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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용정시 량수전 일가족 참혹하게 박해당해, 량슈전 등 가족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보도) 지린성(吉林省) 용정시(龍井市) 파룬궁(法輪功) 수련생 량슈전(梁秀珍) 일가족 5명은 중국공산당(이하 종공)에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5명의 가족이 8차례나 불법적인 법원의 유죄판결과 노동교양처분 당했는데, 그 과정에서 고문과 독극물을 주입 당하는 등 혹독한 박해를 당했고, 혹독한 고문을 당한 사위 차이푸천(蔡福臣)이 사망했으며, 2016년 1월 18일 량슈전도 고문박해 후유증으로 산둥(山東) 웨이하이(威海) 자택에서 억울하게 사망했다.

사망한 량슈전은 과거 노동교양소에 감금당해 있을 당시 신경을 훼손시키는 독극물을 주사 당해 2002년 이후부터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 특히 왼쪽 다리의 통증으로 잘 걷지 못해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몸이 마비되어 일 년 내내 침대에만 있어야 했고, 몸은 야위어 피골이 맞닿았으며, 2013년부터 차츰 언어능력을 잃었다.

가족이 모두 그렇다 보니 아들은, 몸이 마비된 모친 량슈전을 보살피는 한편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으므로 그 어려움과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량슈전의 일가족이 이처럼 처참한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은 중공사당(邪黨)의 납치, 고문 박해 때문이다. 그것들,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박해가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일이다! 다음은 밍후이왕이 2011년 11월 19일 지린성 용정시 일가족이 중공에 참혹하게 박해당한 사실을 보도한 내용인데, 그중 한 사람이 중공에 살해당한 내용을 간추린 것으로, 그 내용은 사망한 량슈전이 생전에 구술한 내용이다.

우리 전 가족은 운 좋게 1994년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으며, 대법수련 중에서 많은 혜택을 입었다. 남편은 간장병으로 복수까지 차는 심각한 상태였지만 수련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완쾌되는 등 우리 가족은 모두 수련하면서 심신에 큰 혜택을 입었다.

1999년 ‘7·20’에 장 씨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지만, 우리 가족은 수련을 견지했으므로, 중공의 각급 기관으로부터 잔혹한 박해를 당하기 시작했다.

파룬궁의 공정한 평가를 요구했다가 사당에 납치당하다

1999년 7월 장 씨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으므로, 우리는 7월 20일 성과 시 정부에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모두 선량한 사람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바로 그 이유로 당일 오후 악경(사악한 경찰)에게 납치되어 유치장에 감금됐다.

그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사당의 대변인이 천지를 뒤엎을 듯이 파룬궁을 모함한 발표를 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곧 사당 악마 장쩌민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우리가 파룬궁을 믿는 것은 좋은 사람으로 되려는 것이고, 몸을 건강하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정권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반드시 수련환경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악경이 그 우편물을 중간에서 훔쳐 개봉한 후 우리 전 가족을 납치하여 구치소에 3개월간 감금하면서 명절이 지나도록 우리를 풀어주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2001년 12월 10일 파룬궁의 정당한 평가를 요구하기 위해 열차를 이용해 톈안먼 광장으로 갔다가, 현장에서 5~6명의 경찰에게 납치됐는데, 그들은 나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어서 경찰차에 태운 뒤 경찰봉으로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이틀 뒤 주소지 관할로 압송돼 현지 공안국에 감금됐는데, 정보과장 장잉펀(姜英芬)은 부하에게 지시해 내 입과 머리를 잔인하게 구타했다. 구타로 어지럼증이 왔고, 코에서는 선혈이 흘렀다. 그들은 구타하면서 “당신이 어디 다시 한 번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쳐보라.”며 폭언했다. 악경들은 돌아가며 우리 부부를 사정없이 구타했는데, 남편이 바닥에 쓰러지자, 악경 진잉윈(金應允)은 구둣발로 남편의 손을 힘껏 밟아 짓이겼다. 그들은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구타했다.

