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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경각에 이른 옥중의 장진쿠, 삼대 가족이 구원을 청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헤이룽장(黑龍江) 치타이허(七台河) 보리현(勃利縣) 융헝향(永恆鄉)의 파룬궁(法輪功)수련생 장진쿠(張金庫)는 2013년 불법적인 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감옥에 수감돼 있는데 생명이 위급한 상태다. 그의 모친, 아내, 딸 등이 국내외에 긴급 구명을 요청하고 있다.

장진쿠는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2013년 이란현(依蘭縣)에서 불법 납치되어, 법원으로부터 5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데, 그 과정에서 온갖 고문의 혹형을 당해 여러 차례 생명이 위험한 상태에 처해졌었는데, 현재는 더욱 위급한 상태라 생명이 경각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은 장진쿠가 불법으로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에 납치, 고문, 학대, 불법적인 판결을 당한 사실의 내용이다.

1. 납치, 혹독한 구타, 재물갈취당하다

2013년 신년 들어 헤이룽장성 장(黑龍江省) 왕셴쿠이(王憲魁)가 새해 초도 순시 중에 하퉁(哈同) 도로 이란(依蘭)과 훙커리(宏克力) 구간의 콰셴교(跨線橋) 위에 걸려있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현수막과 래커(lacquer)로 분무해 쓴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의 표어를 목격하고 크게 화를 내며 직접 성 공안청에 “조사하여게시자를 검거하라.”라고 명령했다. 이에 공안청에서는 휴대폰 위치 추적 등 다각적인 수사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란현, 팡정현(方正縣) 지역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광적이고 악랄한 수법으로 납치 행각을 벌였는데 바로 악명 높은 ‘3·29 납치사건’을 만들어 낸 것이다.

张金库

장진쿠(張金庫)

2013년 3월 29일 치타이허(七台河) 보리현 융헝향 파룬궁수련생 장진쿠는 이란현에서 싼다오강진(三道崗鎮) 파출소에 의해 불법적인 납치를 당해 이란현 제1구치소에 감금됐다

酷刑示意图:苏秦背剑:把人的双手臂背在后面用手铐铐住,恶警抓住铁链踩住法轮功学员后背,用力往上拽,痛苦至极。

소진배검(蘇秦背劍)- 두 팔을 뒤로 수갑 채워 바닥에 엎어놓고, 악독한 경찰이 파룬궁수련생의 등을 발로 밟고 수갑을 잡아 위로 잡아당겨 올리는 고문

장진쿠는 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때 공안국장 바오(白) 모와 악독한 경찰 양신화(楊新華) 등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해, 치아 몇 대가 부러지고, 왼쪽 늑골에 중상을 입었고, 소진배검(蘇秦背劍)의 고문 의자에 묶여 48시간 고문당해, 내상은 물론 외상도 심했는데, 폐의 부상으로 감염증을 유발시켜 폐결핵을 앓게 만들었다.

中共酷刑示意图:绑在椅子上

중공의 고문 설명도- 쇠 의자 위에 묶다

그의 가족은 4월 20일 구치소의 핍박으로 1만 위안(약 180만 원)의 ‘보증금’을 내고 장진쿠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 후 병원 검진 결과 폐결핵 개방 증상으로 판명됐는데 폐에서 두 개의 천공이 발견됐다.

2. 거듭 납치되어 불법적인 5년형 판결

2013년 7월 17일 오전 5시 이란현 경찰들이 갑자기 장진쿠의 집으로 들이닥쳐 또다시 그를 납치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납치된 다음 날 이란현 법원이 불법으로 개정한재판에서 장진쿠에게 5년 형을 선고 한 것이다. 장진쿠는 판결을 받은 후 즉시 이란현 구치소에 감금됐고, 감금된 후 20여 일 동안 식음을 전폐한 장진쿠는 이미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구치소 측은 인명 사고를 우려해 감히 음식물 강제 주입을 못 하고 이란현 중의원으로 이송해 응급처치를 했다. 장진쿠는 중의원에서 8일 동안 입원해 있다가, 8월 21일 경찰이 들것으로 호송차에 옮겨 자무쓰(佳木斯) 감옥으로 보내졌고, 감옥에 도착하자마자 악독한 교도관들에게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주입과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3, 후란 감옥으로 이송돼 박해를 당하다

2013년 9월 19일, 장진쿠는 후란 감옥으로 이송돼 계속 고문 박해를 당했다. 감옥에 입소해서 처음 신체검사를 받을 때 검진하던 의사 왕훙빈(王洪斌)이 장진쿠에게 “무엇 때문에 감옥으로 오게 됐느냐?”고 물었다. 장진쿠가 “연공을 한 것 때문”이라고 말하자, 왕훙빈 의사는 느닷없이 장진쿠의 가슴을 사정없이 발로 걷어찼다. 장진쿠는 순간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바닥에 쓰러져 머리가 바닥에 부딪혀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기절했다. 그러나 의사 왕훙빈은 기절한 장진쿠의 머리를 한 발로 들어 올렸다가 바닥에 짓이기고, 다른 한 발로 가슴을 밟아 짓이겼다.

