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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문명의 비밀

문장/주작(朱雀)

[명혜망] 마야문명과 하늘에서 온 손님은 현시대에서 풀지 못한 두 개의 수수께끼이다. 그것들의 신비한 베일을 벗기기 위하여 세계의 많은 과학자들은 꾸준히 노력하여 많은 연구를 진행시켰다. ‘아이리크’와 ‘크레이시 우므란’은 현대 우주 비행과 고고학 분야의 새로운 발견에 근거하여 하나의 대담하고도 색다른 결론을 내렸다. 즉 마야문명은 하늘에서 온 손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본문은 이 두 분의 저자가 영국에서 출판한《고대의 비밀(古昔之?)》이라는 책 가운데서 제일 핵심적인 부분을 뽑아서 독자들의 만족을 도모하고자 한다.

깨뜨릴 수 없는 “경각과(硬殼果)”

16세기 중엽,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은 콜럼부스의 발자취를 따라 중앙아메리카의 땅을 닫고 마야인의 부락으로 오게 되였다. 마야인들은 ‘쟈죠’를 통역으로 파견하여 스페인의 주교(主敎) ‘디에고 데 란다’에게 자신들의 문명을 소개하였다. 란다는 마야의 고서적(典籍)중에 기재되어 있는 일들을 보고 매우 놀라면서 이를 “마귀가 한 일”이라고 여겨 지시를 내려 고서적 등을 전부 불태워 버리게 하였다. 그러한 큰 재난을 겪고 난 다음 마야의 주민들은 홀연히 역사의 무대에서 순식간에 실종되어 버렸으며 그들의 찬란한 문화 역시 침묵 속에 잠겨 버렸다.

그러다가 300년 후, 미국의 젊은 외교관 스티븐스(Stevens)가 여행 체험기인 『중앙 아메리카·치아파스·유카탄 여행 잡기』라는 책을 출간하자 사람들간에 마야 문명을 연구하는 붐이 일어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공을 들여 16세기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커다란 재난을 겪고 난 후 겨우 남아 있는 3부의 마야 고서적(典籍)과 일부분의 돌비석, 벽화 등을 연구하였지만, 마야의 문자는 그렇게도 기괴하여 해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수 백년 간, 세부의 천서(天書)같은 마야 고서적(典籍)은 이 경각과(硬殼果)를 열어 보려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으나 결국에는 모두 능력이 부족하여 개탄하고 물러서게 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구소련은 매우 많은 인력과 물자를 마야문명의 연구에 투입하였으며 가장 첨단적인 성능의 컴퓨터까지 동원하였으나, 지금까지 다만 그 가운데의 3분의 1 정도밖에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1966년에 어떤 사람이 이미 해독된 마야 문자에 근거하여 ‘퀴리구아(Quirigua)’ 산정(山頂)에 있는 돌비석의 해석을 시도하였는데 그것은 사람 들의 생각과는 달리 한 부의 역사를 기록한 편년사(編年史)였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편년사 중에는 9천만년 이전, 더 나아가 심지어는 4억년 전에 발생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4억년 전은 지구의 중생대로서 인류가 출현하기 전이었으므로 그 당시 유럽인들은 통역인 쟈죠가 소개한 마야 문명을 “마귀가 한 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마야의 문자는 현대의 컴퓨터로도 해독하지 못하며 또한 그들의 역사는 4억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있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마야는 결코 낙후한 민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숫자 체계, 편년(紀年)과 독특한 역법(曆法)

인류발전의 역사는 숫자체계에서“0”이라는 부호의 발명과 사용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마야 문명을 연구하던 중 마야인이 적어도 기원전 4-3세기에 이미“0”이라는 수 개념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또한 마야 문명에서 숫자체계의 특징이 20진법인 것과, 돌비석 비문 가운데는 11자리의 큰 숫자들이 나타나 있음을 발견하였다. 예를들면 날짜를 계산할 때 ‘아로둥’이라고 부르는 단위를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23,040,000,000일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큰 단위는 다만 별과 별간의 거리를 측정하거나 별 나라를 항해할 때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마야의 숫자체계를 “인류의 제일 위대한 성과중의 하나”라고 칭송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각 민족은 한 개의 기원(紀元)을 가지고 있다. 로마제국은 건국을 기원으로 하였고, 그리스는 제1차 고 올림픽 경기를 기원으로 삼았으며, 기독교 국가는 예수의 탄생을 기원으로 하였다. 그러나 마야의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몇 개의 기원(紀元)이 있으며 각각의 기원은 모두 지구(地球)의 훼멸적 파괴의 끝맺음을 기점으로 하였다고 한다. 마야의 제일 마지막 기원은 기원전 3,113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기점은 바로 그들이 중앙 아메리카에 정착한 날짜이며, 그 전의 기원은 기원전 11,000년에 시작하였으며 그때는 바로 지구상의 빙하기가 끝나는 때였고, 또 그 이전에도 3개 기원이 있었던 바 각각의 기원(紀元)의 시작은 몇 십만년 혹은 몇 백만년 전으로 계산하고 있다.

마야인의 역법(曆法) 역시 매우 정확하다. 그들은 태양년의 길이를 365.2420일이라고 정확히 계산하였다. 16세기의 유럽 식민주의자들은 그 발 밑에도 미치지 못하였는데 왜냐하면 그때의 유럽은 보편적으로 아직도 그리 치밀하지 못한 알렉산더 역법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마야인들은 또 태음력을 제정하고 금성이 공전하는 주기(週期)를 계산하였으며 또한 태양력과 태음력의 차이에서 누적되는 오차를 수정하는 방법도 찾아내었다.

