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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고소장 쓰는 것을 도운 신장 커라마이시 여성 엔지니어,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신장보도) 2016년 7월 22일 오후 6시 9분, 커라마이시(克拉瑪依市) 여성 엔지니어이자 파룬궁수련생인 52세의 자오수위안(趙淑媛)이 신장(新疆) 여자감옥의 박해로 사망했다. 가족은 시체를 커라마이시로 운구하여 안장하려고 했으나 감옥 측은 동의하지 않고, 강제로 우루무치시(烏魯木齊市) 제2장의사로 보내고는 가족이 빈소를 설치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시체를 냉동 보관하는 수속도 해주지 않았으며 또 친척의 조문도 제한했다.

가족은 화장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6년 5월 3일) 자오수위안이 신장 여자감옥으로 보내진지 겨우 2개월 19일 만에 왜 사망했는지 설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감옥 측은 대답하지 않고, 가족에게 열흘 내에 만약 다른 이유가 없으면 강제로 화장한다고 알려주었다.

파룬궁수련생 자오수위안

다른 사람의 고소장을 쓰는 것을 도왔다는 이유로 5년의 불법 판결을 당하다

2015년 11월 5일, 자오수위안은 노년 파룬궁수련생을 도와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한 것 때문에, 커라마이시 커라마이구 공안국에 의해 납치됐다. 동시에 12월 초에 커라마이구 검찰원으로 이송됐고, 12월 24일에 커라마이구 법원에 기소 당했다.

酷刑演示:野蛮灌食

(사진 설명 1) 고문 재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납치당한 그날부터 자오수위안은 줄곧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매일 24시간 동안 쇠고랑을 찬 채로 침대에 고정돼 있었고, 구치소 경찰은 또 강제로 그녀에게 음식물을 주입했다.

원래는 2016년 1월 18일 개정할 예정이었으나 커라마이구 법원은 이를 취소했다. 자오수위안의 변호사는 법원 측이 변호사의 안건서류 복사를 가로막는 등의 많은 위법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여러 부서에 고소했다.

그 후 커라마이구 법원은 보복을 시작했다. 먼저 자오수위안에게 변호사가 변론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속이는 동시에, 또 멀리 충칭시(重慶市)에 있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변호사의 사법(司法)적 권익을 존중하겠다며 날을 잡아 변호사가 문건을 열람하고 증인을 지정하라고 했다. 그러나 법원 측은 변호사에게 개정통지서를 송달하지도 않은 채 2016년 2월 17일 오전에 불법적으로 개정했다. 결국 변호사는 개정에 참석하지 못했다.

불법 개정을 진행할 때, 자오수위안은 법원 합의청 구성원과 검찰관에 대해 회피신청을 했으나 법정에 의해 거부당했다. 뒤이어 자오수위안은 변호사가 법정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떠한 문제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들은 모친에게 “변호사가 법정에 도착하지 않았기에 말하지 마세요.”하고 일깨워 주자 법정경찰은 그를 법정 밖으로 끌어내고 법정심문이 끝날 때까지 법원의 방안에 감금했다.

커라마이구 법원은 2016년 3월 7일에 1심 판결을 내려 5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했다. 자오수위안은 상소를 제기했다. 2심 법원은 그녀 본인과 변호사의 청구를 무시한 채, 자오수위안의 ‘몸 상황이 좋지 않다’는 구실로 개정하여 심리를 진행하지 않았다. 변호사와 그녀는 변론의견을 썼다. 같은 해 4월 29일에 2심 판결을 송달해 왔는데, 원판결대로 유지한 것이었다.

박해로 사망하다

2016년 5월 3일, 몸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자오수위안은 신장 여자감옥으로 보내져 징역살이를 했다. 감옥 측은 줄곧 그녀에게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했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박박 깎았으며 두 손을 침상 주변에 묶어놓았다. 5월 10일, 신장 제5부속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각 조사항목의 지표가 ‘정상’이었다.

5월 31일, 자오수위안의 두 명의 변호사가 그녀를 면회할 때, 그녀는 이미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어 몸무게는 30kg도 되지 않았고 몸은 극도로 허약했다. 변호사는 당시에 곧바로 그녀가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는 수속을 밟을 수 있도록 제기했으나, 감옥 측은 안 된다고 했다. 6월 23일, 감옥 측은 그녀의 아들과 변호사의 병보석 요청을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듭 거부했다. 변호사는 또 감옥 관리국의 관련 부서를 찾아가 반영했으나 여전히 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

6월 26일 저녁 무렵, 자오수위안은 심장쇠약 증상이 나타나 의식이 혼미해졌고 신장 의과대학 제5부속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밤중에 정신이 들었으나 감옥 측에서는 이튿날 아침에 곧 그녀를 감옥으로 데려갔다.

