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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 진저우시 왕위취안, 장쩌민 고소 후 박해 받아 사망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진저우(錦州)시 파룬궁수련생 왕위취안(王玉泉)은 여러 차례 현지 파출소에 의해 교란, 납치를 당했고, 3년 불법 노동교양 박해를 당했다. 2015년 11월 11일, 장쩌민을 고소했다는 구실로 파출소 유치장에 납치당했는데 다섯 째 날에 기절해 땅에 쓰러졌다. 결국 2016년 1월 31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나이 60세였다.

왕위취안은 1999년 10월에 베이징으로 가서 대법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했다가 납치돼 진저우 마약 중독자 재활원에서 보름 동안 불법 감금됐다. 2000년에 현지 지역사회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구치소로 납치돼 100일 동안 박해를 당한 후 3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는데 고문 학대를 당해 뇌진탕 증상이 나타났고 몸에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2015년 7월, 왕위취안은 자신이 박해를 당한 경험에 근거해 국가 최고인민검찰원에 원흉 장쩌민(江澤民)에 대한 고소장을 건넸다. 며칠 뒤 최고인민검찰원의 수신 확인서를 받았다.

왕위취안은 고소장 중에 다음과 같이 썼다.

1999년 10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대법이 박해를 당하고 사부님이 비난을 당하신 것 때문에 베이징으로 가서 대법을 위해 사부님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는데 그 결과 불법 납치를 당해 진저우 마약 중독자 재활원에 보름 동안 불법 감금을 당했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头部

중국공산당 고문 설명도: 머리 부위 구타

2000년, 나는 현지 지역사회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가 진저우시 구치소로 납치됐다. 납치 100일 후 또 진저우시 교양원에 감금됐다. 그곳 경찰은 강제로 나에게 신앙을 포기시키기 위해 고문 학대를 가했다. 악독한 경찰 장자빈(張佳斌)과 무진성(穆錦生) 외에 두 명의 죄수를 보태 합해서 총 4명이 함께 나를 박해했다. 그들은 책상으로 나를 실내의 한 벽 구석에 밀어 제쳐놓고 두 손에 수갑을 채우고 머리에 안전모를 씌웠다. 그리고 고음 확성기를 틀어놓고 강제로 그들이 파룬궁에 대한 날조된 유언비어를 듣게 했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침대 판자로 안전모를 두드렸는데 안전모 안의 끈까지 끊어질 정도였다. 그들이 안전모를 두드리면 직접 내 머리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구타를 당해 뇌진탕 증상으로 이따금 각혈 현상이 나타나 먹은 음식을 전부 토했다. 이렇게 연속 괴롭히고 박해를 가했는데 나는 낮인지 밤인지 똑똑히 가리지 못했고 의식은 어떤 때 똑똑치 못했다. 그리고 두 다리가 부어올라 걷는 것도 두 사람이 부축해야 했다. 내가 곧 위험하게 되어서야 악도는 그제야 손을 멈췄다.

한 동안 멈춘 뒤 내 몸이 조금 회복되는 것을 보더니 또 새로운 한 차례 박해를 시작했다. 악독한 경찰 왕×우(王×武, 중간의 이름 한 글자는 기억하지 못했음)는 대략 너비가 8센티미터이고 길이가 80센티미터인 나무판자를 손에 들고 전문적으로 내 한쪽 뺨을 때렸다. 대략 몇 십 번을 구타했는데 내 한쪽 얼굴은 구타로 매우 크게 부었다. 그리고 경찰 뤄(羅)씨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해도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또 다른 방법으로 바꿨다. 대대장 리쑹타오(李松濤)의 지휘 하에 그들은 내 옷을 완전히 벗기고 피가 묻은 지저분한 걸레로 내 입, 코, 눈 전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얼굴을 위로 하게 해서 숨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박해자의 모습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 악독한 경찰은 손에 전기봉을 들고 전신 도처에 전기를 가했다. 당시의 감각은 곧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부축을 받아 돌아온 후 곧 기절했다.

酷刑演示:罚坐小凳子

고문 재연: 작은 의자 앉히기 고문

어느 날 그들 몇 사람은 나를 막 보낸 사람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납치했다. 그런 다음 또 한 무리 사람들이 덮쳐들어 너나 할 것 없이 끼어들어 나를 구타했다. 어떤 곳이든지를 막론하고 닥치는대로 구타했는데 나는 땅에 쓰러졌다. 다 구타한 후 나는 그들에 의해 판자 침대 위로 끌려갔다. 그리고 한 의사가 나에게 검진을 해주었다. 나의 당시 감각은 몸에 성한 곳이 한 곳도 없는 듯이 어디나 모두 아팠다. 이튿날 아침, 이불을 갤 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는데 내 늑골이 부러졌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치료를 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강제로 나를 작은 판자 의자에 앉혔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줄곧 저녁까지 앉혔는데 이런 유형의 박해는 오랫 동안 지속됐다. 그들은 이렇게 해도 여전히 나를 전향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함을 보고 또 케케묵은 말을 다시 꺼내며 또 나에게 안전모,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책상으로 나를 벽 구석에 밀어 제치고 강제로 그들의 저질스러운 말을 듣게 했는데 조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전히 안전모를 두드렸다. 그들은 내가 여전히 견지하자 또 나를 굴복하지 않는 다른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감금해 모두를 매일 작은 의자위에 앉혔다. 악독한 경찰 장자쥔은 “왕위취안, 네가 전향하지 않으면 3년 동안 작은 의자에 앉혀놓겠는데, 널 앉혀 불구로 만들겠다”고 소란을 피웠다.

2003년 9월, 3년 박해가 끝났다. 장시기 반복적인 고문 학대와 늑골이 구타로 부러진 상황에 강제로 장시간 작은 의자에 앉혀져 몸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힘든 일을 할 수 없었고 또 어떤 때에는 각혈했다.

2015년 11월 11일, 오후 대략 3시 반 쯤에 왕위취안이 마침 아래층을 내려가려 했는데 갑자기 뉘얼허(女兒河) 파출소의 경찰 몇 명이 왕위취안을 강제로 아래층으로 들고 가서 경찰차에 밀어 넣고 파출소로 납치했다(장쩌민을 고소했다는 구실로). 그리고 일일이 또 진저우 유치장으로 보냈다. 유치장에 도착한 뒤 3일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고 다섯 째 날에는 땅에 기절해 쓰러졌다. 유치장에서는 뉘얼허 파출소에 통지를 내려 왕위취안을 데려가게 했다. 뉘얼허 파출소 사람은 유치장으로 간 후 수속도 다 밟지 않고 상관하지 않은 채 떠났다. 그 후 왕위취안의 친척이 그를 데려와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박해를 거쳐 왕위취안의 몸은 갈수록 악화되어 늘 피를 토했다. 2016년 1월 28일에 왕위취안은 끊임없이 피를 토했고 때때로 혼절해 가족은 그를 병원으로 보내 검진을 받았는데 그의 폐가 손상으로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1월 31일 저녁 8시 33분에 그는 호흡을 멈췄다.

문장발표: 2016년 3월 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3/2/3248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