비록 당시의 마야인들이 그처럼 정확한 태양력과 태음력이 있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13개월로 일년을 구성하고 매달은 20일인 독특한 일력을 더욱 진귀하게 여겼다. 중앙 아메리카의 기타 토착민마저도 260일을 일년으로 하는 이런 일력은 조그마한 사용가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은 모두 이것보다 더욱 년월, 사계절, 주야(晝夜)의 운행 규율에 부합되는 일력이 있다. 그렇다면 이 독특한 일력은 마야의 선조들이 다른“세계”에서 가지고 온 유산(遺産)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피라미드의 비밀

유카탄 반도에는 하늘을 떠받치고 우뚝솟아 있는 9개의 피라미드가 있다. 그것은 이집트의 제일 오랜 몇 개의 피라미드와는 마치 쌍둥이 자매와도 같다. 같은 유(類)의 건축물이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이미 발견되었는데, 이들 피라미드의 각종 수치에 있어서 정확도는 오늘의 우리들로 하여금 놀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스코틀랜드의 천문학자 스미스는 두개의 이집트 피라미드를 4개월 동안 관측하였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심사숙고하게 하는 수치들을 얻었는데 탑의 네 개 정면은 동남서북 네 개 방위를 향했으며, 밑변의 길이와 탑 높이의 비례는 원주율의 절반이고, 탑의 높이는 지구 둘레길이의 27만분의 1이며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의 일만억분의 1이라는 것이다. 마야인들은 피라미드의 천문학적인 방위를 더욱 정확하게 계산하였는데, 천랑성(天狼星) 시리우스의 광선이 피라미드 북쪽 면 공기통로를 따라 직접 피라미드 위쪽에 위치한 거실에 영원히 누워 있는 국왕의 머리 부분을 비추게 하였으며, 북극성의 광선은 역시 북쪽 면 공기 통로를 통과하여 곧바로 아래의 거실로 비추어 들어가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피라미드를 일종의 무덤으로 여기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피라미드 안에서 미라를 발견하였다. 그렇다면 대서양 양안(兩岸)의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상론(相論)하지는 않았지만 똑같은 공정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어 무덤으로 사용하였는가? 만약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피라미드와 꼭대기에 있는 감실은 그렇게도 어울리지 않는가? 피라미드 전체의 건축 수준은 그렇게도 놀라운데 감실이 오히려 그처럼 거칠게 되어 있으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감실을 나중에 별도로 설치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100여년 전 피라미드 속에서 발굴한 물건의 일부분을 오늘날 사람들은 이를 알아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정교한 렌즈의 일부, 밧데리, 트랜스, 태양계모형의 깨어진 조각, 스텐레스와 기타 이름 모를 합금으로 만들어진 기계, 공구 등이었으며, 이를 근거로 어떤 사람은 피라미드가 원래 마야인 선조의 물건 창고라고 추측하기도 하였다. 다만 피라미드 내부의 기이한 공간 모양 때문에 내부의 일정한 곳에 놓아둔 미라가 썩지 않게 되므로 영혼불멸의 사상을 가진 민족이 자신들의 지도자를 이러한 물건을 다 쓰고 난 후 그 빈 공간에 모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상한 에너지 마당

1968년, 일부 과학자들이 피라미드 내부를 탐사할 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그들이 매일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설비를 사용 하여 피라미드내의 동일한 부위에 대하여 X선 탐사를 진행하였는데 찍힌 사진은 한 장도 같은 것이 없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이 기이한 현상의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하여 과학자들은 현재 레이저로 재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탐험가인 더오버노유크와 기자 파란딩이 중앙아메리카의 유카탄을 탐험하던 중 많은 통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동굴을 발견하였다. 첫 시작에는 탐사가 매우 순조로웠으며, 동굴의 통로와 피라미드 내부 통로의 구성이 매우 흡사한 것을 발견하였고, 동시에 그들은 고대 마야인의 유물들을 찾아냈다. 그러나, 동굴 속에서 탐사를 계속함에 따라 점점 많은 곤란에 부딪치게 되었는데 더오버노유크가 사진 몇 장을 찍으려고 생각하여 9장을 찍었지만 현상(顯相)된 것은 다만 한 장뿐이었고 그나마 나타난 것은 한줄기의 나선형의 백광(白光)뿐이었다. 그들은 불시에 위험이 눈앞에 닥쳤다는 것을 의식하였다. 그것은 전설 중의 마야 제사 (祭司)가 성지(聖地)를 보호하기 위하여 남긴 에너지 마당을 만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여 탐사는 그곳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피라미드내의 통로와 유카탄 동굴 내의 이러한 신비한 에너지 마당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행기와 선박이 때때로 불가사의하게 사라지는 버뮤다 삼각 지역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곳에서 조난 당한 선박과 비행기는 하나 같이 한 조각의 잔해마저도 남기지 않았으며 심지어 바다 위에 한 방울의 기름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난 당하기 전 거의 모두가 기지를 향해 이미 해안에 접근하였으며 일체의 계기들이 작동하지 못한다는 보고를 하면서 동시에 광범한“하얀물”을 보았다고 놀란 목소리로 부르짖고는 이어 일체의 연결이 끊어졌다. 그렇다면 버뮤다 삼각 지역에도 유카탄 동굴처럼 그런 에너지 마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특히 작년에는 사람들이 버뮤다 삼각 지역 해면에서 하나의 피라미드를 발견하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마야인이 물밑의 피라미드 내에 숨어 있을 수 있으며 그들이 바로 이 마의 삼각지역에서 일을 저지르는 장본인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문장:2002-6-8
수정:2002-6-9

문장분류:사전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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