酷刑演示:暴打

고문 재연-혹독한 구타

의사 왕훙빈은 계속해서 2명의 죄수에게 장진쿠의 손발을 잡아 누르게 한 다음 넓은 혁대로 장진쿠의 머리와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장진쿠의 왼쪽 귀는 당시의 구타로 청력을 잃었다. 왕훙빈은 구타를 계속하다가 제풀에 지쳐 그만뒀다. 그런 후 그는 굵은 백색 플라스틱 주사기에 가장 굵은 주사바늘을 끼워 장진쿠의 왼팔을 걷어 올린 후 찔렀는데, 그 악인은 주사바늘로 살 속을 한나절이나 찌르고 빼고 하면서 고통을 주다가 혈관에 찔러 넣었다. 왕훙빈 악도가 채혈할 때, 큰 주사기 안에서 기포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왼팔에서 혈액이 급격히 밖으로 분출되는 것이 역력하게 보였다.

그때의 느낌은 극히 고통스러웠다. 가슴도 아주 괴롭고 구토증으로 고통이 심했지만, 눈도 떠지지 않고 소리를 치려고 해도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으며 정신이 가물가물해졌다. 그런데 그들의 말소리는 똑똑히 들렸다. 한 사람이 “이제 그만하세요! 더는 뽑지 마세요. 팔 부위의 살마저 우묵하게 가라앉았고, 혈관이 모두 내려앉았습니다. 더 뽑으면 죽습니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왕훙빈이란 자는 “괜찮습니다. 그의 피를 가져다가 사람을 구하겠습니다. 죽으면 자살로 칩니다.”라고 말했다.

잠시 후 왕훙빈은 장진쿠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급히 끌어내라고 지시하며 “이곳에서 죽지 말게 하라!”고 했다. 2명의 죄수가 장진쿠를 수술 침대 위에서 들어내려 팔을 잡아 밖으로 끌어냈다. 그러자, 악도 왕훙빈은 또 발길질로 장진쿠의 사타구니를 몇 차례 걷어찼다. 그러면 흉악하게 떠들었다. “내가 너를 걷어차 폐인으로 만들겠다.” 장진쿠는 고통으로 두 다리를 떨고 온몸을 떨었다. 성기는 짓이겨 찢어지는 듯했고 고환은 터지는 듯했다.

장진쿠는 그 후에도 감옥에서 늘 구타를 당해 상해를 입었다. 그러므로 전신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폐결핵이 되어, 몸은 극도로 허약해졌으므로 음식물을 먹을 수도 없게 되었으므로정신마저 흐리멍덩해졌다.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해 스스로는 생활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후란 감옥에서는 장진쿠가 단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갖 악독한 수법으로 고문 학대를 가했는데, 교도관은 물론 중범죄자를 시켜서 함부로 괴롭히고 있다.

4. 후란 감옥병원으로 옮겨져 박해당하다

2013년 9월 30일, 장진쿠는 후란 감옥에서 박해로 생명이 위급해졌을 때 들것에 실려 감옥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은 그곳 병원의 병실이라는 곳은 고문과 폭행을 가하기 위한 장소였다. 장진쿠는 그곳에서 살인범 죄수들에게 이유 없이 온갖 모욕과 시달림을 당해야했는데, 생명을 잃을 뻔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장진쿠는 업혀서 전염병 병실로 옮겨졌다. 살인범 죄수 침실장 자오창샹(趙長香)은 자신이 점수를 따서 형기를 줄여보겠다는 욕심으로 장진쿠를 지키는 다른 죄수들을 쫓아내고 자신이 혼자 장진쿠를 지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매일 도박과 폭음으로 일관하며 장진쿠를지키지 않다가도, 때로는 온갖 방법을 생각해내 장진쿠를 괴롭혔는데, 그는 아주 포악하고야만적이어서 그 병실 구역에서는 누구도 감히 그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도박으로 20여만 위안(약 3,600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따기도 했는데, 그 사실은 살인범 린웨이(林威)와 밤중에술을 마시면서 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은 무법천지의 장소가 됐다. 그러므로 교도관들은 처음부터 그곳을 단속하거나 관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교도관에게 10만 위안(약 1,800만 원)의 뇌물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감옥 병원장에게는 한 번에 현금 1만 위안(약 180만 원)씩을 주고 있었다.

