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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상하이 바이건디, 박해로 사망(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상하이 보도) 상하이(上海) 파룬궁수련생 바이건디(柏根娣)는 전 베이징 석유부 인사 간부이자 둥하이(東海) 석유회사의 중간 책임자로, 파룬궁에 대한 중공(중국공산당)의 18년 동안의 박해 중에서 여섯 번이나 불법 체포되었으며, 약 14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결국 2017년 6월 15일에 박해로 사망했다. 바이건디가 생명이 위급했을 때, 그녀가 머문 병원의 밖에서뿐만 아니라 병원 안에서도 ‘610’ 요원이 감시하고 있었다.


上海法轮功学员柏根娣女士

상하이 파룬궁수련생 바이건디
(柏根娣)

2017년 2월 22일, 사법국의 5명은 바이건디가 입원한 상하이 이캉 정양 병원(上海一康康復醫院)으로 가서 의사와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다음 바이건디의 침대 앞으로 왔다. 그중 키 170cm 정도의 한 남성은 휴대폰을 비스듬히 들고 휴대폰 뒷면의 카메라를 바이건디를 마주하게 하고 있었는데, 그의 이러한 행동은 다른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은 깜짝 놀라며 “그가 사진을 찍습니다(사진을 찍지 않은 것이 아니라……).”라고 소리쳤다. 가족은 그들에게 나가라고 했다. 이 휴대폰 카메라는 일반 휴대폰 카메라에 비해 한 바퀴 더 컸으며 휴대폰도 큰 치수에 속했다.

이후 바이건디의 상태는 또 한 번 반복되었으며, 사지는 또 한 번 경직성 근육 긴장 상태가 나타났다. 바이건디는 다시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으며 다시 말을 하지 않았다. 언어를 교류할 때 어떨 때에는 반응이 있었는데, 예컨대 입장(立掌)하고 눈물을 흘렸다. 6월 이후 점차 사지에 움푹 팬 형태의 수종 상태가 나타났으며 호흡이 점점 어려워졌다.

2016년 8월 24일 오후, 바이건디는 상하이 여자감옥에 의해 쑹장(松江) 인민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처치를 받았다. 감옥장은 가족에게 “바이건디는 오후 3시경 의자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혼미해져 병원으로 보내졌습니다.”라고 했다. 게다가 “감시 카메라에는 바이건디가 미끄러져 내려갈 때, 몸이 돌며 땅에 넘어진 것이 나타납니다.”라고 말했다. 가족이 녹화 영상을 보겠다고 했으나,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오른쪽 머리 부위에 약 2cm의 상처가 고르게 나 있었는데, 마치 칼로 벤 듯했다. 게다가 감옥 직원이 아닌 사람이 말하기를, 몸이 땅에 세게 부딪혀 난 상처라면 당연히 두피가 고르지 않게 터져야 한다고 했다.

바이건디는 9월 상순에 보석으로 집에 돌아와 안정을 취했다. 바이건디는 9월 30일 이전에는 의식이 시종 명석하지 않았는데, 전에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감옥 측이 그녀의 음식물 속에 독약을 투입해 음식을 먹은 뒤 구토했다고 여러 번 명확하게 말했다. 지난번 4년 6개월의 억울한 재판을 받은 사실(2006년 5월 23일부터 2010년까지)에 비추어 보면, 그녀는 상하이 여자감옥에서 독약을 넣은 반찬을 먹어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두근거려 극히 고통스러웠다. 어떤 바오자(包夾, 수감 감시요원)가 차마 볼 수 없어서 음식물에 이름 모를 약물을 투입했다고 알려주었기에 그녀는 먹지 않고 이 재난을 벗어났다. 이번에 그녀는 또 한 번 사람마다 한 통씩 주는 반찬을 거부하고, 많은 사람이 통상적으로 먹는 흰밥과 채소 국물만 먹었더니 구토가 즉시 멎었다. 그녀는 이러한 여러 번의 시험을 통해 자신의 추측이 맞음을 확신했다.

