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멍구 여교사 납치당하고 친우 여러 명이 구타·구류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네이멍구보도) 네이멍구(內蒙古) 츠펑시(赤峰市) 바린좌기(巴林左旗) 바이인눠얼진(白音諾爾鎮) 지쑤(寄宿)초등학교 교사 자쉐둥(賈雪冬)은 학생에게 파룬궁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6월 13일 경찰에 의해 납치되고 가택 수색당했으며, 바린좌기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자쉐둥의 몇몇 친구가 공안국에 가서 석방을 요구했으나 경찰은 오히려 그들을 납치하고 혹독하게 구타했다.
6월 27일 8시 30분, 자오춘샤(趙春霞)와 큰언니 자오구이룽(趙桂榮), 둘째 언니 자오푸샤(趙福霞), 막내 동생 자오춘화(趙春華), 자오춘샤의 부모 자오위(趙玉), 장구이즈(張桂枝) 등 친척과 친구 20여 명은 공안국에 가서 황젠(黃健, 국가보안 대대장) 등을 찾아 석방을 요구했다. 경비가 황젠이 없다고 말해 자오춘샤 등 여러 친구는 바로 공안국 1층 현관에서 기다렸다. 대략 9시가 넘어 신청(新城)파출소에서 10여 명이 왔는데, 녹화기를 지니고 와서는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오춘샤 등 여러 친구들이 현관 안에서 기다리는 것을 허락지 않으며, 그녀들을 공안국 현관에서 쫓아냈다. 잠깐 후, 신청 파출소의 사람은 또 자오춘샤 등에 대해 “당신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서면으로 써서 서명한 다음 지장을 찍어 우리에게 제출하시오. 우리가 황젠에게 넘겨주겠습니다.”고 말했다. 자오춘샤 등 여러 친구는 그들을 믿지 않고 여전히 문 주변에서 기다렸다.
10시 30분이 되자 황젠은 뒷문으로 빠져나와 문 앞으로 가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자오춘샤와 자오춘화가 황젠을 보고 얘기하려고 했으나 쑹하이룽이 뛰쳐나와 자오춘화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여러 명의 경찰이 뛰쳐나와 먼저 자오춘샤, 자오구이룽, 자오푸샤, 자오춘화 및 그녀들의 부모 자오위, 장구이즈 등을 끌며 구타하면서 공안국의 심문실로 데려갔다. 자오푸샤의 딸과 사위는 외지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녀(자오푸샤)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외손녀를 보살펴 주어야 했다. 점심 11시가 넘어서 자오푸샤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이를 마중 가야 했으나, 경찰은 그녀가 떠나지 못하게 했다. 그 후에 교사가 자오푸샤에게 아이를 마중해 데려가도록 전화했어도 경찰은 여전히 자오푸샤를 가지 못하게 했다.
바린좌기 공안국 경찰은 대법제자 자오춘샤 등 4명을 납치했는데, 계단으로 끌려 올라가는 사람이 자오춘샤이다. 오른쪽에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은 좌기 공안국 국가보안 대대장 황젠이다.
오후 3시, 경찰은 자오춘샤, 자오구이룽, 자오푸샤, 자오춘화를 특수 경찰차에 밀어 넣고 유치장으로 납치했다. 그녀들의 연로하신 부모는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8시가 넘을 때까지 네 자매는 온종일 밥도 먹지 못했다. 자오춘샤가 밥을 먹겠다고 요구하자, 쉐펑쥔(薛鳳軍) 등 교도관은 또 자오춘샤, 자오구이룽, 자오춘화를 사무실로 끌고 가서 땅바닥에 눌러놓고 뒷짐결박으로 채웠다. 쉐펑쥔은 또 자오구이룽에게는 족쇄를 채웠다. 유치장 소장 장푸쿠이(張福奎)는 자오구이룽의 뺨을 몇 대나 쳤고, 또 발을 들어 자오구이룽의 얼굴을 혹독하게 걷어찼다. 장푸쿠이가 뒤로 넘어지자, 자오구이룽은 인과응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장푸쿠이는 또 발을 들어 자오구이룽을 걷어차려 했다가 인과응보라는 말을 듣고서야 발을 내리고는 다시는 걷어차지 않았다. 무척 화난 그는 짐을 다 안아서 가지고 나갔다.
저녁 9시 넘어서 네 자매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쳤다. 쉐펑쥔은 또 젊은 경찰을 거느리고 방안에 들이닥쳐 자오구이룽의 수갑을 힘껏 잡아당기고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수갑이 살 속까지 패여 들어가 상처를 입었으며 열흘이 되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8시가 넘어서(6월 28일) 교도관은 8~9명의 사람에게 지시해 네 자매를 들어서 1층으로 데려가 사진을 찍었다. 찍지 않으면 뺨을 때렸다. 자오춘샤 네 자매는 모두 열흘 동안의 불법적인 감금을 당했다.
박해 책임자의 전화번호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7월 2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7/26/3319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