한 번은, 장진쿠가 소변을 가리지 못해 바닥에 쌌는데, 자오창샹이 곧바로 밥도 물도 못 먹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살인범 톈위순(田宇順)과 왕훙빈(王洪斌)과 결탁해서 장진쿠를 침대 위에 묶어놓고 늘이는 고문을 가하기도 했다. 악인 자오창샹은 침대에 묶여 있는 장진쿠를 손발을 힘껏 당겨 탈구가 되게 했지만, 그자는 멈추지 않고 끈이 단단한지만 살펴봤다.

酷刑演示:抻床

고문 재연 -늘리는 침대(抻床)

장진쿠의 침대 옆에는 62세 살인범 양주첸(楊柱千)이란 자가 있었다. 당시 장진쿠의 손은 마침 양 씨의 침대 위까지 늘려졌다. 그러자 양 가는 장진쿠의 중지를 잡고 힘껏 꺾었다. 장진구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양 가는 손가락 꺾는 짓거리를 계속하다가 실증을 느껴서야 그만뒀다.

한 번은 그들의 늘리는 고문 시간이 아주 길었는데, 오전 11시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 1시까지 했다. 자오창샹이 도박을 하고 돌아온 뒤에야 풀어준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7~8시간 늘였다. 연속해서 그렇게 20여 시간 동안 고문에 시달렸다. 그러므로 장진쿠는 기진맥진해져 정신과 몸이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사람은 곧 무너질 듯, 생명은 거의 끝점에 이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악인 자오창샹은 장진쿠에개 “너는 침대 위에서 오줌을 누고, 이불에 대변을 보라. 그럼 너에게 똥을 먹이겠다. 이건 감옥 책임자의 의무다.”라고 말했다. 몇 명의 살인범들이 문을 닫고 어떤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다른 사람이 문틈으로 엿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장진쿠가 죽고 사는 문제를 상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는 11~12월이라 엄동설한의 추위가 혹심했는데, 그런 추위에 장진쿠는 늘려진 채 온몸을 떨었다. 그는 천천히 고통을 참아가며 조심스럽게 일어나봤지만 어쩔 수 없이 또 바닥에 오줌을 쌌다. 그러자 살인범 양주첸이 살그머니 내려가 몽둥이를 들고 장진쿠의 머리를구타했다. 순간 머리가 ‘쾅’하면서 마치 폭발하는 듯해서 무의식적으로 두 손이 머리를 감쌌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악인이 머리를 감싼 손가락을 힘껏 내려치면서 사정없이 연거푸 내려쳤는데, 처음에는 손가락의 고통이 심했지만 순간 현기증이 일고, 허리가 꺾어지면서쓰러지려고 하자 그 악인은 재빨리 몽둥이로 장진쿠의 허리를 강타했다. 허리에 타격을 받은 장진쿠는 오장육부가 뒤틀리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마비된 눈으로 입을 반쯤 벌린 채 침대 위로 쓰러졌다.

당시 방안에는 살인범 3명이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3명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이 누구도 말리거나 참견하는 자가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장진쿠는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고통은 여전했지만, 그냥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근본적으로 좋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에 관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후 장진쿠는 감옥 교도관 장량(薑亮)에게 상황을 신고했다. 그러나 장량은 허세를 부리며 두어 마디 인사조의 말을 한 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상황이 그처럼 열악하다 보니 잔혹한 구타와 고문 학대가 장진쿠 몸에서 떠날 날이 없었으므로, 몸이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기력은 물론 혈액조차 몸 안에서 정상적으로 순환할 수가 없었다. 결국 장진쿠의 팔과 다리는 감각을 잃게 됐고, 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더욱 생명에까지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5. 가족의 면회는 매번 고통과 걱정으로 되었다

