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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억울하게 지둥감옥에 감금돼, 가족 면회도 불허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허베이 싼허(三河)시 파룬궁수련생 왕잔칭(王佔靑), 원제(文傑), 마웨이산(馬維山), 캉징타이(康景泰)는 진선인(眞善忍)을 믿고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좋다는 진상을 전파한 것 때문에 2014년 4월 22일에 불법 체포를 당했다. 랑팡(廊坊)세뇌반에서의 불법 구금을 당하고 5차례나 불법 재판을 받았다. 1년 7개월의 시간이 걸려서야 싼허시 법원에서는 억지로 징역 판결을 내렸다. 왕잔칭 6년, 원제 5년, 마웨이산 5년, 캉징타이에게는 징역 3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는데, 4명은 법정에서 항소했다. 또 6개월 시간을 끌다가 올해 5월 13일에 랑팡시 중급인민법원은 그제야 원 판결을 유지한다는 황당한 판결을 내렸다.

이틀 후 싼허시 구치소 소장 왕차오허(王朝河, 핸드폰:13833616158)는 왕잔칭의 모친 왕롄솽(王蓮雙)에게, 왕잔칭은 청더(承德) 상반청(上板城) 감옥으로 보내졌다고 알려주었다. 왕롄솽은 급히 상반청 감옥에 연락했는데 상대방은 왕잔칭을 찾지 못했다며 이곳에 보냈는지 확인하라고 했다. 그녀는 구치소에 전화를 걸었는데 당직 여경이 상반청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그제야 감옥 측은 23일이 면회일이라며 와서 면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왕롄솽 두 부부는 70세 노인으로 이른 아침에 차를 타고 120km 떨어진 상반청 감옥으로 갔다. 로비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려도 번호를 부르는 사람이 없자 어찌된 일인지 문의했다. 직원은 컴퓨터를 보더니 “이 사람이 없습니다. 현지 구치소에 연락하시오”라고 말했다. 전에도 왕롄솽이 여러 차례나 전화를 걸어도 받는 사람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거듭 전화를 거는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받은 왕차오허는 “먼저 청더로 보냈는데 상반청에서 받지 않아, 또 탕산(唐山) 지둥(冀東)감옥으로 보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두 감옥은 250km정도나 떨어져 있었다. 왕롄솽은 깜짝 놀라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王莲双夫妇来到上板城监狱,却没想到儿子不在这里

왕롄솽 부부가 상반청 감옥으로 왔으나 아들이 이곳에 없을 줄 생각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왕롄솽은 급히 지둥감옥 옥정과에 전화를 걸었는데 한 남자 직원이 “6월 23일, 24일이 면회일이므로 와서 면회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감옥 측은 아마도 왕잔칭이 파룬궁수련생임을 알고 말을 바꾸어 2달 안에는 면회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뒤로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왕롄솽은 아들의 처지가 더욱 걱정되어 지둥감옥으로 가서 면회하려고 결심했다.

王占青

왕잔칭(王佔靑)

6월 23일 이른 아침 5시가 넘어서 왕롄솽과 그녀의 남편은 집에서 나와 싼허 기차역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탕산으로 갔다. 그런 다음 택시를 타고 옥정과로 갔는데 이미 점심 12시 반이 되어 직원이 나갔다고 경비원이 말했다. 두 시 반에 경찰이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경비원은 “당신들은 앞으로 가시오, 그 문안이 바로 옥정과입니다.”라고 말했다. 문에 들어선 후 왕롄솽은 사복 차림을 한 중간 체격의 남자에게 “이곳이 옥정과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예, 올라오세요.”라고 말했다.

2층에 올라가자 그 사람은 “무슨 일입니까?”라고 말했다. “아들을 보러 왔습니다.” “아들 이름은 무엇입니까?” “왕잔칭입니다.” “증명서를 주세요.” 왕롄솽이 파출소에서 발급한 편지를 건네주자 그 사람은 컴퓨터를 누르면서 물었다. “아들이 무슨 일로 들어왔습니까?” “파룬궁을 연마해서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은 계속 컴퓨터를 누르면서 “으음, 6년입니다. 아직도 4년이 남아있습니다. 아주머니도 연마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왕롄솽은 “내가 연마하든 하지 않든 상관하지 마세요. 나는 파룬궁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신도 연마한다면 더구나 면회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 넘겨짚으며 “당신이 먼저 연마했습니까, 아니면 아들이 먼저 연마했습니까?”하며 연속 세 번이나 물었다. 왕롄솽은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두 명의 무장경찰이 들어오더니 명세서를 들고 “빨리 우리 일을 처리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먼저 무장경찰의 말을 거절하고 확실히 왕롄솽에게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면회를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때 또 두 남녀가 올라왔는데 역시 사복 차림이었다. 접수하던 직원 “오늘은 왜 이렇게 바쁩니까, 내가 또 좀 불편한데 당신들이 마침 잘 왔습니다. 그들의 일을 처리해주세요. 난 나가야겠습니다.”고 말하고는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새로 올라온 남자는 컴퓨터 앞에 앉고 여자는 맞은편에 앉았는데 그 두 무장 경찰에게 업무를 다 처리해 준 다음 남자가 왕롄솽에게 “아주머니, 돌아가십시오, 우리 이곳에는 반드시 당신 아들이 대장에게로 가서 면회를 신청해야만 면회를 허락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여자도 “가도 헛수고입니다. 우리 이곳에는 합해서 8개 지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제일 가깝다고 해도 4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습니다. 4지대는 이곳에서 4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데 길도 걷기 힘듭니다.”라고 말했다. 왕롄솽이 “내일도 역시 면회일이죠?”고 묻자 여자는 “간다 해도 기름만 낭비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노부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점점 아들이 걱정되어 여전히 4지대로 가보려고 했다.