7월 12일, 자오수위안은 거듭 혼수상태가 나타나 120구급차에 의해 공군병원으로 보내져 치료를 받았다. 공군병원에서는 병세가 위중하다고 진단했다. 심한 영양결핍, 심한 빈혈, 저단백혈증, 전해질 불균형(칼륨이 낮음), 백혈구감소증, 욕창 증상이 나타났다. 그녀는 이미 침대에서 내려와 활동할 수도 없었고, 생활을 스스로 처리할 수도 없게 되어 대소변도 침대에서 치러야 했다. 병세가 이와 같이 심각한 환자를 무엇 때문에 두 차례나 혼수상태가 나타난 후에도 병원에서는 하루만 입원시켰다가 퇴원시키고 감옥으로 데리고 돌아갔는가?

7월 19일 오전, 자오수위안은 세 번째로 쇼크 상태가 나타나, 신장 의과대학 제5부속병원 응급센터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오후 3시가 넘어 잠깐 정신이 든 후 또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날 6시 22분에 병원에서는 병세가 위급하다는 통지서를 송달했다. 병세가 이와 같이 위급한 7월 20일 오전, 감옥 측은 비용문제로 뜻밖에도 그녀를 감옥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다. 그 후 가족은 계속 신장의과대학 제5부속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게 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리고 비용은 스스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7월 22일 오후 6시 9분에 자오수위안은 사망했다.

예전에 신장 여자감옥에서 폭행을 당하다

자오수위안은 대학본과 학력으로, 전 신장석유관리국 찬정(鑽井)회사 안전 환경보호감리회사(安全環保監理公司)의 엔지니어이다. 2002년, 자오수위안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했다는 이유로 9년의 불법 판결을 당해, 2003년 2월 신장 여자감옥 4감구역 9분감구역으로 보내졌다. 감옥에서 자오수위안은 줄곧 수련을 견지하며 ‘전향’하지 않았다.

2003년 12월, 자오수위안이 옥원가(獄園歌)를 부르지 않고, 서언(誓詞)을 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4감구역 부감구역장 마링(馬玲)은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화가 나서 자오수위안에 대해 ‘비판·투쟁’하는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가 끝난 후, 자오수위안을 ‘엄한 관리’에 넣었다. 이런 유형의 인격모욕, 무리한 단속에 직면하자 자오수위안은 단식으로 항의했다. 악독한 경찰 마링은 너무 화가 나서 계속하여 자오수위안에게 호스를 꽂고 음식물을 주입했는데 매우 뜨거운 음식물과 뜨거운 물을 직접 자오수위안의 입안에 쏟아 넣어 입안의 살마저 익어 서리서리 떼어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자오수위안에게 식관(주입관)을 꽂아 부상을 입혀 그녀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일지라도 마링은 여전히 자오수위안을 핍박하며 세뇌반에 들여보내고 강제 ‘전향’을 시켰다.

2004년 6월, 자오수위안이 파룬궁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9감구역 감구역장 리젠신(李建新)은 자오수위안을 고문·학대했다. 그들은 자오수위안의 두 손을 수평으로 펼치게 하여 두 개의 침대 머리에 채워놓고, 그녀를 중간의 작은 나무걸상 위에 앉혔는데, 하루 십 몇 시간 동안이나 앉혀 채워두었다. 저녁에 잠을 자도 수갑을 풀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또 몇 명의 ‘교활’한 죄수를 선택해 세 사람을 한 팀으로 편성해 감시했다. 매 팀마다 보름 동안 자오수위안을 지키고 관리하도록 시켰는데, 또 만약 자오수위안을 3개월 동안 지키며 관리를 원하는 자가 있으면 한 차례 공을 기록해 주어 2개월을 감형해 준다고 말했다.

이 기간, 그들은 계속하여 자오수위안에게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했다. 8월 23일, 자오수위안은 여성 감옥병원으로 보내졌다. 오후, 악독한 경찰 마링은 몇 명의 죄수를 거느리고 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자오수위안을 들어서 감옥으로 데리고 가려 했다. 자오수위안은 큰 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처참한 소리는 여성 감옥병원을 메아리쳤다. 한 죄수는 손으로 그녀의 입을 단단히 막았다. 악독한 경찰 리젠신은 큰 소리로 죄수를 불러 자오수위안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게다가 자오수위안에게 죽으라고 큰소리쳤다. 그 후 죄수는 또 자오수위안을 끌고 돌아왔는데, 옷 전체가 잡아당겨져 전체 상반신이 전부 드러났다. 이대로 병원에서 감방으로 끌려 돌아갔다. 당시는 마침 오후 출근하는 시간이어서 많은 경찰, 죄수가 이 잔인하고 포악한 장면을 목격했다.

감방에 들어서자, 마링, 리젠신은 곧 자오수위안에게 욕설을 퍼붓고 수갑을 채웠다. 이렇게 자오수위안은 2개월 동안 앉아 수갑을 찼는데, 학대로 걸을 수도 없게 되었다. 리젠신, 마링 등은 또 자오수위안에게 족쇄를 채워 침대 주변에 세워두었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머리 꼭지 위를 지나는 철관에 채웠다.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7월 2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7/27/3319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