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종합 보도) 파룬궁수련생 양중성(楊中省)은 2016년 4월 10일에 허난성(河南省) 정저우시(鄭州市)에서 납치됐는데, 정저우시 제3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아 박해로 사망했다. 관련 경찰은 ‘단식 후 응급처치를 받아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상황을 알아야 하므로, 진상을 아는 정의로운 인사가 보충해 주시기 바란다. 또 해 내외 사회의 정의로운 인사가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란다.
양중성이 의자 위에 채워지다
양중성의 형 양중겅(楊中耿)은 2013년 6월 28일에 허난 정저우에서 나흘 동안 감금돼 경찰에게 무참히 구타당해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38세였다. 그의 모친은 당시 아들의 참상을 보고 크게 상심하고 심히 놀라서 기절했으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가족이 링바오(靈寶)에 도착한 뒤 본 것은 양중겅의 시신이었다. 온몸에 상처투성이고 한쪽 발은 검고 시퍼렇게 되었으며, 팬티만 입었고 침대보만 덮고 있었다. 흉수들이 손을 댄 흔적이 극히 잔인했다.
양중겅(楊中耿)
밍후이왕 소식에 따르면, 2016년 4월 10일, 양중성과 파룬궁수련생 류젠샤(劉建霞)는 미행당했고 납치됐다. 게다가 불법 가택 수색을 당해 방안은 온통 난잡하게 어질러졌다. 4월 14일, 루이안시(瑞安市) ‘610’ 국가보안경찰 천사오(陳昭)는 정저우 ‘610’ 사람을 동반해 양중성의 집으로 가서 양중성의 모친의 모습을 녹화했는데, 말인즉슨 양중성이 단식했다며 모친이 그가 밥을 먹도록 권고하라는 등이었다.
4월 20일, 정저우시 제3구치소에서는 양중성의 부친에게 전화를 걸어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양중성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4월 23일, 정저우 ‘610’은 또 그의 부친의 피를 뽑았는데, 말로는 친자 확인을 한다고 했다.
양중성, 양중겅은 저장성(浙江省) 루이안 사람이다. 양중겅은 또 장양(張陽)이라고도 불렀다. 1994년에 허난성 싼먼샤시(三門峽市)에서 장사를 배웠다. 당시 마침 중화대지에서 기공 열풍이 지나간 후, 파룬따파(法轮大法)가 홍전되는 시기였다. 어릴 적부터 무술 기공을 열애한 양중겅은 1995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파룬궁도 생애 중에 그가 추구하려던 대법대도(大法大道)라고 여겼다. 양중겅이 대법을 널리 알리는 열성과 그의 심성, 사람됨은 모두의 인정을 받아 그는 싼먼샤 보도소의 소장이 되었다.
1999년 7월, 중공 사당 장쩌민 깡패집단이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를 시작한 뒤, 양중겅은 산둥 루산시(乳山市) 경찰에게 납치, 감금당해 비인간적인 고문 학대를 당했다. 그는 강제로 독극물을 주사 당했고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황 하에 세뇌를 당했는데, 그 후 불법적인 3년형,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을 당했다. 2008년, 싼먼샤 링바오시의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됐는데, 양중겅이 연루되게 됐다. 싼먼샤 링바오시 ‘610’은 양중겅을 찾아 그를 박해했다. 그를 인터넷에 ‘지명수배’ 인물로 올리고 그의 사진을 프린트하여 사처에서 배포하며 양중겅의 행방을 찾았다.
2013년 6월 24일, 양중겅은 속달우편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는 핸드폰을 사용하다 정저우시의 4명의 경찰에게 납치됐다. 정저우에 불법 감금당한 기간, 양중겅은 혹독한 구타와 고문 학대를 당했다. 26일, 싼먼샤 링바오 구치소로 납치돼 계속 고문 학대를 당했다. 6월 28일 악독한 경찰의 구타로 무참하게 사망했다.
양중겅이 박해당한 상황에 관해서는 밍후이왕 2011년 3월 31일 ‘저장 루이안 양중겅이 예전에 고문 학대를 당하다(사진)’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5월 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5/1/3274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