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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의 슬픔과 기쁨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종합보도) “가을이 왔다. 얼마나 온 가족이 모여 앉고 싶은 추석인가! 하지만 나는 몰래 학교로 가서 아들에게 몇 근의 월병을 줄 수밖에 없었다. 계단 입구에서 아들은 나를 보더니 웃었다. 그 웃음은 즐거운 웃음이었고, 행복한 웃음이었다. 그것이 유일하게 부성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상봉 시간은 짧았다. 몸을 돌려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만감이 교차했다.”

이는 내몽고 파룬궁 수련생 마칭하이(馬清海)가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슬픔’ 속에 ‘기쁨’을 느꼈던 추석을 서술한 것이다. 박해를 피해 그는 최근 3년간 16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텐진대학 우수학생 양훙(楊宏)과 아내 장야후이(蔣雅輝)의 남다른 추석

위 사진 속의 양훙(楊宏)과 장야후이(蔣雅輝), 젊고 유망한 이 한 쌍의 부부는 자신의 신앙을 견지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 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박해 당했다. 2015년 추석, 함께 감옥에 갇혔지만 만나지 못하는 부부는, 몇 미터 떨어진 곳 철 난간 바깥에서 서로 바라보게는 해도 말은 한 마디도 못하게 했다. 반년 후 다시 만났을 때는 두 사람이 불법으로 재판당할 때였는데 그 시각에 현장에 있었던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중국 사람에게 추석은 한 자리에 모이는 명절이다. 일반적으로 중국 사람은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도 전화, 메시지로 가족에게 축복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과 가족은 천리 밖, 높은 담장 밖, 심지어 생사 밖에 있다. 박해 받는 파룬궁 수련생과 가족에게 추석은 설상가상으로 더욱 외롭게 했고, 억울한 감옥살이는 고통과 슬픔을 더해 주었다.

비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추석 하루만에도 박해로 세상을 뜬 파룬궁 수련생이 10명(약 총 수량의 1/365)이다. 이런 숫자는 파룬궁 수련생이 중국공산당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고 폭로한 일부 사례이고, 실제 숫자는 이보다 더 많다. 1999년 7.20이후, 매 년 365일, 박해는 날마다 모두 발생했고, 추석의 슬픔과 기쁨은 하나의 축소판처럼 이번 재난의 깊이, 넓이, 잔혹함과 험악함을 반영했다.

추석날 납치 사건

1999년의 추석- “이날은 마침 아이의 백일이다. 내가 연행된 열 몇 시간 중 아이는 거의 절반을 울었는데 배고파 울다가 지치면 잠들었다. 아이의 고모는 갖은 방법을 다 써 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그저 아이를 안고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이는 바오딩(保定) 치수잉(齊淑英) 교원이 박해 원흉 장쩌민 고소장에 서술한 것이다. 그녀가 젖먹이 애기를 두고 납치된 후, 불법 심판을 받을 때 경찰은 젖이 불어 흘러서 젖은 옷을 바라보면서도 일말의 동정도 없이 비웃고 있었다.

2001년 추석 – “왕웨쿠이(王躍奎, 산둥 자오위안 정부인원)는 10여명을 대동하고 푸차이샤(傅彩霞)를 납치하려 문을 부수었다. 푸차이샤는 그것을 피해 도망가서 외지에서 6개월 떠돌이 생활을 했다.”

2003년 추석 – 랴오닝 차오양시의 리잉쇈(李英軒)은 갑자기 들이닥친 납치를 피하려다 넘어져 7군데서 상처를 입어 피가 흘렀다. 경찰이 간 후 가족은 그녀를 위해 근 7만 위안의 치료비를 썼다.

2004년 추석 – 간수 바이인시(甘肅白銀市)의 바이싼위안(白三元)은 팔을 비틀어 뒤로 수갑이 채워진 채 파출소로 납치돼 갔다. 차 안에서 악인은 고의로 수갑을 눌러 수갑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두 손과 손목이 부었다.

