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랴오닝(遼寧) 푸순시(撫順市) 파룬궁수련생 후궈젠(胡國艦) 씨는 4년 형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2016년 5월 4일 번시(本溪)감옥 8감구역으로 납치돼 폭력적인 구타로 학대당했다. 이른 봄 꽃샘추위로 기승을 부릴 때, 냉수를 전신에 끼얹는 학대, 발로 머리 부위를 걷어차이는 폭행을 당해 뇌혈관이 파열됐고, 뇌간 출혈 증상이 나타나 번시시 중심병원(中心醫院)으로 보내졌다. 뇌 외과 수술받은 후, 두개골이 없어지고 노골이 내려앉아 식물인간으로 됐고, 결국 2018년 5월 15일 이른 아침, 세상을 떠났다.
22일 만에 박해로 식물인간이 되다
2016년 5월 4일, 후궈젠씨는 선양(瀋陽) 신루(新入)감옥에서 번시 감옥으로 옮겨져 작업 강도가 극도로 높은 8감구역으로 배치돼 갔다. 8감구역에서 매일 일반적으로 5시 10분에 일어나 6시 반에 일하러 나갔고, 저녁 7시 일을 끝냈으나 후궈젠씨의 일은 아침 4시 반에 시작해 저녁 9시에 끝났다.
늘 휴식일이 없었고, 한 달에 한두 번 쉴 수 있거나 혹은 상부에서 검사하러 올 때 휴식할 수 있었다. 어떤 때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3, 4일 연속 초과 근무했다.
8감구역에선 신루감옥의 죄수에게 1개월 동안 집중 훈련을 진행했으며, 주로 이불 개고, 감옥 규정을 외우는 것이었다. 이불은 각진 사각형 모양으로 개야 한다고 요구했고, 후궈젠 씨는 감옥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자, 8감구역 ‘일을 관리하는 죄수’(교도관에게서 명령 받고 수감 인원을 관리하는 죄수)는 교도관의 지시로 걸핏하면 후궈젠 씨를 구타하고 욕설을 퍼부었고 그가 잠자는 것을 허락지 않았으며 줄곧 그에게 이불을 개도록 했다. 어떤 때 강제로 자정 1시, 2시 반까지 개야 했으며, 신구감옥에선 아침 4시 반이면 일어나서 다시 이불을 개야 했다.
일을 관리하는 죄수는 후궈젠 씨가 무슨 일을 해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 늦다고 불만스럽게 생각하며 그에 대해 무차별 폭력, 따귀 때리기, 질책, 상습적으로 욕하기는 일상적으로 늘 있는 일이었다. 감옥에선 식사 시간을 단 15분밖에 주지 않았으며, 후궈젠 씨는 식사를 다 끝내기도 전에 밥그릇을 내려놓고 일하러 가도록 핍박했고, 매번 그에게 배불리 먹지 못하게 했다.
후궈젠의 아내는 반년 넘게 문의해서야 2016년 5월 18일 남편이 원래 선양(瀋陽)감옥에 있다가 지금 번시 감옥으로 납치돼 있음을 알아냈다. 5월 23일(면회일)이 되어 번시 감옥으로 남편을 면회하러 갔고, 그야말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본래 90여kg었던 사람이 50kg도 되지 않았다. 남편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고, 후궈젠 씨는 번시 감옥에서 그에 대해 각종 학대를 했다고 감히 하소연하지 못하고, 단지 오열해 눈물을 ‘주르륵’ 흘렸을 뿐이다……
5월 26일, 즉 후궈젠 씨가 번시 감옥에 들어가 22일째 되는 날, 일을 관할하는 죄수 왕신강(王心剛), 위안더자(袁得佳), 위창룽(於長龍) 등은 후궈젠 씨를 급수실로 끌고 가 강제로 모든 옷을 벗기고 차가운 지하수를 그의 머리 부위와 전신에 부었다. 북방의 이른 봄 추위는 살을 에는 듯했고, 음침하고 한랭한 급수실에서 후궈젠 씨는 얼음 물벼락을 맞아 멍해졌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한참 지나서야 악인은 그만뒀다.
