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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 지저우시 검찰원 소송 취하하고 주창잉은 무죄 석방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 보도) 허베이(河北) 지저우시(冀州市) 파룬궁수련생 주창잉(酒長迎)과 왕위안성(王元昇)은 2016년 10월 20일 악의적인 신고를 당했는데 지저우진 파출소 경찰과 110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가택 수색을 당했으며 지저우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2017년 1월 17일 오전, 허베이 헝수이(衡水) 지저우구 법원에서는 1층 제2심판법정에서 파룬궁수련생 주창잉, 왕위안성에 대하여 불법적인 심문을 진행했다.

2017년 2월 10일, 지저우구 검찰원에서는 소송을 취하했고, 주창잉은 무죄로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검찰원은 주창잉이 계절에 한 번씩은 지저우진 파출소에 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저우구 검찰원에서 주동적으로 소송을 취하하고 또 주창잉에 대해 무죄 석방을 한 이상, 무엇 때문에 좋은 일을 끝까지 하지 않는가? 꼬리를 남기는 것 역시 유감이 아닌가? 파룬궁수련생이 진선인(眞善忍)을 믿음은 잘못이 없으므로, 누구에게 보고하러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전에 주창잉이 납치당했을 때 가족이 지저우 공안국으로 석방을 요구하러 갔었는데 경찰은 지금은 보석심리가 없다고 말했다. 또 지저우진 파출소는 말하기를 그들이 내건 현수막 내용이 ‘하늘이 중공을 소멸한다.’는 것인데 이것만으로도 형을 판결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주창잉은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매일 10시간의 강제노동을 했다. 주창잉과 왕위안성 중에 누군가가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있었기 때문에 법원과 검찰원은 좀 일찍 판결하려 했다. 보내버린 뒤에는 일이 생겨도 그들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었다.

법원에서는 원래 2016년 11월 22일에 주창잉, 왕위안성에 대해 불법적인 법정심문을 하려고 정했는데, 무슨 원인인지는 모르지만 또 개정을 늦추었다. 법원에서는 개정하기 전인 2017년 1월 16일 모의하여 1월 17일에 왕위안성, 주창잉에 대해 불법적인 법정심문을 진행했다.

법정심문은 오전 9시부터 시작되었다. 베이징에서 온 변호사 리슝빙(黎雄兵), 둥첸융(董前勇)은 모두 두 명의 당사자를 위해 무죄변호를 했다. 왕위안성과 그의 가족 변호인도 무죄변호를 했다.

주창잉도 법정 심문을 진행하기 전 회의에서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법정 심문을 진행할 때, 주창잉은 다만 연공하여 이로움을 얻은 상황만을 말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그들 두 사람의 자신에 대한 변호와 변호사의 무죄 변호를 열심히 들었다.

밍후이왕 2월 4일의 보도에 따르면, 가족이 법원으로 갔다가 법정 심문 보고가 이미 나온 것을 보았는데, 주심 판사는 변호사와 가족의 의견은 채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다. 가족은 주창잉이 한 일체는 모두 헌법의 보호를 받는 것이며 변호사가 진행한 무죄의 변론취지가 이점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변호사는 주심판사 류리솽(劉麗爽)에게 오늘 진행한 이 일체의 박해는 앞으로 죄의 증거가 될 것임을 알려주었다.

지저우시 지저우진 주양촌의 주창잉은 이미 고희의 노인이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그는 성질이 무척 급해 가정에 많은 모순을 조성했다. 더군다나 삼차 신경통, 경추골증식, 심각한 부정맥, 허리와 등이 눌려 다친 증상, 압박성 허리 골절 증상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앓았다. 때문에 그는 정신적 압박과 질병의 시달림 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998년 3월, 주창잉은 다른 사람의 소개로 파룬궁을 접촉했는데, ‘전법륜(轉法輪)’을 읽으면서 ‘진선인(眞善忍)’의 법리에 깊이 끌렸다. 이로부터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를 깨닫고, 그는 인(忍)을 배워 닦기 시작하며 자신의 나쁜 성질을 개변하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가정이 화목해졌고, 치료할 약도 없던 질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좋은 날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주창잉도 뒤이어 베이징으로 가서 청원하며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는 어렵고 힘든 길에 올랐다.

17년 동안, 주창잉은 여러 차례 납치 박해를 당했고, 두 차례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노동교양소에서 심각한 박해를 당한 까닭에 그는 노동능력을 거의 상실했다. 그러나 그의 파룬따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원문발표: 2017년 2월 2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2/23/3434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