바이건디는, 또 일이 생기기(8월 24일) 며칠 전에 한 남성이 그녀가 있는 병실로 들어와 거주했는데, 그중 하루는 전체 감방에서 모두 밖으로 나가 식사하도록 하고 그녀 한 사람만 남아 식사하게 되어 그날 아침밥을 먹은 후 머리가 어지러웠으며, 뒤이어 혼미해져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가 의식을 회복했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으며 쑹장 병원에 있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녀에게 일이 생기기 전날, 같은 감방에 있는 사람 중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내보냈다는 사실이다. 말로는 전 감옥에서 대조정(이 때문에 그녀가 기절했을 때 주변에는 사정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음)을 했다고 했는데, 우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2016년 9월 30일 오후 5시, 바이건디는 거듭 머리가 극렬하게 아파 상하이 시 제6인민병원 급진 관찰실에 하룻밤 입원했다. 11월 30일, 또 한 번 머리가 아프고 얼굴에 작은 경련이 나타나 6원(六院)에 2주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12월 28일, 이번에는 즉시 호전되지 않고 2017년 1월 7일까지 지속해서 혼미상태가 되었다. 그녀는 6원에서 이캉 정양병원까지 이송되는 중에 수차례 눈을 뜬 적이 있다. 이후 또 혼수상태가 되어 1월 10일에 이르러서야 정신을 차렸으나, 발음이 똑똑하지 않고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가장 명확한 한마디는 “그들은 내가 가서 사람을 구할까 봐 내가 죽기를 원합니다.”라고 한 것이다.

1951년 9월 21일생인 바이건디는 미혼으로 생활이 검소했으며, 사람을 온화하고 자상하게 대했다. 그녀는 상하이시 쉬후이구(徐匯區) 러산로(樂山路)에 살았다. 그녀는 상하이시에서 첫 번째로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파룬궁수련생이다. 1999년 10월 20일부터 2001년 10월 19일까지, 당시의 상하이 시장 쉬쾅디(徐匡迪)는 직접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재가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 지 겨우 3개월 만에 거듭 3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으며, 형기는 2002년 2월 5일에서 2005년 2월 5일까지였다. 2006년 5월 23일 ‘상하이 6개국 정상회담’ 전, 바이건디는 거듭 납치되어 4년 6개월의 불법 형을 선고받고 상하이시 쑹장 여자감옥에 수감되었다. 출소한 지 1년 10개월만인 2012년 9월 10일, 쉬후이 공안분국에서는 또 한 번 그녀를 거리에서 불법 납치했다. 2013년 5월 3일, 쉬후이구 법원은 바이건디에게 6년 6개월의 불법형을 선고했다.

두 번에 걸쳐 5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다

바이건디는 1999년 10월 20일부터 2001년 10월 19일까지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내부 소식에 따르면, 이것은 상하이 교통대학 보위처의 리(李) 처장, 지카이펑(紀凱風) 처장, 교도처 주임이 요구한 것이며, 쉬후이 구 ‘610’의 추이위(崔玉), 주궈쥔(朱國軍), 상하이 공안국 문교(文教) 보위분국[국장: 우방쥔(周邦俊), 경찰: 가오베이훙(高蓓紅), 천웨이(陳煒), 후쥔(胡軍), 장위(張喻) 등]에서 실시했다. 그리고 쉬쾅디가 직접 읽어 심사한, 상하이 시 제1기 파룬궁수련생이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사례는, 그녀가 상하이 교통대학 학생에게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도록 동원했다고 의심되며, 일부 교통대학 학생이 이와 같이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믿는 것은 주변 연공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인정된다는 구실로 바이건디에게 무거운 처벌을 가할 것을 획책하게 했다. 2002년 2월 5일부터 2005년 2월 5일까지 그녀는 거듭 3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바이건디는 두 번 모두 상하이 칭쑹(青松) 여자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되었다. 첫 번째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2년 동안 줄곧 상하이 노동교양소 3대대에서 ‘강제노동개조’를 당했는데, 하루에 18~19시간 동안 일을 하여 잠자는 시간이 적었다. 심지어 서 있어도 깊이 잠들 때도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사람들은 에어컨을 켠 상태에서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실내 40도 이상의 고온 상태에서도 전열기로 컬러 조명등을 가공했다. 바로 그런 상태에서 9일 동안 그녀를 목욕하지 못하게 했으며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게 하여 전체 사람에게 악취를 풍겼다. 허름한 옷은 젖었다가 마르고, 말랐다가 젖어 딱딱하게 되었으나, 그녀는 죄수복 착용을 거부했다.

두 번의 노동교양 중에서 장기간 죄수 음식을 먹었는데, 한 끼에 한 냥의 밥과 채소 몇 잎으로 된 국물만 주었다. 그녀는 강제노동과 굶주림으로 피골이 상접할 정도가 되었다. 경찰은 그녀에게 가족 면회를 허용하지 않았고, 가족이 옷을 보내오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으며, 오는 편지를 몰수했다. 매달 생활비는 75위안(약 12,000원)이었다. 그러나 반찬 한 접시를 ‘노동교양요원’에게 팔았는데, 가격이 3위안(약 500원)이었다. 물품이 부족하였기에 생활필수인 화장지, 치약, 비누는 그녀에는 사치품이었다.

