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추이펑란, 10여 년의 유랑 이후 불법적인 15년의 중형을 당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2016년 12월 26일, 하얼빈(哈爾濱) 제2구치소는 파룬궁수련생 추이펑란(崔鳳蘭)에게 판결문을 보냈는데 형기가 15년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법원 직원이 추이펑란에게 서명하도록 재촉했으나, 그녀는 오히려 차분하고도 과단성이 있게 “나는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죄가 없습니다. 이것은 불법적인 박해입니다!”라고 말했다.

20년 동안 파룬궁을 수련하며 진선인(真善忍)을 믿었는데, 17년 동안이나 박해를 당했다. 불법 감금, 노동교양, 혹독한 구타와 세뇌를 당했으며 유랑생활을 해야 했고, 직업을 잃었으며, 가정이 파괴됐다. 추이펑란은 많은 곡절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줄곧 견지하며 박해를 반대했다. 그녀는 당연히 뒤집어 씌워진 이 일체를 승인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정기(正氣)는 그녀의 수련에서 비롯한 것이다.

崔凤兰

추이펑란(崔鳳蘭)

‘우연’한 기적

1996년의 어느 날 아침, 추이펑란은 예전처럼 산책하러 나갔다가 마침 몇 명의 젊은이가 행인에게 파룬궁을 소개하는 장면과 마주쳤다. 헤이룽장(黑龍江) 대학교의 학생이 파룬궁의 질병에 대한 효과 등 신체건강의 이로움과 신기한 효과 등을 설명했다.

학생들의 단순하고 진실한 설명을 그녀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다년간의 심장병, 류머티즘 관절염, 인후염, 유선염, 위염, 부인병은 그녀를 온종일 괴롭혔는데, 어디나 모두 불편했다. 그녀는 어쨌든 약을 먹어야 했다. 또 신경쇠약증상이 있어 일 년 내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병을 하나, 둘 떨쳐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시험 삼아 파룬궁을 연마해보려고 했다.

대법은 인연이 있는 사람을 구도한다. 추이펑란은 수련한 이후 짧은 며칠 사이에 모든 병이 없어졌다! 기적이었다. 몸도 좋아지고 심정도 시원하고 후련했다. 예전에는 남편이 집안일을 감당했는데 이젠 그녀가 쉽게 해낼 수 있었다. 남편은 기뻐하며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파룬궁은 정말 좋다고 말했고 친척, 친구에게 파룬궁을 연마하라고 추천했다.

건강회복을 직접 체험한 그녀는 대법에 대해 공경하는 마음과 확고한 의지가 저절로 생겼다. 행동으로 진선인(真善忍)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헤이룽장성 무장경찰 하얼빈 지휘학교의 도서관 관리 직원이었는데 성실하게 일하며 더욱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독방에 감금당하고 공직에서 해임되다

1999년 7월 20일, 장(江) 씨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정치적으로 극히 민감한 그녀의 직장-무장경찰학교에서는 계속 추이펑란에게 심한 압력을 가했다.

어느 날, 학교 정치처의 간사 저우중웨이(周忠偉)가 추이펑란을 찾아서는 파룬궁을 연마하는지, 텔레비전을 보았는지 물으며 파룬궁수련을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극심한 정신적 압력을 느꼈으나 그녀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기적을 생각하며 파룬궁은 잘못이 없으며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주변의 동료들은 모두 기이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가장 가깝게 지내던 친구도 이유 없이 그녀와 거리를 유지했는데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2000년 4월 어느 날, 추이펑란이 출근하는데, 동료 류리핑(劉利平)이 그녀를 훈련처 사무실로 불러갔다. 그녀를 속여 빈 교실로 데려가 20여 일 동안이나 불법 감금했다. 학교의 책임자는 그녀를 집에 가지 못하게 하고 그녀의 친척과 친구들을 불러와 그녀가 수련을 포기하도록 압박했다.

그녀는 타협하지 않았다. 2000년 5월 18일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잃은 것이다.

