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허난성 보도) 허난(河南)성 신양(信陽)시 시(息)현 파룬궁 수련생 왕지청(王繼成)은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는데, 2014년 봄에 황촨(潢川)현 국가보안대대에 의해 납치당했고 불법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정저우 신미 감옥에서 박해를 당해 생명이 위독해졌다. 결국, 2015년 9월 14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는데, 지금까지 약 4년이 되었다.
왕지청은 시현 천펑(陳棚)향 천펑촌 왕좡(王莊)의 파룬궁 수련생으로, 장기간 현지 파출소의 교란, 감시를 당하고 핍박에 못 이겨 황촨현으로 가서 유랑생활을 하며, 인력 삼륜차를 끌며 생활을 유지했다.
왕지청은 2014년 4월쯤 황촨현 국가보안대대에 의해 납치됐고 불법으로 징역형(형기는 상세하지 않음)을 선고받았다. 정저우 신미 감옥에서 각종 고문 학대를 받았다. 왕지청은 대법을 모독하는 비디오를 보기를 거부해 늘 감옥 경찰의 사주를 많이 받는 형사범 자오스밍(趙世明)에게 구타, 욕설, 모욕, 강제 ‘전향’을 당했다. 2015년 초에 핍박에 못 이겨 병에 걸렸는데 매번 병원으로 가려면 두 사람이 부축해 가야 했다.
2015년 봄, 왕지청은 감옥의 핍박으로 사경에 이른 후, 가족에게 통지를 보내 데려가라고 했다. 왕지청의 아들은 아버지가 감옥 측에 의해 핍박을 당해 생명이 위독해진 것을 보고 감옥 측에 공정한 평가를 요구했다. 그 후 감옥 측은 7천 위안(한화 약 120만 원)으로 배상해 일을 끝냈다.
왕지청은 출소한 후 줄곧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몸에 늘 경련을 일으켜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결국, 2015년 9월 14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63세였다.
정저우 감옥은 중국공산당이 남성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사악한 소굴로, 신미시 쑹산대도(嵩山大道)의 한 잔산(殘山)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전에는 허난(河南)성 제15 노동교화 지대라고 불렀는데, 외부적으로 치리강(七里崗) 시멘트 공장이라고 불렀다. 그 후 ‘관타이(冠泰) 실업 유한회사’라고 불렀다. 정저우 감옥에서는 차례로 불법적으로 무고한 파룬궁 수련생을 1천 명 이상을 감금했다. 감옥 측은 파룬궁 수련생에게 ‘진선인(眞善忍)’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해 이른바 ‘전향’ 목적을 이루기 위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강제 세뇌, 고문 학대, 강제 노동 등을 진행했는데 갖은 수단을 다 썼다. 박해 중 적어도 10여 명이 사망했고 여러 명이 정신이상[신샹시 수련생 천유칭(陳友慶), 싱양(滎陽)시 수련생 딩궈잉(丁國營), 화이양(淮陽)현 수련생 왕다펑(王大鵬), 정저우시 수련생 톈하이순(田海順) 등]이 됐다. 불법으로 감금당한 모든 파룬궁 수련생은 각종 형식의 박해를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어떤 이는 10여 년 동안 감금당해 줄곧 이른바 ‘엄격한 관리’ 속에서 시달렸다.
정저우 감옥 박해의 대상은 70여 세인 노인에서부터 장애인[예컨대 보아이(博愛)현의 볜춘유(卞春有), 화이양현 더우먼(豆門)향 다둥잉(大董營)촌의 양더즈(楊得志), 전 저우커우(周口) 지역 기술감독국 과장 청진징(程金敬)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 주류 인사에서부터 생존이 어려운 빈민에 이르기까지, 지식인에서부터 글자를 거의 모르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파룬궁 수련생이기만 하면 예외라곤 하나도 없이 모두 중점 박해 대상이었다. 악독한 경찰은 악독한 죄수를 부추겨 졸개 역을 맡게 했다. 어떤 악독한 경찰은 심지어 직접 손을 대 이 무고한 사람들을 혹독하게 구타했다.
원문발표: 2019년 5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22/3876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