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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성 잉커우시 쉬촨더, 여러 해 전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랴오닝(遼寧)성 잉커우(營口)시 라오볜(老邊)구 파룬궁수련생 쉬촨더(徐傳德)는 진선인(眞·善·忍) 표준으로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하며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는 이유로 3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2013년 6월 25일 중공(중국공산당)의 박해로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46세였다.

3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다

1999년 7월 20일부터 장쩌민은 중공을 장악해 진선인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그날부터 박해는 한 시각도 멈춘 적이 없다. 박해가 발생하자 쉬촨더는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고, 3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2002년 4월 잉커우시 노동교양원에서 쉬촨더는 몸에 장애가 있었으나 온종일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강제로 앉아 있어야 하는 고문을 당했다(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2001년, 쉬촨더와 훗날 사악한 당의 박해로 사망한 린바오산(林寶山), 첸나이장(錢乃章), 장수펑(張樹鵬), 웨이리강(魏立剛) 등 파룬궁수련생 14명은 잉커우시 노동교양원에서 단체로 발정념하여 그곳을 탈출했으나, 시 위원회 서기 멍판리(孟凡利)의 지시를 받은 잉커우시 610, 공안국, 시 국가보안대대 등 경찰에게 추포(追捕)당했다.

4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다

몸에 장애가 있고 등이 굽은 데다 시력이 0.1 정도밖에 안 되는 쉬촨더는 마수에서 벗어났으나 돈 한 푼 없어 우여곡절을 겪으며 안산(鞍山)시에 있는 누나 집에 숨어있었다. 하지만 누나는 당시 천지를 뒤엎을 듯한 사악한 압력 때문에 동생을 자신의 집에 묵지 못하게 하고, 돈을 좀 주어 차를 타고 선양(瀋陽)시로 가라고 했다. 쉬촨더는 다시 전전하다가 라오볜구로 돌아가긴 했으나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산에 숨어 있었는데, 악인 리훙웨이(李紅萎)가 불법적으로 그를 모함했다.

잉커우시 610, 공안 국가보안대대, 라오볜구 610, 공안 국가보안대대, 라오볜구 파출소, 라오볜구 가도 사무처 등 30여 명이 산을 포위했고, 시력이 나쁜 쉬촨더가 자신이 포위된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는 그렇게 납치돼 4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구타당해 늑골이 두 대 부러지다

쉬촨더는 랴오닝성 번시(本溪)시 감옥에서 진밍난(金明南) 등 전향한 10여 명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해 늑골이 두 대나 부러졌다. 쉬촨더는 감옥은 파룬궁수련생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폐 질환도 그를 괴롭혀 적극적으로 병보석 수속을 신청했다. 그는 일할 수 없어 사악에 이용 가치가 없었기에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받았다. 그러나 가련한 그는 더 심한 박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경제력이 없었던 쉬촨더는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했다. 감옥에서 상처 입은 것이 완쾌되지 않은 데다 또 장기간 사악의 교란에 처했던 탓에 결국 2013년 6월 25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원문발표: 2019년 12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14/3970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