그날 밤 10시가 넘도록 관리자는 후궈젠 씨를 잠을 못 자게 했고, 그를 작은 걸상 위에 앉혀 체벌했으며, 후궈젠 씨는 걸상 위에서 땅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일을 관리하는 한 죄수가 발로 그의 머리 부위를 몇 번 걷어차며 “꾀 부리지 마!”라고 말했다. 나중에 후궈젠 씨가 인사불성임을 발견하고 경찰에 보고했다. 후궈젠씨는 번시시 중심병원(원래 번시 제1인민병원임)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5월 27일 아침 7시경, 후궈젠 씨의 아내는 번시감옥 8감구역 대장 류정(劉爭)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당신 남편은 중병에 걸려 번시 중심병원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후궈젠 씨의 아내는 급히 “어찌 된 일이에요?”라고 묻자, 류정은 돌발성 뇌출혈 증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후 씨 아내는 급히 서둘러 친척을 찾아 함께 병원으로 갔다. 이 과정 중, 류정은 또 몇 차례나 전화로 빨리 오라고 재촉했으며, 마치 곧 숨이 넘어가 마지막 한 번을 보지 못할 것 같이 재촉했다.
후 씨 아내와 사촌 여동생이 번시시 중심병원 1층 급진대청 중환자실로 급히 갔으며, 많은 경찰이 모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후궈젠씨의 아내는 남편을 본 후 정신이 혼미해졌다! 후궈젠 씨는 혼수상태에 처해 두 눈을 꼭 감고 있었으며, 가래가 섞여 호흡은 가쁘고, 마치 곧 질식할 것만 같았다. 머리는 부어올라 온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몸 위에는 많은 호스를 꽂고 있었으며, 의사가 그의 발바닥을 긁어도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번시감옥 8감구역의 지도원 쥐양(鞠陽), 대장 류정, 몇 명의 교도관은 모두 그곳에 있었다. 의사는 후 씨 아내에게, 병원에서 뇌 CT를 진행한 결과, 뇌간 출혈이 200ML 라는 진단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만약 뇌 외과 수술을 받으면 한 가닥 생존의 기회가 있지만, 뇌 외과 수술을 받지 않으면 즉시 후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궈젠 씨의 아내는 교도관에게, 남편이 어떻게 뇌출혈이 왔는지를 물어보자 대대장 류정은 “전날(2017년 4월 26일) 저녁, 후궈젠 씨가 걸상 위에서 멍해졌는데, 단지 그가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다가 땅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런 다음 곧 그를 병원으로 보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후 씨 아내가 “무엇 때문에 나에게 전화로 알려주지 않았나요?”라고 묻자, 류정은 줄곧 전화번호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후 씨 아내가 또, 남편이 붙잡힐 때 어느 일보의 법률 절차에서 가족의 전화번호를 요구하지 않았는지? 남편이 어떻게 이 모습이 될 수 있었는지? 당신들은 모두 그에 대해 무엇을 했는지를 묻자, 류정 등은 변명하며 발뺌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기간 8감구역의 대대장 장허(章和)는 줄곧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병원에서 뇌 외과 수술을 받고 뇌에서 어혈을 제거한 후 두개골 한 덩어리를 떼어냈으며, 두개골을 맞춰 넣었는지 아니면 안 맞춰 넣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른쪽 절반 머리가 내려앉았다. 수술받은 후, 후궈젠 씨는 줄곧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식물인간 상태였다. CT 검사 결과, 머리 오른쪽 측두엽 부위의 뇌두개골이 손상되고, 뇌간 양측 기저마디 부분, 측 뇌실 주변, 반난원 부위에서 잎 모양 저밀도 음영을 볼 수 있으며, 측 뇌실이 넓게 늘어났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감옥에서 두 명의 간호 인원을 고용해 간호한 외, 매일 교도관 간호대에서 후궈젠 씨를 지켰다. 후궈젠 씨는 이 같은 상태에서도 한쪽 발은 24시간 동안 병상 위에 채워졌으며, 수술받기 전과후에도 모두 채워져 있었다. 가족이 벗겨 달라고 재삼 요구해도 벗겨주지 않았다.
가족이 의사와 병세를 상의하고 문의하기 전에, 모두 감옥 경찰이 주치의와 비밀리에 이야기 나눈 후에야 가족이 의사사무청에 들어가 의사에게 병세 통지받는 것을 허락했다. 가족이 의사와 이야기 나누는 기간, 교도관은 줄곧 법을 집행하는 기록기로 전부 과정을 감시하고 녹화했으며, 가족이 의사와 단독으로 이야기함을 허락하지 않았고 또 가족의 질문도 허락지 않았다. 두 장의 병력서 위에 하나는 하루 동안 혼미했다고 썼고, 하나는 한 시간을 혼미했다고 썼다.
