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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세 노인 11년 불법 징역형 당해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 보도) 랴오닝(遼寧)성 링위안(淩源)시 샤오청쯔향(小城子鄉) 샤오장쯔촌(肖杖子村)에 들어서면 한곳이 무너져 가는 문간방을 볼 수 있다. 지붕 위에는 온통 잡초와 작은 느릅나무가 자라나 있고, 방안은 이미 여러 곳이 무너졌다. 녹이 슬어 얼룩덜룩하고 삐걱거리는 쇠문을 밀어젖히면 먼저 시아에 들어오는 것은 작은 수림이다. 마당에는 키가 넘게 자란 잡초와 사발 둘레보다 더 굵은 느릅나무가 뒤죽박죽한데, 잡초와 작은 나무를 꿰뚫고 세 칸 되는 무너진 본채, 우물 및 잡초와 흙에 반쯤 묻혀 어지럽게 널려 있는 달구지 등 농기구를 볼 수 있는데 전체 마당은 특별히 처량하고 적막해 보인다.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이 집 주인은 도대체 어떻게 됐기에 이렇게 집안이 쇠락했습니까?”라고 묻는다.

쌀쌀한 바람 속에서 이곳의 전부는 마치 우리에게 주인의 불행을 하소연하는 듯 했다. 이것이 바로 파룬궁수련생 류뎬위안(劉殿元)의 집이다.

1, 79세 노인이 11년 불법 징역형을 당하다

류 노인은 다섯 차례 납치에 7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불법적으로 4년 6개월의 억울한 판결을 당했는데 이로 인해 유랑생활을 했다. 79세 고령인 그는 재차 랴오닝 젠핑현(建平縣) 법원에 의해 11년 6개월의 불법적인 억울한 징역형 판결을 당했다. 몸이 극도로 쇠약하고 어떠한 수감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 상황에서 랴오닝 선양(瀋陽)시 제1감옥으로 보내져 불법 감금당했다.

2016년 4월 7일, 이른 봄추위가 살을 에는 듯 했는데 머리칼이 희끗희끗하고 피골이 상접하며 수갑을 찬 노인이 경찰에게 납치돼 비틀거리며 젠핑 법원에 들어섰다. 그가 바로 파룬궁수련생 류뎬위안이다. 그는 가족을 만나자 울면서 “경찰이 줄곧 거짓말을 조작했어. 분명 링위안의 여동생 집에서 붙잡혔으나 그들이 증거가 없자 기어이 책과 자료가 가득한 방안에서 붙잡았다고 말했어’라고 울면서 말했다. 붙잡히기 전 몸이 건장하고 사유가 민첩했던 노인이 짧은 몇 개월 사이에 박해로 피골이 상접할 정도까지 됐다. 그는 기억력이 감퇴돼 앞 구절을 말하면 뒷 구절을 잊었는데 재판할 때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까 두려워 사전에 변호하는 말을 다 써놓았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그에게 재판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다. 끌어갈 때에야 그날 재판을 진행함을 알게 되어 변호문을 지니고 오지 못했다.

류뎬위안은 젠핑 법원의 리옌(李岩) 판사에 의해 1심에서 1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죄명은 ‘법률 실시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령의 노인이 무슨 능력이 있어 국가의 법률 실시를 파괴했는가. 그리고 또 도대체 어느 조목의 법률 실시를 파괴했는지도 모른다.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 중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노인은 항소하겠다고 명확히 말했지만 가족이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자 항소권이 박탈당했다.

2017년 초, 가족은 랴오닝 선양 제1감옥으로 가서 류뎬위안을 면회했다. 올해 80세인 노인의 몸은 매우 쇠약했고 이미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었는데, 죄수가 휠체어를 밀고 나와 딸과 면회시켰다. 아내 류위팡(劉玉芳)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경찰 측은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내는 류뎬위안의 건강을 매우 걱정했다.