장진쿠가 후란 감옥으로 이송됐을 때, 감옥 ‘610’의 교개 과장(教改科) 왕샤오천(王曉臣)은믿음을 포기하라고 핍박했다. “반드시 ‘전향’해야 가족의 면회가 허락된다.”라고 협박했다.그러나 장진쿠가 그의 요구를 거부하자 여러 차례 가족이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가족은 2013년 10월 21일에야 후란 감옥에서 장진쿠를 면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족들은 장진쿠가 두 사람에게 부축되어 이끌려 나온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온몸은 부종으로 부어 있었고, 정신마저 흐리멍덩해져서 도무지 반응이 느렸는데 마치 바보 같은 모습이었다. 말은 끊어졌다 이어졌다 횡설수설했으며, 이따금 혀를 내밀기도 했다. 말을 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며 발음도 똑똑하지 못했다. 그는 다만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나를 구타했습니다.”라는 한마디 말을 했을 때, 노개 과장 왕샤오천의 지시로 장진쿠는 가족면회 도중에끌려나가고 말았다.

2014년 1월 9일, 장진쿠의 아내가 두 번째로 면회 갔을 때, 장진쿠의 건강상태는 더욱 악화돼 있었다. 걸을 때는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했지만 그래도 아주 힘들게 조금씩 움직일수 있을 뿐이었고,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말도 아주 힘들게 하면서 발음도 똑똑하지 못했다. 장진쿠는 감옥 안에서 자신을 구타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늘 악몽을 꾼다고 했으며, 또 몸이 괴롭고 힘들어 자고 싶다고만 했다. 가족은 즉시 헤이룽장성 감옥관리국을 찾아가 장진쿠가 현재 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진정했다. 관리국 집행처 책임자는,“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거나, 생명에 위험이 있든지, 어느 한 조항에 해당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14년 1월 27일 가족이 후란 감옥에 장진쿠의 석방을 요구하자, 감옥 측은 오히려 각종 변명을 늘어놓으며 석방을 거부했다. 그날 감옥 측은 가족의 면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딸이부친의 면회를 간 것은 장진쿠가 불법적인 형의 판결을 받은 뒤 1년 넘게 만나지 못하다가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부친을 본 딸은 순간 깜짝 놀라 정신이 멍해졌다. 감옥에 오기 전에는 80kg이 넘는 물건도 단숨에 들어 메고 10층까지 올라갔던 건장한 몸이었는데, 지금 두 사람의 부축을 받고 힘들게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과 심한 부종으로 부어 있는 얼굴 하며, 멍청해져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걸 보고 참으로 놀랐다. 입을 헤벌린 채 다물지 못했고, 말하는 모습은 매우 힘들어 보였는데, 다만 “어떤 사람이 나를 때린다. 나는 살아서 집에 돌아가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하는 말만 겨우 들을 수 있었다. 딸은 면회하는 내내 큰 소리로 울었다. 그날은 바로 음력 12월 28일로, 집집이 가족들이단란하게 한자리에 모여앉아 설 명절을 쇠는 날이었다. 그러나 장진쿠의 일가에게는 이처럼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2014년 2월 17일, 장진쿠의 여동생이 혼자 감옥으로 면회를 갔는데, 하루 동안 기다려서야장진쿠를 면회할 수 있었다. 그때 장진쿠는 업혀 나왔다. 그는 더욱 말하기 힘들어했다. 말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똑똑히 들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톈 의사가 그에게 “괴롭혀 죽여도 정부에서는 관여하지 않는다.”라고 위협했다는 것이었고, 또 그에게 “잠을 못 자게 괴롭힌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장진쿠는“목숨이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 이 모습을 본 여동생은 울면서 “오빠, 꼭 살아서 집으로 돌아와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다시는 오빠를 보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2014년 4월 14일, 장진쿠의 모친과 아내가 후란 감옥으로 면회를 갔다. 여러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장진쿠를 면회할 수 있었다. 장진쿠는 손수레에 실려 와서, 두 죄수의 부축으로 매우 힘들게 약간씩 움직이며 면회실까지 왔다. 장진쿠의 표정은 멍청했고, 자기도 모르게 입이 벌려지며 힘없이 혀가 빠져나왔다(감옥의 독극물 주사로 추측됨).

장진쿠가 후란 감옥에 갇힌 뒤 처음 면회한 것이다. 원래 몸이 건장하던 아들이 참혹하게 변한 모습을 본 모친은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두 손으로 창턱을 두드리며 대성통곡을 했다. 가족들은 아무리 학대를 받는다고 해도 그 정도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아들이 언제라도 금방 생명을 잃을 것 같은데도 잡아끌고 나오지 못함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그때 옆에서 면회하던 다른 사람들조차도 동정하는 눈빛으로 모두 쳐다보았다. 그러나 교도관은거들먹거리며 “또 그렇게 울면 다시는 면회를 허락하지 않겠다.”라고 위협했다. 그 위협에 비통한 마음이 칼로 에는 듯이 아픈 마음을 억제해야 했지만, 억제가 되지 않아 “아들아, 아들아……”라고 외쳤다.

