군(國君)인 양혜(梁惠)왕에게 말한 말이다. 맹자는 양혜왕에게 왕도인정(王道仁政)을 하라고 권하였는데 양혜왕은 자기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맹자는 비유를 하여 “할 수 없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구별을 설명하였다. 맹자는 또 왕도인정(王道仁政)의 기본요구는:”자기의 부모님을 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부모님을 대하고; 자기의 자식을 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자식을 대하는”것이라고 하였고 만약 모든 정치가 이 요구에 부합되면 천하를 통일하는 것은 손안에 든 물건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쉬운 것이라고 하였다. 장쩌민은 아마 이 도리를 모르는 것 같다.

파룬궁 정보중심 2003년1월21일 보도에 따르면, 71세의 홍콩 주민 진영원(陳榮源)은 일년 전에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서 “진선인”이라고 씌어진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미얀마 정부에서는 중국 주재 영사관의 압력 하에 진영원을 체포하고 비밀리에 7년의 도형에 언도하였다. 전세계 박해를 받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을 구하는 행동위원회는 이 사건이 매우 정상적이지 못하다고 하였고 시급히 진영원을 구해 낼 것을 호소하였다. 보도에 의하면 진영원은 일년 전에 미얀마에 가족을 만나러 갔는데 강xx가 양곤을 방문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2001년 12월 12일, 공항에 가는 길에서 진선인이라는 글자가 씌어진 작은 현수막을 펼쳤다. 미얀마 정부는 중국 주재 영사관의 압력 하에 진영원을 체포하고 변호사와 가족의 참여가 없는 정황에서 2002년 1월 31일 그를 비밀리에 7년의 무거운 도형에 언도하였다. 지금까지 진영원 노인은 이미 감옥에서 일년이 넘게 갇혀 있다. 소식에 의하면 중국 주 미얀마 영사관의 인원과 미얀마 경찰들은 누차 진영원에게 보증서를 쓰고 파룬궁 수련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모두 거절당하였다. 듣는 말에 의하면 진영원 노인은 감옥에서 여전히 자기의 신앙을 견지하고 파룬궁 수련을 견지하고 있다고 한다.

고희(古稀)의 연령이 지난 노인이 단지 평화적으로 진선인이 씌어져 있는 현수막을 펼쳤다는 이유로 7년이라는 무거운 판결을 받았다는 것을 문명사회에서 당신은 가능하게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들어보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해외에 있는 영사관을 이용하여 다른 나라 정부를 협박하면서 파룬궁에 대한 국가 공포주의를 세계에까지 밀고 나가는 것은 강(江)씨 정권이 “시대의 발전에 따라가는” 또 하나의 “특색”이어서 중국을 추종하는 나라에서는 가만있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악한 자를 돕는 자는 마찬가지로 법률의 제재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경험 교훈을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BBC 2003년1월20일 보도에 따르면 밀로셰비치의 결책팀의 요원중의 한 사람인 세르비아 전 대통령 밀루티노비치는 유고의 영도자를 도와 1990년대 말기에 코소보에서 발생한 종족 폭행을 일으켰다. 그는 현재 헤이그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밀로셰비치와 함께 기소되었다. 현재 밀루티노비치는 이미 베오그라드를 떠나 헤이그에 있는 국제 전범 법정에 가서 자수를 하게 된다.

중국에서 초기에 파룬궁을 수련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연세가 있고 몸이 허약한 퇴직한 사람들이었다. 법륜대법이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들어가게 되자 수련하는 사람들의 내원도 점차 광범하게 되었던 것이다. 강택민의 이 박해 속에서 많은 연세가 있는 수련자들은 혹형과 시달림을 받았다. 3년이래, 민간 도경을 거쳐 확실하게 알고 있는 557명의 박해로 숨진 파룬궁 수련생 가운데 155명(약 30%)이 50세 이상의 노인이었다. 그 가운데 50-59세의 노인은 91명; 60-69세의 노인은 59명. 70세 이상의 노인은 5명이었다. 얼마 전, 중경시(重慶市) 봉절현(奉節縣) 파룬궁 수련생이며 현재 72세인 우소유(于笑儒) 노인은 수련을 견지하고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형식으로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사실을 폭로하였는데 신화통신사(新華社)에서는 그가 대만 파룬궁 수련생들의 “지시”를 받았다고 날조를 하였고 그는 “파괴 활동”을 하였다 하여 체포되었다. 대만 법륜대법학회 이사장 장청계(張淸溪)는 이렇게 논평을 하였다. 고소를 당한 우소유는 이미 72세의 고령인데 이것은 차마 볼 수 없는 일이다. 이 연령의 노인들은 연공을 하여 신체를 단련하려고 하는 것인데 자유사회에서는 격려와 존중을 받는 것으로 어찌 “사회를 파괴하는 활동”이라고 모함할 수 있겠는가? 이런 수치스러운 수단은 전세계 지각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다 비열하고 우습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박해를 받고 있는 다른 한 집단은 소년과 아동들이다. 산동성(山東省) 연태(煙台) 서하사구진(栖霞寺口鎭) 남구촌(南 村) 27세 대법제자 왕려선(王麗萱)은 여러 차례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갔기에 붙잡히게 되었다. 2000년11월7일, 그와 8개월 되는 아기 맹호(孟昊)는 북경 단하(團河) 노동개조소에서 시달림을 받아 죽었다. 그의 가족들이 통지를 받고 북경에 가서 보게 된 것은 왕려선 모자(母子)의 차가운 시체였다. 법의(法醫)의 부검 결과에 따르면 왕려선의 경추(頸椎)는 이미 끊어져 있었고, 머리는 패어 들어갔으며, 허리 부분에는 바늘구멍이 남아 있었다. 맹호의 발목에는 또 두 가닥의 깊은 상처가 있었고 머리에는 피멍이 든 곳이 두 곳 있었으며 코 구멍에도 피가 있었다.