수술 후 20일 후, 감옥 측과 병원 측은 후궈젠 씨를 중환자실에서 나가도록 했으며, 후 씨 아내에게 서명시켰다가 거부당했다. 경찰의 태도는 극히 오만하고 난폭했다. 후 씨 아내가 이치에 근거해 온 힘을 다해 변론했으나 효과가 없었으며, 그들은 강제로 후 씨를 일반 단칸 병실로 옮겨갔다. 그렇게 번시시 중심병원에 후궈젠 씨는 모두 8개월 동안 입원해 있었고, 줄곧 한쪽 발이 병상에 채워져 있었다.
병원에서 번시감옥으로 납치돼 돌아오다
2017년 1월 17일 설을 맞이하기 며칠 전 번시 감옥 8감구역의 대장 쥐양(鞠陽)은 후 씨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17일에 병원으로 한번 오도록 했다. 말로는 감옥 책임자가 그녀를 만나 후궈젠 씨의 일 처리를 의논하려 한다고 했다. 17일, 후 씨 아내가 병원으로 갔으며, 한 의사사무실로 이끌려갔다. 당시 방안에는 형벌집행과 과장 마슈보(馬秀波), 옥정과 과장, 감옥 의생원 원장 후밍후이(胡明輝) 등이 있었고, 몇몇 교도관과 주치의 장후이둥(張輝東)도 있었다.
쥐양은 후궈젠 씨의 아내에게 남편은 모든 곳이 평온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치료를 주관하는 장후이둥 의사에게 후궈젠의 현재 몸 상황을 소개해주도록 했다. 장 의사는 각항 지표가 이미 퇴원하는 조건(이전에 감옥 측에서 어떻게 말하도록 다 인계함이 분명함)에 도달한다고 말했다. 과장은 또 후 씨 아내에게 “병보석으로, 치료는 집으로 데려가서 해도 됩니다. 하지만 어찌 됐든 남편은 감옥의 사람이니 집에서 치료할 수 없다면 우리가 감옥병원으로 데려가 남편에 대한 전권을 받고 치료를 진행하겠습니다. 감옥 병원의 치료조건도 아주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후 씨 아내가 그들에게, 남편은 멀쩡하던 사람이 번시병원에서 식물인간이 됐는데, 집으로 데려간다면 감옥은 남편에게 어떠한 견해도 없는지 물었고 옥정과 과장은 아무런 견해가 없다고 말했다.
감옥의 이른바 ‘병원’에는 무슨 치료 시설이 없었으며, 전혀 병원 자격을 갖추지 않았다. 번시시 사법국에서도 후궈젠 씨의 아내에게 써준 청원 처리의견서 중에서 모두 명확하게 ‘번시시 감옥의 위생소 자질’이라고 말했는바, 기껏해야 위생소라고 할 수 있었다. 후궈젠 씨의 이렇게 중병 상태에 대해 무슨 치료 효과가 있을 수 있는가? 감옥의 이른바 ‘병원’으로 이송해 감은, 분명 후궈젠 씨의 생사를 돌보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번시감옥 8감구역은 거액의 의료비를 감당하지 않으려고 후궈젠 씨를 감옥안의 이른바 ‘병원’으로 끌고 돌아갔다. 감옥 측은 다음과 같이 책임을 회피하고 가족을 속였다, “후궈젠은 지병이 도졌고, 감옥 측에서 때맞춰 발견하여 제때에 치료해주어 몇십만 위안을 썼고, 사람을 찾아 옆에서 보살펴 주게 했습니다.” 번시감옥에 감금한 기간에 구타당하지 않았다는 등으로 사실 진상을 감추었다.
이후, 후 씨 아내는 후 씨를 면회하러 감옥으로 갔다. 후궈젠 씨는 매일 링거에 의지하여 코호스로 생명을 유지했으며, 단지 한 숨만 남아 호흡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매일 두 명의 간호인이 간호해야 했다. 후 씨 아내는 몹시 괴롭고 걱정돼 더는 미룰 수 없다며, 병원 치료를 요청했다! 이렇게 미룬다면 아주 위험할 것입니다.”고 말했다.
