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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의 억울한 옥살이와 고문을 당한 한단 리밍타오가 다시 모함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 보도) 한단(邯鄲) 파룬궁수련생, 올해 45세인 리밍타오는 예전에 11년의 억울한 옥살이로 감옥에 갇혔었는데 전기 고문, 장시간 매달기 고문, 혹독한 구타, 아오잉(熬鷹) 고문, 쭈그려 앉히기, 겸자(집게)로 손가락에 고통 가하기 등의 고문을 당했었다. 그가 출소한 지 3년도 되지 않은 2016년 1월 26일에 페이샹현(肥鄉縣) 정부 소재지에서 파룬궁진상을 전파하다가 다시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2016년 2월, 리밍타오 등 5명의 파룬궁수련생은 페이샹현 검찰원에 의해 불법적인 체포령을 받았는데, 지금 페이샹 구치소에 감금당해 있다. 페이샹 국가보안경찰은 모함하려고 자료를 날조하여 법원을 통해 한층 더 박해를 가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대법을 수련해 화기애애하다

1995년, 리밍타오의 부친 리자궁(李家功)은 파룬궁을 수련한 뒤 오래지 않아 다년간의 고혈압이 치료하지 않고도 완쾌되었다. 대법의 신기함은 노인의 몸에서 끊임없이 펼쳐졌고, 이는 가족에게 연달아 대법을 얻고 수련하게끔 했다. 리밍타오의 모친은 수련한 뒤, 심장병, 요추간판탈출, 심장병, 심각한 마른버짐 증상 등이 신기하게 없어지고 건강을 회복했다. 1996년, 25세인 리밍타오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6개월도 되지 않아 그를 괴롭히던 신경쇠약, 불면증 등은 사라졌고 몸무게는 50kg쯤에서 80kg에 이르렀으며 성질도 좋게 변했다. 그의 두 여동생도 차례로 수련하기 시작했다. 전 가족은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의 법광(法光)속에 푹 빠져 화기애애했다.

억울한 옥살이로 고문당하고 집과 가족을 다 잃다

1999년 7월, 장쩌민(江澤民)은 소인배의 질투로 공공연히 헌법과 법률을 짓밟고 파룬궁 박해를 발동했는데, 리밍타오의 일가족은 모두 같지 않은 정도의 박해를 당했다. 부친 리자궁은 박해를 당하기 전에 파룬궁 보도원이었다. 1999년 4.25에 노인도 평화 대청원(萬人和平大上訪) 1만 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그도 중점 박해대상이 됐다. 직장과 관할구역 파출소 여러 곳에서 그에 대해 폭력적인 세뇌를 진행했다.

2003년, 리자궁 노인은 진상편지를 부쳤다는 이유로, 파출소 경찰에게 쇠 의자에 묶였고 꼬박 7일 동안 수면을 박탈당했다. 리밍타오의 2명의 여동생도 부친을 도와 편지를 부쳤는데, 한 사람은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고, 한 사람은 8천 위안(약 140만 원)을 갈취당했다. 매번 이른바 민감 일이면, 중공(중국공산당) 사람들이 그녀들의 집으로 찾아와서 교란했다.

2001년 7월부터 리밍타오의 직장에서는 그에게 월급 지급을 중지했다. 그해 8월, 리밍타오와 다른 몇 명의 대법제자는 한산구(邯山區) 뤼화로(綠化路)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한산구 국가보안대대에서는 그들을 카이위안(開元) 파출소에 일주일 동안 불법 감금했고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그런 다음 그들을 옷으로 머리를 덮어씌워서는 비밀 장소로 납치해갔다. 경찰은 사사로이 감옥을 설치해 비밀리에 그들에 대해 20여 일 동안 위협, 공갈 협박과 고문을 가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그 기간, 경찰은 리밍타오에 대해 고압 전기봉으로 전신에 전기고문을 가했고, 대나무 가지로 발바닥 후려치기 등 고문을 가하며 괴롭혔다. 경찰은 또 수갑으로 그를 2층 침대의 쇠 난간에 매달아 꼬박 7일 동안 그가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이 때문에 두 발과 다리에는 부종 상태가 나타났다.

