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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감옥에 갇힌 청렴한 세무기관원 장둥성 출소 임박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 보도) 허베이성(河北省) 라이수이현(淶水縣) 세무국 주임이었던 장둥성(張東生)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2001년 8월 19일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에 불법으로 납치되어, 1년 6개월 동안 감금상태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조사받은 후 15년 형을 선고 받고 수감된 후 올해 그의 나이가 이미 53세인데, 2016년 8월 20일 15년 형기가 만료 돼 억울한 옥살이가 끝나게 된다. 그렇지만 최근 파룬궁을 전문적으로 박해하는 불법조직인 ‘610’이 장둥성의 만기출소 당일에 요원을 배치해 장둥성의 신병을 인수하려 획책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장둥성은 라이수이현에서 사람 좋기로 칭송이 자자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진선인(眞善忍)’을 굳게 믿으면서 명리를 담담하게 대하게 되었으므로 그로 하여금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이 되게 했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사람을 중공이 불법으로 납치 감금해서 15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시켰으므로, 그의 아름다운 앞날과 인생을 모두 망치게 한 것이다. 그런 그가 억울한 15년간의 옥살이를 끝내고 만기출소하게 된 것이다. 바라 건데 양심이 있는 관련 기관과 기관원들은 장둥성이 순조롭고 무사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张东生

장둥성(張東生)

칭찬이 자자한 좋은 사람과 그의 가정

장둥성은 올해 53세로 허베이성 라이수이현 리촌(栗村) 사람이다. 그는 1996년 9월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으며, 라이수이현 도시 관리 세무소 전담직원, 라이수현 세무국 회계, 사무실 주임 등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으로 문학을 좋아 하는 아마추어 시인이기도 했다. 명리를 담담하게 여기면서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으므로 직장에서는여러 해 동안 계속 선진근무자(모범공무원)로 평가받은 우수공무원이었다. 그는 뇌물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납세자를 고려해서 공정한 징세를 했다. 1992년 봄 라이수이현 원산향(文山鄉)의 한 납세자가 그에게서 5천 위안(약 83만 원)의 현금을 빌려 간 후 갚지 않은 채, 무슨 소송사건으로 가산을 탕진하게 돼 몇 년이 지나도록 그의 돈을 갚지 않았지만, 그 납세자의아내가 세 자녀와 연로한 부친을 모시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것을 알고, 다시는 돈을 갚으라는 언질조차 주지 않았다.

장둥성의 부친은 가오베이뎬시(高碑店市) 병원에서 근무했고, 모친은 소박하고 부지런한 농촌 부녀자인데, 주변 사람들은 몰론 인근 마을에서까지 장둥성의 가족에 대해 좋은 사람 좋은 가정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성실하게 일하고 알뜰하게 가정을 꾸리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며 살았다. 그의 모친은 10여 무(十幾畝-경작단위-개인책 계약경작)를 경작했는데, 장둥성은 시간이 나면 늘 어머니 밭으로 나가 농사일을 도왔다.

한번은 직장에서 포상을 하기로 결정하고, 장둥성에게 포상품으로 비단 이불커버를 구입하도록 책임을 맡겼다. 그가 상점에서 물품을 구입한 후 대금을 지급하자, 점원이 영수증을발급하면서 “얼마로 영수증을 끊을까요?”라고 물었다. 장둥성이 점원에게 “내가 물품대금을 지불한 대로 영수증을 발급하시오”라고 대답했다. 점원은 그의 말을 듣고 한번 쳐다보면서 “지금도 이런 사람이 있나?”라고 혼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는 점원에게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배우는 사람입니다. 가짜영수증으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점원에게 파룬궁을 소개해 주었다. 그 점원은 그 일을 계기로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 점원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주든지 이 대법을 주는 것만 못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파룬궁을 배우게 된 것이다.

1997년 가을 직장에서 집을 분배했는데, 누구나 모두 좋은 위치에 있는 집을 차지하려고 했다. 주임이라는 책임을 맡은 장둥성은 다른 사람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집을 차지한 후 맨 나중에 남은 집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집을 위해 손수 보살펴줬는데, 추운 겨울에는 직접 옥상 꼭대기로 기어 올라가 태양광 온수를 시간 맞춰 각 가정에 보내주어 배관이 얼어 파열되지 않게 해주었고, 어느 집에 어려움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도와줬다.

