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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소굴 속의 명석한 사람(1)

글/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장쩌민이 중국공산당과 결탁해 발동한 파룬따파에 대한 미친 박해는 전적으로 거짓말에 기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아무리 정교해도 아직 선념(善念)을 가진 세인들, 중국공산당의 감옥, 노동교양소, 구치소 등의 사악한 검은 소굴에 있는 현직 및 구금자들을 포함해, 그들은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마음을 수련해 선을 향하는 대법제자를 만나면서 마침내 대법의 아름다움과 대법제자의 선량함에 감화를 받았다. 세인을 세뇌한 중국공산당이 만들어 낸 거짓말은 사실 앞에서 겨울눈이 따뜻한 봄 햇살에 녹아버리듯 사라졌다.

(1) 구치소의 지독한 경찰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내 친구다”

1999년 9월 어느 날 밤, 나는 두 번째로 구치소에 납치됐다. 다음 날 ‘C 소장’이라는 경찰이 출근했을 때 처급(處級) 간부가 새로 붙들려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날 불러 면담하자고 했다. “당신이 처급 간부라지요. 잘 살 수 있는데 하필 왜 이런 것을 하고 있어요? 배불리 먹고 할 일이 없나요? 여기에서는 반드시 관리에 복종해야 합니다. 연공을 허락하지 않아요. 당신이 오기 전에 이미 여러 명(파룬궁 수련생)을 연공 못하게 다스렸지요. 당신도 날 성가시게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요.”

그의 말을 들으니 내가 막 도착했을 때 수련생이 들려준 말이 생각났다. 한 수련생을 때려 수련생의 엉덩이가 검푸르게 부어올랐으며, 한 용의자를 창문 철책에 온종일 수갑을 채워 매달았다가 내려놓았는데 몇 달간 팔과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바로 그 명령을 지시한 경찰인 것 같았다.

그를 자세히 바라보니 그리 악독하게 생기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파룬궁에 대해 아십니까?” 그가 말했다. “지난 2개월 동안 매일 TV에서 방송하고, 매일 상부에서 자료를 전달하고 있는데 누가 모르겠어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신이 어떻게 이런 미신들을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는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에 속은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왜 파룬궁을 수련하게 됐는지 이야기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농민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 가족은 많았고 생활은 어려웠습니다. 아버지 한 사람만 생산대에서 일했고 농민이 하루에 10~20전을 벌 수 있는데 1천 위안이 넘는 삼각 부채를 지고 있었습니다. 1천 위안 이상의 빚은 우리 가족에게는 천문학적 숫자였습니다. 생산대는 연말에 배당금을 지급할 수 없었으며, 배급 식량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집안 살림은 아버지가 개간한 땅에서 나오는 식량과 어머니의 돼지 사육으로 꾸려나갔습니다. 어느 날 밤 생산대 회의에 나가신 아버지가 늦도록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바느질하던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하셨지요. 어린 형제자매들은 모두 잠들었습니다. 장남인 저는 이불 속에 누워 있었지만, 어머니의 조바심에 끌려 아직 귀가하지 않은 아버지를 걱정했습니다. 나는 마침내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 마음은 마치 매달았던 돌을 땅에 내려놓은 듯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아버지는 탄식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어렵게 살게 됐소. 오늘 생산대에서 개간한 땅은 ’식량창고‘이며, 돼지 사육은 ’은행‘이므로 자본주의 꼬리를 잘라야 한다는 상부의 문서를 전달했고 나는 자본주의의 전형으로 취급되어 비판을 받았소. 내가 자본주의 길로 나갔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강요했소. 그러나 땅 개간이나 돼지 사육을 하지 않고 어떻게 살겠소? 게다가 황무지를 개간하고 돼지를 기른 것은 나뿐만 아닌데 왜 나만 비판할까. 이건 분명히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요.’ 어머니가 아버지를 말리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날 밤 저는 훨씬 성숙해진 것 같았습니다.

이 일은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부모님이 우리 가족을 부양하기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반드시 출세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마침내 학교에 가게 됐고 시골에서 벗어났습니다. 졸업 후 기업에서 공청단위 서기로부터 직접 당위원회 부서기로 선출됐고, 또 실제 권력을 가진 중급 지도자가 됐으며, 40세 미만에 부처급 직위를 가지게 되어 동료의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또 상사에 의해 젊고 유망한 예비 간부로 뽑혔습니다. 그러나 배경과 돈이 없는 시골 아이가 이 영광을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가족에게 가능한 한 더 많은 돈을 보내기 위해 저는 아껴 먹고 아껴 썼으며, 게다가 내내 관가에서 쟁투를 벌이면서 건강이 갈수록 악화하여 전국의 여러 병원에서 거의 불치병으로 판명되는 혈액병에 걸렸습니다.