酷刑演示:吊铐电击

고문 재연: 매달아 전기 충격을 가하다

20여 일 동안의 불법 심문 뒤, 리밍타오는 한단 제1구치소로 납치돼 불법 감금당했다. 이 기간 한산구 국가보안대대에서는 또 여러 차례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진행해 모든 대법 서적, 현금, 저축 통장과 값진 물건을 강탈했다. (명세서가 있음) 리밍타오는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해 여러 차례나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으며 또 무게가 18근이 되는 족쇄와 수갑을 차고 있어야 했다. 단식을 해 12일 뒤에 보석되었는데 그 기간 한산구 경찰은 보석을 빌미로 돈을 갈취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또 그를 납치했다. 2003년 7월 3일, 리밍타오가 기한을 초과한 감금을 근 2년 동안 당한 뒤, 한산구 법원 측은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은 채 비밀리에 그에게 11년의 억울한 중형을 선고했다.

 酷刑演示:野蛮灌食

고문 재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2003년 11월 13일, 리밍타오는 스자좡(石家莊) 북쪽 교외 제4감옥으로 납치됐다. 감옥에 들어간 뒤 곧 ‘강제전향’시키는 박해를 당했고 핍박으로 수련을 포기한다는 보증서를 썼다. 그는 독방 안에 갇혔는데, 3명의 폭도가 그를 학대했다. 장시간 동안 잠을 못 자게 하기, 혹독한 구타, 장시간 동안 작은 걸상에 앉히기 고문 등을 가했다. 어떤 때에는 작은 걸상의 4개의 발이 위로 향하게 해 앉도록 했다……리밍타오가 이유 없는 요구를 거부하자, 교도관은 뜻밖에도 펜치로 그의 오른손의 무명지와 새끼손가락에 고통을 가했다. 이 때문에 그의 새끼손가락은 어혈이 생겨 농혈 증상이 나타나 손톱이 떨어졌다. 이후 그는 수차례 폭력적인 세뇌를 당했는데, 심각한 박해로 그는 치아가 흔들려 10여 개가 다 빠졌다. 그리고 예전에 전체 다리에 부종 증상이 나타나 쭈그려 앉을 수 없었고 허리도 곧게 펴지 못했으며, 정신은 한때 환각 증상이 나타났다. 제4감옥에서는 죄악을 덮어 숨기기 위해 여러 차례 그의 가족의 면회 권리를 박탈했다.

2004년, 리밍타오의 아내는 감옥으로 찾아가서 그와 이혼했다. 2009년 1월 13일, 그의 부친 리자궁은 근 10년 동안의 교란과 박해를 당한 뒤 억울하게 사망했다. 감옥 측은 리밍타오가 상을 치르러 집에 돌아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진상을 전파해 거듭 모함을 당하다

2015년 6월, 리밍타오는 장쩌민을 고소한 고소장을 특급 우편(EMS)으로 최고 인민법원과 최고 인민검찰원에 부쳐 장쩌민 깡패집단이 16년 동안 그들의 일가족에 대해 가했던 처참한 박해를 이유로 장쩌민을 고소했다. 고소장 중에서 리밍타오는 원흉, 피고소인 장쩌민에 대해 입안해 심사하며, 법에 따라 그의 형사 책임과 배상책임 및 기타 관련된 사회적 책임을 추궁하도록 요구했다.

2016년 1월, 리밍타오와 리충춘(栗從春) 등은 페이샹에서 파룬궁진상을 전파하다가 거듭 납치를 당했다. 현재 그는 페이샹 구치소에 불법 구금당해 있다. 납치가 발생한 뒤, 리밍타오, 리충춘의 가족은 변호사를 선임해 개입했다. 하지만 페이샹 파출소 경찰은 태도가 매우 악랄했는데, 한때 변호사가 당사자를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현재 페이샹 국가보안은 박차를 가해 모함할 자료를 꾸미고 있다. 즉 페이샹현 검찰원이 불법적인 체포령을 내리고 법원이 리충춘, 리밍타오, 완메이화(萬梅花), 뤄진위(羅金玉), 왕잉루(王英茹) 등 5명에 대해 불법적인 개정을 진행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박해 책임 기관과 개인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3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3/12/3252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