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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선량한 여성 장위훙, 양샤오펑 납치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베이징보도) 2015년 12월 6일 베이징시(北京市) 핑구구(平谷區) 파룬궁수련생 장위훙(張玉紅)과 양샤오펑(楊小鳳) 등이 핑구구 전뤄잉진(鎮羅營鎮) 상전촌(上鎮村)에서 농민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한 촌민의 악의적인 신고로 진뤄잉 파출소경찰관에게 납치된 후, 핑구 구치소로 이송돼 형사구류처분을당했다. 납치 당일 두 여성의 자택도 2명의 진뤄잉 파출소 경찰관에 의해 불법적인 수색을 당했다.

납치된 두 명의 파룬궁수련생은 서로 이웃 간인데, 이웃과 친구들로부터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정평이 나 있는 사람들이다. 그녀들이 한 일은 어떠한 조직이나 개인에게 무슨 피해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에게 도와 덕을 알려주고 높여주는 좋은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사람을 납치 감금한 진뤄잉 파출소 경찰관은 “이것(납치)은 중국 법률이다.”라고 말했다.

파룬궁은 장위훙의 몸을 건강하게 했고 또 사상을 고상하게 만들어줬다. 그녀는 수련 전 무릎관절 손상으로 걷지 못해, 크고 작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았지만 치료되지 않았으므로 병원에서는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좋다는 민간처방을 받아 약을 먹고 바르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은 지수이탄(積水潭)병원에서 마지막으로 수술을받아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어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다만 파룬좡파(法輪樁法)를 한 번 연마했을 때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면서 병이 완전히 나았다. 파룬궁은 그녀의 몸을 치료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성품마저 치료해주어 불 같이 급했던 성질을 고쳐 준 것이다. 그 후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선한 마음으로 참고 양보하면서 남을 돕게 되었다. 그녀는 시어머니와 다시는 타투지 않았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모든 걸 양보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됐다. 또 동서 간에 오랫동안 골이 깊었던 갈등도 전부 해소됐다.

양샤오펑은 금년 50세로 핑구구 류뎬향(劉店鄉) 파룬궁수련생이다. 양샤오펑은 다른 일로 사람들의 동정을 받고 있다. 그녀는 7차에 걸쳐 거듭 중공에 납치 감금되어 잔혹한 고문박해를 당했는데, 이번 8번째 다시 납치된 것이다.

酷刑演示:野蛮灌食(绘画)

고문 재연 – 야만적인 음식물강제주입

제1차 납치는 1999년 집에서 연공하다가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신고당해, 류뎬향 파출소 경찰관에게 납치되어 향정부로 끌려가 당일 오후 늦게 핑구 구치소로 이송 감금됐다. 그녀가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자, 감옥의사가 뉴허촌(牛河村)에서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주입을 했다. 양손에 수갑을 채우고, 족쇄를 채워 정원을 돌며 강제로 걷게 하고, 머리에 투구를 씌워 호스를 꽂았으며, 전기침을 찔러 전기고문을 하는 등 각종 고문을 가했는데, 그녀가 그곳에서 1개월 동안 감금돼 있는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한 것이다.

제1차 납치는 1999년 집에서 연공하다가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신고당해, 류뎬향 파출소 경찰관에게 납치되어 향정부로 끌려가 당일 오후 늦게 핑구 구치소로 이송 감금됐다. 그녀가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자, 감옥의사가 뉴허촌(牛河村)에서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주입을 했다. 양손에 수갑을 채우고, 족쇄를 채워 정원을 돌며 강제로 걷게 하고, 머리에 투구를 씌워 호스를 꽂았으며, 전기침을 찔러 전기고문을 하는 등 각종 고문을 가했는데, 그녀가 그곳에서 1개월 동안 감금돼 있는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한 것이다.

 
中共酷刑示意图:用电针电击

중공 고문 설명도 – 전기침으로 전기고문 가하기

제2차 박해는 1999년 친정집에서 납치됐는데, 구체적인 박해 내용은 이미 똑똑히 기억할 수가 없게 됐다.

제3차 박해는 2000년 여름이다. 자택에서 류뎬향 파출소 경찰관에게 납치되어 류뎬향 양로원에 설치된 세뇌반으로 끌려가 감금됐다. 그녀는 당일 밤 그곳을 벗어나 유랑생활을 했다.

