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안산시(鞍山市) 파룬궁수련자 쑨민(孫敏)은 본래 우수한 교사이다. 중공(중국공산당)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 중에서 과거에 납치, 세뇌, 노동교양, 판결 등 박해당한 적이 있다. 2016년 6월 또다시 납치돼 징역 7년형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는데, 결국 2018년 3월 8일 랴오닝성(遼寧省)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당시 나이는 겨우 50세였다. 쑨민은 생전에 쩐·싼·런(眞,善,忍)에 대한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공 감옥에서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각종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했다.
3월 8일 오전 10시 20분쯤, 감옥 측에서 전화를 걸어왔는데, 쑨민이 아침밥을 먹은 후 쓰러져 지금 감옥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쑨민의 부친과 여동생의 남편은 즉시 차를 몰고 서둘러 감옥 병원으로 갔다. 도중에 감옥 측에서 걸려온 전화를 또 받았는데, 쑨민이 이미 랴오닝성 감옥관리국 총병원(總醫院)으로 옮겨졌다며 쑨민의 부친을 직접 총병원으로 가게 하라고 말했다.
그날 낮 12시 50분, 쑨민의 부친이 급히 랴오닝성 감옥관리국 총병원에 갔는데, 쑨민은 그때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쑨민의 부친은 쑨민의 시신을 보고 딸의 손과 얼굴을 어루만졌는데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총병원의 주치의는, 쑨민이 이송돼 왔을 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감옥 병원의 의사 두 명은 응급처치 과정과 시신이 사망한 원인을 진술했다. 쑨민의 부친은 쑨민의 시신에 대해 해부를 진행해 사망 진상을 조사해내겠다고 문제를 제기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쑨민의 시신은 현재 빈소에 안치돼 있다.
한 우수 교사가 박해로 서거하다
쑨민은 중학교에서 근무했는데, 직장 내에서 업무 핵심인재로, 철학 학사학위와 성(省)급 과학연구항목, 국가급 과학연구 논문의 소지자였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그녀는 과학연구항목, 논문, 교수안, 코스웨어(교육용 소프트웨어) 등 10여 항목에서 1등 우수성과상, 1등상 등 특별한 영예를 받았으며, 재능과 덕을 함께 갖춘 우수한 중학교 교사였다.
이처럼 우수했던 쑨민은, 단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고, 쩐·싼·런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켰다는 이유만으로, 거듭 박해당했다.
2016년 6월 28일, 쑨민은 랴오닝성 610 불법 조직의 통일적인 지휘를 받은 안산시 리산구(立山區) 공안분국 국가보안경찰에 의하여 납치됐다. 게다가 납치 현장에서 6만 위안(한화 약 1,017만 원)의 현금을 강탈했다.
고문 재연:지환(地環, 쇠고리로 결박하여 땅에 묶어놓기)
안산시 여자구치소에서 불법 감금당한 기간, 쑨민은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손발이 모두 지환에 채워졌다. 신체 활동이 제한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몸을 곧게 펼 수도 없었고 꼬박 하루 동안 둥글게 굽히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극히 고통스러웠다. 같은 감방의 리난(李楠), 장후이리(張慧麗), 쑹푸리(宋福麗) 등 수감자들은, 교도관 왕훙(王宏)의 교사를 받아 쑨민에게 강제 주입하는 음식물(특별히 짠 옥수수가루로 쓴 죽) 중에 똥, 오줌, 그리고 독극물을 넣었다. 죄수는 그녀를 구타하고 꼬집었다. 이로 인해 쑨민은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 옷 위에는 전부 핏자국과 대변이었다. 한번은 당직을 서는 경찰이 창구를 지날 때, 쑨민과 같은 감방의 수감자가 마침 쑨민을 구타하는 것을 보았는데, 놀랍게도 “좀 작은 폭으로 움직이시오.”라고 말했다. 쑨민은 시달림을 당해 몸무게가 35~40kg밖에 되지 않았다.