2007년 추석

“당시 나의 아내는 임신 8개월이었는데 경찰의 폭행에 크게 놀라 조산하게 되었다. 아이는 조산한데다 임신 때 놀라 지금 담이 아주 적고 내성적이며 낯선 사람을 두려워한다.”

비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밍후이왕에 폭로된 추석에 발생한 납치 사례는 해마다 모두 있다. 지금까지 추석에 납치된 파룬궁 수련생은 적어도 연인원 490명에 달하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달빛 아래서 폭행하다

최근 백여 명의 변호사가 파룬궁 수련생을 위해 거의 1천 회에 달하는 변호를 했다는 것은 외부에서 다 아는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다.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탄압은 어떠한 법률적 근거가 없으며, 파룬궁 수련생을 체포, 구류, 심판한 조직과 개인은 모두 죄를 짓고 있다.” 그러므로 심한 박해는 숨기고 덮어 감추어진 것으로 ‘캄캄한 밤에 발생한 것’이며, ‘문을 닫아걸고 비밀리에 감행하는 폭행’은 무척 많다. 하지만 “머리 석자 위에 신령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달마저도 이 일체를 증명할 것이다.

2002년 추석, “악인들은 어머니의 두 손에 수갑을 채워 큰 나무에다 밤새도록 매달아 놓아 손이 뻣뻣해져 물건을 쥘 수 없는데도 또 일을 하라고 핍박했다.” 이는 박해당해 죽은 파룬궁 수련생 런진후이(任金慧)의 아들이 장 고소장에다 어머니가 생전에 당한 한 가지 고문을 폭로한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또 죽음의 침대(死人床-아래그림)에서 고문당했고, 작은 의자에 앉고, 뜨거운 볕에 벌 서기, 혹독한 매를 맞아 까무러치기, 전기 충격기로 충격당하는 등…‥. 런진후이는 칠순을 앞두고 박해로 세상을 떠났다.

중국공산당 혹형 [사형침대]

역시 2002년 추석, 파룬궁 수련생 천웨이쥔(陳偉君)이 작은 감방에 갇혀 경찰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그녀는 20번 고문에 시달렸고, 37번 고문에 시달렸다. 2007년 6월 3일, 천웨이쥔은 원한을 품은 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날 저녁 우레가 울고 번개가 쳤으며 큰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하늘도 그녀로 인해 통곡했던 것이다.

2014년 추석, 파룬궁 수련생 왕젠후이(王建輝)는 헤이룽장 여자 감옥에서 두 손을 뒤로 비틀어 단단히 묶었고, 입은 넓은 테이프로 가려진 채 작은 의자에 밤새도록 앉은 채 잠을 못 자게 했다. 얼마 전 왕젠후이는 작은 감방에 갇혀 땅에 박힌 고리에 15일간 채워졌는데 하루도 풀어주지 않았고 식사, 수면, 대소변 모두 고리에 채운채로 했으며, 세수, 발 씻고, 이 닦는 것도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중국공산당 혹형 [고리]

지금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생에게 자행한 고문은 백 여 가지에 달하고, 매 한 가지 고문은 또 부동한 종류로 변화 발전하는데 도대체 몇 가지인가? 얼마나 잔혹한가? 이는 파룬궁 가족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다. 힘없는 기대는 가련한 염원으로 변한다. “오직 살아만 있으면 된다.”

가족의 눈물

“집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나는 늘 담이 작아 고독과 공포가 끊임없이 나를 엄습했다. 얼마나 많은 명절을 부모님도 없이 보냈는가, 추석에 나 혼자 월병을 들고 별이 총총한 하늘과 달을 바라보면서 타향에 계신 아버지와 감옥에 계시는 엄마를 그리워했다.” 박해 당하는 파룬궁 수련생의 자식에게는 고독 말고도 또 억울함이 있다. “밤마다 나는 모두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사실대로 말했기 때문이 아닌가? 진정한 신앙을 견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시민에겐 신앙 자유의 권리가 없는가? 파룬궁이 이렇게 좋은데 왜 박해 당해야 하나?”

