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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바오화, 톈진 여자감옥에서 혹독한 구타와 능욕을 당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톈진 보도) 톈진(天津) 파룬궁수련생 궈바오화(郭寶花)는 2015년 6월에 3년의 불법적인 형을 선고받았는데, 톈진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했고, 이후 죄수복 입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교도관과 바오자(包夾, 감시 인원)에게 모욕과 혹독한 구타 등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교도관 쉬리잉(許麗穎)은 궈바오화의 뒷등 부분의 옷을 가위로 자르고는 강제로 옷을 모두 찢었다. 5감 구역안에서 궈바오화는 타월 하나로 윗몸을 두르고 아래 몸은 팬티만 입고 있게 되었다. 낮에 죄수들이 모두 일하러 갔을 때에도 대대장 위전(於珍)은 궈바오화가 화장실 가는 것도 가로막았는데 이렇게 죄수복을 입도록 핍박했다. 그러나 매일 아침과 저녁에는 궈바오화도 죄수와 함께 화장실도 가고 세수도 할 수 있었는데 목적은 전 감구역의 죄수가 궈바오화가 죄수복을 입지 않은 모습을 보도록 하고 그녀를 모욕하기 위해서였다.

생리가 있을 때에도 교도관들은 같은 팀의 죄수가 궈바오화에게 화장지를 포함한 어떤 물건이라도 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리를 타고 생리가 흘러내렸다.

교도관은 또 연좌의 방법을 사용해 궈바오화와 같은 감방의 사람들을 휴식하지 못하게 하고, 매일 12시간의 강제 노동을 시켰다. 어떤 때에는 더욱 길게 일을 했는데 11시, 12시까지 했다. 이튿날에는 또 예전대로 일을 할당 받아야 했다. 죄수들은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모든 원한을 궈바오화의 몸에 전가했다. 바오자 추이훙위(崔紅玉)는 몹시도 악독하게 궈바오화를 때리거나 욕을 해댔다.

어느 일요일 오전에 형사범 궈리잉(郭莉瑩, 파룬궁수련생 박해에 최선을 다 했다는 공으로 감형 받음)의 인솔 하에 팀의 전체 죄수가 궈바오화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며 땅바닥에 넘어뜨렸다. 소년범 한치웨(韓琪月)는 궈바오화의 머리칼을 잡고 귀뺨을 때렸고, 형사범 닝샤오화(寧小花)는 발로 궈바오화의 얼굴을 힘껏 밟았다. 사기 계약범 뤼산(呂珊)은 연속 걷어차고 밟으면서 궈바오화에게 죄수복을 강제로 입혔다.

궈바오화는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장시간 세워두는 고문과 잠을 못 자게 하는 고문을 당했다. 조금만 눈을 감으면 바오자가 곧 손가락으로 입술을 튕기거나, 신문지를 감아서 만든 몽둥이로 머리를 때렸다. 매일 오직 그녀에게 만두 하나와 짠지 한 조각을 주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궈바오화의 얼굴빛은 회백색으로 변했고 조금의 혈색도 없었다. 이 악행들은 모두 감시 카메라의 감시 하에 발생했고, 교도관 위전이 감시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형사범들은 감형을 받기 위해, 약간의 은혜라도 얻기 위해, 더욱 거리낌 없이 궈바오화를 박해했다.

재연도(演示圖):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해 강제로 ‘전향’시키다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1999년 7월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후, 궈바오화는 2001년, 회의에 참석하라는 유인을 당했는데 속임수로 그녀를 납치해 세뇌반에 가뒀다. 그 후 1년 6개월의 노동교양박해를 당했다. 톈진(天津) 반차오(板橋) 여자노동교양소에서 잔인한 박해를 당했고 더욱이 1년 더 형기를 연장하여 박해 당했다. 경찰은 그녀를 매달아 채우고, 작고 검은 방안에 1개월 넘게 가뒀다. 경찰은 그녀를 방열기(난방스팀)에 채워두거나 또 두 팔을 극한까지 늘려 따로따로 두 개의 방열기에 채워놓았다. 그런 이후 또 강제로 그녀를 세워놓고 손목을 채웠다. 2003년 4월 1일, 경찰은 또 여러 개의 전기봉으로 동시에 그녀의 전신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녀를 나무 우리 안에 여러 날 동안 가두기도 했다.

2014년 12월 9일, 궈바오화는 베이징에서 파룬궁 진상 전단지를 붙이다가 베이징 차오양구(朝陽區)공안분국 경찰에게 납치돼 불법적인 감금을 당했다. 2015년 6월 19일에 가족에게 통지하지도 않은 채 비밀리에 3년의 억울한 형을 선고 당했다.

원문발표: 2017년 2월 2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2/28/3436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