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2016년 4월 19일 밤 45세인 무단장시(牡丹江市) 파룬궁(法輪功) 수련생 가오이시(高一喜.남.45)는 아내와 함께 자택에서 경찰에 납치되어 끌려갔는데, 가족은 납치된 지 10일 만인 4월 30일 “가오이시가 사망했고, 현재 화장터에 있다.”는 통지를 구치소 측으로부터 받았다. 구치소는 “단식으로 사망했다.”는 사망 이유를 말했으나, 알려진 바로는 “가오이시는 ‘응급처치’를 받던 중에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오이시는 1971년 7월 14생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후 생업에 종사한 평범한 사람이었다.그는 173센티미터의 보통 키와 체구로 건강했으며,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무링시(穆稜市) 무링린진(穆稜林鎮) 8위원회 1조에서 거주했다. 형제들 중 막내로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므로 인품도 좋고 성실하고 정직하고 쾌활한 성격에 총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 때 직장에서 중간간부직에 있기도 했다. 가오이시는 2009년 파룬궁을 만나 늘 ‘전법륜(轉法輪)’ 책을 보았다. 그는 한 때 녹내장으로 시력이 0.1, 0.2로 내려가 거의 실명위기에 처했으나, 그의 어머니가 파룬궁수련으로 병이 나았고 건강해진 걸 생각하고 열심히 파룬궁을 수련해서역시 빠른 시일 안에 녹내장이 사라지고 정상적인 시력으로 회복했다.
가오이시는 자신이 좋은 것을 얻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파룬궁을 착실하게 수련하기 시작했으므로 파룬궁을 떠나거나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되었다. 그는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집 대문 위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칭송하는 주련을 걸었다. 그러자 지역 경찰 왕쉐이(王學義)와 임업국 공안국가보안 경찰이 그것을 문재 삼아 괴롭히며 불법적으로 납치를 시도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가오이시 부부는 집을 팔고 무단장시로 이주해 방을 임대하여 생계를 유지해나갔다. 그러나 딸 샤오메이신(小美心)은 할머니에게 맡겨져 무링진에서계속 생활 했다. 그런데 건장한 장년인 가오이시가 경찰에 납치된 지 10여 만에 박해받다가 사망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1년 전 극히 사악했던 공포의 밤을 떠올려 회억해야만 한다.
1. 불법구금당한 가오이시가 단식으로 항의하다
2016년 4월 19일 오후 10시 경 가오이시가 세 들어 사는 방문 밖에서 문을 부수는 소리가났고, 그렇게 30분간 강제로 문을 부수고 들이닥친 경찰관 4명은 가오이시 부부를 제압한 후 압수수색영장도 제시하지 않고 수색하고 조사했는데, 지극히 사악한 공포분위기였다. 경찰은 노트북을 보고 “이것 역시 컴퓨터가 아닌가?“ 또 어떤 경찰은 공안국에 전화로 수색지원을 요청하고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지며 조사했다. 옷과 물건, 생활용품까지 모두 엎어 놓고 뒤졌는데, 온통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으며, 그것들을 녹화 촬영했는데, 진상화폐와 현금 1만 위안, 노트북 2대, 프린터기 1대, 대법서적과 진상자료 등 다수, 스쿠터 1대, 승용차(뒷문은 이미 파괴했음) 1대 등 다수의 금품을 강탈당하고 부부가 납치됐다.
4월 20일 오전 1시 40분, 가오이시, 쑨펑샤(孫鳳霞)부부는 무단장시 공안국 셴펑(先鋒)분국 리신(立新) 경무사실로 끌려갔다. 셴펑분국 형사정찰대 부대장 위샹(於洋)과 경찰관 궈하오난(郭浩楠) 등이 아내 쑨펑샤를 심문했고, 장난(南江) 지역 경무부대장 쑹즈강(宋志剛)과 당직경찰 정웨이민(鄭偉民)은 가오이시를 심문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파룬궁을 선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다른 파룬궁수련생의 신원을 알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가오이시는 질문에 일체 답하지 않았고, 각종 기록이나 조서의 서명도 거부했다.
