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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을 얻은 말기 혈우병 환자가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가 수감당해 피골이 상접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쓰촨보도) 청두(成都)시 펑저우(彭州)시 30여 세 파룬궁수련생 자오윈창(趙雲強)은 병원에서 쫓겨난 말기 혈우병 환자로 파룬궁을 수련한 후 건강을 되찾았다. 2015년 9월, 진상을 알려 납치되고 모함을 당했다. 2017년 4월 5일에 억울한 4년형 판결을 당해 자저우(嘉州) 감옥에서 박해를 당해 피골이 상접해졌는데 얼마 전에 혹독한 구타로 혼절해 인사불성이 됐다.

청두시 톈푸신구(天府新區)의 청화이건(程懷根)도 파룬궁을 수련해 죽을 고비에서 되살아났다. 2015년 5월 13일에 주택 단지에서 ‘세계는 진선인(眞善忍)이 필요하다’라는 현수막을 걸었다가 납치돼 불법 징역 4년 판결을 당했고 러산(樂山) 자저우 감옥으로 납치됐는데 결국 2017년 5월 29일에 박해로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54세였다.

말기 혈우병 환자가 새 생명을 얻다

자오윈창은 1996년 당시에 여전히 펑저우시 룽펑진(隆豐鎭) 중학교 직업고등반 학생이었다. 당시 자오윈(趙雲)이라고 불렀는데 혈우병에 걸려 침대에 마비돼 누워있었다. 전신이 모두 굳어져 양말마저 신을 수 없었다. 그의 집은 가난했는데 펑저우 병원, 촨의(쓰촨 의학원)에서는 그를 다양한 방법으로 병원에서 쫓아냈다. 한 교사는 TV방송국으로 가서 돈을 기부하도록 호소해 가져온 돈으로 그를 치료해주었고, 다른 한 교사는 그에게 파룬궁을 소개해 주었다. 겨우 이틀 동안 파룬궁을 연마했는데 자오윈창은 곧 지팡이를 짚고 우리 학교에서 600미터 떨어진 영화관으로 가서 연공할 수 있었다.

자오윈창은 매일 연공을 견지했고 ‘전법륜(轉法輪)’ 책을 배웠다. 7일째 날 오후가 되어 극장에서 연공을 끝내고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한 걸음 한 걸음씩 계단으로 극장 지붕 위까지 걸어갔다. 당시 사람들이 백여 명이 있었는데 모두 박수를 치며 “자오윈창이 걸을 수 있다! 자오윈창이 연마해 좋아졌다!”라고 환호했는데 박수소리가 우레처럼 터졌다. 자오윈창은 지붕 위에 서서 환호하는 연공 군중을 바라보며 격동해 뜨거운 눈물을 글썽였다. 이때부터 다시는 지팡이를 짚지 않았고 몸은 건강을 회복했으며 그는 집안의 주요한 노동력이 됐다.

진상을 알려 억울한 4년 판결을 당하다

2015년 9월, 자오윈창, 저우위화(周育華) 등 파룬궁수련생은 야안(雅安)시로 가서 진상을 알렸다가 감시카메라 녹화영상에 찍혔다. 야안 경찰은 다른 성에서 넘어와 펑저우시 경찰과 결탁해 자오윈창, 저우위화를 야안 둬잉(多營) 구치소로 납치해 박해를 가했다.

2016년 3월 31일 오전 9시 50분, 야안시 위청구(雨城區) 법원에서는 자오윈창과 저우위화에 대해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재판 과정 중, 검사 궈청(郭誠)이 제출한 고발자료는 허점이 매우 많았는데 두 명의 변호사는 이치에 근거해 진술했다. 판사 왕야장(王雅江)은 핍박에 못 이겨 퇴정을 선포하며 날을 잡아 다시 심리하겠다고 선포했다.

자오윈창과 저우위화는 19개월 동안 불법 감금당한 후 2017년 4월 5일에 야안시 법원에 의해 각각 4년 형, 3년 6개월의 무고한 판결을 당해 러산시 자저우 감옥으로 납치됐다.

핍박에 못 이겨 피골이 상접하고 병세가 위독해져

2017년 6월 10일(음력 5월 16일), 자오윈창의 어머니는 갑자기 러산 자저우감옥의 속달 우편과 자저우 감옥의 전화를 받았는데, 자오윈창이 위독해 이미 쓰촨 솽류(雙流)경찰 종합병원으로 보내 치료를 받게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급히 자오윈창을 만나러 가라며 만약 늦으면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오윈창의 어머니와 다른 가족은 솽류 경관 종합병원으로 갔는데, 단지 어머니 혼자만 자오윈창을 만나는 것을 허락했을 뿐 기타 가족의 면회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피골이 상접한 아들이 링거(듣기로는 수혈한다고 했음)를 맞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오윈창은 어머니에게 감옥에서 아침에 체조를 했는데 다리가 굳어져 좀 늦어지자 옥졸이 그를 구타했으나 줄곧 그가 구타로 쇼크할 때까지 중간에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알려주었다.

자오윈창의 말이 아직 끝나기도 전에 50~60세인 몸에 흰 가운을 입고 마치 관리 같은 모습의 사람이 “당신 아들에게 생활비를 넣어주시오”라고 말했다. 그녀는 “제게는 돈이 없습니다. 제가 입은 옷도 다른 사람이 준, 다른 사람이 입지 않는 낡은 옷입니다”라고 말했다. 간호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더운 날에 당신은 구두를 신고 덥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관리 같이 보이는 사람은 “당신은 돈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빌리세요”라고 말하자 자오윈창의 어머니는 가냘프게 그 사람에게 “저는 오이, 콩, 마늘을 좀 팔아서 겨우 병원으로 와서 아들을 만나보는 노자를 모았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당신 아들이 생활비가 없어 몸에 영양이 없게 됐어요. 얼마나 수척합니까?”라고 말하자.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가서 빌릴게요”라고 말했다.

자오윈창의 아버지는 오후에 그를 보러 갔다. 병원에서 면회를 허락하지 않자 그는 “내 아들은 몇 해 동안 갇혀 있었는데 그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오늘 꼭 그를 만나려 합니다. 아니면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애걸했다. 반복해 애걸해 그는 마침내 아들을 만났지만 이미 알아볼 수 없었다. 자오윈창이 아버지라는 한 마디를 외쳐서야 그는 자신의 아들을 알아보았다. 그는 자오윈창의 옷을 들어 올려 보았는데 손목, 팔, 허리, 하반신이 전부 청자색, 흑색 상처가 있었다. 그는 아들을 대신해 6백 위안의 생활비를 냈다.

2017년 7월 3일(음력 6월 초열흘날), 자오윈창의 부모는 또 아들을 보러왔으나 면회를 허락하지 않고 단지 생활비만 넣도록 재촉했을 뿐이다. 자오윈창의 어머니는 또 4백 위안을 냈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인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7월 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7/9/3508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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