도보 청원과 불법 구류

2001년 1월, 톈안먼 광장에서 분신자살조작(偽火) 사건이 발생했다. 파룬궁에 대한 심각한 모함으로 모든 매체가 다 파룬궁을 토벌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여러 차례의 정치 운동처럼 사람들은 이렇게 우롱당하고 이용당했고, 파룬궁에 대한 박해 분위기는 더욱 살벌해졌다.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불법적인 감금을 당했고 심지어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추이펑란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려고 했다. 기차에 앉아서 가면 쉽게 공안에게 들킬 수 있어 다른 두 명의 수련생과 도보로 베이징에 가 청원하기로 했다. 6월의 어느 날 그녀들은 출발했다. 그녀들 3명은 도로 옆에서 잠을 잤고 신발이 다 해지고 발은 물집이 생겨 몹시 아팠으나 서로 격려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지린성 지린시 치자쯔(七家子) 인근까지 걸어갔을 때, 길에서 경찰에게 조사를 받았는데 추이펑란은 치자쯔 파출소에 붙잡혀 하얼빈 다오리구(道裏區) 안허(安和) 파출소로 이송되었고 불법 구류를 당했다.

추이펑란은 하얼빈 제2구치소에 20여 일 동안 불법 감금됐다. 위생 조건이 악렬하여 머리에는 이가 생겼고 무더운 여름날인데도 경찰은 그녀들에게 물도 마시지 못하게 했다. 파룬궁수련생이 감옥규정을 외우지 않으면, 경찰은 잠을 못 자게 하고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했다. 만약 화장실에 가면 세워두는 고문이나 몇 시간 동안 쭈그려 앉히는 고문을 가했다. 온종일 한 가지 자세로 앉혀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당시 불법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이 특별히 많아 감방에는 잠잘 곳도 없었다.

노동교양소 내에서의 비난과 혹독한 구타

2001년 7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추이펑란은 난강구(南崗區) 회사 거리의 유비카(郵幣卡) 시장에서 작은 장사를 했다. 접촉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렸다.

그러나 노점을 연지 며칠이 되지 않아 4~5명의 경찰이 그녀를 쑹화장(松花江) 파출소로 납치했는데, 말로는 어떤 사람이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고 파룬궁을 선전했다고 신고했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11시 넘어서 그녀는 또 구치소로 보내졌고 감금됐다. 구치소 안에서 그녀는 20여 일 동안 단식했다. 경찰은 강제로 그녀에게 음식물을 주입했다.

2001년 8월 14일, 추이펑란은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극히 악명이 높은 하얼빈 완자(萬家) 노동교양소에 감금됐다.

완자(萬家) 노동교양소는 매우 사악한바, 이미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해 살해했다. 경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종일 윤번으로 담화하며 수련을 포기하도록 공갈하고 협박했다. 포기서를 쓰지 않으면 체벌, 구타, 날조한 파룬궁 비난 영상 보기 등 여러 가지 폭력을 행사하며 괴롭혔다.

酷刑演示:凳子砸头

고문 재연: 걸상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2001년 8월 21일, 추이펑란 등의 수련생들이 감옥규정을 외우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죄수에게 구타당했다. 당시 추이펑란은 머리가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했는데 머리에 오리알만 한 혹이 여러 개 생겼고 입은 테이프로 봉한 채였다. 또 경찰 왕민(王敏)은 걸상으로 추이펑란의 머리 부위를 내리쳤다. 입술이 터졌고 왼쪽 윗부분 입에 큰 상처가 나 피가 끊임없이 흘렀다. 밥도 먹을 수 없었으며 지금까지도 입가에 상처가 남아있다.

유랑생활의 불안과 피곤

자유를 얻은 후에도 신분증이 없었는데 추이펑란은 여러 차례 호구 소재지 안허 파출소에 가서 신분증명 수속을 밟으려 했으나 경찰 스멍(施萌)은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추이펑란의 호구를 타지로 옮겨가도록 했다. 추이펑란은 지금껏 신분증도 없다.