4월 20일 오전 5시 20분 무단장시 공안국 셴펑분국 장난경무실 부대장 위사오취안(於少權)과 리신 경무실부대장 뤼훙펑(呂洪峰), 당직경찰 정웨이민(鄭偉民) 등은 가오이시와 쑨펑샤 등 3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무단장시 제2구치소로 이송했다. 일반적으로 구치소에 사람을 구금할 때는 반드시 신체검사를 하게 돼 있다. 특히 파룬궁수련생에게는 더욱 엄격해서 신체검사에 불합격되면 입감을 거부당한다. 당시 신체검사에서 가오이시는 매우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신체검사서를 가족이 요구했으나 거부당함). 입감당시 구치소 교도관 리주춘(李玖春)이 가오이시를 입소확인 서명 후 8감구역에 배치 감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4월 20일 오후, 제2구치소 심문실에서 셴펑분국 형사정찰대부대장 위샹과 경찰 궈하오난이 가오이시와 쑨펑샤에 대해 각각 2회에 걸쳐 심문조사를 진행했다. 두 차례 심문 중에서 가오이시는 조작된 자신의 범죄행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일체 질문에 답하지 않았고, 서명도 거부했다. 경찰이 심문 마지막부분에서 보충설명이 있으면 하라고 하자, 가오이시는“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했다. 이 구절은 그대로 기록됐다.
4월 21일 오전, 가오이시의 16세 딸 가오메이신은 셴펑분국 뤼훙펑(呂洪峰)으로부터 걸려온전화를 받고서야 아버지 어머니가 경찰에게 구금당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오메이신과 87세인 할머니 장쯔샹(姜自香)이 급히 무단장시로 갔다. 그들은 우여곡절을 거쳐서야 겨우 셴펑공안분국으로 찾아갔으나, 그곳에서는 전화를 한 뤼훙펑은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며 부인했고, 뤼 씨의 소재를 알려주지도 않았다. 백방으로 찾아 헤매다가 겨우 이틀 만에 리신 경무실에서 뤼훙펑을 만날 수 있었고, 가오이시와 쑨펑샤의 면회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4월 25일 오전, 노모는 다시 뤼훙펑을 찾아가서 그를 잡고 늘어지며 “나는 아들과 며느리를 원합니다. 그들이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무슨 까닭으로 그들은 잡았습니까? 빨리 그들을 석방하시오.”라고 말했다. 뤼훙펑은 노인의 손을 확 뿌리치는 바람에 바닥에 넘어질 뻔하다가 옆 의자에 주저앉았다. 4월 28일 오전, 가오메이신은 뤼훙펑에게 아버지의 면회를 요구하자, 이미 사건서류를 국 국가보안지대 지대장 리쉐쥔(李學軍)과 위샹에게 넘겼다면서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라고 말했다.
가오이시는 무단장 제2구치소에서 불법적인 구금에 항의하며 단식했다. 소장 마궈둥(馬國棟)과 의사 원즈위안(溫志遠)은 “가오이시가 단식함에 따라 음식물을 주입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말한바 있다. 가오이시는 2016년 4월 20일부터 28일까지 무단장 구치소에 8일 동안 불법 구금당했다. 8일 간은 일반인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지옥 같은 감금상태에서라면 길고도 오랜 기간이라, 하루가 1년보다도 긴 낮과 밤이다. 그는 누구도 모르게 그동안 어떤 혹독한 고문박해를 받았는지 모를 일이다.
사건에 연루된 구체적인 기관을 순서에 따라 기술하면 무단장구치소, 구치소 주재 검찰원 사무실, 셴펑분국이다
2. 가오이시가 병원으로 보내져 신체검사를 받다
무단장시 공안병원은 시 공안국과 무단장시정형외과병원과 연계되어 있다. 무단장시 정형외과(骨科) 병원(무단장시 공안병원)은 무단장시 제2인민병원 소속의료기관으로 연구, 진료,응급처치 등 일체의 업무를 연합한 종합병원이다. 1급 갑으로 지정된 병원으로 무단장 지역의 치안사건, 형사사건, 교통사고 등에 따른 응급치료를 하는 지정병원인데, 시 공안국 관할 구역의 치안사건, 형사사건 등으로 발생한 환자와 수감자의 질병에 대한 의료를 전담하는 법정의료기관이다. 직원은 총 300여 명이다.