2. 최근 몇 해 동안 류뎬위안 일가족이 겪은 비극

1999년 9월, 류뎬위안은 집안에서 누나와 함께 책을 보다가 샤오청쯔(小城子) 파출소에 의해 납치됐고 단식으로 항의하며 일주일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누나는 극도의 충격을 당했던 이유로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2000년 6월 14일, 류뎬위안은 집안에서 샤오청쯔 파출소에 의해 납치돼 60일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다.

2000년 6월 30일, 아내 류위팡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지 않자, 샤오청쯔 파출소의 류쥔천(劉俊臣)은 경찰을 끌고 와 그녀를 납치해 보름 동안 불법 구류시켰다.

2001년 7월 31일, 류뎬위안과 아내 류위팡은 또 납치됐다. 네이멍구(內蒙古) 닝청(寧城) 공안국장 류싱리(劉興理), 링위안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대장 푸옌링(付豔玲), 샤오청쯔 파출소장 류쥔천과 결탁해 납치를 진행한 것이다. 류뎬위안은 네이멍구 닝청현 공안국으로 납치됐다. 닝청 국가보안 경찰은 류뎬위안에게 “당신은 랴오닝 사람입니다. 만약 7, 8천 위안을 내놓으면 우리는 석방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류뎬위안은 집안에 돈이 없다고 말했다. 7~8일이 지나서 또 류뎬위안에게 여전히 연마하는지 물었는데 그는 연마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 “당신이 연마하지 않고 ‘삼서(수련 포기 각서)’를 쓰기만 하면 석방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전히 연마한다면 징역 판결을 내릴 겁니다”라고 협박했다. 결국 류뎬위안은 7년 불법 징역 판결을 선고받아 네이멍구 츠펑 4감옥에 감금돼 박해를 당했다. 이때의 그는 이미 65세였는데 매일 과부하 노동을 10여 시간을 해야 했고 어떠한 보수도 없었다. 다른 사람과 말을 했다는 이유로 교도원 창하이이(常海義)에게 발견돼 뺨을 6대나 맞기도 했다. 게다가 감옥안 정신병원 독방으로 보내 고문도구인 ‘사망자 침대(死人床)’ 위에 대자형으로 묶어놓았는데, 꼬박 7일 동안 묶어놓아 전신이 모두 손상을 입었다. 그리고 강제로 정체불명의 약물을 매번 한 줌씩 먹어야 했다. 10여 종류인데 매일 두 차례씩 합해 300여 일 동안 먹었다. 원래 체중이 75kg이던 류뎬위안은 7년 박해를 당한 후 크게 수척해졌다.

酷刑示意图:死人床(死刑床)

고문 설명도: ‘사망자 침대’

아내 류위팡은 링위안구치소로 납치됐는데 3개월 후에 단식으로 몸이 허약해진 이유로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지 3개월이 지나자 또 샤오청쯔 파출소에 의해 납치됐다. 2002년 1월에 랴오닝 마싼자(馬三家) 교양원으로 보내져 3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동시에 그녀의 딸도 납치당해 10여 일 동안 불법 구류처분을 받은 후 풀려났는데 그때 아이는 겨우 16세였다.

류위팡은 마싼자에서 박해로 몇 차례나 각혈했고 숨을 잘 내쉴 수 없게 됐다. 그리고 물을 주어도 넘기지 못했고 이름을 불러도 대답할 줄 몰랐다. 경찰과 감옥 의사는 오히려 그녀에게 자비로 외부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으라고 했다. 그러나 이때 그녀의 카드에는 80전밖에 남지 않았다.

14세인 아들은 링위안 다허난(大河南) 중학교에서 공부했는데 농가에서 세 들어 살았다. 겨울방학이 되어 기쁘게 집으로 돌아왔으나 한 사람도 없었고 차디찬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제야 어머니와 누나도 납치됐음을 알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부모가 모두 납치당하자 집안의 두 어린이는 살기 막막했다. 16세인 딸은 핍박에 못 이겨 학업을 그만두고 자신과 남동생을 먹여 살렸다. 남동생이 세 들어 살고 있는 농갓집은 석탄을 살 돈이 없었던 이유로 14세인 아이는 방안이 모두 얼음이고(수도꼭지가 동파돼 온 바닥에 물이 흘렀음), 서리가 가득한 집안에서 숙박했다. 동북의 겨울은 찬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게 추웠다. 물그릇마저 구들 위에서 모두 얼음덩이가 됐다. 아이들은 매일 저녁에 차고 굳은 이불속에 웅크리고 밤새 벌벌 떨었다.

