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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 지시시 자오춘옌, 박해로 사망(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헤이룽장(黑龍江) 지시시(雞西市) 헝산구(恒山區) 파룬궁(法輪功) 수련생 자오춘옌(趙春豔)은 억울한 5년형을 선고 받고 헤이룽장 여자 감옥에 감금되어 고문학대를 받아 사경을 헤매다가, 생명이 위독하자 2018년 7월 16일 가족에게 신병이 넘겨져 120구급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갔으나, 7월 28일 새벽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赵春艳被迫害前赵春艳被迫害后

자오춘옌(왼쪽) 박해를 당하기 전 모습,자오춘옌(오른쪽) 박해를 당한 후의 모습

2013년 7월 11일 오전 7시경 지시시 헝산구 공안분국 국가보안경찰 쉬멍페이(徐孟飛), 지시시 공안국 위(於) 모 등 11명이 자오춘옌의 집에 들이닥쳐 불법적인 가택수색과 함께 그녀를 납치해 지시시 구치소에 감금시킨 후 고문박해를 가했다. 2013년 10월 중국공산당(중공)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관계자가 “잠시 대화할 것이 있다.”며 자오춘옌을 구치소 뒤뜰로 안내해 갔을 때, 그곳에는 형산구 법원 판사가 기다리고 있었고, 판사는 자오춘옌을 향해 판결문을 낭독한 후 5년형이 선고됐음을 통고했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불법적인 판결인 것이다.

2013년 11월, 자오춘옌은 헤이룽장성 여자감옥 9감금구역에 감금됐는데, 9감금구역은 혹독한 고문박해를 가하는 소위 집중훈련 감옥으로, 불법적으로 납치된 여자 파룬궁수련생 중 절반 이상이 그곳에 감금돼 온갖 고문박해를 당하며 전향을 강요하는 혹독한 감방이다. 그곳에서의 고문 박해는 직접 교도관이 참여하는 일은 드문 일이고, 대부분 죄수 중에서 선발된 지극히 악독한 자들에 의해 교도관의 지시에 따라 잔혹한 고문 구타가 자행되는데, 그 악랄함은 참으로 짐승만도 못하다.

酷刑演示:码坐
고문 재연
걸상에 앉히기 고문

그녀가 9감금구역에 감금됐을 때, 교도관으로부터 고문구타로 실적을 올리면 형기를 단축시켜 준다는 약속을 받은 형사범 두샤오샤(杜曉霞)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악인은 자오춘옌에게 먼저 움직이지 못하게 앉히는 ‘옌마(嚴碼)’라는 고문을 가하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자오춘옌은 생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14년 2월 6일, 다칭(大慶)의 형사범 톈옌루(田豔茹)는 왕닝(王寧)에게 지시해 나를 구타했다. 옷걸이와 청소용 큰 플라스틱 솔로 얼굴을 구타했는데, 솔이 2개나 부러져 나갔으며, 구타당한 얼굴은 닭의 부리에 쪼인 것처럼 부어올랐다. 이튿날 사악한 톈옌루는 ‘하룻밤 사이에 당신의 얼굴은 꽃이 핀 것처럼 변했다.’고 빈정거렸다. 그러면서 ‘랩을 붙이고 두꺼운 종이 두루마리로 사람을 구타하면 표면에 상처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사정없이 구타했으며, 잠을 재우지 않았고,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하면서 바지에 용변을 싸게 만들었다.”

中共酷刑示意图:浇凉水
중국 공산당의 고문재연도
냉수를 끼얹기

“2014년 3월, 왕닝 등은 내 머리채를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찬물이 담긴 대야에 쑤셔 박은 후 찬물을 전신에 퍼부었다. 당시 3월이라고는 해도 동북의 날씨는 매우 추웠다. 온몸이 물에 흠뻑 젖어 덜덜 떨고 있었지만 그들은 옷을 갈아입지 못하게 했으며, 움직이지 못하게 했고, 또 늘 대화를 하자며 나를 의복창고(직원들의 옷 보관 장소, 감시카메라 설치 안 됨)로 끌고 가서 혹독한 구타를 가했는데, 그곳에서 몇 번을 당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톈옌루, 왕닝 등 악인은 악독한 교도관의 지시를 받아 파룬궁수련생을 고문하고 구타해서 전향시키는 공을 새워 자신의 형량을 단축시키려고 어떤 잔인한 행동도 불사했다. 그런 악인에게 맡겨진 자오춘옌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자오춘옌의 양 어깨를 잡고 무참히 아래로 눌러 엉덩이를 바닥에 짓이겨, 엉덩이의 살이 터져 팬티 밖으로 피가 배어 나왔다. 그런 후 소위 ‘옌마’라는 고문 의자에 앉혀놓고 고통을 가중시켰다.

