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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 랴오양시 쉬구이샤, 학대로 사망했을 때 전혀 딴 모습이 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 보도) 랴오닝성(遼寧省) 랴오양시(遼陽市) 훙웨이구(宏偉區)47세 파룬궁수련생 쉬구이샤(許桂霞)2016117일에 랴오양시(遼陽市) 구치소에서 못판(釘板)’ 고문 학대,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학대를 당해 사망했는데, 전혀 딴 모습으로 바뀌었다.

쉬구이샤는 20161027일에 남편 류잉(劉英), 파룬궁수련생 쑤뎬싱(蘇殿興)과 함께 궁창링구(弓長嶺區) 뉴루향(牛錄鄉)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궁창링 탕허(湯河)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날 오후 3시에 경찰은 두 가정에 대해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진행해 컴퓨터, 파룬따파(法輪大法) 서적 등을 강탈했다. 그 후, 세 사람은 랴오양시 구치소로 옮겨져 형사 구류처분을 받았다.

쉬구이샤는 랴오양시 구치소 301호에 불법 감금당했다. 이 감방의 옥졸 류샤오천(劉小辰)은 쉬구이샤가 감옥 규정을 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폭력으로 상해를 입혔다. 그가 늘 쓰는 수법은 바로 뺨을 때리는 것이다.

그 후, 쉬구이샤는 못 판고문 학대를 당했는데, 대소변마저 관할하는 사람이 없었다. 쉬구이샤는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사흘 후, 음식물 주입을 당했는데, 주입을 당한 후에 경련을 일으키는 현상이 나타났으나 당시 응급처치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못 판 고문을 당하느라 대소변을 바지 안에 누었다. 이 때문에 깨끗이 씻은 후에야 의무실로 보냈으나 사람은 이미 사망한 뒤였다. 쉬구이샤는 사망할 때 전혀 딴 모습으로 바뀌어 그녀를 아는 사람마저 알아보지 못했다.

117일 오후, 탕허 공안분국에서는 실정을 속이고 오히려 선양(瀋陽)에서 공부하는 사망자의 아이에게 통지를 내려, 그의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니 그에게 돌아오라고 말했다. 8일 오전, 공안분국에서는 또 전화를 걸었는데, 학교로 가서 아이를 마중하러 가겠다고 말했다. 아이는 두려워서 돌아오지 않았다. 1110일 아침, 현지 궁눙(工農) 파출소에서는 쉬구이샤의 언니에게 통지를 내려, 쉬구이샤가 이미 응급처치를 받았는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며 시신은 현지 장의사에 있다고 말했다.

구치소 경찰은 책임을 미루기 위해 쉬구이샤를 아는 아무개에게 위증을 하도록 하여 그녀가 병으로 사망했다고 말하도록 했다. 감방을 관할하는 교도관 황쥔(黃俊)은 여러 차례 이 사람을 찾아 담화했는데, 맨 마지막에 이 사람은 위증을 했다. 그 후에 황쥔은 아주 오래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그 후, 구타한 죄수 류샤오천은 56개월의 판결을 당해 랴오닝성 여자감옥(원 다베이(大北)감옥)에 갇혔다. 위증을 한 그 사람은 26개월의 판결을 당했는데, 그는 줄곧 다베이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맨 마지막에 20174월에 황쥔은 강제로 감방에서 납치돼 나갔다. 나갈 때 옷, 세척 용품, 현금카드 등을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악보를 입었다.

19997월 이래, 랴오양 구치소에서 이익의 부추김 하에 장쩌민의 박해 정책을 바싹 뒤따라 얼마나 많은 무고하고 선량한 민중을 박해한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모른다.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음은 천리이다. 천벌은 일찍이 시작되었다. 원성구(文聖區) 공안분국 국장 왕커신(王克新)은 얼마 전에 붙잡혔고, 원성구 법원 원장 판샤오쥔(苑小軍)2016년에 솽구이(雙規, 기율검사 부서가 입건 수사 대상으로 확정된 간부에 대해 실시하는 조치) 처분을 당했으며, 원성구 검찰원 검사장 쩡셴치(曾憲奇)2016년에 솽구이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원 훙웨이구 공안분국의 국장 양샤오둥은 2016년에 뇌혈전으로 사망했는데, 모두 그들이 파룬궁을 박해한 것 때문에 당한 악보이다.

원문발표: 2017515
문장분류: 대륙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15/3482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