설을 보낸 후 2월 15일, 후 씨 아내는 남편을 면회하러 감옥으로 갔다. 부감옥장[성 씨는 판(潘) 씨인 것 같음, 50여 세쯤, 큰 눈]은 후 씨 아내에게, 2월 15일 또 후 씨를 병원으로 끌고 가서 검사받게 했으며, 검사 후 필름을 선양 의과대학2원, 육군 본 병원으로 가져다가 대진했고, 모두 후 씨의 병 상태가 ‘평온’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모든 성의를 다했습니다.’라고 하며, 후 씨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후궈젠 씨가 억울한 옥살이 당한 후, 후 씨 모친은 뇌출혈 증상으로 몸져누워 일어나지 못했고, 생활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었다. 후 씨의 아내는 아들의 대학공부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마비된 시어머니를 보살펴 드려야 했다. 부인은 남편이 일찍이 출소해 모든 가족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편은 오히려 번시감옥에서 박해당해 식물인간이 됐다. 후궈젠 씨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 앞으로 어떻게 나날을 보내겠는가?
2018년 5월 14일 이른 아침, 후궈젠 씨의 가족은 번시감옥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말로는 후궈젠 씨의 생명이 위험해 가족에게 즉시 번시시 중심병원으로 서둘러 가도록 했다. 가족이 시각을 다퉈 조급히 갔고, 후궈젠 씨는 이미 간호실에 있었다.
10년 동안의 억울한 옥살이, 집안의 노인과 아이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워 몸부림치다
후궈젠(1967년 출생) 씨는 랴오닝성(遼寧省) 푸순시(撫順市) 사람으로, 원 푸순 광산용 램프 공장의 직원이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위 부위에 혹이 자라나 늘 큰 출혈이 있었다. 27, 28세 때 그는 본래 집안의 기둥이었고, 병으로 고통에 시달렸지만, 오히려 모친, 아내를 보살펴야 했다. 그때 그의 아들은 겨우 두세 살밖에 되지 않았고, 아내는 심신에 매우 높은 압력을 받고 있었다. 1998년, 후궈젠씨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는데, 그것은 바로 파룬궁이다. 일주일 후, 혹은 신기하게 사라졌고, 위장병이 말끔히 치료됐다. 끊임없이 공법을 수련함에 따라 후궈젠 씨의 몸은 점점 좋아져 무슨 일이든지 모두 할 수 있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각 방면에서 진·선·인(眞·善·忍)의 이념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려 했고, 신변의 모든 사람을 선하게 대했고 타인과 이익적인 충돌에 마주칠 때면, 그는 자신이 크게 손해를 볼지라도 상대방에게 참고 양보해줬다. 그는 또 특별히 총명해 무엇을 하든지 다 잘했으며, 또 괴로움과 고생을 잘 참고 견뎌 가정이 화목하고 부유했다. 후궈젠 씨는 마음씨가 착해 다른 사람을 즐겨 도와주었다.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은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파룬따파는 후궈젠 씨와 많은 수련생에게 건강한 몸을 줬으며, 국가에 의료비를 절약하고 그에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했는바, 정말 백 가지 좋은 점만 있고 한 개의 나쁜 점도 없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어떠한 심리적이고 건전한 국가의 책임자이든지 모두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홍보할 것이다! 하지만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집단은 파룬궁 단체에 대한 절멸(絕滅)적인 박해를 발동해, 하룻밤 사이에 매체는 천지를 뒤엎을 듯 24시간 동안 끊임없이 파룬궁을 비난하고 욕설을 퍼부었으며,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해 10억 여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파룬궁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켰으며, 문화대혁명식의 광적인 탄압을 일으켰다. 공검법사(공안, 검찰, 법원, 사법), 국가보안, 군대 경찰 특무 등 독재 정치 기구를 위협해 선량한 민중을 잔혹하게 탄압했고, 강제 세뇌, 폭력적인 ‘전향’, 납치, 노동교양, 판결, 고문 학대 등을 진행했다.
2000년 12월, 후궈젠 씨는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수련의 체험을 교류하다가 푸순시 공안1처 국가보안경찰에게 납치됐고, 뒤이어 가택 수색, 강탈당했다. 집의 세 살배기 아들이 몹시 놀라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목이 쉬도록 울어서 한동안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노 모친은 두려움과 놀라움, 비통함에 병으로 몸져누웠다.