2016년 7월 27일경, 쑨민의 변호사는 구치소에 가서 쑨민을 접견하였는데, 그녀의 팔, 다리 위의 여러 곳이 꼬집혀 시퍼렇게 멍든 상처의 흔적을 발견했다. 변호사는 구치소장 자오훙보(趙洪波)를 찾아갔다. 자오훙보는 “그녀가 단식했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녀에게 음식물을 주입했습니다. 그녀 몸이 시퍼렇게 멍든 것은 그녀의 혈소판 수치가 낮아 쉽게 시퍼렇게 멍든 상태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단식한 사람에 대해 진정하게 인도주의적인 구조를 진행하는 데에 통용되는 방식은 오로지 두 가지뿐이다. 한 가지는 링거의 힘을 빌려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인데, 이것으로 단식한 자의 생명을 유지한다.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음식물 주입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음식물 주입에 사용하는 기구, 주입하는 음식물에는 모두 엄격한 표준이 있다. 음식물을 주입하는 사람은 반드시 간호사 혹은 의사여야 한다. 의료진은 엄격한 기술조작 규범에 따라 음식물을 주입할 때, 먼저 코 호스에 약간의 매끄러운 것을 발라야 한다. 호스를 꽂은 후에는 또 위관을 위 속에 꽂아 넣었는지 아니면 기관에 꽂아 넣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자오훙보 소장은 똥을 주입하고 오줌을 주입하며, 매일 도시락으로 5개 분량이나 되는 음식물을 주입해놓고도, 놀랍게도 뻔뻔하게 ‘구조’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끈으로 묶기, 폭력적인 구타, 지환에 채우기, 세수를 허락지 않기, 화장실 감을 허락하지 않기, 잠자는 것을 허락지 않기 등 학대를 진행했는데, 이것이 사람을 구조하는 것인가? 이것은 분명히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구조가 필요한 것은 바로 양심과 영혼을 잃은 이 경찰들이다. 파룬궁수련자가 이 사람들에 대해 권고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구제이다. 자오훙보 소장은, 파룬궁수련자들이 자오훙보의 범죄 행위를 게시하여 붙인 것이 그녀의 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말했다. 아니, 그녀는 잘못 말했다. 바로 그녀의 범죄 행위 그 자체가 그녀의 아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자오훙보는 자기 아들을 아낀다. 그 선량한 파룬궁수련자들의 부모들 역시 언제 자신의 자녀를 아끼지 않은 적이 있는가? 오히려 무슨 이유로 당신에 의해, 한 범죄 집단 중의 일원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가? 멈추라, 당신의 아들을 위해 좋은 어머니가 되어라.
자오훙보는 나중에 교도관 왕훙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왕훙(역주: 앞서 다른 수감자들을 교사하여 쑨민을 괴롭힌 교도관)은 악행을 저지른 죄수에게 “당신은 또 나에게 괜히 문제를 일으킵니까.”라고 대충 한마디만 하고 넘어갔다. 이후 변호사든지 아니면 사건처리 기관에서 와서 쑨민을 불러내든지를 막론하고, 당직 경찰은 모두 궈지훙(郭繼紅) 소장에게 보고해 올려 비준을 거친 후에야 쑨민을 불러내 가는 것을 허락했다. 만약 변호사가 와서 쑨민을 면회하면, 왕훙은 직접 현장에서 감시를 진행했다. 게다가 쑨민의 말을 가로채고 대답해, 쑨민이 말을 몇 마디 할 수 없게 했다.
2016년 8월 중순, 쑨민은 단식을 멈추고 밥을 먹겠다는 요구를 제기했으나 교도관 왕훙은 놀랍게도 여러 차례 쑨민의 합리적인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고도 염치없이 사람들 앞에서 “쑨민이 밥을 먹겠다고 했는데, 나는 그녀가 먹는 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유학 경험이 있는 그녀의 자녀가 만약 모친의 이러한 작태를 보았다면 어떻게 느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2017년 7월 8일, 쑨민은 안산시 리산구(立山區) 법원 판사 왕이한(王藝涵)에 의해 징역 7년 형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다. 불법 법정 심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왕이한은 여러 차례 공공연히 위법한 재판 진행으로 변호사의 변호를 가로막았다. 쑨민은 상소를 제기했다. 안산시 중급인민법원 판사 류원나(劉文娜)는 8월 28일 억울한 판결을 유지했다.
2017년 10월 10일, 쑨민은 랴오닝성 여자감옥 제12 수감구역으로 옮겨져 더욱 가중된 박해를 당했다.
12수감구역을 ‘집중훈련 교정치료 수감구역’이라고도 부르는데, 2010년 증가한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수감구역으로, ‘소굴 중의 소굴’이라고 불린다. 12수감구역의 부구역장 천숴(陳碩)는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경찰이다. 이 사람의 악행에 대해서는 인터넷상에 여러 편의 보도가 있다.