구치소에서 받은 박해

2005년 6월 16일, 바이건디와 야오위화(姚玉花)는 쉬후이 구의 지하철역에서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되어 쉬후이구 구치소에 29일 동안 불법 감금되었다. 그 기간, 바이건디는 12일 동안 단식했다. 하의가 벗겨진 채 손발이 24시간 동안 나무침대 위에 묶여 있었으며, 대소변을 치를 때도 풀어주지 않았다. 배설물이 침대 판자의 구멍을 통해 변기통으로 흘러 들어갔으며, 고문은 지속되었다.


酷刑演示:铐在床上

고문 재연
: 침대에 채워두기 고문

괴상한 것은 의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음식물을 주입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7일 후 간호사는, 이렇게 하면 사람이 곧 죽을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9일째 날, 죽음에 직면한 이 사람에게 몇 개의 주사기로 피를 뽑아서 검사했는데,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의사는 바이건디와 가족의 과거 건강상황을 상세하게 물었다. 12일째 날, 그녀의 심장박동과 호흡이 매우 약했다. 그녀는 흐리멍덩해진 상태에서, ‘죽으면 모든 일이 끝이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억지로 두 눈을 뜨며 마음속으로 ‘내가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아직 완수하지 못했기에 떠나가면 안 된다.’라고 했다. 다시 한 번 의식을 회복했을 때, 그녀는 마치 손과 발을 꽉 조였던 끈이 잘린 듯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편안함을 느꼈는데, 마치 단식을 한 적이 없는 듯한 감을 느꼈다. 그녀는 단식을 끝내야 함을 깨닫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사가 급히 와서는 “누가 당신에게 음식을 먹였습니까!”라고 노발대발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도 당시 의사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생체장기적출이 폭로되어서야 그녀는, 의사는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듯 그녀의 장기로 돈을 벌려고 기다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년 6개월의 불법 형을 선고받다

2006년 5월 23일, 바이건디는 거듭 4년 6개월의 불법 형을 선고받았다. 상하이 6개국 정상회담이 가까워져 숙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공 사당요원의 이유였다. 바이건디와 많은 수련생은 죄 없이 차례로 붙잡혔으며, 그 후 증거를 찾기 위한 가택수색이 진행되었다. 쉬후이구 구치소에 10개월 동안 불법 감금되었다가 2007년 3월 24일, 4년 6개월의 불법 형을 선고받았다.

바이건디는 상하이시 쑹장 여자감옥에 불법 감금된 기간에 단호하게 박해를 저지하였는바, 죄수복을 입지 않고 번호표를 달지 않아 영창실(독방)에 4년 동안 감금되는 등 교도원에게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바이건디는 4년 6개월 동안 목욕한 적이 없다. 영창실에 갇혀 세면실에서 세수하고 옷을 빠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화장실로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마실 물도 주지 않았다. 이후 박해를 반대했다가 7개월 동안 물을 마시지 못했다. 박해 중에 때리고, 욕하고, 고문을 가하고, 수갑을 채우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바이건디가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치자, 악독한 경찰과 바오자는 천 조각으로 그녀의 입을 조이거나, 입안에 짧은 막대기를 밀어 넣고 상자를 묶는 끈으로 머리를 몇 바퀴 감았으며, 매번 여러 날 동안 박해했다. 입안의 물건 때문에 입을 다물 수 없어 침이 밤낮없이 계속 흘러내렸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속박 수갑을 채웠으며, 한 번 채우면 3일에서 7일 동안 채웠다.

