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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9년형 선고당했던 전 닝샤중 교사, 거듭 불법 체포령 받아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닝샤보도) 2016년 6월 15일의 오전, 융닝현(永寧縣) 파룬궁수련생 장타오(姜濤)는 전동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정상적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융닝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경찰에 의해 강제로 몸수색을 당한 후 납치됐다. 7월 20일, 장타오는 융닝현 검찰원에 의해 불법 체포령을 받았다.

원래 6월 9일, 닝샤의 모 관리의 차가 인촨(銀川)시 융닝현 빈허대로(濱河大道)를 지나다가 걸려있는 대법 진상현수막을 보고, 융닝현의 국가보안에게 명령을 내려 현수막을 조사하도록 했다. 그래서 6월 15일 오후, 융닝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경찰은 융닝현 청관(城關) 파출소 경찰과 연합해 불법적으로 장타오의 집을 수색했다. 그날 저녁에 불법적으로 장타오에 대해 형사구류처분을 내려 융닝현 구치소에 구류했다. 이튿날, 인촨 파룬궁수련생 쑤칭링(蘇青玲), 왕스허(王世和), 차오구이란(曹桂蘭)도 납치됐는데, 지금 이미 집으로 돌아갔다.

파룬궁수련생 장타오(남, 43)는 예전에 융닝현 쩡강(增崗)중학교 미술교사다. 장타오는 마음씨가 착하고 사람됨이 너그러웠다. 1995년 파룬궁을 수련한 후, 각 방면에서 ‘진선인(眞ㆍ善ㆍ忍)’을 기준으로 좋은 사람이 되려 해 직장 동료,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찬성했다. 99년 7.20 이후, 장타오는 두 차례나 불법 징역 판결을 당했는데, 첫 번째는 3년 6개월, 두 번째는 5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거듭된 박해로 무리하게 공직에서 해고된 이유로 전동차 기사기 되어 생활했다.

인촨 감옥 벽돌공장에서 3년 6개월간 박해 당해

2000년 10월, 장타오 및 그의 일가족 세 식구, 그리고 융닝 현지의 7명 파룬궁수련생은 베이징 톈안먼 광장으로 가서 대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렸다. 톈안먼 광장에서 장타오 일가족 세 식구는 사복 경찰에게 미행당해 베이징 허핑먼(和平門) 파출소로 납치됐다. 이어서 베이징 주재 인촨 사무처로 끌려갔다. 맨 마지막에 인촨시 융닝현 공안국의 경찰에 의해 융닝으로 끌려 돌아왔다. 진실한 말을 하려 한 것만으로, 장타오는 융닝현 구치소에 8개월 쯤 불법 감금돼 있었다. 그후 억울한 3년 6개월 형을 당해 인촨 감옥(벽돌 공장)에 구금됐다.

인촨감옥 허둥(河東) 벽돌공장은 황하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감옥은 장방형의 정원인데 정원에는 잡목과 흙벽돌, 갈대로 지은 방이 40여 개 있었다. 정원의 네 주변에는 철조망이 있었다. 2001년 초, 중국공산당 ‘앙시(殃視, 중앙텔레비젼)’에서 파룬궁을 모독한 ‘분신자살 가짜사건’ 웃음거리가 상연된 후, 닝샤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610은 닝샤 사법청, 감옥관리국을 지시해 더욱 대대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는데 이곳은 죄악의 장소로 변했다.

그해 상반기, 닝샤 610 악도는 세심하게 계획해 닝샤 경내에 불법 감금된 모든 남성 파룬궁수련생을 전부 인촨감옥 허둥 벽돌공장에 집합시켜 고문, 노역과 강제 세뇌 전향 등 각종 학대를 가했다. 당시 전 닝샤에서 불법 판결당한 파룬궁수련생은 7명이었다. 닝샤 610와 사법청 두목은 늘 허둥 감구(監區)로 가서 ‘지도’했다. 닝샤 감옥관리국 교육처장 리웨이(李偉)는 한 때 허둥감구에 오래 머무르며 독려했다. 벽돌공장에 일반 외부에서 참관자들이 오기만 하면 교도관은 파룬궁수련생을 숨겼는데 상황을 반영할까 두렵고 그들이 부상 입은 것이 발견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막 허둥 벽돌공장에 감금된 파룬궁수련생들은 날벽돌을 나르는 일을 했는데, 매일 10시간 이상 노동했다. 짐수레를 끌고 총 수십 리 길을 달려야 했다. 악독한 경찰의 구호는 ‘무거운 차는 달리고, 빈 차는 날아라’이다. 만약 ‘전향’하지 않으면 노동 강도를 더 늘리고 노동시간을 연장했다. ‘전향’하지 않은 사람은 강제로 벽돌가마 안에서 다 구운 벽돌을 밖으로 운반하거나, 날벽돌을 가마 안에 운반해 넣는 일을 했다.

가마에서 벽돌을 꺼내고 담는 일은 고온, 먼지가 아주 많고 강도 높은 노역으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많은 위험에 직면한다. 게다가 거의 무슨 보호 조치가 없었기에 늘 사고가 발생했다. 다 구운 벽돌 온도는 모두 100~200도에 달했고 가마 안 온도는 50~60도에 달해 사람은 안에서 숨을 못 쉴 정도였다. 그렇게 1~2분만 있으면 땀이 철철 흐른다. 가마에서 꺼내는 일을 며칠 동안 하면 손에는 핏망울이 잡히고, 손톱은 전부 갈라터지며, 다리와 몸에는 끊임없이 벽돌 조각에 부딪혀 부상, 찰과상, 화상, 탕상을 입게 된다. 오래 되면 두 손은 변형돼 열 손가락을 곧게 펼 수 없다. 큰 바람이 불고 비오는 날을 제외하고 휴일이 없었다.

교도관은 다른 죄수가 벽돌 가마로 가서 일하면, 1개월 동안의 ‘적응기’가 있을 수 있다고 규정했는데 ‘적응기’ 내에는 노동량을 정하지 않았다. 파룬궁수련생은 ‘적응기’가 없이 막 가자마자 숙련된 죄수와 같은 노동량을 완수하도록 강요했다. 사람마다 매일 5천 5백 장의 벽돌을 가마에서 꺼내야 했는데, 만약 완수하지 못하면 ‘징벌’을 진행했다(고문, 강제 ‘전향’을 실시하는 구실이었음). 파룬궁수련생이 한 동안 시간 내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되면 교도관은 또 그에게 임무를 더 보탰다. 이러면 영원히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게 되고 고문학대를 당하게 된다.

장타오는 2004년 4월 11일에 집으로 돌아온 이튿날, 또 융닝현 공안국에 의해 인촨시 소방본대(消防總隊)로 끌려가 강제세뇌를 받았다.

핑뤄 감옥, 스쭈이산 감옥에서 5년 6개월 불법 감금을 당하다

2005년 4월, 진상자료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장타오는 융닝현 법원에 의해 5년 6개월의 억울한 재판을 당했다. 그후 닝샤 스쭈이산시 핑뤄(平羅)현 핑뤄감옥으로 옮겨져 박해를 당했다. 그 기간에 악독한 경찰은 파룬궁수련생을 ‘전향’하기 위해 장타오를 닝샤 스쭈이산(石嘴山) 감옥으로 옮겨 계속 박해를 진행했다.

2010년 11월 6일, 장타오는 억울한 옥살이가 만기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장타오는 심신에 극심한 손상을 입었었다.

문장발표: 2016년 7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7/30/33214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