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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자팡’ 가게는 왜 항상 닫혀 있는가?

글/ 쑤이저우(粟沂州)

[밍후이왕] 산둥성 멍인(蒙陰)현 둬좡(垛莊)진의 재래시장에는 천, 이불, 커튼을 만들어 파는 ‘청신자팡 가게(誠信家紡店)’가 있었다. 가게 주인 부부는 착하고 친절하며 솜씨도 좋은데 가격까지 저렴해 장이 서는 날이면 청신자팡’에는 항상 손님으로 북적였다. 그런데 한 달 넘게 문이 닫혀있어 오는 사람마다 궁금해 하고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사실 그들 부부가 지금 매우 불행한 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손님들은 나중에 알게 됐다.

이 가게의 주인은 50여세의 자오촨원(趙傳文), 아내는 류펑허우(劉鳳厚)인데 둬좡진 쓰허우와촌(寺後窪村) 사람이다. 두 사람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작년 말, 자오촨원과 동료 저우광밍(周光明)은 린이(臨沂) 란산구(蘭山區) 신차오(新橋) 재래시장에서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신차오 파출소에 의해 강제로 납치됐다. 불법 납치돼 란산구 국가보안대대로 넘겨져, 불법 구금 박해를 당한 후 허둥구(河東區) 구치소에 감금돼 박해를 당했다. 아내 류펑허우는 소식을 들은 후 황망한 마음으로 딸과 함께 구치소로 서둘러갔다. 불법 구금당한 가족을 면회시켜달라고 요구했는데 교도관은 무례하게 거부했다. 그 후 란산구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에서는 죄를 뒤집어 씌워 자오촨원을 박해하려 했다. 어찌할 방도가 없는 상황에서 류펑허우는 어쩔 수 없이 법에 따라 인권 변호사를 선임해 남편을 위한 무죄변론을 진행했다. 이 정의로운 행동은 공검법 악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악인들은 법을 어기고 마음대로 하려 했으나 변호사의 변호로 함부로 죄를 뒤집어 씌워 억울한 판결을 내리지 못했다. 그들은 또 불법 재판 날짜와 장소를 자주 바꿨다.

불법 재판을 진행하는 초기, 류펑허우는 남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마을에서 주민들에게 무죄 판결을 위해 서명을 받아 공검법에 제출했다. 그러나 그녀와 마을 사람들은 린이 610, 공검법과 멍인현 610, 국가보안의 광적인 보복을 당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2016년 7월 31일, 멍인현에 한 무리의 국가보안 사복경찰과 둬좡진 파출소 경찰이 갑자기 쓰허우와촌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촌 간부 왕치성(王啟生)에게 대접을 잘 받은 후 술기운을 빌어 마을에서 마이크로 큰 소리를 지르며 서명에 참여한 주민들을 촌 사무실로 모이도록 해 한 사람씩 불법 심문을 진행했다. 주민들이 협력하지 않자 공직자들은 직무에서 해고한다, 양로금 지급을 중지한다, 최저보장금을 취소한다는 등으로 주민들을 위협하고 끊임없이 들볶아 기어이 주민들에게 ‘잘못을 시인’하게 했다.

이때 류펑허우와 동생의 아내는 마을사람들이 더 이상 연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용감하게 나서서 다시는 마을사람들을 난처하게 굴지 말라고 했다. 결국 파출소에서는 그녀를 속여 류펑허우를 납치했다. 직접 불법 행정 구류처분을 내렸다(그의 동생 아내는 벗어났음). 추석 전, 또 그녀를 불법 체포하려 했다. 그녀가 불법 형사구류를 당한 기간 동안 란산구 공검법은 기회를 틈타 자오촨원과 저우광밍에 대해 불법 재판을 진행해 자오촨원은 2년 형, 저우광밍이 1년 6개월 형의 억울한 판결을 당했다. 이 일로 인해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집에 계신 부모는 몹시 상심하고 아이는 마음이 불안하고 무서워 공부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게를 찾아왔던 사람들과 시장에서 같이 장사하던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 수 있냐며 공산당을 비난하면서 “무엇 때문에 국민에게 자유를 주지 않습니까? 신앙은 죄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좋은 사람을 모함합니까?”라고 말하며 분개했다.

10여 년 동안 자오촨원과 아내 류펑허우는 너무 많은 억울함과 고초를 겪었다.