같은 연령대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 품속에서 응석을 부렸으나 이 16세 소녀는 오히려 학업을 그만두고 집을 부양하는 중임을 감당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늘 이러한 정경을 보았다. 소녀는 매일 이른 아침 3시에 일어나 미약한 촛불을 켜고(돈이 없어 전기를 잇지 못했음) 차디찬 문간방 안에서 전병을 구웠다. 그런 다음 자전거를 타고 20여 리 밖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가서 팔았다. 매번 일주일이 되면 또 자전거를 타고 30여 리밖에 있는 링위안 다허난으로 가서 남동생에게 돈을 보내 공부하고 연명하도록 했다. 소녀는 혼자 땅을 일구고 파종하며 마차를 몰고 추수를 하며 농사를 지었다.

추위와 더위가 오가고, 봄이 가고 가을이 왔는데 이러한 나날을 3년이나 보냈다. 3년 동안 소녀는 자신과 남동생을 먹여 살렸을 뿐만 아니라 또 어머니에게 6백 위안을 저축해 드리기까지 했다. 2004년 7월 9일, 아들딸이 밤낮 간절히 기다리던 류위팡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차비가 없었던 이유로 두 아이는 줄곧 어머니를 면회하러 가지 못했다.

2004년 8월 5일, 막 집으로 돌아와 1개월도 되지 않은 류위팡은 류뎬위안을 면회하러 츠펑 감옥으로 갔다. 가정 형편이 곤궁해 차비가 없었던 이유로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이웃들마저 그녀에게 “노정이 너무 먼데 여자가 혼자 길을 떠나면 안전하지 못해요”라고 하며 가지 말라고 권했다. 그러나 류위팡은 남편이 감옥에서 당하는 괴로움을 깊이 알고 3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해 몹시 걱정됐다. 그래서 건량, 물과 10위안 밖에 없는 돈을 갖고 자전거를 타고 길을 떠났다. 15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츠펑에 도착했다. 13개의 큰 다리, 4백 여리의 노정을 지나왔으나 교도관은 면회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애걸해도 소용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지친 몸을 끌고 남편을 크게 걱정하며 자전거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나이가 반백에 가까운 류위팡은 8월 초의 혹서를 무릅쓰고 자전거를 타고 배가 고프면 건량을 먹고 목이 마르면 대충 물을 마시면서 잠시라도 쉬지 못했다! 날이 어두워 질 때 황량한 야외에서 머물까 두려웠고 휴식하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몇 차례나 체력이 감당하지 못할 때면 이를 악물면서 지탱해 왔다! 츠펑에 도착했을 때 머리카락과 전신의 옷은 이미 땀에 흠뻑 젖었고 땀방울은 붉게 쬐어진 얼굴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렸다. 자전거에서 내리면 다리는 거의 걸을 수 없었다. 기나긴 800리 길이었다! 이 선량한 부인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고 얼마나 가슴 아픈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경찰은 ‘면회를 허락하지 않는다’며 그녀가 겪은 고생과 마음 가득한 희망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다. 여인숙 주인은 그녀를 동정해 본래 10위안인 숙박비를 6위안만 받았다.

20여 일 후, 류위팡은 손에 돈이 없었다. 남편을 보러 가기 위해 그녀는 산으로 가서 몇십 근 되는 대추를 따서 20여 리 밖 도시로 가서 팔았는데 모두 67위안(대추는 한 근에 20전임)을 팔았다. 이 돈을 지니고 두 번째로 자전거를 타고 류뎬위안을 보러 감옥에 갔다. 류뎬위안은 아내가 자전거를 타고 그를 보러 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대성통곡했다. 동시에 아내는 또 감옥 안에서 박해를 감당하고 있는 그에게 확고하게 살아가도록 용기를 주었다.

