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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근거해 장쩌민 고소한 링위안 강철회사 직원 또 납치돼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 보도) 랴오닝성 차오양(朝陽)시 링위안(凌源)시의 마옌화(馬岩華)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근무 중에 부지런하고 성실해 예전에 여러 차례 링위안 강철회사의 ‘선진 생산자’ 칭호와 표창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후 그는 직업을 잃었고 불법 노동교양 처분 3년, 징역형 4년을 당했다. 올해 5월 1일에 ‘안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하고,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수리한다’는 사법 신정책이 정식 공포된 후 마옌화는 법에 근거해 파룬궁을 박해한 원흉 장쩌민을 고소했다. 11월 12일, 마옌화는 막 자기 집 음식점에서 잠복 감시, 미행하던 경찰에게 납치됐다.

최근 랴오닝성 차오양시에서 법에 근거해 장쩌민을 고소한 30여 명 국민이 현지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에 의해 불법 체포영장을 받았는데 마옌화는 링위안 검찰원에 의해 불법 체포영장을 받았다.

2015년 5월 이래, 지금까지 이미 20만 명의 파룬궁수련생 및 가족이 중국 최고검찰기관에 장쩌민을 고소했다. 고소 인원수는 많고 범위가 컸는데 역사상 유례가 없다. 이 행동은 장쩌민 집단 및 그의 추종자의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숙청될까 두려워 장쩌민 고소 사건을 확인하는 기회를 이용해 불법 체포, 가택 수색, 감금, 판결 등 형식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해 파룬궁수련생의 장쩌민 고소를 저지하려 시도했다.

장쩌민을 고소한 이후 랴오닝 차오양시에서는 장쩌민 고소에 참여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끊임없이 납치, 교란을 진행해 강제로 그들에게 장쩌민을 고소하지 않는다는 표에 서명하도록 했다. 10월, 차오양현 공안국 인원은 장쩌민을 고소한 파룬궁수련생 명단을 들고 강제로 수련생에게 서명하도록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보름 동안 구류시킨다고 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1992년에 중국에서 전해져 매우 빨리 사회의 도덕성을 향상시켰고 사람들이 선행을 하도록 했다. 94년 초, 마옌화는 운 좋게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링위안 강철회사에서 개최하신 대법전수반(傳法班)에 참가했다. 이로부터 인생의 참뜻과 사람으로 되는 이치를 깨달았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해 몸이 건강하고 가정이 화목했다. 사회에서는 법을 지키는 문명적이고 좋은 국민이 됐다. 근무 중에서는 부지런하고 성실해 예전에 여러 차례 링위안 강철회사 ‘선진 생산자’의 칭호와 표창을 받은 적이 있다. 그가 직접 경험한 체험과 사실은 파룬궁이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되도록 가르치는 고덕대법임을 실증했다.

99년 7월, 장쩌민은 개인적인 사욕, 질투로 직권을 남용하고 선전기구를 움직여 파룬궁에 대해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모함했으며 역사상 유례없는 박해를 발동했다.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마옌화는 링위안 강철회사 보위처에 의해 불법적인 가택 수색 다섯 차례, 행정 구류처분 세 차례, 형사 구류처분 한 차례를 당했다. 2000년 초, 1제철공장에서는 개혁할 때 이를 구실로 강제로 그를 퇴직시켰다. 2001년 가을, 링위안 강철회사 보위처에서는 또 그에게 명예 퇴직을 강요했다. 이 때부터 그는 직업을 잃었고경제력을 잃었다.

2001년 10월 11일, 마옌화는 법에 의거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관련 부서에 상황을 반영했다가 경찰에 납치됐다. 그리고 링위안 강철회사 보위처로 납치돼 돌아와 감금당했다. 링위안 강철회사 보위부의 경찰간부 양(楊) 모씨에게극심한 구타를 당했고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당했다. 보름 동안 구류를 당한 후 불법 노동교양처분 3년을 당했다. 차오양 교양원 안에서 마옌화는 경찰, 죄수에게 구타를 당했고 강제로 과부하 노동을 당했으며 강제 세뇌를 받았고 ‘전향’하도록 핍박당했다. 인격과 존엄성은 극도의 모욕을 당했고 인신은 자유를 잃었으며 언론도 자유를 잃었다. 그리고 신체와 정신적으로 극심한 상처를 입었으며 정신적 압력이 매우 컸다.

2007년 8월 1일, 마옌화는 베이루향(北爐鄉) 파룬궁수련생이 조직한 대법학습 심득교류회에 참여했다. 이것은 본래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집회 자유, 언론 자유의 권리다. 그러나 회의에 참여한 42명은 전부 링위안시 국가보안대대 경찰에게 납치돼 유치장에 감금돼 불법 심문, 구타로 자백을 강요당했고 인격 모욕과 가택 수색을 당했다. 그리고 강제로 행정 구류처분을 당했는데 그 후 형사 구류로 고쳤다. 그중 후옌룽(胡豔榮)은 박해로 사망했다. 불법 감금 4개월 후 파룬궁수련생 9명이 불법적인 징역형 선고를 받았다. 마옌화는 4년형을 받았다.

10여 년 동안 마옌화의 부친과 외할머니, 친척들은 반복적으로 가택 수색, 납치 등 충격을 당했고 벌금, 노동교양, 판결 등 박해의 충격으로 심리적 압력이 매우 컸으며 인내력은 극한에 달해 매일 걱정하고 질겁하는 나날을 보냈다. 2008년, 그가 불법 감금을 당한 기간, 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연이어 억울하게 사망했다. 그가 마지막 모습을 한 번 보려 했으나 경찰은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는데 효도를 한다는 것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중화민족의 윤리도덕은 그들에 의해 완전히 말살됐다.

신앙과 고소는 헌법이 국민에게 부여한 권리다. 장쩌민 집단은 헌법을 위반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게다가 손 안의 권력을 이용해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유혈 박해를 발동했다. 장쩌민을 고소하는 열풍 중에서 오랫동안 방치했던 억울한 그 사건들은 하나씩 드러나 사람들에게 거듭 파룬궁수련생이 당한 고문 능욕과 불굴의 정신을 보게 했는데 이 사실들은 사람들의 양심을 각성시키고 있다.

파룬궁수련생은 자비롭게 지금 단지 장쩌민만 고소했을 뿐 기타 참여한 610, 국가보안, 공검법사(공안, 검찰, 법원, 사법) 인원 및 기타 참여한 공무원을 고소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사람들 역시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죄악의 피해자와 희생양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희망과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다. 이 3년 사이에 붙잡은 그들 저우융캉(周永康), 리둥성(李東生)을 대표로 한 크고 작은 호랑이들은 표면적으로 보면 부패한 원인으로 채포됐지만 실질적인 원인은 그들이 장쩌민을 대신해 파룬궁을 박해한 업보를 당한 것이다.

때문에 여전히 박해에 참여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려 눈앞의 일시적인 이익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망치지 말기를 바란다. 무슨 일을 해도 자신에게 뒷길을 남겨야 한다. 대세를 아는 자가 준걸이다. 즉시 박해를 멈추고 공로로써 잘못을 씻는 사람이야말로 총명한 사람이다.

문장발표: 2015년 12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29/3212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