장 씨 아내가 한 마디 말을 더 하려고 했을 때 “신간이 다됐다.”라며 끌고 갔다. 짧은 30분의 면회였지만 그를 부축해 나온 죄수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수화기를 빼앗는 바람에 별로 할 말도 못했다. 다만 대성통곡을 하며 “가족은 모두 너를 보고 싶어 한다. 네가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라는 두 마디 말만 했을 뿐이다. 가족들은 장진쿠가 매우 힘겹고 고통스럽게 일어나는 모습을 봤다. 그는 눈이 멍한 채 2명의 부축을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씩 힘겹게 걸어갔다. 모친은 고통스럽게 “아들아……”라고 외쳤다.

2014년 5월 23일, 가족이 감옥으로 면회 갔을 때는, 장진쿠는 아주 힘들게 수화기를 잡고“어떤 살인범이 구타했는데, 머리를 땅에 박았고 또 물건으로 머리를 구타해 그의 귀에서 물이 흘러나왔다.”라고 말했다. 그런 후 두통이 심하고, 늘 악몽을 꾸는 바람에 하루하루가 괴롭다고 했다. 겨우 수화기로 3분 정도 말했을 때 교도관이 수회기의 통화를 중단시켰고, 즉시 장진쿠를 끌어가라고 지시했다. 두 죄수가 장진쿠를 들어 올리자, 장진쿠가 손으로 창가의 쇠 난간을 잡고 버텼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2014년 8월 8일 장진쿠의 딸이 면회를 갔을 때, 장진쿠는 여전히 몇 명에게 부축되어 힘들게 면회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표정은 멍청했고, 벌린 입에서 혀가 빠져나왔다. 딸이 울면서 “아버지!”라고 외치며, “요즘 그 안은 어떠냐?”라고 물었지만, 장진쿠는 듣지 못한 듯이눈은 딴 곳을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장진쿠는 끊임없이, “감옥 안에서 어떤 살인범이 그를 찌르면서 잠을 자지 못하게 한다.”라고 중얼거리기만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죽으면 어떻게죽었는지를 모른다.”라고 말했다.

2014년 9월 12일, 면회할 때 장진쿠는 매우 두려워하면서 목소리가 매우 낮게 “계속 감시자인 ‘바오자(包夾)’가 뒤에서 찌른다.”라고 말했다.

2014년 10월 17일, 모친과 여동생이 후란 감옥으로 면회를 갔을 때, 장진쿠는 여전히 손수레에 실려 나와, 2명의 죄수 부축을 받아 면회실로 왔다. 장진쿠는, “어떤 사람이 그의 심장과 목 뒤에서 채혈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중간에 강제로 끌려갔다.

2014년 11월 28일, 가족이 면회할 때, 장진쿠는 “살인범 왕훙빈이 느닷없이 신발 바닥으로혹독하게 그의 손을 후려쳤는데, 지금도 손 위에 파열된 자국이 있다.”라고 말했다. 또 머리가 아프고 다리에 감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살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쿠의 아내는 장진쿠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혹독한 시달림을 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신을 누가 때리면 당신은 경찰을 찾으세요.”라고 위안의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장진쿠는 “그들을 찾으면, 오히려 그들이 나를 욕해요.” 라고 말했다.

2015년 9월 10일, 모친이 면회 갔을 때, 장진쿠의 모습은 더욱 처참했다. 손수레에 실려 나와서, 2명의 부축으로 간신히 의자에 앉혔다. 그는 의자에 혼자 앉아 있을 수 없어 다른 사람이 잡고 있었다. 모습은 아주 수척해 보였고, 안색은 창백했다. 머리는 계속 오른쪽으로 꺾여 있었는데, 부축한 죄수에게 기대앉아 있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앉은 자리에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는 수화기마저 제대로 들지 못했다. 그는 힘들게 큰소리로 모친에게 말했지만,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혀를 제대로 놀리지 못했으며 왼쪽 식지에 붕대를감고 있었다. 모친이 “너를 누가 때리느냐? 내 묻는 말이 맞으면 머리를 끄덕여라.”라고 하자, 장진쿠는 힘들게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번 면회는 단지 10여 분밖에 말하지 못한 채, 장진쿠가 쇼크를 일으켰다. 가족으로서는 참으로 걱정이 클 수밖에 없었다. ‘장진쿠의 몸에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그는 어떠한 시달림을 당했는지? 그의 몸 상태는 도대체 어떤지?’