9감금구역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가했다. 가증스러운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주 사악한 방법도 취했는데, 즉 사부님의 존함을 바닥에 써 놓고 파룬궁수련생에게 강제로 짓밟게 하고, 침대 위에 써 놓고 깔고 앉으라고 했으며, 존함을 쓴 종이를 수련생 바지 안에 쑤셔 넣기도 한다.

자오춘옌은 늘 고문과 구타 그리고 모진 학대와 모욕을 당했다. 2014년 2월 6일 심한 구타로 동서남북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흐리멍덩해졌다. 그런데도 20일 동안 잠을 못 자게해서 정신이 더욱 혼미해졌을 때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4서’에 서명하게 했다. 그러나 자오춘옌은 2014년 3월 6일 종이와 펜을 보게 되자 즉시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에서 ‘4서’에 서명한 것을 전부 폐기한다.”는 ‘엄정성명’을 써서 톈옌루(田豔茹)에게 전했다. 톈옌루는 성명서를 무시한 채 자오춘옌을 쓰러트려 구타했고, 8일간 ‘옌마’ 고문을 가하며 잠을 못 자게 했다. 그는 성명서를 쓴 종이와 펜의 출처를 찾는다며 구타하고 트렁크 등을 수색했다.

교도관이 자오춘옌의 성명서를 접수하지 않았으므로, 자오춘옌은 옷 단추로 벽에 엄중성명서를 썼으므로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었다. 교도관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벽에 낙서를 해 더럽혔다는 이유를 들어 ‘옌마’ 고문을 가했는데, 그녀가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때까지 온갖 모진 학대를 가했으므로 건강이 매우 위중해졌다. 음식물을 먹기만 하면 토했으므로, 만두를 물에 불려 조금씩 먹을 수밖에 없었다.


고문 박해를 당해 피골이 상접한 자오춘옌의 모습

자오춘옌은 생전에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이 나를 구타할 때, 나에게 병이 있다며 약명을 알 수 없는 약을 강제로 투여했는데, 나의 치아는 전부 부러지고 부서졌다. 교도관 샤오수펀(교도관 번호 2303055)은 날마다 강제약물복용을 지켜봤으며, 투약이 끝나면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했고, 토하지도 못하게 감시했고, 강제로 입을 벌려 약이 입안에 남아 있는지를 확인했다. 하루 2회씩 약을 투입시켰는데, 얼마나 오랜 기간 투입시켰는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악인들이 나에게 무슨 약을 투입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약이 투입된 후 매번 설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 후부터 전혀 음식물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톈옌루는, 내가 ‘죽도 안 먹고 오직 만두만 물에 불려 먹는다.’고 푸념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으며, 나의 치아도 모두 부서지게 만들었다.’고 말해주었다.” 자오춘옌은 음식물을 먹지 못하는 상태라, 날이 갈수록 건강상태는 더욱 위중해졌으므로, 병원에 보내져 검사를 할 때 간종양이 발견됐다. 이미 음식물은 전혀 먹지 못하는 상태였고, 정신도 흐리멍덩해져 시간관념도 없었고, 그런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다.

자오춘옌이 중국 공산당에 납치되어 헤이룽장 여자감옥에 감금당한 후 가족이 면회를 갔지만, 교도소 측은 자오춘옌이 전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6년 10월 말 갑자기 감옥에서 “자오춘옌이 병으로 위독하니 속히 오라.”는 연락이 왔다. 가족이 하얼빈 중심병원으로 달려가 병상에 있는 자오춘옌의 모습을 봤을 때,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서 음식물을 먹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미 호흡조차 힘들어하는 생명이 위급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교도관은 가족에게 병원비를 지급하라고 핍박하며 서명을 요구했다. 그들은 빨리 병보석 수속을 해서 정상적인 치료를 받으라고 했으나, 헤이룽장성 사법국에서는 병보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9감금구역 대장 왕산산(王珊珊)은 자오춘옌의 아들에게 돈을 요구해, 위챗으로 여러 차례 돈을 송금했으며, 가족들이 면회할 때마다 그녀에게 돈을 주었고, 교도관 주쉐밍(朱學明)에게도 돈을 주었다. 교도관은 가족에게 돈을 가져오면 석방할 수 있다고 해서, 2만 6천 위안(한화 423만원)을 전했어도 석방하지 않았으며, 자오춘옌을 보살폈다는 여러 명목으로 하루 260위안(한화 4만 2천원)의 돈도 받았다. 그들은 또 돈을 더 가져오면 가족이 직접 옆에서 간병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오춘옌이 출소할 때 가족에게 수술비 6만 위안(한화 976만원)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았는데, 자오춘옌이 수감 중에 영치한 5천 위안(한화 81만원)도 그들이 가로채고 주지 않았다.

