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랴오닝 보도) 겨우 46세인 파룬궁수련인 왕구이링(王桂玲)은 2017년 11월에 랴오닝성(遼寧省) 잉커우시(營口市) 보위취안구(鱍魚圈區) 법원에 의해 불법 법정 심문을 받았는데, 그날 박해로 사망했다. 상황은 현재까지 분명하지 않다.
보위취안 법원에서는 몹시 긴장하며 소식을 엄밀하게 봉쇄했다. 게다가 모든 법원 직원에게 이 일을 알리지 않고 의논하지 않으며, 또 두 사람이 귀에 입을 대고 소곤거리지 못한다는 보증서를 쓰도록 요구했고, 결과는 자신이 책임지도록 했다. 무단장시(牡丹江市) 링커우현(林口縣)에 있는 왕구이링의 고향집은 지금도 감시를 받고 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그녀의 집으로 놀러 갔는데, 바로 뒤, 집에 들어와 누가 왔는지를 문의하는 경찰이 있었다.
왕구이링은 원래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린커우현 임업국 직공병원 내과 간호사였다. 그녀는 임업국 직공 병원 옆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는데, 사람됨이 너그럽고 마음씨가 선량했다. 왕구이링은 파룬궁수련을 견지해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도록 자신에게 요구했다. 중공(중국공산당)의 파룬궁에 대한 18년 동안의 박해 중에서, 여러 차례 납치 박해를 당했고 경찰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했으며, 2년형 불법 노동교양처분,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2016년에 출소했는데, 그 후 유랑생활을 하다가 전전하여 랴오닝성 잉커우시로 왔다.
2017년 5월 19일 저녁, 왕구이링은 보위취안 훠산(火山) 거리와 훙치로(紅旗路) 교차구에서 훙치 파출소 순찰차에 의해 납치됐다. 소식에 따르면 당시 또 파룬궁수련인 왕핑광(王平廣)이 납치됐다고 한다. 왕핑광은 보위취안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6월 2일, 78세인 왕핑광의 노모와 80여 세인 아버지, 여동생은 함께 먼 길임에도 불구하고 헤이룽장 치치하얼(齊齊哈爾)에서 잉커우시 보위취안 국가보안대대로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 리샹쥔(李向軍)은 왕핑광의 여동생이 휴대폰을 기록했다고 의심하며 다가가서 휴대폰을 빼앗았다. 그리고 손으로 왕핑광의 78세인 노모의 이마를 쥐어박았다.
11월 10일 오전 10시, 보위취안 법원에서는 왕구이링, 왕핑광 두 명의 파룬궁수련인에 대해 불법 개정을 진행했다. 당시 비밀리에 개정을 진행하며 누구에게도 통지하지 않았다. 어떤 친척과 친구는 알게 된 후에도 법정에 들어갈 수 없었다. 왕핑광의 가족은 위층 법정 밖에서 11시쯤 개정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두 파룬궁수련인이 나온 것을 보고 그와 몇 마디 말을 했다. 왕구이링이 미소를 짓고 머리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는 것을 보았다. 당시 그들 두 사람의 상태는 모두 매우 좋아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둘째 날에 어떤 사람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법원에 갇힌 왕구이링이 사망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 보위취안 난산 장의사의 시신을 받은 표에 의하면, 그날 11월 10일 오전 1시 10분에 장의사에서 차를 내어 법원으로 가서 시신을 받았다고 했다. 경찰 측에서는 소식을 엄밀하게 봉쇄했다.
왕구이링이 예전에 당한 박해
2006년 4월 13일, 왕구이링은 병원에서 일할 때, 국가보안대대 왕칭허(王青和), 왕춘밍(王純明), 린커우현 구청진(古城鎮) 파출소 기사에게 납치되었다. 왕구이링은 자치제(賈啟傑), 왕춘밍(王純明) 등에게 욕설을 듣고, 대략 3시간 동안 구타를 당했다. 당시 왕춘밍은 손으로 왕구이링의 머리카락을 잡고 땅에 눌러 넘어뜨리고, 구두로 왕구이링의 머리, 얼굴 부위를 사납게 걷어찼다. 왕구이링의 머리카락은 뽑혔으며, 얼굴은 부어올랐다. 왼쪽 얼굴 부위의 피부는 마찰로 부상을 입었다. 악독한 경찰은 다 걷어찬 후, 또 땅위에서 왕구이링을 잡아당겨 손으로 따귀를 사납게 때렸다. 자치제(여)도 그들과 함께 윤번으로 왕구이링을 구타했다. 그들은 구타하면서 악담으로 욕설을 퍼부었는데 극히 저질적이었다. 악독한 경찰은 또 사사로이 그녀의 전화 연락처를 조사해 그녀를 모함했으며, 왕구이링에 대해 2년 형의 법 노동교양처분을 내렸다. 그녀는 극히 암담한 하얼빈 마약 중독자 재활원에서 박해를 당했다.