제4차 박해는 역시 2000년에 납치되어 2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다싱(大興) 톈탕허(天堂河) 여자노동교양소에 감금돼 고문박해를 당했다. 그녀는 가을에 베이징시 미윈현(密雲縣)에서 같은 수련생 4명과 함께 둥사오취(東紹渠)파출소와 허핑구 류뎬 파출소 경찰관에게 납치되어 당일 구치소로 이송 감금됐다. 그녀는 양손을 뒤로 결박당한 채 음식물강제주입 등 온갖 고문과 학대를 받았다. 그 후 다시 다른 곳으로 배정되어 이송되었지만, 큰소리로 보고하지 않고, 감방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무수한 구타와 함께 잠재우지 않는 고문을 당했다. 그 후 2년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후 톈탕허 여자노동교양소에 감금됐다. 그 몇 개월 기간 동안 단식으로 항의 하여 병원으로 보내져 영양주사를 맞았는데, 두 명의 감시자(바오자)가 지켰고, 또 그곳에서 마취약을 투입해 위급한 상황이 되자, 병원 측이 가족에게 위급하다는 통지를 했지만 가족들도 오지 않았다.

酷刑演示:灌食

고문 재연- 음식물강제주입

제5차 박해는 2003년에 납치돼 2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2003년 가을 양샤오펑은 다타오(大桃)시장에서 류톈 파출소 경찰관에게 납치돼 향정부로 끌려가 감금됐다. 그 후 핑구 구치소로 이송됐지만 1개월 동안 단식으로 항의했다. 그러자 다시 또 다른 장소로 옮겨진 후 음식물 강제주입을 당했다. 노동교양소 5대대장 천슈화(陳秀華)는 그녀에게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서 종일 작은 걸상에 앉게 하는 고문을 가했고, 또 독방에 감금했다. 독방이라는 곳은 사면의 벽을 부드러운 재질로 바른 후 아주 시끄러운 굉음의 소리를 틀었다. 그 굉음은 머리가 갈라지는 듯했다. 그러면서 마약죄수를 시켜 잠들지 못하도록 감시 했는데 그자는 무수한 구타로 괴롭혔다. 양샤오펑은 단식으로 항의하다가 숟가락으로 입을 강제로 벌려 비트는 바람에 치아가 부러지고 흔들렸다. 그 후 독방에서 병원으로 보내져 계속 시달림을 당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뒤에는 생활용품 구매도 허락하지 않았고, 가족이 면회함을 허락하지 않은 채 계속 젓가락을 포장하는 강제 노역을 시켰다.

제6차 박해는 2005년에 납치되어 2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파룬궁수련생 장주하이(張久海)와 자오후이메이(趙慧梅)와 함께 근무하던 직장에서 납치됐는데, 후에 후베이 우한(武漢)으로 보내져 강제노동으로 IC카드를 제작하는 일에 투입됐다. 그녀는 휴식시간이 돼도쉬지 못하고 화장실 청소와 벽에 칠하기 등등의 일로 혹사당했다. 혹심한 고문박해와 과중한 강제노역으로 심신이 피폐해져 건강이 악화되자 풀려났다.

제7차 박해는 2013년이다. 양샤오펑은 막내 이모와 함께 자료를 배포하다가 신고당해 지역 경찰관에게 납치됐는데, 핑구 국가보안 장다밍(張大明) 등 6~7명 경찰관이 막내 이모의 집을 급습하여 함께 납치된 것이다. 그 후 싱구(興谷) 파출소로 이첩되어 이모는 고혈압 증상이 심해 풀려났지만, 양샤오핑은 핑구 구치소로 송치됐는데, 2~3일 뒤 베이징 공안병원으로 보내져 야만적인 음식물강제주입을 당했다. 그런 후 사지를 대자 형으로 묶이는 고통을 당하다가 보름 뒤에 벗어났다.

이번 납치는 8번째다. 그러나 가족 때문에 겪는 고통 또한 컸다. 그동안 가족들이 이해하지 못해 고통이 심했는데, 과거에도 가족들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아 그녀는 몇 해 동안이나 매우 어려운 유랑생활을 해야만 했다.

현재 두 사람은 베이징시 핑구구 구치소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다.

(박해에 참여한 관련자들의 인적사항은 원문참조 바람).

문장발표: 2015년 12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22/3207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