6. 일가족 세 식구가 하루빨리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다

장진쿠가 박해로 이같이 처참한 지경에 처한 것은 후란 감옥의 구타와 고문, 그리고 독극물 주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이 때문에 매번 가족이 면회할 때마다 교도관은 모두 장진쿠가 구타당한 사실을 말할까 봐 매우 두려워했다.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교도관은 마치 감전된 듯이 재빨리 가족과 대화하는 수화기를 즉시 빼앗고, 면회를 중단시켜 강제로 장진쿠를 들어 내갔다.

이에 대해 병원 감구역대장 위멍(於猛)은 위선적으로 가족에게 말했다. “우리는 장진쿠에 대해 보배를 보듯이 대합니다. 그를 구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장진쿠가 구타를 당하면 내가 전부 책임지겠습니다. 당신들은 관련 부서로 가서 저를 신고할 수 있습니다.”라고말했다. 그러나 감옥 교개 과장 왕샤오천은 오히려 전혀 숨기기 않고 “당신들은 변호사를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히 감옥의 일에 뛰어드는 변호사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심지어 “당신은 어디까지라도 신고해 보시오.”라고 큰소리쳤다.

가족이 감옥 측에, “장진쿠를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라고 요구했지만, 감옥 측은 매번 그 요구를 묵살했을 뿐만 아니라, 범죄자 수감자를 시켜 거의 날마다 폭력으로 그를 학대했다. 2013년 9월 30일, 장진쿠는 자무쓰(佳木斯) 감옥에서 후란 감옥으로 옮겨진 뒤, 몸 상태는 하루하루 달라지게 악화됐다. 그런 상황에서 현재까지 여전히 후란 감옥병원에 감금되어 박해를 받는 중이다. 의사는, “이미 그의 심장, 폐, 신장 전부가 쇠약해지고, 대뇌 중추신경도 파괴되어 수시로 생명이 위급한 상태다.”라고 단정했다. 이런 상태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사람이 그런 상태에 이르렀다면 몇 번이고 죽었을 것이다.

장진쿠의 생명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전 가족은 모두 눈물로 하소연한다. 60대 모친은 그런 아들 때문에 상심한 나머지 결국 병들어 쓰러지고 말았다. 하루빨리 아들이 돌아와 온 가족이 단란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아내는 남편의 안위가 매우 걱정되는 데다가 가족의 생계를 꾸려 가야 할 무거운 짐까지 지고 있었으므로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었다. 그녀는 늘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그러나 위로는 노 시부모가 있고, 아래로는 어린 것들이 있는 것을 생각해서 버티어 나가는 것이다. 단지 그렇게 버티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남편이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와 예전처럼 그녀와 함께 가정을 꾸려 나가며 단란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딸도 아버지의 안위가 걱정돼 안심하고 공부에 매진할 수가 없다. 그녀는 “여러분, 제가 어떻게 해야 아버지를 잃지 않을 것인지를 말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하루빨리 자유를 찾아 집으로 돌아와야, 자신도 남들처럼 온전한 가정이 있게 되고, 부녀간의 정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장진쿠의 생명이 위급한 현재, 생명을 경시하는 비인도적 후란 감옥의 처사를 직시하며, 장진쿠의 일가족 세 식구는 국내외 파룬궁수련생과 각계 정의로운 인사들이 관심을 갖고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정의로운 손길을 내밀어 장진쿠를 구출하여하루빨리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하루빨리 자유를 찾아주고, 가족의 단란함을 회복시켜주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뻔히 눈앞에서 발생하는 참혹한 비극을 묵과하지 말자! 좋은 사람에게 하루빨리 평안을 얻고, 세계에 따스함과 평화로움이 더해지게 하자.

주해: 아래, 후란 감옥 각 부서와 관련 책임자의 인적사항임

呼兰监狱“610”头子:王晓臣 18004663517

후란감옥 ‘610’ 두목: 왕샤오천(王曉臣) 18004663517

呼兰监狱正门

후란감옥 정문

呼兰监狱接见室大楼

후란감옥 면회실 건물

(박해관 기관 및 기관원의 인적사항은 원문을 참조바람)

문장발표: 2015년 12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12/3203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