아버지가 그 소식을 듣고 저를 보러 도시로 왔을 때, 그는 모든 사람 앞에서 엉엉 우셨습니다. 심지어 어머니는 뒷일을 다 계획해 놓으셨고 동생들에게 ‘네 형이 만약 낫지 않으면, 너희 누구도 날 붙잡지 마라. 나는 그와 함께 죽겠다.’ 내가 병이 가장 심할 때는 며칠에 한 번씩 수혈해야 했습니다. 그때는 남의 입술이 빨간 것을 보면 부러웠습니다. 나중에 기공을 하고 한약을 먹음으로써 증상이 약간 완화됐지만 모든 지표가 불안정했습니다. 부처급 간부로 됐을 때 혈액 질환으로 인한 다양한 질병이 예기치 않게 발생했습니다. 남들이 내가 부국장으로 계속 승진하게 되는 것을 부러워할 때, 저는 매일 고통을 겪고 있었으며, 매일 약물로 연명하다가 어느 날에 삶의 끝자락에 이를지 몰랐습니다.

1994년 9월, 한 동료가 저에게 파룬궁을 소개했습니다. 소위 중국 사당(邪黨) 당교에 5번 파견되어 연수를 받아 무신론과 변이된 생각으로 가득 찬 제가 예상 밖에 파룬따파의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신비한 효능과 ‘진선인’의 법리를 믿게 됐습니다. 단지 10일의 짧은 기간을 연공하고서 모든 질병이 사라졌습니다. 몸이 아프지 않고 가벼워지면서 새로운 삶을 되찾은 기쁨,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경지가 승화되는 깨달음에 대해 파룬따파를 직접 수련하는 사람만이 대법의 신기함과 소중함을 이해합니다. 그때 저는 늘 제가 너무 늦게 법을 얻은 것을 후회했고, 중국공산당 무신론으로 이렇게 많은 기간을 속아온 자신이 불쌍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떤 어려운 고비와 좌절에도 끝까지 대법을 수련하겠다고 늘 결심했습니다.

이어서 저는 먼저 피로가 쌓여 병을 얻은 어머니에게 대법을 알려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연공한 뒤 류머티즘, 심장병, 완고한 두통 등 여러 질병이 사라졌습니다. 이어서 누나도 법을 얻고 간경변이 나았으며, 아버지도 연공하고 동맥경화가 좋아졌습니다. 많은 친구와 가족이, 우리 가족이 대법의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 대법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그들도 또한 질병이 나아 대법의 수혜자가 됐습니다. 만약 제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일찍이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C 소장님, 제가 대법을 수련한 것이 중국공산당이 선전하는 것처럼 그런 비이성적인가요?” 내가 눈가의 눈물을 닦고 그를 보자 그는 조금 전 분노한 표정이 사라지고 눈에서 눈물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 창밖을 내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그 책(전법륜)을 나도 읽었어요. 나는 그(리훙쯔 사부님)가 쓴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아요. 대학에 간 적이 없는데 어떻게 천문학과 지리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까?” 내가 설명했다. “C 소장님, 저는 당신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지만, 저는 다롄에서 열린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진행한 보고회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원고 없이 3시간 이상 현장에서 설법하셨습니다. 수도 베이징에서 명성이 있는 기공 대가로서, 이것은 누가 되고 싶으면 인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차례 건강 박람회에서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셨는데, 어떤 병이든 사부님께서 손만 대면 치료됐습니다. 어떤 환자는 들려서 왔다가 즉석에서 치료받고 혼자 걸어서 집에 돌아갔습니다. 중국과학원 고에너지 물리연구소는 대법 사부님의 공력을 현장 테스트한 바 있는데, 우리 집에는 아직도 측정에 관한 완벽한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이 다른 사람에 의해 쓰였다면, 더욱 대법 사부님에 대해 어떠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 책을 쓴 사람을 왜 공개하지 못합니까?” 그는 매우 놀라면서 웃으며 말했다. “처급 간부라 다르네요. 당신 말은 정말 일리가 있어요.” 내가 말했다. “제가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이치가 바로 여기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그가 근무 중일 때면 나를 사무실에 부르거나 혹은 감방 창문 밖에서 나를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진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그는 대법에 대해 점점 더 긍정적이었다. 그는 내가 며칠 동안 계속 설사했다는 말을 듣자 보온병을 감방에 갖고 와서 감방 우두머리에게 단단히 당부했다. “보온병을 잘 보관하고 M(나를 말함)에게만 사용하게 하시오.” 그는 또 나에게 매일 삶은 달걀 몇 개와 쌀죽 한 밥통을 가져다주었다. 감방 우두머리는 부러워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당신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인가요. C 소장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가장 원칙적입니다. 이 보온병은 죄수들이 자살 도구로 사용할까 봐 안전 때문에 감방에 두지 못합니다. 저는 이 감방에 몇 달간 있었지만, 그가 재소자를 이렇게 대하는 건 처음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회사 상사와 함께 C 소장을 초청해 식사했다. 회사 상사와 내가 날 돌봐준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황급히 말했다. “아니지요. 제가 감사드려야 합니다. 당신은 제게 너무 많은 것(진상)을 알려줬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장기를 두는 것과 같아요. 중요한 몇 수를 만났을 때 한 수를 잘못 두면 전체 판이 흔들리죠. 일단 틀린 길로 가면을 평생을 그르치죠. 당신이 제게 (진상을) 말하지 않았다면, 저는 TV에서 하는 선전을 믿었을 것입니다. 누가 국가(중국공산당)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당시 회사 상사는 파룬궁 진상을 잘 알고 있었지만, 외부압력 때문에 몇 마디 ‘당(黨)의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자 덩달아 정상으로 돌아왔다.