경찰의 교란을 피하려고 추이펑란은 집을 떠나 주거가 부정한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거주할 집이 없고 생활 내원도 없으며 신분증까지 없었는데도 파출소에서는 늘 셋집을 조사하며 파룬궁을 연마하는지 물었기 때문이었다. 2007년 5월, 집안에 사람이 없었는데도 샹팡구(香坊區) 신청(新城) 파출소 경찰은 자물쇠를 망가뜨리고 방안에 들어와 추이펑란의 임시 거주지에 들이닥쳤다. 대법 서적과 개인 물품을 강탈해갔는데, 가치가 대략 4천여 위안(약 67만 원)이나 되며 지금까지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유랑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정법(政法)계통에서 근무하는 그녀의 남편까지 정신적 압력과 상해를 입었고 핍박을 이길 수 없자 그녀와 이혼했다. 어린 딸은 모친의 가호를 잃었고, 예전에 금실이 좋던 부부는 낯선 사람이 됐다.

불법 납치와 억울한 재판

2016년 5월 6일, 샹팡구 공안국 국가보안경찰은 추이펑란을 납치했다. 그녀가 밖에서 일정한 수량의 마스코트 장신구를 주문했는데, 이 작고 정교한 장신구 윗면에 ‘진선인(真善忍)’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 납치한 이유였다.

이 국가보안경찰들의 손안에 있는 법률은 정말 황당하다. ‘진선인(真善忍)’이 새겨져 있는 장신구는 아름다운 축복을 전하는 것인데 어찌 ‘죄의 증거’일 수가 있는가? 만약 윗면에 ‘가악투(假惡鬥)’라고 새겨져 있으면, 국가보안직원이 추이펑란을 납치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 아닌가? 그럼 법률은 ‘가악투’를 인정한단 말인가?

2016년 11월 18일, 샹팡구 법원에서는 추이펑란에 대한 비밀 공판을 열었는데 추이펑란의 친척, 친구 누구에게도 통지하지 않았었다.

법정에서 추이펑란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진정한 범죄자는 장쩌민(江澤民) 무리임을 지적했다. 동시에 그녀는 국가보안경찰이 개인의 거처를 불법으로 수색하고 13만 위안(약 2,200만 원)쯤 되는 현금과 저축통장을 강탈했다고 신고하며 법정에서 조사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법원과 검찰직원은 대강대강 사건을 종결했다. 12월 26일에는 소위 1심 판결서(15년 형)를 송달했다.

2017년 1월 2일, 추이펑란의 변호사는 EMS으로 샹팡구 법원 판사 마스눠(馬實諾)에게 상소 자료를 우편으로 부쳤다. 그러나 마스눠는 악의적으로 독직하며 수령했다는 서명을 거부했다.

상소기한의 마지막 날인 1월 6일 오후, 추이펑란의 기대를 짊어지고 변호사는 직접 하얼빈으로 갔다. 마침내 상소 자료를 직접 마스눠의 손에 건넸고, 마스눠로 하여금 거절할 방법이 없게 했다.

파룬궁에 대한 다년간의 탄압 중, 공검법 직원들이 통상적으로 따른 것은 ‘공안에서 반찬을 만들고 검찰원에서 반찬을 나르며 법원에서 반찬을 먹는’ 협력의 원칙이다. 이로 인해 범죄 사슬이 형성되어, 많은 파룬궁수련생에게 극심한 상해를 조성했다.

그러나 인심은 각성하고 있다. 현재 사악의 우두머리 분자 저우융캉(周永康), 보시라이(薄熙來), 리둥성(李東生), 쉬차이허우(徐才厚) 등은 하나씩 징벌을 당했다. 일부 공검법(公檢法) 직원들은 진정하게 자신의 생명과 미래를 위해 고려하기 시작했고, 전국 여러 곳에는 연이어 파룬궁수련생을 석방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박해는 이미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추이펑란의 박해에 참여한 샹팡구 공검법 직원들에게 권고한다. 즉시 선량한 선택을 하여 자신의 위치를 잘 선택하기 바란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을 위한 것이다!

원문발표: 2017년 1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7/3409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