2008년 7월 31일, 사경에 이른 류 노인이 형기가 만기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피골이 상접한 그는 허리를 펼 수 없었고 매일 끊임없이 각혈해 보는 사람들은 모두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2010년 10월 12일, 류뎬위안 부부는 동시에 납치됐는데 아내 류위팡은 억울한 5년형을 선고받아 랴오닝성 여자감옥으로 보내졌다. 류뎬위안은 링위안 국가보안대장 천즈(陳志), 젠핑(建平) 국가보안대장 장제(姜傑)에 의해 젠핑구치소로 납치됐다. 그 후 젠핑 법원 판사 리옌은 4년 6개월의 억울한 판결을 선고했다. 그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탈출해 유랑생활을 했고 이때부터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집은 무너지고 정원은 수림으로 됐으며 집안 토지는 황폐해져 150여 그루의 과수는 딸 사람이 없게 됐다. 그러나 류 노인은 나이가 많아 일할 곳이 없었으며 주거 부정한 생활을 하며 몹시 어렵고 고통스러웠다. 외지에서 일하는 두 아이는 집으로 와서 이러한 것을 보고 몹시 상심했다. 그들은 감옥에 가서 어머니를 면회할 때 끊임없이 목 놓아 울었다.

2015년 11월 9일, 마침 링위안의 친척집으로 손님으로 갔던 류뎬위안은 젠핑 공안국에 의해 납치됐다. 어떠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증거를 날조해 11년 6개월 불법 징역 판결을 내렸다. 항소를 요구해도 상대하는 사람이 없었고 감옥에 불법 감금됐다.

류뎬위안은 1995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 전에는 몸에 여러 질병을 앓았는데 예컨대 좌골신경통, 위장과 십이지장 궤양, 만성 간염, 신경쇠약 등이다. 본인도 의학을 배운 적이 있어 여러 차례 질환을 연구한 적이 있다. 게다가 선양 제4의학전문가를 찾아 치료를 받았으나 뚜렷한 효과가 없었다. 파룬궁을 수련해 짧은 시간 내에 온몸의 병이 전부 사라졌고 아울러 엄격히 대법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 아래에 한 가지 사례만 들겠다.

2015년 7월, 류뎬위안 부부는 교통사고가 발생해 전동 오토바이가 부딪혀 부서졌고, 아내는 이마가 다쳤고 왼쪽 다리가 골절됐다. 류뎬위안은 왼쪽 다리에 분쇄성 골절 증상이 나타났고 허리를 다쳐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급히 온 120의 의사와 교통경찰은 차량 주인에게 적어도 의료비 등 30만 위안을 배상하라고 했다. 그러나 두 부부는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에서도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차량 주인은 감격해 “저는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가산을 모두 탕진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때의 류뎬위안은 이미 78세였다. 사람들은 모두 노인이 일단 골절되면 완치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 부부는 약을 먹지 않고 주사를 맞지 않았으며 연공을 견지해 짧은 1개월 후 전부 완쾌됐다. 하지만 이렇게 선량한 노인은 몇 달 후 재차 납치돼 11년 6개월 불법 징역 판결을 당했다.

누군들 연로할 때가 없고 누군들 두 부모님이 없겠는가? 법률 집행기관의 사람이면서도 어찌하여 단지 자신의 신앙을 견지해 단지 좋은 사람으로 되려한 팔순 가까운 노인에 대해 이렇게 무거운 판결을 내리는지 모르겠다. 선량한 사람들이 정의의 목소리를 발해 구원을 손길을 내밀어 본래 양생을 잘해 천수를 누려야 할 이 노인이 일찍 집으로 돌아와 만년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길 간청한다.

(역주: 이 사건에 참여한 일부 인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2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2/17/3432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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