장둥성과 아내 류진잉(劉金英)은 농촌에 거주하는 부모님을 현 소재지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모셔다가 봉양하며 함께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둥성이는 좋은 아들입니다. 큰 효자입니다!” 라고 칭찬을 했다. 그의 부친은 사람들을 보기만 하면 “우리는 아들 며느리의 보살핌으로 복을 누립니다.” 라고 말한다. 그는 아내와 함께 아침 연공을 마치고 출근했으며, 저녁에는 부모님과 함께 ‘전법륜(轉法輪)’을 공부했다. 그의 모친은 원래 1996년 정월 중풍에 걸려 반신불수가 되어 말을 못했었다. 아들 내외가 집으로 모셔서 매일 저녁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도록 했지만, 모친은 연공을 할 수가 없어서 앉아서 보고 듣기만 했다. 그해 겨울을 지나 1998년 봄이 되자, 모친은 말도 유창하게 할 수 있었으며, 혼자 이곳저곳의 거리를 활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웃들이 그의 큰 변화를 보고서 많은 사람이 그의 집으로 몰려와서 함께 법공부를 하게 됐는데, 그들은 대법의 홍은(洪恩) 속에 푹 빠져 화기애애했다.

장둥성과 아내 류진잉이 함께 중공의 박해를 당하다

1. 아내가 5년의 불법판결을 당하다

刘金英

류진잉(劉金英)

장둥성의 아내 류진잉은 라이수이현 민원국 부국장이다. 류진잉은 세 차례 베이징으로파룬궁의 결백을 위해 청원하러 갔다가 중공에 납치되어 2000년 불법으로 5년 형을 선고 받았다. 장둥성은 2001년 7월 12일 장모와 아이를 데리고 스자좡(石家莊) 감옥 여자대대로 아내의 면회를 갔다가, 면회는 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문입구 망루에 감금을 당했다. 면회하기 위해 교도소 입구로 들어갈 때 무장경찰관에게 몸수색을 당하던 중 호주머니에 소지하고 있던 ‘매화시 후 3단 해석’의 경문을 적발당해 감금된 것이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아내 류진잉은 스자좡감옥 여자대대(그때는 정식으로 스자좡 여자감옥으로 설립되기 전이다. 딩옌(丁岩)이 청더(承德)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한 후, 청더 감옥의 파룬궁수련생은 2개소에 분산 수감, 일부는 허베이(河北) 타이항(太行)감옥으로, 일부는 스자좡 여자감옥대대로 옮겨 수감) 경찰 펑허좡(馮可莊 여자교도관, 그 후 허베이 여자노동교양소 부소장으로 부임함)이 무장경찰에게 지시해 불법으로 장둥성의 몸을 검색하게 한 것이다.

2. 장둥성 불법적인 15년형을 선고받다

2001년 6월 장둥성이 스자좡 감옥의 아내를 면회할 때였다. 펑커좡이 자신의 사무실에 도청기를 설치한 후 장둥성 부부를 자신의 ‘사무실’에서 단독으로 면회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면회가 끝난 후 도청에 의해 장둥성도 역시 파룬궁수련생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장둥성에 대해서도 박해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펑허좡의 제보에 따라 지역 경찰과 라이수이 ‘610’ 등이 합세해서 장둥성을 모함하고 박해하기 시작한 것이다.라이수이현 지세국 책임자가 스자좡감옥에서 장둥성의 신병을 인수해 직장으로 돌아왔지만, 중공은 그때부터 1개월 넘게 장둥성을 미행 감시하다가, 2001년 8월 19일 장둥성이 출근했을 때 사무실에서 그를 납치했으며, 8월 21일 이현(易縣) 구치소로 이송 후 본격적으로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감금된 후 36일 동안 족쇄를 차고 일명 호랑이 의자 등에 묶여 고문을 당했다. 바오딩에서는 ‘전문사건 팀’을 조직해서 고문 박해를 가했고, 2003년 장둥성은 바오딩 이현 법원에 의해 무고하게 15년 형과 자격정지 5년이 선고됐다.

