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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시 제2구치소에서 옷을 발가벗겨 인격을 모독한 검사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일반인은 만약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하얼빈시(哈爾濱市) 제2구치소 안의 생활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그런 형의 심신의 고통과 시달림은 감금당한 사람을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했다. 매일 간수에게 밤낮으로 감시당해 학대받으며 생활했다.

제2여자구치소(2소라고 약칭함)에 감금당한 모든 사람은, 형사범이든 파룬궁수련생이든 막론하고 먼저 옌마감(嚴碼監) 감옥문 안에서 인격 모욕을 당했다. 여경과 수십 명의 죄수 앞에서 불침번 죄수에 의해 강제로 전신이 벗겨진 채,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고 몸수색을 당했다. 아래턱은 다른 사람에게 힘껏 잡혀 입을 열어 검사받았고, 두 다리를 벌리는 동시에 두 팔은 2명의 죄수에게 잡혀 강제로 제자리에서 세 차례나 뛰어오르게해 대, 소변 부위에 물건을 끼웠는지를 검사했다. 이어서 팀장(간수)은 그 사람의 사건 상황과 관련된 집이거나 친구의 전화를 심문하여 기록했다. 모든 감방 벽 위쪽에는 두 개의 CCTV가 설치돼 있어 수시로 기록해 감시할 수 있게 했다.

소식에 따르면, 한 경찰은 모든 옷(브래지어, 양말, 팬티를 포함)을, 전부 납치한 파출소로 반송해 가족에게 가져가도록 했다. 가족들이 옷을 구치소로 보내는 것이 늦어질 경우에는 수감자들의 도움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때로는 지퍼가 잘린 겉옷을 입고 속내의가 없이 가슴이 열려 있는 옷을 입을 수밖에 없는데, 수감실을 감시하는 사람과 구치소의 남녀 간수들마저 모두 볼 수 있었다.

더욱 심한 것은, 변호사가 면회하고 업무 담당 경찰이 이른바 ‘심문’을 진행한 후, 감방에서 걸어 나와 돌아오기만 하면, 간수들은 곧 감옥 교도관의 의도에 따라 파룬궁수련생의 모든 옷을 벗겨 그녀들을 땅 위에서 껑충 뛰게 하며 모욕했다.

하얼빈시 제2구치소에선 수감자들에게 매일 아침 5시 20분에 일어나게 했다. 옌마감에선 새벽 4시가 넘으면 소리를 질러 대며 일어나게 했고, 한 사람씩 재빨리 찬물 세안을 시켰고, 얼굴을 씻고 비누 사용을 허락지 않았는데, 사람이 많아 비누를 칠하면 시간을 낭비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가족이 영치한 돈으로 생필품을 산 사람은 입을 닫고 이를 닦도록 강요했다(이렇게 하면 소리가 작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제때에 영치금을 넣어주지못한 사람은 14,5일 동안 이를못 닦고, 머리를 감지 못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1개월 혹은 더욱 긴 시간 동안 발을 씻지 못했고, 잠잘 때도 양말을 신고 잤다.

옌마감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꼿꼿하게 앉아 있는 것을 강요받았다. 유일하게 화장실로 가면 일어설 수 있었는데, 강제로 허리를 굽혀 걷게 했고, 매일 사람이 정상적으로 화장실 가는 요구마저 5~6차로 엄격한 제한을 받았으며, 대변은 아침에 단 한 번만 허락하는데 2분의 시간만 주어져 초과할 경우 강제로 끌려 나왔으며, 기타 시간은 화장실 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수감자들은 보름에서 길게는 1개월 동안 대변을 못 보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며, 소변을 참는 횟수는 셀 수조차 없다. 매일 소변 참는 횟수가 많아져 아랫배가 부어오르고 아팠으며, 얼굴색이 창백해져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러했을지라도 간수는 매일 여전히 수감자들에게 세끼 밥을 먹도록 핍박했고, 먹지 않으면 단식한다고 수감자를 핍박했으며. 3일 동안 먹지 않으면 감옥 경찰에게 보고해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고 서로 말함을 허락지 않았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간수, 악당들(즉 간수, 밥을 담당하는 사람, 야간 초소를 지키는 죄수)에게 끊임없이 모욕적인 욕설, 체벌, 구타를 당했다. 저녁에 잠잘 때는 반듯하게 눕는 것을 허락지 않았고, 몸을 뒤척임도 허락지 않아 한밤중에 통일적으로 한 번씩 몸을 조금 뒤척였다. 수감자들은 한 사람씩 측면으로 바짝 붙어 누워 머리와 발이 닿게 해 서로 비좁아 비집고 올라가지 못하게 했으며, 갈치처럼 강제로 서 있게 다리를 곧게 펴고 옆으로 잠자게 했다. 이런 자세로 누워 있으면, 두 다리와 양쪽 광대뼈가 눌려 밤새 고문당하는 것처럼 아파, 도통 잠잘 수 없었다.

이렇게 매일 24시간 동안 반복해 수련생을 괴롭혔다. 구치소 소장 류팡(劉芳, 여)은 매우 위선적이었다. 그녀는 늘 “우리 이곳은 창고이므로, 보관하는 작용밖에 하지 않습니다. 때리지도 욕하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파룬궁수련생은 일반적으로 옌마감에서 일정 시간을 감금당한 후, 또 다른 감방으로 배치돼 갔다. 다른 감방은 옌마감에 비해 좀 느슨했으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감시는 일반적인 수감 인원과 비교하면 많이 엄혹했다. 한 감방에 만약 2명 이상의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감금하면, 파룬궁수련생들 사이에 서로 말하고 도와줌을 허락지 않았다. 만약 서로 말하거나 물건을 주었다는 신고를 당하면 곧 세워두는 고문을 당했고, 며칠 동안 당직에 서는 처벌을 받았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일하고, 쓰레기를 내가고, 바닥을 닦고, 화장실 청소하고, 판자를 닦았으며, 간수와 밥을 관할하는 사람, 밤에 초소를 집행하는 죄수가 끊임없이 호출해 파룬궁수련생을 괴롭혔다. 하루 동안 당직을 서면 지쳐서 기진맥진했다.

하얼빈시 제2구치소의 모든 감방 난간 창구 주변에는 모두 의견 신고함이 놓여있었는데, 그것은 단지 장식품일 뿐 외부에서 온 검사관에게 의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감방은 간수가 펜을 가진 것을 제외하고 다른 수감자들에게는 펜과 종이를 주지 않았다. 만약 수련생이 무엇을 반영하려면 반드시 당사자에게 먼저 보고를 통해 간수 교도관이 감옥 경찰에게 보고해야 했다. 그래야만 일을 반영할 기회가 있었다. 구치소 주재 검찰원 업무 직원[주검(駐檢)이라고 약칭함]은 스쳐 지나다가 어떤 때는 간수와 몇 마디 말을 나눴다. 다른 수감자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감방 규정에는, 수감자들이 함부로 감옥 창구 앞에 접근해 사람과 말하고 상황을 반영함을 허락지 않았다. 매일 먹는 음식은 배춧국을 먹었고, 가끔 뭇국을 먹었다. 만약 어느 날 참관하여 검사하는 사람이 오면 반찬은 다소 개선됐지만, 그것은 검사를 대응하기 위한 것이고, 검사를 끝난 후엔 여전히 배춧국이었다.

2017년 11월경, 하얼빈시 제2구치소에선 ‘헤이룽장 반×교 교육전향기지’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구리 간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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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발표: 2018년 5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3/3648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