공안병원 4층에 무단장시 공안국 감옥관리감구역이 설치되어 있는데, 통상적으로 ‘감구역 병원’이라고 칭한다. 주로 구치소, 감옥에 수감된 환자를 치료하는데, 치료기간 동안 경찰이 경비하고 감시한다. 사정을 잘 아는 내부자의 말에 따르면 공안병원 내에 설치된 감구역 병원은 무단장시 공안국에서 직접 관할하며, 공안병원은 관할권이 없다고 했다.
가오이시를 검사하고 치료한 영수증은 모두 정형외과병원에서 작성한 것이다. 구치소교도관말에 따르면, 가오이시가 불법적인 감금에 불복하며 단식으로 항의 했는데, 그 기간 동안 정맥주사도 거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2016년 4월 28일 오전 9시 경 그를 공안병원으로 보냈다. 그를 진료한 정형외과병원에서는 ‘중증영양실조’라는 진단을 내렸고, 그래서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병력관리실에 의하면, 구치소에서 ‘신장쇠약증상’이 극심해 병원에 이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10시 20분, 감구역 병원 내과에서 정식으로 진료를 했는데, 가오이시는 공안병원 1호병실 1호 침대에서 진료를 받았다. 공안병원의 한 관계자에 의하면, 무단장시 공안국감옥 관리 책임자는 왕즈웨이(王志偉)다. 감구역 내과책임자 주치의사는 탕수옌(唐淑豔)이고, 과(科) 주임이자 부주임 의사는 더우샹즈(竇香芝)이고, 임상책임 의사(住院醫師)는 장단(張丹)이고, 책임간호사는 저우징샤(周景霞)인데, 이들은 모두 가오이시를 검사, 치료, 감호, 위급상황보고, 사망확인, 전체치료, 응급처치 등을 책임진 자들이다. 이들은 정형외과병원에서 총괄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의료진이기도 하다.
무단장시 정형외과 병원의 사건에 연루된 의사 탕수옌, 더우샹즈, 장단
감구역 내과에서 가오이시의 신체검사를 했는데, 혈액 24개 항목, 요수 24항목, 신장기능7개 항목,B.C형 간염측정, 적혈구와 혈중요산(血尿酸), 혈액지질, 혈당, 간기능, 심전도,흉부CT(폐, 심장, 혈관), 복부초음파(간장, 담낭, 췌장, 신장, 수뇨관, 방광, 전립선), 심장 초음파, 심폐기능 등 50여 개 항목에 대해 세밀한 검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안병원에서는 가오이시의 신체검사결과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CT검사: 흉곽 대칭, 양 폐 무늬가 선명함, 걸음걸이가 자연스러움, 폐활량상태 양호, 이상음영(異常實變影)이 보이지 않음, 폐문이 정상적임, 심장 및 대동맥상태 정상, 흉부 정상임. 최종기록 확인은 류진신(劉玉鑫) 의사고, 참여의사는 장쉐즈이다. 복부초음파 결과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간장, 담낭, 췌장, 비장, 양 신장형태가 정상이고, 양쪽 모두 균일하며, 위치도 정상적이고 확장성이 발견되지 않음이라고 기록돼 있다. 전체적인 검사 소견은, 정신이 맑고, 언어가 분명하며, 양 폐 호흡음이 왕성하고 건습성(幹濕性)이나 수포 음이 들리지 않음. 심장박동 수는매분 68회고, 박동이 일률적이고 잡음이 없으며, 복부는 평평하고 바르며 간과 비장은 늑골과 닿지 않았으며, 하지는 부종현상이 없다. 가오이시의 신체검사결과는 아주 건강하다는 의사의 소견이었다.