酷刑演示:老虎凳

고문재연 : 호랑이 의자

이현 법원에서 장둥성 외 또 다른 4명의 파룬궁수련생이 함께 불법적인 판결을 받았는데, 차오샤오강(曹曉剛) 13년, 옌허취안(閆合泉) 11년, 장창성(張長生) 10년, 스원수이(石文水, 라아오산(老山) 전선 2등 공신임) 9년 형이 각각 선고됐는데, 또 다른 파룬궁수련생 이현 리구이민(李桂敏)은 구치소에서 음식물 강제주입을 당하다가 사망했다. 장둥성은 형이 확정된 후 2003년 3월 13일 바오딩 감옥으로 이송돼 박해를 당하다가, 2주 후 스자좡 감옥으로 다시 이송되어 지금까지 그곳에서 박해를 당했다. 아내가 2006년 장둥성을 면회했을 때 고문으로 6대의 치아가 부러진 상태였고, 2012년에는 치아가 18대나 빠졌다. 2013년 6월 25일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장둥성을 면회했을 때 아내가 과일을 차입시키려고 하자, 장둥성이 “치아가 없어서 과일을 먹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부모님이 한을 품고 사망하다

2001년 새해, 장둥성의 아내가 불법판결을 당한 지 5일째 되는 날에 장둥성의 부친이 한을 품은 채 사망했다. 장둥성이 불법적인 납치를 당하게 되자, 그의 모친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누나 집으로 가서 기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이는 고아가 아닌 고아로 농촌 외할머니집으로 보냈는데, 경찰은 장둥성의 집을 수색한 후 봉인조치를 했다.

아내 류진잉은 2005년 8월 9일 바오딩 감옥 영창에서 나와 수갑을 풀고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5년 동안의 억울한 옥살이가 만기로 끝난 것이다. 집에 가보니 문 앞에는 온통 그물이 처져 있어서 새를 잡을 정도여서 들어가지 못하고, 남편 누나 집으로 가서 시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 제가 돌아왔어요!”라고 불렀지만, 시어머니는 모습이 변한 며느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시 “어머니! 제가 진잉입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라고 다시 말했을 때 시어머니가 알아보고 울면서 “돌아왔어. 끝내 돌아왔구나….”라고 흐느꼈다.

장둥성의 모친은 2009년 5월 울면서 “나의 아들은 좋은 사람입니다. 나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의 아들을 기다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그의 모친은 이미 8년 동안 아들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시어머니의 병세가 위급해지자, 류진잉이 스자좡 감옥에 전화를 걸어, “장둥성을 집으로 돌려보내 모친이 죽기 전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게 해 달라.”라고 요청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며느리는 절망 속에서 눈을 뜬 채 한 많은 세상을 떠나는 시어머니를 보아야 했다. 아내는 시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다시 감옥에 연락해서, 장둥성이 모친을 안장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직장에 안장비용과 그동안 지급되지 않은 월급을 지급해주도록 신청했으나 지금까지 단 한 푼도 지급해주지 않아, 모친의 유골은 아직도 가오베이뎬 화장터에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가족은, 좋은 사람이 억울한 옥살이 만기로 집으로 빨리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6년 8월 20일은 장둥성의 억울한 15년 옥살이의 만기일이다. 가족들은 모두 그날 장둥성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15년간의 억울한 옥살이가 만기되는 전날 저녁, 스자좡 감옥에서는 라이수이현 ‘610’에 “장둥성의 신병을 인수해가라.”라는 통지를 했다. 이처럼 선량한 사람을 끊임없이 무고하게 박해를 가하고 있는데, 그런 박해는 법률적인 근거가 없으므로 어떤 이유로도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경찰관도 사람임으로 역시 피와 살이 있고, 또 좋은 경찰관도 있다. 파룬궁수련생이 17년 동안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백여 개의 국가와 지역에 홍전 되었는데,그들 많은 사람은 진상을 명백히 알았다. 진상을 안 그들은 국내에서 다시는 파룬궁박해에 참여하지 않았고, 또 많은 사람은 말없이 대법제자를 도왔다. ‘전법륜(轉法輪)’을 읽어본 적이 있는 경찰관 중에도 많은 사람이 파룬궁수련에 들어서서 진정한 파룬궁수련생이 되었다. 국제적으로 볼 때도 역시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인데, 멕시코에서는 600여 명의 경찰관들이 단체로 파룬궁을 수련했다. 희망하건대 박해에 참여한 스자좡 감옥의 관계자들과 라이수이현의 관계자들은 진상을 명백히 알고, 15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장둥성이 순조롭게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도록 조치해주길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8월 1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8/18/3331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