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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싱안링 가오수잉, 박해로 사경에 이르러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다싱안링(大興安嶺) 지역 타허현(塔河縣) 파룬궁수련생 가오수잉(高淑英)은 2017년 4월 16일에 납치됐는데,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박해로 사경에 이르렀다.

22일 이른 새벽 2시가 넘어서, 한 무리의 국가보안 경찰은 강제로 가오수잉에게 지장을 찍고 서명시켜 이른바 ‘보석’해 가족들에게 업어서 집으로 데려가게 했다.

가오수잉이 강탈당한 집 열쇠, 프로젝터, 가방, 대법책, 300여 위안의 현금 등 개인 물품은 여태껏 아직도 타허현 국가보안대대 추이위즈(崔玉芝)에게 압수돼 있다. 가족이 가오수잉에게 옷가지를 가져다 주려해도 열쇠가 없어서 들어가지 못했다.

가오수잉은 타허현 3중학교 교사다. 1996년에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는 온몸에 병을 앓았는데 두통, 저혈압, 저혈당, 부인병, 출산 시기에 얻은 병 등으로 매일 몇 가지 약을 먹었다. 일 년 내내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며, 민간 처방을 사용했는데, 의학 집안에서 태어난 가오수잉의 병은 나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점점 심해졌다. 그 후 출근마저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온종일 이혼한다고 야단이었다. 집안 돈은 전부 치료에 사용했다. 가오수잉은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누가 나에게 건강을 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어느 우연한 기회에 ‘전법륜(轉法輪)’을 받았다. 한번 다 읽은 후 그녀는 책속의 홍대한 불법(佛法)에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일찍이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접촉하지 못한 것 때문에 유감스러웠다. 대법을 수련해 얼마 되지 않아 가오수잉의 온몸의 병은 신기하게 전부 완쾌됐고 가정도 화목해졌다.

1999년, 장쩌민(江澤民)은 파룬궁 창시자에 대한 질투에서 파룬궁을 겨냥한 일련의 모함과 박해를 발동했다. 가오수잉은 단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란 진실한 말을 하려한 것 때문에 여러 차례 납치, 감금, 정신병원 납치 등을 당했다. 최근에 또 다싱안링 타허현 국가보안대대에 의해 납치돼 6일 동안 감금당했는데 생명이 위험해져서야 풀려났다.

2017년 4월 16일 점심 12시가 넘어서 가오수잉은 타허 1중학교 앞 아파트 구역에서 진상 CD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혔다가 타허 젠서(建設) 파출소의 한 남성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는 즉시 경찰차를 불러왔다. 몇 명 남자 경찰은 가오수잉을 경찰차에 강제로 태우고 타허현 젠서파출소로 끌어갔다. 3명의 남자 경찰은 연속 끌고 잡아당기며 가오수잉을 경비실로 끌고갔다. 그중 두 경찰의 태도가 악랄했다. 가오수잉이 아무리 진상을 알려 선행을 권고해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들은 가오수잉의 가방 안 진상 자료를 전부 바닥에 놓고 사진을 찍었으며 가오수잉의 기본 상황을 심문했다. 가오수잉이 협력하지 않자 그들은 곧 국가보안대대에 전화를 걸었다.

국가보안대대장 추이위즈(崔玉芝, 여, 40여 세)는 한더강(韓德剛), 우중첸(吳忠謙)을 데리고 들어왔다. 들어오더니 가오수잉을 알아보고 곧 타허 공안국 2층의 국가보안 사무실로 납치했다. 가오수잉은 강제로 몸수색을 당했고 가방안 물건은 전부 강탈당했다. 게다가 강제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국가보안은 두 대의 경찰차를 몰고 불법적으로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추이위즈는 특별히 전화를 걸어 차량 한 대를 불러다가 물건을 실었다. 그들은 프린터, 현수막, 대법책, 목걸이 호신부, 사진 종이, A4용지, 색상천, 잉크 등을 강탈했는데 기본적으로 보이는 대로 다 가져갔다. 가오수잉이 학습반을 조직함에 사용한 프로젝터, 중성펜, 큰 자, A4용지, 책표지 등도 그들에게 강탈당했다. 이번 가택 수색으로 가오수잉은 대략 몇 만 위안(열쇠가 추이위즈에게 압수당한 이유로, 구체적으로 얼마인지는 모름)의 손실을 입었다. 가택 수색에 참여한 사람은 우중첸, 추이위즈, 한더강, 리시중(李喜忠) 등이다. 신젠(新建) 지역 사회의 주임이 서명해 증언을 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가오수잉을 심문실로 끌고 가서 강제로 정보를 채집했다. 가오수잉은 쇠의자에 채워져 심문을 받았다. 그녀가 그들이 물어보는 말에 대답하지 않자 그들은 곧 자기 마음대로 심문표를 썼다. 저녁 9시가 넘어서 그들은 가오수잉에게 타허현 병원으로 가서 신체검사를 받도록 했다. 가오수잉이 가지 않자 우중첸은 곧 수갑을 꽉 조였다. 손목은 즉시 붉게 부어올랐다. 추이위즈는 수갑을 좀 느슨하게 하고는 우중첸, 한더강과 함께 가오수잉을 경찰차로 억지로 태워 병원으로 데려갔다. 혈압을 다 검사하고 심장을 검사해야 할 때 가오수잉의 배는 경련을 일으켰고 심장이 괴로웠다. 심전도를 하지 못했는데 의사마저 계속 검사를 받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추이위즈는 억지로 그들에게 검사하도록 해서 가오수잉을 억지로 쇠침대 위에 눌러놓고 여러 시간 가슴과 배를 드러내놓게 했다. 추이위즈와 한더강은 한편으로는 검사하면서 한편으로는 우중첸과 일부 사람을 모욕했다. 17일 이른 아침에 이르러서야 심장을 전부 검사했다. 가오수잉은 고혈압, 심근혈 부족 증상이 나타났다.