1996년, 파룬궁이 현지에서 널리 전해진 기간, 자오촨원 부부 두 사람은 운 좋게 대법을 얻어 수련했다. 마음을 닦아 자신을 바로잡아 심신에 적잖은 이로움을 얻었다. 더욱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복을 나누게 하기 위해 자오촨원은 자발적으로 보도원을 맡아 사심 없이 잘 섬겼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아내도 대법에 들어섰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수련생들도 모두 그를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1999년 늦여름, 정세가 돌변해 파룬궁은 전례 없는 박해를 당했다. 자오촨원 부부는 사업과 집을 다 버리고 다른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베이징으로 가서 청원했는데 바른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멍인현 610과 둬좡진 정부 폭도 리슈푸(李秀福), 팡스민(房思敏), 보판하이(卜凡海), 팡더량(房德良) 등에게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여러 차례 불법 구류처분, 가택 수색과 납치, 고문 세뇌, 가족 연루, 재물 갈취를 당했다.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쳐 재물을 약탈했는데 집안의 텔레비전, 오토바이, 삼륜차, 천과 옷, 양식과 기름, 백양나무, 가구, 자오촨원의 아버지의 돼지 세 마리 등 모든 재산을 깡그리 강탈당했다. 7개 방의 문과 창문, 대문을 전부 뜯어갔고, 창문 위의 유리, 밀가루 항아리도 전부 산산조각내고 천정까지 뜯어내 그야말로 집은 온통난장판이 되고 벽만 남아있는 폐허가 됐다. 게다가 정원도 완전히 없애버리고 대문은 돌로 쌓아놓는 등 처참하게 짓밟아 버리고 자오촨원 부부에 죄를 뒤집어씌우려 모략을 꾸미자 두 사람은 더 이상 핍박에 못 이겨 먼 타향으로 떠났다.

2002년 초여름 멍인현 ‘610’은 불행하게 마수에 걸린 류펑허우에 대해 강제로 3년 노동교양 처분을 내려 산둥성 제1여자노동교양소에 집어넣어 괴롭혔다. 이듬해 당국에서는 또 대량의 경찰력을 조직해 자오촨원을 불법 납치해, 불법 재판을 진행해 자오촨원에 대해 13년 억울한 판결을 내렸고 비밀리에 산둥성 감옥에 집어넣었다. 옥중에서 그는 각종 비인간적인 학대(독방에 가두기, 폭력적인 ‘전향’, 오랫동안 수면박탈 등등)를 당했다. 어떤 때에는 연속 꼬박 나흘 동안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세워두기 고문을 당해 장딴지가 부어올랐고 또 굶기기 등 고문을 당했다. 교도관은 넌지시 다른 죄수를 시켜 그에 대해 무차별 폭력을 가하고, 철조망으로 후려치거나 나무 몽둥이로 그의 허벅지와 발바닥을 때리고, 합판으로 그의 늑골을 사납게 긁고, 칫솔 손잡이로 그의 손가락을 찧는 등 고문을 가했다. 이로 인해 자오촨원은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자오촨원 부부가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후 가족들은 그들을 위해 너무 많은 처참함을 감당했다. 사방으로 다니며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눈물로 나날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은 전부 가족들이 바쁜 중에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모, 시부모는 모두 나이가 많은 사람들인데도 어린아이를 챙기고 학업을 걱정하며 고생했다. 날마다 자오촨원 부부의 안위를 걱정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몇 해 동안 부모들은 머리가 세고 얼굴 주름도 깊어졌다. 불쌍한 아이는 본래 부모님 품속에서 어리광을 부려야 했으나 오히려 헤어진 시련을 감당해야 했다.

2005년, 류펑허우는 치욕을 참으며 억울한 옥살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안은 상처투성이였고 쓸쓸하고 처량했으며 참상으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수련생들의 도움 하에 이 여성은 연약한 어깨로 산산조각이 난 집을 지탱했다. 그녀는 일체 쓰라리고 아픈 눈물을 마음속에 묻고 새롭게 시작했다. 이전의 천 장사를 다시 시작해 벽을 수리하고 집을 고쳤으며 입고 먹는 것을 아껴 아이 공부를 뒷바라지하고 생활도 날로 좋아졌다.

2012년 10월 18일, 생사의 시련을 경험한 자오촨원은 마침내 감옥에서 걸어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이별의 시련을 경험한 가정은 다시 모이게 되어 가족이 단란히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이로부터 두 부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자면서 부지런하게 집안일을 돌보고 장사했다. 잘하려고 애쓴 아들도 대학시험에 합격했고 집안 형편도 차츰 이전보다 좋아지는 기미가 보였다. 2014년, 두 부부는 또 둬좡진 재래시장에서 ‘청신자팡’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오픈했다. 두 사람은 정교하고 세밀한 솜씨와 착한 마음으로 경영해 장사는 비교적 잘 됐다. 이는 이 가정으로 하여금 또 예전의 생기를 회복하게 했다. 그러나 이때 자오촨원의 마음속에는 시종 가장 큰 걱정이 있었다. ‘사건의 억울함을 밝히지 못하고, 많은 수련생이 여전히 감옥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으며, 많은 세인이 여전히 중국공산당 당국의 거짓말에 중독됐기에’ 그는 양심과 정의감으로 안일한 생활을 누리는 것을 포기 했다. 작년 말, 그는 저우광밍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린이 란산구 신차오 재래시장으로 가서 사람을 구하고 진상을 전했다. 그러나 또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내는 남편을 구출하기 위해 거듭 장쩌민 잔여 세력의 모함에 직면하게 됐다.

자오촨원 부부 두 사람은 또 중국공산당에게 납치됐다. ‘청신자팡’이 오랫동안 문이 닫혀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두 사람이 또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당하자 집안 노인들은 고통 속에서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이 거듭 억울함과 고난을 당하자 마을사람들은 놀라고 두려워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이 범죄조직, 사교는 거듭 이 선량한 가정을 산산조각 내고 가족에게 고통과 시달림을 주며 많은 무고한 세인을 박해하고 있다.

(역주: 관련 기관 및 인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10월 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0/4/3358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