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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성 다롄시 파룬궁수련생 양사오화가 박해 중 사망

[밍후이왕] 양사오화(楊韶華, 여, 미혼)는 1962년에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시(大連市) 진저우구(金州區) 싼스리바오진(三十里堡鎮)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몸이 허약하고 잔병이 많았는데, 폐엽 하나를 절제한 적이 있다. 대략 1997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그 후에 저혈압, 부정맥, 심계 항진, 완고성 생리통, 후두염, 비염, 편도염 등이 모두 기적같이 사라졌다. 그녀는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내 온몸을 병이 없이 가볍게 하여, 즐거움이 다시 나의 몸에 돌아오게 했습니다. 나는 이 즐거움이 영원히 존재하고 행복이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1999년 ‘7.20’에 중공(중국공산당)은 파룬궁에 대한 박해 운동을 발동했다. 양사오화는 확고하게 수련했는데, 적어도 두 차례 불법 납치를 당했다. 그녀는 매번 폭력적인 음식물 주입을 잔혹하게 경험했다. 입으로 선혈을 토하고 사지가 경련을 일으켜 생명이 위험해져서야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는’ 명목으로 진저우(金州)구치소[다롄시 진저우구 싼리 지역에 위치했는데, ‘싼리대옥(三里大獄)’이라고 속칭함]에서 교도관에게 업혀 나왔다. 그 뒤로 그녀는 일년내내 외지에서 유랑하며 늘 일정 거주지가 없는 생활을 했다. 심지어 며칠 밤을 봉분옆에서 보내기도 했다. 감옥에서의 두 차례 폭력적인 음식물 주입은 그녀의 몸 건강에 심각하게 손상 입혔다. 결국, 2016년 7월 19일 늦은 밤부터 20일 이른 새벽 사이에 사망했다.

2000년 10월 1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경찰은 파룬궁수련생을 함부로 혹독하게 구타하고 납치했다. 양사오화는 경찰에게 “당신은 구타하지 마세요.”라는 한 마디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곧 톈안먼 광정 분국으로 납치되었다. 중공의 연좌제를 피하기 위해 그녀는 당시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고, 베이징 창핑(昌平)의 파출소, 창핑 구치소에 감금됐다. 조사당해 이름이 발견된 후, 그녀는 베이징 사무처 주재 다롄 경찰에 의해 다롄으로 송환되어 다롄시 마약 중독자 재활원[(다롄시 사허커우구(沙河口區) 타이산(台山) 정수공장(淨水廠)인근에 위치했음]에 감금됐다.

다롄시 마약 중독자 재활원은 본래 마약을 복용한 자들을 감금했다. 이때는 마약복용 인원이 한 사람도 없었고, 모든 곳을 비워 파룬궁수련생을 감금하는 데 사용했다. 다롄시 진저우구 싼스리바오 파출소 경찰은 양사오화의 친구에게까지 연루시켜 거액의 벌금을 갈취했다. 싼스리바오 파출소 소장은 그녀의 언니에게 만 위안의 벌금을 바치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 언니의 가게를 차압하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벌금을 바친 후, 경찰은 석방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즉시 양사오화에 불법적으로 형사구류 처분을 내렸다. 대략 2000년 10월 8일, 양사오화는 다롄시 진저우구 구치소에 감금됐다.

진저우구 구치소에서 양사오화는 강제로 노예 노동을 당했다. 노예 노동 업무량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양사오화가 한 수공일은 다시마를 매는 일이었는데, 밤까지 필사적으로 해야 했다. 그녀는 지쳐서 각혈했다. 노예 노동을 해서 얻은 소득은 경찰의 장려금으로 사용되었다. 감금당한 모든 사람의 대우는 노예만도 못했다. 매일 일을 다 하지 못하면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략 두 달 후, 양사오화와 기타 파룬궁수련생은 함께 단식으로 무죄석방을 요구했다. 구치소 소장은 직접 음식물 주입 밥그릇에 대량의 소금을 넣고 파룬궁수련생들에게 단식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교도관들은 극악무도하게 “먹을 것인가, 안 먹을 것인가? 안 먹으면 주입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양사오화를 의자 위에 던지고 폭력적인 음식물 주입을 진행했다. 당시 양사오화는 곧 음식물 주입을 당해 사지에 경련을 일으켰고 입으로 선혈을 흘렸으며 의식을 잃었다. 생명이 위험해져서야 진저우구 구치소에서 업혀 나올 수 있었다.

2002년, 다롄시 진저우구 싼스리바오 파출소 경찰은 양사오화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신분증 수속을 밟으라고 했다. 양사오화가 속임을 당해 파출소로 간 후, 파출소 소장은 즉시 태도를 바꿔 “당신은 2000년에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는데, 그 후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아 집행하지 않았다. 지금 집행하겠다.”고 말했다. 양사오화는 “당신은 왜 사람을 속입니까?!”라는 한 마디만 말했을 뿐인데, 곧 진저우구 구치소로 납치됐다. 양사오화는 곧 단식으로 항의를 했다. 닦는 수건은 피투성이가 되었는데, 구치소 경찰은 폭력적인 음식물 주입을 진행하면서 “나는 당신들에게 너무 인자하다.”고 말했다. 양사오화가 피 수건을 들고 경찰과 감옥 의사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당신들의 인자함입니다.”라고 말하자 모두 말이 없었다. 양사오화는 구치소에서 업혀 나올 때, 여전히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파출소 경찰은 “당신은 장쩌민(江澤民)을 찾아가라. 그가 명령을 내려 붙잡았다.”고 말했다.

원문발표: 2018년 8월 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8/1/3719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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