푸순시 푸청구 법원에선 뜻밖에 후궈젠 씨에 대해 불법적으로 10년의 중형을 선고해, 후궈젠 씨 가정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아내, 아들 노모와 가족 모두는 몹시 비통해했으며, 처참함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야위고 허약한 아내는 극심한 충격에 희망이 없는 고통 속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일하려고 발버둥 치며 일가족 노인과 아이를 부양해야 했다. 슬프고 걱정스러운 어머니는 병이 있는 몸을 끌고 또 온종일 세 살 손자를 돌봐야 했다. 10년 세월은 속절없이 괴로운 나날을 보내며, 후궈젠 씨의 가족은 억울함과 고통을 참으며, 비바람 속에서 몸부림쳤다.
감옥 측은 후궈젠 씨의 믿음을 포기시키려고 강압적으로 온갖 악한 수단을 다해 정신과 육체적으로 그에 대해 온갖 박해로 학대했다. 강제로 노예노동을 시켜 독성 있는 상품을 가공했으며, 매일 10시간 이상 노동했다. 만약 요구한 수량에 도달하지 못하면, 또 욕설과 구타, 전기 충격, 밥 먹고 잠자는 것을 허락지 않는 등 각종 체벌을 당해야 했고 심신은 장기간 중상을 입어 몇 번은 붕괴상태에 처했다.
2010년 12월 16일 출소한 후, 후 씨는 뇌혈전 증상이 나타나 여러 차례 혼절했으며, 푸순 중심병원에서 뇌 CT를 검사하여 다발성 뇌경색 증상과 뇌위축 증상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상세한 상황은 밍후이왕 보도 ‘진상 자료로 제작해, 후궈젠 씨의 중국공산당에 10년 형의 억울한 옥살이 박해당해’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거듭 4년 형 불법 판결 당해, 박해로 사망하다
출소한 후, 후궈젠 씨는 계속 파룬궁을 수련했다. 몸은 매우 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강건해져, 일하고 돈을 벌어 가정의 생활을 짊어졌다. 집안의 곤궁함은 차츰 완화돼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후궈젠 씨는 그를 박해한 경찰과 죄수를 원망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에 중독된 많은 사람을 위해, 장쩌민 범죄 집단에 이용당해 사악한 짓에 가담한 사람들을 가엾게 여겼고, 그들 미래의 운명을 위해 걱정했으며 여전히 박해당하고 있는 파룬궁수련생 및 수난당한 가정을 위해 괴로워했다. 후궈젠 씨는 스티커, 전단 등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파룬궁 박해를 멈추도록 호소했다. 이것은 본래 한 국민이 타인을 위해 책임지고 사회를 위해 책임지는 고상한 이념으로, 헌법이 부여해 준 권리를 행사해 대선 천거를 한 것이다!
2015년 7월 7일, 푸순시 둥저우구(東洲區) 아진거우(阿金溝) 파출소 경찰은 오히려 후궈젠 씨를 또 납치했고, 아울러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진행했다. 납치에 관여한 주요 책임자는 경찰 샤젠잉(夏建英)이다. 이튿날, 후궈젠 씨를 푸순시 제1구치소로 납치해 불법 감금했다. 게다가 검찰원으로 보내 모함을 도모했다. 검찰원 공소인 왕위안(王媛), 저우쯔치(周子琪)는 사건을 받은 후, 법에 따라 조사 확인하지 않고 직접 후궈젠 씨를 모함한 서류가 법원에 이송됐다.
단위(單位)
후궈젠 씨의 가족은 차례로 둥저우 파출소, 둥저우 공안분국, 난거우(南溝)구치소, 둥저우 검찰원, 둥저우 법원 다섯 곳의 주요 직위를 찾아가 석방을 요구했으나 다섯 곳의 직위자들은 모두 핑계를 대고 거절했고, 서로 입씨름하며 모두 자신의 부서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후 씨는 난거우 구치소에 11개월 불법 형사 구류 당했다. 그 기간, 후궈젠 는 푸순 난거우 구치소 19호 감방에 감금돼[감방의 교도원은 리둬(李鐸)이며, 전화번호는 0413-6444351550493187057078721이다] 식사를 못 하게 하고, 잠자는 것을 허락지 않았으며, 목을 조르는 식의 학대 등 여러 가지 학대를 당했다.