2013년 3월 11일 점심, 린커우 임업국 파출소 부소장 마칭위안(馬青元)은 경찰 허우쿤(侯鯤), 리정(李征)을 거느리고 왕구이링의 집안에 들이닥쳐 파룬궁 서적 3권을 강탈했다. 대략 10여 분 후, 공안국 국가보안 대장 쑨중민(孫忠民)은 사람을 거느리고 그녀의 집으로 가서 속여 문을 열려 하다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밤중에 왕구이링은 핍박에 못 이겨 집을 떠났다. 이튿날에 직장 책임자에게 며칠 동안은 출근할 수 없다고 전화로 보고했는데, 원장 가오펑(高峰)에게 속아 병원에 출근했다. 3월 14일, 원장은 그녀를 동반해 파출소에 한 번 다녀오자고 말했다. 그러나 왕구이링은 속았고 국가보안대대에 가서 경찰에게 납치됐다.
왕구이링은 린커우 임업국 하급 법원에 의해 징역 4년형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고, 2013년 10월 9일에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그 기간에 직장에서는 이유 없이 왕구이링과의 근로계약을 해지했다. 왕구이링은 2016년 6월 15일에 하얼빈 여자감옥에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경찰은 또 그녀의 신분증을 압수하고 돌려주지 않았다.
왕구이링은 2016년 8월에 자신이 이번에 납치, 판결 당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나는 왕구이링이라고 부르며,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린커우현 임업국 직공 병원 내과 간호사이다. 2013년 3월 11일 점심, 린커우 임업국 파출소 부소장 마칭위안은 경찰 허우쿤, 리정을 거느리고 집안에 들이닥쳐 파룬궁 서적 3권을 강탈했다. 뒤이어 공안국으로 가서 국가보안대장 쑨중민에게 보고했다. 약 10분 후, 국가보안대장 쑨중민은 나를 집으로 끌고 갔는데, 또 한 여경을 데리고 갔다. 단지 그 여경이 고의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꾸며 “왕 이모님, 왕 이모님, 문을 여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대답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본 쑨중민은 “왕구이링!”라고 소리 질렀다. 10여 분 후, 그들은 인기척이 없는 것을 보고 곧 남자 경찰 한 사람을 남겨 이웃집으로 피해서 나를 감시했다. 이 경찰은 저녁에 날이 어두워져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밥을 먹은 후 경찰이 또 왔다. 게다가 아주 환한 공 같은 물건을 들고 이웃집 문 앞에 기대어 우리 집을 향해 이리저리 찍으며 들볶다가 떠났다.
나는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집을 떠나 외지로 갔다. 이튿날, 나는 외지에서 병원 원장 가오펑에게 전화를 걸어, 그에게 휴가를 신청했지만, 가오펑은 인격적으로 나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했다. 그래서 3월 14일 아침, 나는 평소대로 출근했는데, 가오펑은 급히 나를 사무실로 불러서 말했다. “어쨌든 파출소의 사람이 당신의 집에서 파룬궁 서적을 발견했으니, 그들은 단지 상황을 파악할 뿐입니다. 내가 당신과 함께 파출소에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런 일이 없이 잠깐 후면 돌아옵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간호사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가오펑은 나에게 가운을 벗으라고 말했다. 나는 “잠깐 후면 돌아온다고 했는데, 가운을 벗을 필요가 없습니다. 돌아와 일해야 하니까요”라고 말하며 동의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어 나는 가오펑에게 속아 국가보안대대로 가서 경찰에게 납치됐다.
