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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당한 선하이룽, 현재 다롄 난관링 교도소에서 박해당해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파룬궁진상을 스팟 방송한 이유로 18년의 불법 징역판결을 당한 안산시(鞍山市) 파룬궁수련생 선하이룽(申海龍)은 현재 다롄(大連) 난관링(南關嶺)교도소에 불법 감금돼 이미 교도소에서 기나긴 14년을 보냈다. 9월 22일, 가족은 그를 면회하러 갔다가 교도관에게 거부당했다. 교도관의 말에 의하면, 선하이룽은 한창 심한 박해를 당하고 있다고 했다.

'申海龙及孩子'

선하이룽(申海龍) 및 아이

선하이룽은 올해 39세이다. 중국공산당이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 등을 이용해 천지를 뒤엎을 듯이 거짓말을 퍼뜨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모독할 때, 그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더욱 많은 선량한 국민으로 하여금 대법 진상을 이해하게 하고자 자신의 안위와 생사를 포기하고, 2002년 2월 16일, 장리(張莉) 등 4명의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유선텔레비전에 스팟 방송으로 진상을 알렸다.

2002년 4월, 선하이룽은 랴오양시(遼陽市)에서 납치됐다. 2003년 10월에 중국공산당 법원에 의해 18년의 억울한 징역판결을 당해 다롄 와팡뎬(瓦房店)교도소에 불법 감금됐다. 6년 동안 박해를 당한 후, 2008년에 다롄 난관링 교도소로 옮겨졌다. 파룬궁수련생 장리는 2002년 3월 19일에 납치됐고, 같은 해 8월 27일에 박해로 사망했다.

2016년 9월 22일, 선하이룽의 가족은 다롄 난관링 교도소로 가서 면회하려다가 거부당했다. 교도관이 말하기를, 선하이룽은 ‘교도소 규정을 위반한 이유로’ 엄한 관리를 당했다고 했다. 교도소에서 엄밀하게 소식을 봉쇄했기 때문에, 가족은 선하이룽의 구체적인 상황을 상세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17년 동안 파룬궁수련생들이 교도소에서 박해당한 사실을 폭로한 이유로, 사람들은 선량하고 무고한 파룬궁수련생의 옥중의 고통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또 ‘교도소 규정’은 인권을 위반하고 인성을 박해하고 법과 규율을 준수하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파룬궁수련생은 선하이룽을 포함해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에 따라 대법을 수련한 것으로, 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죄가 없다. ‘교도소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권리이다.

선하이룽이 교도소에서 박해당한 사실

2003년 10월, 선하이룽은 18년 동안 불법 징역판결을 당한 후, 먼저 다롄 와팡뎬 교도소로 납치됐다. 2008년, 국제적인 조사에 대처하기 위해 와팡뎬 교도소에서는 불법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을 따로따로 이송했는데, 선하이룽은 다롄 난관링 교도소 2구역으로 이송됐다.

그곳에서 선하이룽은 노예노동의 시달림을 당해, 강제로 옷을 만들었는데,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을 했다. 게다가 세뇌 박해를 당했다. 난관링 교도소의 악독한 경찰은 위세를 부렸다. 어느 한 번은 뜻밖에 선하이룽 부모의 집으로 뛰어가 소란을 피우며, 누가 아직도 수련을 하는지를 알아보았다. 또한 가족을 협박해 교도소로 가서 ‘교육 전향’을 시키려고 했다.

다롄 난관링 교도소는 극히 악명 높은 소굴로, 그곳으로 옮겨진 덩타(燈塔) 파룬궁수련생 바이허궈(白鶴國)는 잔인한 박해로 사망했다. 안산 파룬궁수련생 왕훙난(王洪楠)도 역시 난관링 교도소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선하이룽이 박해를 당했을 때, 그의 아이는 겨우 두 살이었고 아내는 체질이 약하고 잔병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노인에 의지해 어렵게 나날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아버지가 생각나면 곧 사진을 보면서 울었는데 마음이 찢어지듯 슬프게 했다.

박해 관련 기관과 직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9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29/3356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