2015년 9월 25일 오전, 푸순시 둥저우구 법원 및 둥저우 검찰원의 판사는 난거우 구치소 안의 간판을 건 법정으로 가서 후궈젠 씨에 대해 불법 법정 심문을 진행했다. 후궈젠 씨 및 가족이 선임한 변호사는 법정에서 공소인(왕위안, 저우쯔치)이 후궈젠에 대해 고발한 증거 부족과 논리상에서 황당한 곳을 지적했다. 판사 류후이(劉暉)는 법정에서 판결을 선포하지 않았다.
2015년 12월 9일, 가족은 단지 후궈젠 씨가 불법적으로 4년 형의 억울한 재판을 당했음을 알게 됐다. 가족이 항소를 제기하자, 판사는 가족에게 반드시 후궈젠 씨 자신이 판결한 날부터 열흘 이내에 항소 요구서를 송달해야만 된다고 알려줬고, 변호사가 법원에 후궈젠 씨가 서명하고 지장 누른 고소장을 직접 건네야 했다.
가족은 푸순에서 10여 개의 변호사 사무소를 찾았으나, 오히려 감히 사건을 받는 변호사가 없었으며, 얻은 대답은 전부 푸순시 사법국에서 푸순시 모든 변호사 사무소에 파룬궁 사건을 변호사가 개입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변호사 자격증을 회수해 취소한다는 구두 통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가족은 다시는 후궈젠 씨가 어느 감옥에 배정됐다는 어떠한 전화도 받지 못했다.
가족이 상소하려 해도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었다. 사법국에선 푸순 변호사에 대해 파룬궁 사건 받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고 위협한 적이 있고, 가족에게 후궈젠 씨가 어느 감옥에 감금됐는지 통지하지 않았다. 가족은 걱정되고 몹시 조급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결과가 없었으며, 온갖 고초를 다 겪었다. 6개월이 넘어 즉, 2016년 5월 18일에야 후궈젠 씨는 원래 선양(瀋陽) 감옥으로 갔으나 지금은 번시 감옥으로 납치돼 있음을 알아냈다.
후 씨 아내가 5월 23일(면회일)이 되어 번시 감옥으로 남편을 면회하러 갔을 때, 남편은 그야말로 딴사람이었다. 원래 몸무게가 90여 kg였던 그가 이미 50kg도 되지 않았으며, 걷는 것도 힘들어 이미 완전히 뇌혈전 상태로 돼있었다. 그에게 어떻게 이렇게 변했는지를 묻자, 후궈젠 씨는 푸순 난거우 구치소에서 죄수에게 시달림 당했고, 밥 먹고 잠자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고 말했고 또 목을 손짓하며, 목을 졸랐다고 했다…… 그는 말을 계속하지 못했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뒤이어 5월 26일, 일을 관리하는 죄수 왕싱강(王興剛), 위안더자(袁得佳), 이창룽(於長龍), 자오커(兆科), 가오젠(高健) 등은 후궈젠 씨를 세면장으로 끌어다가 옷을 모두 벗기고, 그의 머리 위에 지속해 냉수를 끼얹었으며, 후궈젠 씨는 추워 온몸을 떨었다. 그날 저녁, 후궈젠 씨는 땅바닥에 거꾸러져 인사불성이 돼 번시 중심병원으로 보내 응급처치를 받았고, 뇌 절개 수술해 혈종을 제거했다.
감옥에 들어온 지 겨우 22일 만에 박해로 식물인간이 됐다. 번시 중심병원에 8개월 동안 입원한 후, 번시 감옥에선 거액의 의료비용 감당을 원하지 않아, 후궈젠 씨를 감옥 안의 병원으로 끌고 돌아와 가족에게, 지병이 도졌는데 감옥 측에서 때맞춰 발견하고 치료해줘 몇십만 위안을 썼다고 속여 말했고, 이것으로 박해 진상을 덮어 감췄다.
2018년 5월 14일 아침 7시 30분경, 번시감옥에서 후 씨의 아내에게 전화해, 후궈젠 씨의 몸에 위독한 증상이 나타났다며, 후 씨의 아내에게 즉시 번시시 중심병원을 한번 오라고 말했다. 후 씨 아내가 번시병원으로 간 후, 후궈젠 씨는 이미 간호실에 있었고 번시감옥의 10여 명 경찰이 현장에 있었다. 함께 간 친구가 휴대한 작은 녹화 설비는 경찰에게 강탈당했다. 후궈젠 씨는 베이징 시간 2018년 5월 15일 이른 아침 12시경에 번시 중심병원에서 사망했다!
사건에 연루된 주요 책임 단위와 책임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8년 5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16/3666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