3월 14일 점심, 국가보안대대장 쑨중민, 경찰 리정, 비커는 나를 끌고 내 집으로 가서 가택 수색을 하여, 프린터 1대, DVD 1대, 휴대폰 1개, 제본기 1개, 조각칼 1자루, 션윈 시디 100여 장, 대법서적, ‘명혜주간’ 200여 권, 진상 화폐 100여 위안, 사부님 법신상 한 장 및 일부 진상 자료와 진상 편지 몇 통을 강탈했다. 그날 저녁에 나는 린커우현 구치소로 납치돼 불법 감금당했다. 듣기로는 나의 납치에 참여한 모든 직원은 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보통 경찰은 5백 위안(약 8만 원)을 받았다.
임업국 하급 법원에서는 원래 6월 말의 어느 금요일에 개정을 진행한다고 정했는데, 월요일이 되자 갑자기 나를 구치소에서 끌고 나가서 개정하러 간다고 말했다. 법정에 도착해서 나는 한 명의 가족과 친구도 보지 못했다. 단지 검찰원, 법원의 관련 직원 및 국가보안 부대장 류서우천(劉守臣)이 사복을 입고 방청석에 앉아있었을 뿐이다. 내가 업무담당자에게 “내 가족은 왜 오지 않았어요?”라고 묻자, 한 여성 직원은 “통지했겠지요. 어찌 된 일인지 몰라요”라고 얼버무리며 말했다. 원래 그들은 파룬궁수련인, 가족 및 변호사가 현장에 도착할까 두려워, 한시도 참을 수 없어 앞당겨 비밀리에 불법 개정을 진행했는데, 아예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았고 더구나 공개 심리를 진행하지 못했다. 대외적으로는 오히려 7월 2일에 개정을 진행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진행했다. 그 후 나는 또 무단장 삼림 지구 중급인민법원에 상소를 제기했으나, 여전히 원 판결이 유지되었다.
2013년 10월 9일, 나는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감옥에 있는 기간에 직장에서는 나와 근로계약을 해지해 나는 간호사 직업을 잃었다.
2016년 5월, 국가보안대대장 쑨중민은 내가 앞당겨 출소한다는 소식을 알고 또 감옥으로 뛰어와서 나에 대해 불법 심문을 진행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에 대해 압력을 가하려고 망상했고, 계속 박해를 진행하려고 시도했다. 게다가 “당신이 예전에 똑똑히 말하지 않은 것을 똑똑히 말해야만 일찍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사건을 위해 나는 좋은 말을 얼마나 했으며,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모릅니다. 나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고 당신에게서 사례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그 모습을 보세요. 당신은 사례를 주려 해도 줄 처지가 못 됩니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당초에 ‘형법’ 300조에 따라 당신에게 3년에서 7년으로 구형 했는데, 3년은 좀 짧고 7년은 좀 긴 것을 고려해 비로소 당신에게 징역 4년형을 선고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정말 양심이 조금도 없다. 나를 감옥에 보내 넣고도 또 재물을 착취하고 다른 사람한테서 감사를 받으려 했다. 내가 그에게 “나는 신분증을 1999년 7월 20일에 압수당했는데, 여태껏 나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신분증을 돌려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무척 화가 나서 “줄게요. 집에 돌아가서 당신에게 줄게요!”라고 말했다. 게다가 “집으로 돌아간 후 하나는 당신에게 최저생활보장 수속을 밟아주고, 하나는 직장에 돌아가 출근하도록 복직시켜 주는 것입니다. 내가 돌아가서 당신을 위해 이 일을 말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2016년 6월 15일에 출소했다. 감옥 측은 현지 ‘610’에 감옥으로 가서 직접 인수인계하도록 요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가족은 쑨중민에게 신분증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또 “이 일은 국장과 상의해야 합니다”라고 책임을 미루며 말했다. 가족은 또 그에게 양로 보험비 문제에 관해 말했는데, 그는 “이것은 당신(나를 가리키며)의 태도를 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왕구이링은 2016년 6월 15일에 출소해 가족과 몇 차례나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쑨중민 및 파출소 직원에게 신분증을 달라고 했으나 주지 않았다. 예전에 승낙한 최저생활보장 수속을 밟아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복직시키는 일은 말하지도 않았다. 왕구이링은 어떤 때에는 약간의 노동으로 생활비를 벌어 겨우 생활을 유지했다. 그 후 유랑생활을 하며 전전하여 랴오닝 잉커우시 보위취안구로 왔다.
원문발표: 2018년 1월 1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8/3597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