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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아의 눈물

[밍후이왕] 친황다오(秦皇島) 푸닝(撫寧)시 뉴터우야(牛頭崖)에는 작은 케이크 점이 있었다. 2014년 4월 22일은 이 평범한 가게에서 어두운 기억으로 남았으며 사람들도 기억을 떠올리며 슬픈 눈물을 흘린다.

주워온 한 쌍의 자매

이 작은 가게의 주인은 왕하이진(王海金)이라 부르고 아내는 루자룽(盧家榮)이다. 두 아이가 있는데, 누나 메이롄(美蓮)은 13세이고 여동생 징롄(淨蓮)은 9세다. 두 어린 자매는 이 인간세상으로 와서 정말 모든 무서운 일을 겪었다!

왕하이진 부부는 모두 만혼에 속한데다 줄곧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2004년, 왕하이진은 고향의 한 친척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는 연속 여자 아이를 몇 명을 출산했는데, 이번에 아내가 임신한 아이가 또 여자 아이고 이미 6개월이 되었다며 또 낙태를 하려 했다. 왕하이진은 급히 “절대 낙태시키지 마세요. 낳아서 우리에게 주세요.”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은 후 한편에서 듣던 아내는 남편을 원망하며 “당신은 왜 혼자 다른 사람의 아이를 달라는 결정을 내려요? 나도 스스로 아이를 낳으려 하는데요.”라고 말했다. 왕하이진은 아내에게 “낙태는 살생입니다. 누구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이미 6개월인데, 살아있는 생명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그날로 왕 씨 집으로 왔다. 이후 10년이 지났다. 당시 영아는 이미 아름다운 소녀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또 생겼다. 그들의 한 친구 부부는 줄곧 아이가 없었는데 2007년 가을에 한 소녀를 길렀다. 그러나 집으로 안고 돌아온 이튿날, 이 아이에게 선천적인 질환이 있음을 발견했다. 친구는 몇 해 동안 아이가 없었는데 또 병이 있는 아이를 안고 왔다며 돌려보내려고 결정했다. 그러나 아이의 생모는 집안 상황이 어렵고 또 산아제한 규정을 초과해 낳은 아이이기에 키울 힘이 없다며 무슨 말을 해도 이 아이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막 태어난 이 ‘거무칙칙’한 어린 생명을 보며 왕하이진은 또 아내와 “누가 병이 있는 아이를 원하겠어요? 우리가 집으로 안아옵시다! 우리는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한 사람이 연공을 하면 전 가족이 이로움을 얻습니다.’ 이 아이도 우리 집으로 와야만 좋아질 것입니다.”라고 상의했다. 이렇게 이 아이도 오게 됐다.

그러나 친척, 친구들은 온통 반대했다. “당신들 두 부부는 왜 그렇게 멍청한가, 이 짐을 가져오다니, 지금은 보기에 불쌍하지만 이후 번거로운 일이 많아질 거야.” 게다가 당시 가정 상황은 늙은 부친은 막 교통사고로 자리에 몸져누워 있었고, 모친도 다리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친정아버지도 치매에 걸려 그들 집에서 요양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전에 기르던 아이가 겨우 3살이므로 역시 시시각각 신경을 쓸 때였다. 가장 어려운 것은 막 안아온 아이가 어려서 24시간 극진히 지키며 키워야 하는데 그 어려움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를 잃다

2014년 4월 22일, 이 가정에 불행한 일이 닥쳤다. 가장 왕하이진이 갑자기 친황다오 푸닝현 국가보안경찰에게 납치된 것이다. 아이들은 충격을 당해 목 놓아 울면서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며 법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은 무슨 근거로 아버지를 붙잡습니까?”라고 외쳤다.

당시 사건에서 이 선량한 아버지 왕하이진은 영원히 세상을 떠났다. 그는 두 여아가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목숨을 구해준 선량한 사람이다. 왕하이진은 푸닝현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한 3개월 만에 시달림을 당해 심장쇠약과 부종 등 증상이 나타나 사경을 헤맸다. 푸닝 국가보안 경찰은 그제야 가족을 불러다가 이른바 보석 수속을 밟아주었다. 왕하이진은 집으로 돌아와 겨우 2개월 만에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王海金遗照'

왕하이진이 생전에 찍은 사진

'王海金生前照片从看守所出来的第三天照片'

왕하이진이 생전에 구치소에서 나온 3일째 찍은 사진

어머니가 납치되다

이어진 나날에 경찰은 매일 가게와 주택 단지 입구에서 미행하고 감시하고 있었다. 매일 아이는 공부하러 가려 해도 감히 문을 열지 못하며 밖에 경찰이 있을까 봐 무섭다고 말했다. 두 아이는 무용과 수업을 받았는데 집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버지가 붙잡혀 갔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공공버스에 앉아야 했으며 또 차를 바꿔 타야 했다. 어느 하루는 차에서 내린 후 날이 어두워져 어린 두 아이는 극히 두려웠다. 여동생이 “무서워, 무서워”라고 말하자 언니는 여동생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안했다. 두 자매는 손을 꼭 잡은 채 함께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이 가족을 괴롭히고, 감시하며, 미행하고, 뒤를 밟았는데 이렇게 어린 아이들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조성했다.

2016년 8월 4일, 이른 아침 6~7시 경, 어머니 루자룽은 친황다오 기차역에서 친황다오시 공안, 국가보안경찰에게 납치됐는데 며칠 후에 행방불명이 됐다. 그 후에야 문의를 거쳐 친황다오 구치소에 감금당했음을 알게 됐다. 루자룽과 동시에 납치당한 사람은 또 량쥔(梁君), 바이쉐쑹(白雪松) 등 4명이다.

마음씨 선한 사람도 납치되다

아이의 아버지가 막 박해로 사망해 깊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를 보탰다. 왕씨의 두 아이 및 80여 세 시어머니는 매일 초조해하며 눈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두 아이는 모두 공부를 하고 있다. 또 같은 학교를 다니지 않아 부모님의 보살핌이 필요한데 마중하고 보내주는 사람이 없고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었다. 한 마음씨 착한 사람인 바이쉐쑹(白雪松)은 두 아이를 보살펴 주었다는 이유로 뜻밖에 경찰에게 납치됐다. 왕 씨 집안 노인과 아이는 정말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파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국내외의 정의로운 사람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무고하고 선량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중국공산당 및 장쩌민 범죄 집단의 잔여세력의 야만적인 박해를 저지하도록 호소한다.

문장발표: 2016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13/3376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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