3. 지척에서 가족이 쫓겨나다
4월 29일 오전, 가오이시의 딸 가오메이신과 할머니는 무링진에서 무단장으로 와서 또 리신 경무대대 형사정찰대를 찾아가서 위양과 공안국가보안지대 마췬(馬群)을 찾아가서 면회를 요구했지만 역시 모두 거부당했다. 가오메이신과 할머니는 제2구치소로 찾아가서 직접 면회를 신청했으나, 가오이시는 이미 공안병원으로 후송됐다는 말을 듣게 됐다. 그들은 지친 몸을 쉴 틈도 없이 감금된 가족을 찾아 헤맸지만 정작 그 짧은 며칠 사이에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지 모르고 있었다. 당일 1시 경 목마르고 허기진 몸으로 가족이 후송됐다는 공안병원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실 밖에 많은 경찰들이 와 있음을 보았다. 그들은 “가오이시를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구치소 교도관과 의사 원즈위안(溫志遠) 등 관계자들이 모두 병실 안에 있었지만 누구도 그들의 말에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그들은 점점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가오메이신과 할머니는 당일 오후 1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가오이시가 입원한 감구역 내과병실 문밖에서 울면서 하소연하며,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아들을 만나고 싶다.”고 애원했다.그러나 어린 딸과 노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구치소의 의사 원즈위안은 가오이시의 병실을 몇 차례나 드나들면서 “가오이시가 정신이 들었다.”고 했다가 또 잠시 뒤 “가오이시가 곧 깨어난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누구도 가오메이신과 할머니에게 가오이시의 정확한 상태를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87세 노인은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맥이 단번에 빠져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은 병실과 단지 벽하나 사이에 두고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고 상황을 알지도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가오메이신은, “공안국 사람마저 모르는데, 그녀들이 어떻게 왔을까요?” 하고 자기들끼리 작은 소리로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면회를 거부당한 딸과 노모는 “110에 끌려가 5천 위안의 치료비를 물게 할 것이다.”라는 협박을 당하며 빨리 떠나라는 핍박을 받았다. 그래도 그녀들은 물러나지 않고 면회를 요구했다. 오후 8시 경 경찰들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당시 병원에는 무링시 제2중학교 가오메이신 담임교사, 무링 임업공안경찰, 지역사회담당 양(楊) 씨, 가오이시의 아내 쑨펑샤(孫鳳霞)의 직장동료 2명, 무단장시 공안 등 수 명의 경찰관등이 와 있었다. 구치소 측에서 노인과 아이가 집에 돌아가도록 설득하도록 그들에게 당부했다. 그중 어떤 사람은 가오메이신에게 “너의 아버지에게는 아무 일도 없다. 며칠이면 된다.”라고 말했다. 오후 9시가 지나서 가오메이신과 할머니는 강제로 청회색 승용차에 끌려가 실렸고, 뒤에는 경찰백차가 따르고 있었다. 차량 번호는 흑(黑) C﹒M7274였다.
4. 2박2일 동안 병원에서 응급처치 중 사망했다
구치소 소장이 가족에게 설명한 말에 따르면, 가오이시는 들어오자마자 단식을 했고, 8일이 됐을 때 영양주사를 했으나, 그가 스스로 주사를 뽑아버려 주사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2회 음식물을 주입했다고 했다. 정당한 절차와 조치를 했다는 설명처럼 말했다. 많은 파룬궁수련생은 감옥, 노동교양소, 구치소 등지에서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한다. 그러나 15일이나 심지어 1개월 동안 단식을 해도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8일 동안의 단식으로는 신체적으로 아무런 위험문제도 없다. 구치소 측의 설명대로라면 그동안 2차례나 음식물 주입을 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영양실조로 죽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가족으로서는 하나의 큰 의혹이 아닐 수 없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4월 28일 오전, 가오이시는 자신이 감구역 병실로 걸어 들어갔는데,막 들어가자마자 곧 기운이 빠져 벽에 기대고 있었다고 했고, 공안병원에 들어섰을 때에는 행동과 말이 정상적이었는데, 링거 주사를 하자 그가 스스로 주사 바늘을 뽑아버리자, 그를침대에 결박했는데, 가슴과 다리를 묶었고, 오른쪽 손에 수갑을 채워 위로 침대머리 쇠 난간에 매달았으며, 왼쪽 손 역시 수갑을 채워 왼쪽 침대 난간위에 채웠다. 가오이시는 팔과 몸을 괴롭게 움직였다. 그러나 입으로는 계속 항의 했다. 그런 결박상태에서 의문의 주사를 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오시시의 동작의 차츰 작아졌고 줄어들었으며, 그러다가 혼미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4월 29일 아침, 의사 더우샹즈는 가오이시에 대해 몸 상태를 검사하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정신이 맑고 언어가 분명함, 목 부위가 나른함, 심박동 68차, 박동이 일률적이고 잡음 없이 깨끗함(아래의 사진 참조바람).