아침 5시가 넘어서 추이위즈는 급히 가오수잉을 구치소로 납치해 갔다. 이때 가오수잉은 이미 그들에 의해 학대를 당해 걷기 어려웠다. 구치소에서는 그녀의 몸이 허약해 수감하지 않았다. 그러나 추이위즈는 강제로 가오수잉을 안으로 보냈는데 구치소에서는 핍박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구치소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두 남자 경찰은 매우 악랄했다. 추이위즈와 그들은 가오수잉에게 “구덩이를 파서 널 북산에 묻겠다”라고 겁을 주었다. 가오수잉은 정보 수집에 동의하지 않았다. 우중첸과 추이위즈는 마음대로 몇 글자를 쓰며 강제로 가오수잉을 감방으로 집어넣었다. 구치소는 경찰과 죄수가 24시간 동안 가오수잉을 보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가오수잉은 납치된 후 줄곧 물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밥 한 숟갈도 먹지 않았다. 구치소에 감금한 이튿날 저녁, 가오수잉은 갑자기 병업 상태가 나타나 전신에 경련을 일으켜 침대 위에서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타일로 된 바닥에서 한밤중까지 누워있었다. 구치소의 사람이 발견한 후 타허공안국에 석방시킬 것을 제안했다. 가오수잉의 몸은 이미 위독했다. 그러나 공안국과 국가보안대대의 추이위즈는 비준하지 않았다. 추이위즈는 또 한더강을 데리고 가서 신문을 진행했다. 가오수잉이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자 그들은 감방에 들어와 신문을 진행했다. 가오수잉이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났다.

가오수잉은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으며 또 메스껍고도 괴로웠다. 4월 21일, 가오수잉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꼬박 하루 동안 끊임없이 헛구역질을 했다. 먹을 수도 없고 마실 수도 없었던 이유로 토해낸 것은 모두 흰 거품이었다. 머리는 흐리멍덩하고 숨을 몰아쉴 수 없었다. 배가 매우 괴로워 침대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고통스레 이리저리 뒹굴었다.

4월 21 저녁 9시가 넘어서, 구치소의 당직 경찰은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감옥 의사를 불러왔다. 이때 가오수잉의 눈에서는 황색 액체가 흘러나와 눈꺼풀이 붙어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리고 입술이 갈라터지고 말하는 것도 미약해 이미 생명이 위험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석방하지 않고 가오수잉이 침대 위에 누워 몸부림치게 내버려두었다. 3명의 형사죄수는 가오수잉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그중의 한 죄수는 또 슬리퍼를 들고 가오수잉을 몇 대 때렸다. 게다가 이불로 가오수잉의 머리를 덮었는데 제지하는 경찰이 한 사람도 없었다. 한 죄수는 차마 볼 수 없어서 작은 플라스틱병을 들고 가오수잉의 입 안에 물방울을 떨어뜨려 입을 적셨다. 이때 가오수잉은 물을 마실 수 없었다.

4월 22일 이른 새벽 2시가 넘어서 두 명의 남자 경찰과 감옥 의사가 왔다. 그들은 가오수잉에게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일어나지 못했다. 그들이 가오수잉을 입구로 끌고 갔을 때 한 무리의 국가보안 경찰이 왔다. 그들 3~4명은 강제로 가오수잉의 손을 잡아당겨 지장을 찍은 후 경찰차 위로 들어다가 가족에게 업혀 돌아가게 했다.

(역주: 박해에 참여한 인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4월 2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25/3461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