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허강시(鶴崗市) 싱산구(興山區) 정부의 간부이자, 파룬궁수련생 치신핑(祁欣平)은 2008년에 유랑생활을 한 수련생에게 거처를 찾아주어 납치됐고, 7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치신핑은 “충심으로 어느 날 내가 뜨겁게 사랑하는 이 국토에서 자유롭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할 수 있고, 더욱 많은 사람이 대법 중에서 이로움을 얻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치신핑은 그녀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자술했다.
1. 대법을 기쁘게 얻어 불은에 푹 빠지다
나는 1996년에 기쁘게 파룬따파를 얻었다. 이 고덕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심신에 이로움을 얻어 마치 딴 사람으로 바뀐 듯 했고,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대법을 얻기 전에 나는 늘 감기에 걸렸고, 폐렴, 심장병, 피부염, 담결석, 신장염, 류머티즘 등의 질병을 앓아 해마다 많은 돈을 써야 했을 뿐만 아니라, 또 아주 많이 고생해야 했다. 더군다나 어린애가 어릴 적에 체질이 약해 늘 감기, 질병에 걸렸다. 나는 아이를 돌봐야 했을 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해야 했고, 또 직장일도 해야 했다. 게다가 남편과 남편 가족과의 모순이 끊이질 않아 늘 남편과 다퉜다. 가정환경이 매우 불안정했던 이유로, 나는 심신이 피곤해져 매우 고통스러웠다. 혼인은 파괴될 지경에 이르렀고, 어떤 때에는 앞날에 희망을 걸지 않고 소극적으로 세상을 비관하였다.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 모순에 마주치면 자신을 찾았고, 주동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해 주었으며, 현숙한 아내가 되려고 노력하여 남편의 가족에 대해 자신의 가족을 대하듯이 대해주었다. 남편이 집에 없을 때, 설 명절에 마주치면 주동적으로 시댁에 돈을 보내고 물건을 보내주었다.가정은 화목하게 변했다.근무 중에 다투지 않고 빼앗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다.그리고 직장 진급 등의 문제에서도 자연스럽게 됨에 따라 동료들도 모두 내가 좋고, 마음이 바르다고 말했다.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병은 모두 완쾌되었고 정신과 체력도 넘쳐흘러, 걸을 때 온몸이 가벼워 심신이 유쾌했다.
2. 박해를 당해, 간난신고를 다 경험하다
마침 내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에 잠겨있을 즈음, 1999년 7월에 장쩌민(江澤民)은 광적으로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발동해, 전국의 선전기구를 움직여 거짓말 날조, 비난 등의 수단을 이용해 나의 사부님을 모독했고, 전국의 폭력 기구를 움직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대법제자를 박해했다.이로 인해 많은 대법제자는 공직에서 해고당했고 이산가족이 되었으며,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고 집과 가족을 다 잃었다.
2008년, 나는 유랑생활을 하는 수련생을 위해 거처를 찾아주어 허강시 싱안분국에 의해 납치됐다.게다가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당했는데, 우리 집의 컴퓨터, 프린터, 사부님 법신상, 대법서적 및 자료 등 개인 물품을 강탈했다.
불법 고문 과정 중, 나는 구타, 욕설, 세워두는 고문, 전기봉으로 전기충격 가하기, 샤오바이룽(小白龍, 고무관)으로 구타하기, 끈으로 묶기, 수갑 채우기 등 학대를 당했다.어느 한 번, 나는 의자위에 꼬박 이틀 동안 채워져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잠을 자는 것을 허락받지 못해 마음과 몸이 지칠 대로 지쳤다.그런 다음 허강 제2구치소로 납치됐다.제2구치소에서 끈적끈적하고 제대로 익히지 않고, 또한 모래가 있는 옥수수떡을 먹었으며, 진흙과 모래, 파리가 섞인 기름이 약간도 없는 배추 감자국을 마셨다.