12수감구역에 관한 밍후이왕 2018년 1월 26일자 문장 “랴오닝성 여자감옥 및 ‘교정치료수감구역’의 죄악” 중에는 아래와 같은 한 단락의 묘사가 있다. “감방 안에는 단지 침대 하나가 있었을 뿐, 침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판자 위에서 잠잘 수 있었을 뿐이고, 침구나 이불은 없었다. 1년 4계절이 모두 이러했다. 전향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자는 모두 이러한 잔혹한 학대를 당했다. 자신이 가져온 물건, 생활용품은 모두 강제로 박탈당했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감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화장실에 가도 화장지를 주지 않았다. 세수하는 것도 허락지 않았다. 얼굴 씻는 것을 허락지 않았고, 이 닦는 것을 허락지 않았으며, 속내의 갈아입음을 허락지 않음을 포함해 아무것도 갈아입지 못하게 했다. 또 밥을 배불리 먹지 못하게 하여 단지 약간만 먹게 했을 뿐이다. 죄수는 이와 같은 제한이 없었다. 매일 또 세워두는 고문, 쭈그려 앉기 고문을 당해야 했다. 그들은 파룬궁수련자를 구타하고 욕설을 퍼부었으며, 전기봉으로 전기 충격을 가하고 독방에 가뒀고, 또 강제로 파룬궁을 모독한 녹화 영상을 보게 하여 세뇌를 진행했다…….”
쑨민은 12수감구역으로 옮겨간 지 1개월도 되지 않아 박해로 여러 가지 질병이 나타났다. 교도관은 쑨민이 매 시각 생명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뜻밖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며 쑨민의 부친에게 전화해 쑨민의 병을 치료해 주겠다면서 돈을 요구했는데, 쑨민의 부친은 “당신은 사람을 석방하시오. 내가 그녀를 치료해 주겠습니다.”라고 단호히 거절했다. 쑨민의 부친은 쑨민의 면회를 요구했는데, 12수감구역의 교도관 후양(胡陽)은 마침 대문을 수리한다고 말하며 면회할 수 없다고 했다.
2018년 2월 7일, 쑨민은 면회를 허락받았다. 당시 쑨민은 이미 학대로 걸을 수 없게 되어 다른 사람에게 업혀 나와 면회했다.
면회실에서는 면회의 대화내용을 이상하리만큼 아주 심각하게 감시하고 통제했다. 교도관이 민감한 대화내용이라고 여기기만 하면 곧바로 설비를 이용해 쌍방의 대화 목소리 전달을 끊었다. 이 때문에 쑨민은 그녀가 감옥 안에서 당한 비극적인 일들을 부친에게 알려줄 방법이 없었다.
2018년 3월 8일, 쑨민은 박해로 사망했다. 이번에 감금당한 1년 8개월 중 부친과 그의 사랑하는 딸이 유일하게 한 번 면회하고 나서 1개월 후였다. 그 누구도 이렇게 헤어진 것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82세의 노인에 대해 말하자면, 어떠한 아픔과 충격이었겠는가. 노인은 매우 굳세고 또 매우 침착했다. 자신의 노력으로써 딸을 위해 공정한 평가를 받기를 희망했다. 옛날에 찍은 딸의 사진을 펼쳐보았을 때, 노인의 안색은 어두워졌고 오랫동안 침묵했는데, 보는 사람의 마음을 특별히 아프게 했다.
쑨민은 50세에 가까웠지만, 30여 세밖에 보이지 않았다. 늘 미소를 띤 귀여운 모습이었고, 늘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었다. 이렇게 총명하고 선량한 여성은 도리어 이 잔인한 ‘법 집행자’의 범죄 때문에 바로 갑자기 그녀의 부친, 우리들의 생명 중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사람은 떠나갔으나 생전의 웃는 얼굴과 목소리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여전히 쑨민이 박해당해 사망하기 전에 12수감구역에 있었던 약 5개월 동안 무엇을 경험했는지를 알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인터넷상 보도에 비추어 우리는 또 그녀가 당한 시달림과, 이를 매분 매초 극한 중에서 견뎌냈음을 추측하기가 어렵지 않다. 쑨민이 당한 구체적인 박해에 연루된 참여자들에 대해 우리는 또 반드시 추적할 것이다. 줄곧 진상이 밝혀져 만천하에 드러날 때까지.