이별 – 수많은 어린이의 가슴이 기다림과 고독으로 가득차다

2009년 추석날 밤, 엄마는 5살인 왠왠을 안고 울었다. 왠왠의 아빠인 산시 바오지시 (陝西寶雞) 파룬궁 수련생 후훙커(胡紅科)는 납치 당한지 반년이 되도록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왠왠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빠의 일로 몸져 누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왠왠의 외할머니 집에서는 엄마를 아빠와 이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왠왠은 말한다. “엄마는 사방으로 다니며 아빠를 찾고 있어요, 아빠는 치산 감옥에 갇혀 있대요. 저는 아빠를 만날 수 없어요.”

위의 글에서 언급한 추석에 납치당한 파룬궁 수련생 리잉쇈의 남편은, 아내에게 “당신이 감당한 것은 신체적 손상과 시달림이지만, 내가 감당한 것은 정신적 시달림으로서 당신 못지않소!” 이처럼 여러 해 시끄러움과 박해로 그녀의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노동 교화소, 감옥에 불법적으로 수감당해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도 만나볼 수 없었다.

본 글에서는 단지 추석에 발생한 일부 박해 사례만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나 17년 동안 소란, 불법수감, 고문, 박해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은 다 셀 수 없다. 그들의 가족은 또 얼마나 되는지, 그들 가족들은 또, 얼마나 가슴 찢기는 고통을 겪었을 것인가,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인가, 이처럼 막대한 빚을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갚아야 할지는 논의할 필요가 없다. ‘누명을 벗겨주고’ 가볍게 ‘해탈’을 할 자격은 더욱 없다, 이 막대한 죄악은 중국공산당이 해체될 운명을 결정한 것이다.

왜 견지하는가?

잔혹한 박해는 수없이 많으며, 고통당한 가족의 눈물 또한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파룬따파가 도대체 그들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기에 그들은 이렇듯 견지하는가?

밟혀서 부서진 월병, 딸의 눈물, 파룬궁 수련생이 감당한 것은 박해뿐만이 아니다

덩샤오버(鄧曉波)의 남편은 말했다. “1998년, 나의 아내 덩샤오버는 허약해서 빈혈, 요통, 부속 기염, 부인병 등 여러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친구의 소개로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파룬궁 수련을 통해 인생의 풀 수 없는 많은 수수께끼를 알게 됐고, 옳고 그름, 은혜와 원한은 모두 인연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겪었던 번거로움은 마음에서 사라졌고 여러 해 내왕하지 않던 시어머니와 다시 관계가 좋아졌다. 연공 후 몸은 갈수록 좋아져 보름도 되기 전에 모든 병이 다 나아 몸이 가벼웠다. 그녀는 파룬따파의 최고 법리 ‘진, 선, 인’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도덕 수준을 제고하여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 집에서, 밖에서 공인하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 우리의 생활은 행복하고 아름다웠다.”