2008년 말, 싱안법원에서는 나에 대해 억울한 7년의 불법 판결을 내렸고, 직장(싱안구 정부)에서는 불법적으로 나에 대해 싼카이(三開, 공직에서 면직시키고, 당적에서 제명하고, 간부대오에서 제명했음)처분을 내렸다.
2009년 5월, 나는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11감구역에 감금돼 강제적인 전향박해를 당했다. 몇 명의 바오자(수감 감시인원)는 윤번으로 나를 지키며, 강제로 나에게 사부님을 비난하고 대법을 비난한 시디를 보게 했고, 강제로 태도를 표시하도록 핍박하며 강제로 전향박해를 진행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워두는 고문, 화장실 가기 제한, 세수하는 것 제한, 물 마시기 제한, 밥 먹는 것 제한, 슈퍼 가는 것 금지 등의 학대를 진행했다.매일 아침 5시가 넘어서부터 줄곧 저녁 9시가 넘을 때까지 작은 나무걸상에 앉혀놓았는데, 타일 한 장의면적이었다. 손은 반듯하고 평평하게 다리 위에 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움직이기만 하면 욕했고, 졸지 못하게 했는데, 일요일과 설 명절조차 가만두지 않았다.당시의 도장(道長, 죄수 우두머리)은 몹시 날뛰면서 늘 사부님을 모독하고 모욕을 가했으며, 전향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을 구타하고 욕했다.
2009년 9월, 나는 7감구역으로 옮겨졌다. 낮에는 작업실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 어떤 때는 또 면봉을 비비거나 혹은 모자를 기웠다.어떤 때에는 밤에 단지 2~3시간밖에 잠을 잘 수 없게 되어 낮에 작업실에서 일을 할 때 어떤 때에는 눈앞이 컴컴해져 넘어졌다.그리고 강제로 우리에게 다른 기공을 연마시켜 시범을 진행하도록 핍박했고, 매일 저녁에 강제로 쭈그려 앉혀져 지명 당했는데, 쭈그려 앉지 않으면 죄수가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파룬궁수련생과 죄수사이의 관계를 부추겼다.심지어 바오자에게 형기를 줄여주지 않는다고 바오자를 위협했는데, 이로 인해 어떤 죄수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욕설을 퍼붓고 구타했다.어떤 때에는 부대장 스겅후이(史耕輝)도 출석을 부르는데 참여하러 왔다.
감옥장은 경찰, ‘유다’(전향했고, 아울러 다른 사람을 전향함에 참여한 파룬궁수련생)와 바오자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으로 그들에 대해 진급, 감형을 진행하여, 그들을 꾀어서 공개적인 대회에서 파룬궁 사부님과 대법을 비난하고, 대법 수련생에 대해 욕설을 퍼붓게 했으며 또 비열한 수단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대하게 했다. 예컨대 전향하지 않거나 전향한 후 또 일을 하지 않음을 성명하고 출석을 부르지 않는 수련생에 대해 인신공격을 진행했고, 모욕, 무차별폭력, 머리카락 잡아당기기, 장시간 동안 벽을 마주해 세워두기 고문, 작은 나무걸상에 앉히기,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세수하고 화장실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속박옷을 입히기, 침대위에 묶어놓기, 음식물 주입, 입안에 걸레 밀어 넣기, 독방에 가두기 등의 수단으로 괴롭혔다.
3. 감옥에서 걸어나와 여전히 제한받다
감옥에서 나온 후, 2016년 5월에 나는 기차에 앉아 있다가 불법적인 몸 수색을 당했는데, 불법적으로 ‘전법륜(轉法輪)’을 강탈했다.
‘헌법’ 제36조에서는 국민은 종교신앙자유가 있다고 명확하게 규정했다. 그러나 나의 신앙자유는 여전히 제한받았다. 어느 때에 내가 뜨겁게 사랑하는 조국에 진정한 신앙자유가 있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간절하게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4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14/3456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