생전에 여러 차례 심각한 박해를 당하다
쑨민은 생전에 여러 차례 심각한 박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
2000년, 쑨민과 몇 명의 파룬궁수련자들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돌아온 후 9월 22일 갑자기 학교에서 경찰에게 납치돼, 안산시 구치소에 갇혔다. 일주일 후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2000년 10월 10일, 쑨민은 학교에서 또 안산시 톄둥구(鐵東區) 둥창뎬(東長甸) 파출소의 경찰에게 납치돼 안산시 교양원으로 보내졌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악명이 극히 높은 마싼자(馬三家) 교양원으로 옮겨졌는데, 1년 6개월 동안 박해당했다. 그 기간 그녀는 각종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다. 예를 들면 장시간 동안 세워두기 고문, 쭈그려 앉기 고문, 비행기 몰기(開飛機) 고문을 당했고, 장시간 동안 수면 박탈, 세수를 허락지 않기, 화장실 사용을 허락지 않기 등 고문당했다. 버드나무 가지로 후려치기, 몽둥이로 폭력적인 구타 가하기, 전기 충격 가하기, 바늘로 찌르기 고문을 당했다. 또한, 손을 등 뒤로 묶은 다음 머리, 발을 한데 눌러놓고 다시 몸을 눌러서 평평하게 만들기 고문을 당했으며, 들었다가 시멘트 바닥 위에 던지기, 머리칼을 잡고 벽 위에 부딪히기 고문을 당해 두개골은 두 곳이 갈라졌고 뒷머리는 구타로 한 덩이가 부서졌으나 병원치료를 받지 못했다.
2002년 3월 21일, 쑨민은 마싼자 노동교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에 출근한 지 며칠 후, 집에서 학교 교사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녀에게 이튿날 시내에서 조직한 세뇌반으로 가서 도착 보고를 하도록 했다. 이번 세뇌반은 안산시 610 사무실이 불법적으로 진행한,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또 한 차례 박해였다. 중공의 세뇌박해를 피하고자, 쑨민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친인, 사랑하는 직업과 좋아하는 학생들을 떠나 15년 동안의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유랑생활하는 기간(구체적인 기간은 분명치 않음)에 랴오양시에서 현지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 후 랴오양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는데, 쑨민은 단식으로써 항의했다. 보름 후, 정념으로 랴오양 구치소에서 걸어 나왔다.
2012년 9월, 쑨민은 랴오양시에서 또다시 납치됐다. 랴오양 구치소에서 지환에 채우기 고문, 공갈 협박, 학대적인 음식물 주입, 독극물 주사 등 박해당했다. 독극물을 주사 당한 후, 위장이 괴롭고, 눈으로 물건을 보면 변색돼 보이고 똑똑히 보이지 않는 증상, 혼혼하여 졸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가까스로 2개월 만에 다시 익숙한 사람을 볼 수 있었지만 뜻밖에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단식으로 항의한 후 생명이 위험해진 쑨민은 보석으로 풀려났다.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피하고자 어쩔 수 없이 계속 유랑생활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많은 심각한 박해를 거친 쑨민의 마음속 선량함은 오히려 닳아 없어지지 않았다. 쑨민은 생전에 박해당한 것에 관해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일체를 진술함은, 내가 자신이 당한 고통을 느끼어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직무에 충성해야 하고, 가정에서 역할과 책임을 다했으며 사회에서 공익을 수호하고 법을 지켰다. 유일하게 같지 않은 것은 우리는 파룬궁을 수련해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룬궁은 얼마나 많은 질병과 신체장애인의 몸을 구했으며, 얼마나 많은 이혼한 가정을 합치게 했는가! 우리가 이유 없이 박해당할 때, 우리는 개인의 득과 실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번 박해가 국가와 민족에게 초래한 심각하고 중대한 재난을 생각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직업을 포기하고 육친의 정을 희생하며 자신의 사업과 장래를 포기하고 정부에 의견을 전달하러 갔으며, 진상을 알려 거짓말에 기만당하고 해독을 입은 중생을 구하고 있다.
희망컨대 우리가 바친 것이 당신들의 먼지로 꽉 찬 마음을 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잠자는 양심을 각성시켜 더욱 많은 세인이 구도되게 하여, 아름다운 미래, 행복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여린 몸집이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연약하지 않았다. 잔혹한 박해를 당하는 매초 고통의 시달림 속에서도 오히려 초심을 바꾸지 않았는데, 이것은 어떠한 흉금인가?! 악행을 저지른 자에 대해 필자는 이번에 엄정한 태도로 통고해 결말을 보고 싶지는 않다. 희망하건대, 쑨민—당신들에게 박해당해 사망한 선량한 사망자의 위대한 도량이 당신들의 마음속 깊이 묻힌 양심을 각성시켜 선량한 민중에 대한 박해를 멈추며,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들이 미래에 진입할 기회가 있기를 희망한다.
관련 박해 기관과 관련자들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8년 3월 1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18/3630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