파룬궁에 대한 C 소장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고 축복을 받았으며 고혈압과 질병이 나아졌으며 지금까지 아주 건강하다. 나중에 그는 더는 감방을 관리하지 않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서로 옮겼다. 그가 간 새 부서는 상급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만 갈 수 있다고 한다.

파룬궁 수련생이 구치소에 납치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는 감방 우두머리에게 자신의 좋은 친구에 대해 걱정하는 것처럼 말했다. “잘 돌봐주게. 이 친구는 내 친구야.” 그는 또 스스로 돈을 내어 검은 소굴에 감금된 수련생에게 생활용품과 음식 등을 주문해줬다. 수련생이 구치소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C 소장의 부탁을 받아 나에게 문안을 전한다고 했다. 이어 수련생은 말했다. “제가 구치소에 납치된 다음 날에 C 소장이 감방을 찾아와 창문 앞에서 소리쳤어요. ‘어젯밤에 온 파룬(궁 수련생)은 누구요?’ 저는 그가 절 불러내 심문하려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감방 우두머리의 대답을 들은 후 그가 말했어요. ‘잘 돌봐주시오. 이분은 내 친구요.’ 감방 우두머리가 웃으며 말했어요. ‘C 소장님, 친구가 정말 많으시네요!’ 그가 말했어요. ‘그렇소. 모든 파룬(궁 수련생들)은 내 친구요.’

매번 그를 찾아 구치소에 불법 구금된 수련생의 상황을 알려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그는 절대 피하지 않았으며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주었다.

한번은 구치소에서 돌아온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구치소에 불법 구금된 수련생들이 늘 C 소장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많은 사람이 C 소장이 파룬궁 수련생을 돌봐준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한번은 감방 우두머리가 나에게 C 소장도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물었다. 나는 말했다. “그는 수련하지 않지만 당신처럼 우리가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시간이 오래 흘러가면 그에게 번거로움을 줄 것 같아 걱정됐다. 나는 C 소장을 만났을 때 말했다. “우리 수련자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합니다. 지난 몇 년간 늘 당신을 찾아 이것저것 해달라고 했고, 구치소에 감금된 수련생들도 당신을 믿고 일이 있으면 당신을 찾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길어지면 당신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그가 말했다. “저도 이것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당신들이 범죄 용의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고 제삼자를 해치지 않습니다. 죄수 용의자들은 안 됩니다. 내가 그들을 도와주면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계속 해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과 같지요. 저는 구치소에 오래 근무했고, 우리 지도자들도 저를 잘 알고 있어요. 실제로 수년이 지난 지금, 그들도 모두 파룬궁에 대해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차례 운동입니다. 아마도 국가 지도자가 바뀌면 운동은 끝날 겁니다. 저는 단지 당신들과 함께 있고 싶고, 당신들을 만나면 반갑고 행복합니다.”

C 소장은 파룬궁 수련생들의 안전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거의 항상 수련생을 만나면 말한다. “당신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알려줘요. 일단 그곳(구치소)에 끌려가면 그 양심 없는 놈들이 당신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반 죽도록 만들어요. 내가 도울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일단 절차에 들어가면 저도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그는 또 수련생을 도와 구치소에 물품을 들여보내 주었다(사부님의 경문 포함). 그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 수련생은 그를 식당에 초대했다. 식사를 마치고 수련생이 비용을 내려 했을 때, 그가 이미 미리 돈을 계산대에 맡겼고 서비스 담당자에게 꼭 그의 돈으로 계산하라고 부탁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련생이 매우 미안해하자 그가 말했다. “저는 당신의 감정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공산당에 의해) 여전히 박해받고 있어요. 많은 사람이 합법적인 수입을 잃었습니다. 파룬궁이 자유를 되찾을 때 한턱내세요.” 대법에 대한 그의 바른 믿음과 시련을 겪고 있는 수련생에 대한 그의 이해는 정말 사람을 감동하게 했다.

수련생들이 구치소에서 대법 경전을 볼 수 있었기에 정념과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점점 더 강해지고 구치소 환경도 점점 더 완화됐다. 수련생들은 거의 노역에 참여하도록 강요당하지 않았다. 평소 수련생들은 법학습, 발정념, 연공을 견지할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범죄 용의자와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한번은 불법 구금된 수련생이 변호사를 선임할 때, 직계존비속의 수임 계약이 없어, 한 수련생이 친지 신분으로 대리 서명을 했고, 구치소도 변호사가 수련생을 만나는 것을 막지 않은 적도 있다.

(계속)

원문발표: 2019년 9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9/6/3923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