지둥 감옥은 이미 ‘허베이성 감옥관리국 지둥분국’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합해서 8개 감옥이 있다. 그중 4감옥(전 4지대)은 입감교육감옥이다. 감옥 교육과가 바로 감옥 안의 610으로 전문적으로 강제로 파룬궁수련생 전향을 책임졌는데 이른바 사상이 안정돼야(사실은 바로 타협하고 전향하도록 강요하는 것) 비로소 다른 감옥으로 배치돼 노예 노동을 할 수 있었으며 그래야만 집에 전화를 걸게 했고 가족은 면회를 할 수 있었다.

4지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4시가 넘었다. 경비원은 “모두 퇴근했습니다. 내일 다시 오세요”라고 말했다. 택시는 또 두 노인을 태우고 아주 먼 소도시로 갔다. 그들은 여관을 찾아 머물렀다.

이튿날 아침 6시 반에 출발해 8시가 되어 4지대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면회하고 있었다. 왕롄솽은 사람들에게 “당신 가족은 온지 얼마나 오래 됐습니까?”고 물었다. 어떤 사람은 1개월이 넘었고, 어떤 사람은 1개월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모두 새로 온 사람들이었다. 왕롄솽은 “누가 당신들에게 알려줬지요?”라고 물었고 이들은 “이곳에서 우리에게 전화를 걸었어요”라고 말했다.

9시에 문을 열었는데 두 부부 차례가 되었을 때 경찰이 물었다. “누구를 만나러 왔습니까?” “아들을 만나려 합니다. 왕잔칭입니다.” “이곳에는 왕잔칭이란 이름이 없습니다. 당신 아들이 면회를 약정했습니까?” “당신들 이곳의 전화 녹음에서 나에게 오늘이 면회일이며 면회를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옆에 있던 과장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좀 기다려 주십시오. 내가 전화를 걸어 물어봐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10여 분을 기다려서 그쪽에서 다시 전화해 준 뒤 그 사람은 말했다. “돌아가시오, 왕잔칭은 당신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주 먼 곳에서 왔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우리를 만나게 해주세요.” “내가 만나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아들이 면회를 약정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습니다. 돌아가시오.” “나는 아들에게 약간의 돈과 옷을 주려 합니다.” “면회 카드가 없으면 저축할 수 없습니다. 돌아가서 기다리시오.”

감옥법 제20조에서는 ‘죄수를 수감한 후, 감옥 측은 죄수 가족에게 통지를 내려야 한다. 통지서는 수감 일로부터 5일 사이에 보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지둥감옥에서는 통지서 발송을 거부했고 공공연하게 감옥법을 위반했다. 지둥감옥에서는 또 감옥법 제48조 ‘죄수는 감옥에 수감된 기간에 규정에 따라 친속, 보호자를 면회할 수 있다’는 규정을 위반했고 파룬궁수련생이 정상적으로 면회하는 권리를 박탈했다.

파룬궁수련생은 바로 엄격하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으며 어떠한 법률도 위반하지 않았다. 진정하게 법을 위반해 죄를 저지른 사람은 모두 정상적으로 면회할 수 있으나 이곳 파룬궁수련생은 반드시 사전에 ‘약정’을 해야 했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공산당의 이른바 인권이다. 감옥의 철조망 하에 ‘자신이 약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면회를 허락하지 않고 돈과 물건을 저축함을 허락하지 않아 파룬궁수련생은 생활필수품이 없는데 자유사회 사람은 그 처지를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은 매사 남에게 부탁해야 하고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며, 심지어 어떤 이는 대변을 볼 때에 화장지가 없었던 이유로 부득이 손으로 물을 받아 간단하게 씻거나 혹은 헌 헝겊으로 닦은 다음 다시 빨고, 빤 다음 다시 닦는 수밖에 없었다.

(역주: 관련 책임기관과 부서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6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6/29/3306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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