위에서 언급한 아이가 울면서 “엄마 돌아와요”라고 하던 그 엄마가 궈하이룽(郭海榮)이다. 납치당한 후, 시아버지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집은 가난하여 우리 집에 시집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바로 며느리가 파룬따파를 수련했기에 비로소 우리 집에 오게 됐고, 우리 집에 복을 가져다주었다. 아들의 병이 위중할 때 며느리는 아들을 정성껏 돌봐 주어 그를 감동시켰다. 노인의 아들은 대뇌에 중병을 앓아 집에서 몸조리하고 있었고, 노인은 요탈병을 앓고 있었으며, 시어머니도 건강이 좋지 않았다. 온 집안사람이 노동을 할 수 없는 극빈가정이었다. 궈하이룽은 한 때 남편과 이혼을 했지만, 대법 책에서 일을 함에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시댁 사람들의 곤란한 처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 외에는 이 집에 시집올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남편과 다시 재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귀여운 아들을 낳았다. 아기가 자라 철이 들어 이 일가에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2000년 추석에 납치당한 네춘링(聶春玲)은 온몸에 병투성이라, ‘속효구심환’을 23살 때부터 먹었다. 또 고혈압, 신염, 방광 종양 등 질병을 앓았다. 6~ 7년 동안 날마다 맥주를 마시고, 이뇨약을 먹어야만 오줌을 조금 눌 수 있었다. 네춘링은 대법을 수련한 후 남편의 놀라운 변화를 보고 역시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그녀 남편 양젠퍼(楊建坡)는 원래 랑팡시 거리 두목이었다. 건장한 몸과 무술을 믿고 거리에서 무뢰하여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 남의 다리를 분질러 구치소에 며칠 있다가 나오면 여전히 우쭐거렸다. 파룬궁 수련을 거쳐 그는 ‘진선인’에 따라 사람이 되는 도리를 깨달았고, 관용하고 참을 줄 알며, 세금을 바치는 훌륭한 시민으로 변했다. 기적은 마찬가지로 네춘링 몸에서도 나타났다. 1주일도 되기 전에 그녀는 모든 질병이 감쪽같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돈 한 푼 쓰지 않았는데도 온 집안이 행복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신체가 건강하고, 가족이 화목해 졌으며, 방탕아가 뉘우치고 바른길로 들어섰다. 파룬따파가 수련생에게 가져다 준 생명의 승화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이 모든 변화는 “파룬따파 하오(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에서 온 것이다.

무엇을 위해 견지하는가?

“오직 당신들이 진상을 알 수만 있다면 우리가 고생을 좀 한다 해도 가치가 있다.” 이는 2004년 추석에 납치당했던 자오자오췐이 또 한 번 감옥에 갇히게 됐을 때 경찰에게 한 말이다. 칠순이 넘은 자오자오췐이 어찌 ‘고생을 좀 했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심한 박해를 당했었다. 구치소에 4번 들어갔고, 마약 중독자 재활원에 두 번, 또 세뇌반, 노동 교화소에 들어갔다. 바로 그녀가 말한 것처럼, 파룬궁 수련생이 감당하는 것은 모두 사람들이 진상을 알게 하기 위해서인데. 그 중에는 당신도 포함된다. 사람들이 파룬따파 하오를 알고, 파룬따파는 생명의 가장 소중한 기연임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을 속이는 중국공산당의 거짓말과 사악함을 알고, 그것과 한패가 되지 말기를 바라며, 사람들이 모두 중국공산당을 벗어나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란다.

오늘까지도 박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파룬따파 학회의 의무 연락인이었던 왕즈원(王治文)은 15년 동안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다. 그의 딸인 미국 시민 왕샤오단(王曉丹)부부는 최근 겹겹의 포위를 뚫고 베이징에 가서 십 여 년이나 이별했던 아버지를 미국에 모셔가고자 했다. 하지만 세관을 넘는 순간, 왕즈원의 여권이 중국공산당 세관에게 가위로 잘려 출국을 제지당했다. 왕즈원은 또 다시 중국공산당의 엄밀한 감시 속에 있다.

상하이 파룬궁 수련생 바이껀제 박해로 생명이 위험

밍후이왕의 정보에 따르면, 2016년 1~8월 사이, 중국공산당 법정은 703명의 파룬궁 수련생에게 불법으로 억울한 징역을 내렸다. 2016년 상반기에 적어도 4,892명 파룬궁 수련생이 납치당했다. 2016년 상반기에 적어도 29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로 사망했다.

이 추석에도 여전히 파룬궁 수련생은 가족과 천 리 밖, 높은 담장 밖, 생사 밖으로 헤어져 있다. 하지만 파룬궁 수련생은 진, 선, 인 대법을 받들고, 마음에 선의를 품고, 당신이 “추석을 기쁘게 지내기” 바라며, 당신이 진상을 알고 아름다운 미래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二零一六年纽约华埠庆中秋 法轮功学员为民众送祝福活动中的横幅'

2016년 뉴욕 차이나타운 추석 경축모임에서 파룬궁 수련생이 시민에게 보내는 축복의 현수막

문장발표 : 2016년 9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12/3344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