무엇을 속박 수갑이라고 하는가? 바로 정신병 환자를 속박할 때 사용하는, 몸에 꽉 끼는 옷인데, 꽉 끼워 속박한 후에는 심호흡을 할 수 없다. 다시 두 팔목을 각각 몸에 꽉 끼는 옷의 앞가슴과 등에 채우는데 한번 채우면 3일에서 7일 동안 채웠다. 영하 6도의 차가운 물을 몸에 끼얹었으며, 젖은 이불 속에서 잠을 잤다. 이튿날, 땅바닥은 물에 젖은 사람과 같은 모양이 되었다. 수감자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악독한 경찰은 그 수감자가 흐리멍덩한 상태에서 벽에 부딪힐까 봐 죄수를 함께 수감했다. 그런데 그 죄수는 산소가 부족해 호흡이 매우 곤란해지고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으며 숨을 헐떡였다. 그녀는 “이것을 똑똑히 보고 깨달았지요. 내가 부처님을 모심을 허용하지 않으면 당신에게 화가 미치게 하며, 또한 당신이 악을 도와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음을 깨달았지요?”라고 했다. 그녀는 영창실에 수감된 전체 수련생들이 감방에서 걸어 나오고 배설물을 깨끗이 씻어내는 권리를 얻게 하려고 자신의 소변을 마신 적이 여러 번 있다. 심지어 직접 몸에 배설했다. 마침 무더운 날이라 주변에서는 냄새가 지독해 견딜 수 없었다. 마침내 이 권리가 쟁취되었을 때 대대장은 “당신이 이겼다고 여기지 마시오.”라고 했다. 바이건디는 “내 자비를 모독하지 마세요. 당신들이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당신은 수련인에게 이렇게 하면 어떠한 인과응보가 따르는지 알고 있습니까? 지옥으로 걸어가며 층층이 소멸합니다!”라고 했다. 경찰은 바오자를 이용해 미혼인 그녀에게 성 학대를 가했다. 그녀는 자비롭게 “당신들도 역시 여인인데 어떻게 이렇게 자신을 짓밟습니까? 진정하게 박해받는 사람은 바로 당신들입니다. 당신들이 장래에 지옥의 고통을 받도록 할 수 없습니다.”라고 타일렀다.

거듭 6년 6개월의 불법 형을 선고받다

2012년 9월 10일, 쉬후이 공안분국에서는 거리에서 바이건디를 불법 납치했다. 2013년 5월 3일, 상하이 시 쉬후이 구 법원에서는 바이건디에게 6년 6개월의 불법 형을 선고했다. 상소는 6월 18일에 기각되었으며, 2013년 6월, 상하이 여자감옥으로 이송되었다.

바이건디는 수감된 후 줄곧 독방에 갇혀 박해받았다. 바오자의 폭로에 의하면, 한겨울에도 독방 중의 바이건디가 짧은 여름옷과 반바지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때 다른 사람은 패딩 점퍼를 입고도 추워했다. 가족이 의복과 기타 일용품을 보냈으나, 여러 번 들고 가서는, 그녀가 굴복하지 않기에 상부에서 그녀가 입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다. 2014년의 봄에 가족은 감옥 주재 검찰관을 찾았다. 그제야 그녀는 5감구역(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곳)의 독방에서 3감구역으로 옮겨갔다.

2016년 8월 24일 오후, 이미 65세인 바이건디는 상하이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생명이 위급해져, 쑹장 인민병원 중환자실 간호실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어떨 때는 의식이 끊어졌다가 어떨 때는 이어졌다. 중환자 간호실에서 치료하고 집으로 옮겨 안정을 취했으나, 기억력이 점점 약해지고, 정신이 맑아졌다가 흐리멍덩해지는 상태가 나타났다. 그녀는 감옥에서 박해받은 상처 때문에 가족과 함께 사는 곳을 늘 감옥으로 여겼다. 게다가 목적 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그녀는 기억이 다소 회복되고 사람과 교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9월 30일 갑자기 혼절해 인근 병원으로 보내졌다. 그 후 그녀는 점점 사유가 혼란하고 기억이 상실되는 증상이 나타났으며, 허튼소리를 하는 상태도 나타났다. 심지어 가족마저 알아보지 못했다. 그 후 그녀는 음식을 먹기가 점점 어려웠다. 감옥에서 독약을 투약 당한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가족이 그녀에게 먹이는 음식물을 독이 있는 것으로 여겨 먹기를 거부했다. 그녀의 정신은 극도로 흥분한 상태가 되어 가족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피곤하게 했다. 눈은 이미 앞을 보지 못했고, 점점 자기 주도적이지 못했으며, 명석하게 법공부하고 연공할 수 없었다.

그 후 11월 30일과 12월 29일, 또 갑자기 혼절하고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 가족이 제6인민병원 의술동 8층의 뇌내과 병실로 데려갔다. 이 기간에 그녀는 늘 머리가 갈라지는 듯이 아팠으며, 링거로 생명을 유지했다. 그녀가 입원한 건물 밖에는 줄곧 ‘610’ 요원이 감시했으며, 심지어 병원 안에서도 감시했다.

파룬궁수련생 바이건디가 10여 년 동안 박해받은 사실에 관해 밍후이왕의 문장 ‘바이건디, 상하이 시 여자감옥의 박해로 생명 위급(사진)’, ‘상하이 시 여자감옥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최근의 박해’, ‘바이건디가 상하이 여자감옥에서 받은 박해를 회상하다’, ‘상하이 시 쉬후이 구 바이건디가 받은 박해’ 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6월 1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6/18/3498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