2018년 7월 16일 출소할 때, 자오춘옌은 이미 고문박해로 사경을 헤매는 중이었고, 51kg의 체중이 33kg밖에 되지 않았다. 가족은 120구급차로 하얼빈에서 지시시 헝산구 집으로 데려왔지만, 자오춘옌은 7월 28일 새벽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자오춘옌이 고문박해로 사망한 것은, 중국 공산당이 선량한 사람을 납치해 고문박해로 학살하는 전형적인 악행의 모습이고, 중국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의 축소판인 것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은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정과 사회에 이로움이 있고, 대중의 도덕심을 높이는 합법적인 수련으로 마땅히 표창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룬궁수련생은 누구에게 납치되거나 기소될 수 없으며, 재판에 회부돼 심문받아서는 안 된다. 파룬궁수련생이 올바른 믿음을 견지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것은 역시 사회의 정의를 보장하고, 사회의 양심을 수호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헌법정신에 따라 당연히 법률의 보호를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자오춘옌은 1997년 가을에 파룬궁을 시작한 후 류머티즘, 심장병, 신경쇠약 등등의 증상이 모두 사라졌다.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 연공을 했다는 이유로 중국공산사당에게 여러 차례 박해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2차에 걸쳐 불법적인 3년 10개월 형과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2000년 6월 29일 헝산(恒山) 펀더우(奮鬥)파출소 소장 쑨멍산(孫夢山)과 지역 경찰 쉬(許) 등에게 납치돼 24일 동안 감금됐고, 2000년 11월 또 펀더우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52일 동안 감금됐으며,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지 3일 만에 다시 파출소장 쑨멍산에 납치돼 1년간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완자(萬家) 노동교양소에 감금됐다. 2008년 11월 28일 무단장(牡丹江) 법원에서 파룬궁수련생을 재판할 때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방청을 하러 가다가 경찰에게 납치돼 헝산 국가보안경찰에 의해 1년 6개월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헤이룽장 여자 마약중독자 재활원에서 16개월 9일 동안 감금돼 고문박해를 당했는데, 형기가 만료됐음에도 형기를 연장해 감금당하는 박해를 당했다.

중국공산당은 ‘가악투(假惡鬥)’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정권을 탈취한 후 국민에 대한 학살이 끊이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일으킨 무슨 각종 정치운동으로 절반이 넘는 중국내 가정이 파괴되었고, 무고한 국민 8천만 명을 학살했다. 학살자의 수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에서 사망 수보다 많은 것이다. 특히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1999년 7월부터 지금까지 19년 동안 박해했는데, 1억 명이 넘는 파룬궁수련생과 그 가정을 파괴하고 박해했다. 박해 수단은 저질이고 잔혹했는데, 강간, 성추행, 전기고문, 고문형구를 이용한 각종 고문과 구타를 자행했다. 그들은 지하 감옥과 사인침대(死人床), 독침주사 등등 온갖 고문수단을 동원해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극단적인 고문을 모두 사용했다. 심지어 살아 있는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해 팔아먹는 만행도 자행했다. 수천만에 이른 파룬궁수련생이 감옥, 노동교양소, 구류소, 세뇌반 등의 소굴에 감금되어 육체적 정신적인 잔혹한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 그러므로 수많은 파룬궁수련생이 고문박해로 사망하고 불구가 되고, 정신이상이 되었다. 현재도 중국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파룬궁수련생이 불법적으로 납치되어 구금되고, 고문 구타를 당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이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전도시켰고, 사회의 도덕심을 손상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의 법치는 완전히 사라져 중국사회를 완전히 암흑천지로 만들었다. 중국공산당의 ‘가악투(假惡鬥)’는 오늘 날 중국 천지의 도덕심을 완전히 함락시켜, 부정부패의 천지로 만들었다. 모든 중국인이 전부 피해자인 것이다. 많은 사람은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자신과 직접 관계가 없다고 여기는데, 참으로 잘못된 인식이다. 선과 악, 바른 것과 사악한 것의 대결 중에서 침묵하는 것은 바로 사악을 용인하는 것으로, 사악의 공범자인 것이다. 침묵은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고, 선택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악을 돕는 것이고, 사악의 만행을 조장하는 것이다. 현재 천재와 인재가 끊이질 않음이 바로 그것의 경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99년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해, 수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이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파룬궁을 박해한 피맺힌 원한의 무리(血債幫)’들 중 일부 고위직에 있던 저우융캉(周永康), 보시라이(薄熙來), 쉬차이허우(徐才厚), 궈보슝(郭伯雄), 왕리쥔(王立軍), 리둥성(李東生), 쑤룽(蘇榮), 저우번순(周本順) 등이 연이어 투옥됐다. 표면적으로는 부정부패 혐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파룬궁을 박해한 죄악으로 천벌을 받은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파룬궁을 박해하고 있는 각급 기관원들에게 엄숙하게 경고한다. 즉시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중단하고,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쳐, 오늘의 잘못을 내일의 보응으로 받지 말기를 바란다.

(박해에 참여한 기관 및 책임자의 정보는 원문참조 바람)

원문발표: 2018년 8월 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8/1/3719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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