2002년 악경 장잉라오(姜英勞)의 지시로, 나는 신경을 손상하는 독극물을 강제주입 당했다. 그로 인해 내 왼쪽 다리는 몇 해 동안이나 고통스러웠고 마비되어 계속 걷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酷刑演示:打毒针(注射不明药物)

고문 재연: 독극물 주사.

사위가 박해로 사망하다

2004년 사위 차이푸천은 진상자료를 복사했다는 이유로 연길시 악경에게 납치돼 불법적으로 법원의 10년형을 선고받은 후, 지린시 궁주링(公主嶺) 감옥에 수감돼 계속되는 잔혹한 고문 박해에 시달렸다. 악인들은 그를 항상 독방에 가둬놓고 고문했는데, 여러 개의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하는 전기고문을 했다. 특히 강력한 전류가 흐르는 전기봉으로 생식기 등 민감한 신체 부위에 집중적으로 전기충격을 가했다. 결국 2010년 9월 15일 사위 차이푸천은 혹심한 고문을 견뎌내지 못하고 억울하게 사망했는데, 바로 중공에 살해된 것이다.

酷刑演示:电棍电击

전기봉 전기충격 고문.

2005년, 악경은 거듭 남편과 아들을 함께 납치한 후, 악경 부셴쵄(卜憲全)은 내게 체포영장에 서명하라고 핍박했다. 내가 서명하지 않자, 부셴쵄은 가죽 자루로 내 얼굴을 구타했고, 또 다리와 허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렇게 구타하고 강요했는데, 첫날 오전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구타했다. 혹심하게 구타당한 나는 허리를 펼 수도 걷지도 못했는데, 허리가 90도로 꺾인 상태가 됐다.

2005년 여름 남편과 아들은 노동교양처분 받고 주타이(九台) 노동교양소에 감금됐다. 그들은 감금된 후 혹독한 박해에 시달렸는데, 밥 먹는 식사문제로도 그들을 괴롭혔다. 한번은 국을 담은 국그릇에서 큰 쥐가 몇 마리나 들어 있었으며, 그걸 먹으라고 핍박했다.

2006년 5월 악경은 거듭 내 집을 수색하며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강탈한 후, 그것을 이유로 나를 납치해 구치소에 10개월 동안 불법적으로 감금했고, 이어서 또 불법적인 재판으로 4년형을 선고한 후, 헤이쭈이쯔(黑嘴子)감옥으로 이송 감금했다. 그래도 내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자, 악인은 대법의 배신자를 교사해 각종 방식으로 나를 괴롭히며 온갖 고문을 가했다. 세워두는 고문을 가하면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 반까지였다. 그런 고문을 20일 넘게 받게 되어 발과 다리의 통증으로 설 수조차 없게 되었고, 두 발이 부어 신을 신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신에 땀이 흐르며 가슴이 떨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악도는 말하기를 “감옥에는 사망자의 비율이 정해져 있으므로 몇 사람이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큰소리쳤다.

경제적 박해, 불법적으로 양로금 지급중지

2009년 10월 말, 나는 출소해 집으로 돌아왔으나 내 퇴직금은 사당 악인이 횡령한 상태였다. 직장 책임자 말에 따르면, “‘610’에서 지급을 중지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610’ 주임 리하오(李浩)를 찾아가서 문의하자, “당신은 해고당했으므로 퇴직금도 없다.”고 하면서 소란을 피웠다.

변호사에게 문의한바, “퇴직금을 중지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했다. 다시 직장을 찾아가 사실에 근거한 설명을 하며 “퇴직금 지급금지는 위법이다.”라고 하자, 직장 자체로 자금을 마련해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그들은 나의 양로금 지급을 중지했고, 지금까지 금지하고 있어 나에게 경제적 박해를 가하고 있다.

문장발표: 2016년 2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14/3241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