부모가 파룬궁을 수련하여 박해를 받았기에 많은 어린이들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거나 지어 고아가 되었다. 두 살인 법도(法度)의 아버지 진승용(陳承勇)은 2001년 중국 노동개조소에서 시달림을 받아 죽었다. 법도의 어머니 대지진(戴志珍) 여사는 “나는 딸의 아빠가 보고 싶다는 이 아주 평범한 하나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없었다.”라고 말하였다.

융융(融融)이는 올해 세 살이다. 그러나 태어나서부터 그는 인생의 생사이별의 고난을 겪어야 하였다. 융융이의 아버지-파룬궁 수련생인 구송도(邱松濤)는 노동개조소 경찰에게 시달림 받아 죽었고 어머니 장운학(張云鶴)이 박해로 방랑하게 되었으며 현재 행방을 모르기 때문이다. 목숨을 의지하였던 외할머니도 과도한 슬픔 때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명혜망의 보도에 따르면, 네 살난 호호(虎虎)의 부모 우초(虞超), 제동(諸 )은 모두 명문대-청화대학(淸華大學)을 나왔는데 한 사람은 사람들의 존중을 받는 대학 강사를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사업에 성공한 유능한 인재였다. 그러나 진선인을 신앙하였다는 이유로 누차 박해를 받았고 이 때문에 그들의 가정은 흩어지고 그들의 사업 권리는 박탈당하였다. 그들이 사악에게 굴복하여 자유를 박탈당하려 하지 않았기에 몸과 마음의 시달림을 받게 되었다. 고도로 되는 박해와 흔들리고 방랑하는 생활 때문에 그들은 4살도 채 되지 않은 아들을 친구에게 맡겨서 키우게 하였다. 모자(母子)가 헤어지는 장면은 사람의 마음을 쓰리게 하였다. 엄마가 아들에게 안녕 이라고 하자 어린것은 어른스럽게 “엄마, 사악을 다 없애버리면 호호(虎虎)를 집에 데리고 갈거죠? “라고 하였다. 믿을 수 있는 소식에 의하면, 제동의 아버님도 회사의 강제적인 세뇌를 반대하여 방랑하고 있어 집에 돌아오기 어렵다고 한다. 지금 집에는 수련하지 않는 제동의 노모 한 사람만이 남아 힘들게 지내고 있다.

역시 청화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우초의 누나 우가(虞佳)는 대법을 수련하였기에 청화대학 당위원회로부터 월급을 지급 받지 못하는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 매월 200위안의 돈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4, 5차례 각종 허황한 이유로 구치소에 갇히고 시달림을 받을 대로 다 받은 정황에서 경찰들은 또 청화대학 캠퍼스에서 그의 두 살난 딸을 바닥에 메치는 소동까지 벌렸다. 다행히 둘러싸인 군중들에게 제지당하기는 하였지만. 2000년11월, 그는 불법적으로 42개월의 형에 언도되어 집에는 어린 딸과 실업 당한 남편만 남게 되었다.

옛 사람들은 “각박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라고 하였는데 장쩌민이 백성에 대한 박해는 노인과 어린이도 놓아주지 않는데 그 잔폭한 본성을 보아낼 수 있다. 그러나 “비밀리에 한 잘못도 신의 눈은 다 보고 있어” 원흉인 장쩌민은 이미 2002년12월23일에 “종족멸종죄”로 국제 법정에 기소되었고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추적하는 국제조직도 행동하기 시작하였다. 멀지 않은 미래에 악한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은 법률의 엄한 징벌만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발고일자: 2003-01-25

문장분류: 紀實評論 (사실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