4월 29일 오전, 가오이시는 전혀 반응이 없는 상태였다. 언어와 행동 감지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매달린 팔과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틀 동안 계속 링거를 하면서 멈춘 적이 없다. 4월 29일 어떤 죄수 간병사가 빈번히 가오이시의 오줌을 받아냈는데, 오줌양은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4월 30일 00시 15분, 약물주입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사람은 이미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4월 30일 5시, 공안병원기록에 다음과 같은 의사지시가 기록되어 있었다. “5시 포도당 주사액 150밀리 정맥에 주사. 폴리아민 염산(鹽酸巴多胺) 200밀리 주사할 것. 처방의사는 탕수옌이고, 시행간호사는 양위잉(楊玉瑩)이다.
거의 동시에 6~7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에 나타나서 계속 바삐 가오이시의 흉부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5시 5분, 5가지 약물을 일회용 정맥 주사했고, 5시 10분 거듭 5가지 약물을 정맥 주사했다. 5시 19분 침대 머리의 기록표 심전도기록에는, 심장박동이 완전히 멈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아래 사진 참조바람).
이 항목 검사시간은 그날 오후 15시 19분, 병원에서 가오이시가 사망했다고 선포한 후 10시간이 지나서 ‘심장박동이 완전히 멈추었다’고 했다. 게다가 기록한 종이는 단독적으로 붙힌 것이다. 그 시간에 가오이시는 이미 화장터에서 강제해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속일 수가 있단 말인가! 가오메이신과 할머니가 집으로 돌려보내진 8시간 후인 4월 30일 아침, 가오이시는 공안병원에서 소위 ‘응급처치’라는 걸 받다가 사망한 것이다. 5시 40분 감구역 병원 의사는 가오이시의 모든 장기가 손상되고 쇠약해서 급사했다고 선언했다.
공안병원 주치의 더우샹즈가 진술한 근거에 의하면, 4월 29일 공안병원에서는 이미 업무담당 셴펑분국, 감방담당 제2구치소에, “생명이 위중하다.”고 통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가오이시의 노모와 딸은 바로 가오이시의 병실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잔인하게 강제로결별당해 최후의 기회를 잃게 한 것이다.
가오이시가 무단장시 공안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간은 총 43시간 동안이다. 입원 전 10개 항목의 세밀한 검사를 거쳐 건강하고 정상적인 상태라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2일 만에 갑자기모든 장기가 쇠약해져 급사했다는 선언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응급처치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 있고, 응급처치를 받은 사람은 죽어 가는데, 이런 해괴한 상황이 지금 중국대륙에서 존재한다. 특히 파룬궁수련생의 그런 상황은 이미 늘 보아 와서 알고 있기 때문에 중국대륙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된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만든 사람들은 떳떳하지 못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에 대해 응급처치를 하면 바로 그 사람이 죽는, 천고의 괴이한 일이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오이시가 그렇게 억울하고 허망하게 사망하자, 가오 씨 가족 모두는 심한 타격의 충격을 받아 감당키 어려워하고 있다. 그런 타격은 죽을 때까지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가오이시가 사망한 후 구치소 한 교도관은 아내 쑨펑샤에게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국선변호사입니다. 그러나 사적으로 인권변호사는 선임하지 못합니다.”라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이들 구치소와 의사들은 도대체 연합해서 무엇을 감추려고 하는가? 중국공산당(중공)은 박해원흉 장쩌민(江澤民)을 우두머리로 한 박해 집단으로, 초기부터 파룬궁탄압을 위한 공포의 사악한 정책을 폈는데, 그 정책은 바로 육체를 소멸한다는 사악한 정책인 것이다.
누가,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꼬박 18년이 되었고, 그 법을 집행하는 자가 금전적 이익을 위하고 승진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극악한 짓을 했다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계속 가오이시의 시신을 빨리 화장하려고 하는 것도 그것들의 소행으로 볼 때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그 배후에는 도대체 무슨 흑막이 있겠는가는 능히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원문발표: 2017년 7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7/16/3511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