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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 줘저우 시 광산국의 엔지니어 둥한제,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 보도) 허베이 성(河北省) 줘저우 시(涿州市) 광산국의 선임엔지니어이자 파룬궁수련생인 둥한제(董漢傑)는 2015년 10월 10일, 허베이 성 지둥(冀東) 감옥에서 겨우 51세의 나이에 박해로 사망했다. 둥한제의 시신은 일전에 이미 화장되었으며, 가족은 유골을 고향으로 가져다 안장했다.

가족은 둥한제의 부친이 연세가 많은 점을 고려하여 여전히 노인에게 사실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다. 2015년 초, 둥한제가 거듭 불법 형을 선고받자 그의 부친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돌아오면 또 붙잡으려 하고, 언제면 끝이 나겠나. 나는 이미 80살이 넘은 사람인데 내가 또 뭘 할 수 있겠어?”라고 했다.

단급(團級)으로 군대에서 전역한 줘저우 시 광산국의 선임 엔지니어인 둥한제는 1995년 10월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다. 그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신이 아주 좋아져 몇 년 동안 한 번도 앓지 않았으며 약도 먹지 않았다.그는 명리를 담담히 보았고 개인의 이익에 대해서도 다투지 않았으며, 통신소에서 근무할 때 거래처에 대해 먹고, 가지고, 가로채고, 요구하는 등 불량한 현상을 철저히 막았다. 게다가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 근무 중 각 방면에서 사용자를 고려해 주고 열정적으로 근무하였으며, 업무를 공정하게 처리함으로써 전체 직원의 인정을 받았다.

1999년 7월, 장쩌민(江澤民)을 우두머리로 한 정치 깡패집단이 파룬궁에 대해 광적인 박해를 진행했다. 둥한제는 두 번이나 베이징에 가서, 대법이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하고 도덕을 제고시키며 몸을 건강하게 한 사실을 똑똑히 밝히려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정부에 파룬궁의 진실한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러나정부는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를 잔혹하게 박해했는바, 그에게 돌아온 것은 혹독한 구타와 구류, 벌금, 정신병원 이송(2000년 10월 19일부터 2001년 2월 9일까지) 등이었다.

2001년 9월 25일 저녁, 줘저우 ‘610’ 사무실과 공안국 정보과에서는 광산국과 결탁하여, 둥한제가 ‘10.1’ 기간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갈까 봐 우려된다는 이유로 그를 공사장에서 줘저우 시의 난마(南馬) 세뇌반(대외적으로는 ‘법제교육기지’라고 부름)으로 강제 이송하여 6개월 동안 불법 구금했다.

둥한제는 생전에 밍후이왕에 발표한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세뇌반에서 그들은 전기봉과 고무 몽둥이, 수갑 등 경비 도구를 사용했으며,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치는 것은 더욱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강제 노동을 시켰으며, 음식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 법제 교육기지에서는 근본적으로 법제를 말하지 않았으며, 가짜 법제의 명목으로 박해를 가하려 한 것은 진실이다. 세뇌반에서는 납치된 대법제자를 사회의 깡패를 고용해 불법 학대했다. …… 나는 세뇌반에 가서 처음 두 달 동안, ‘610’ 사무실 주임 리밍(李明)을 포함한 세뇌반의 책임자에게,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은 헌법을 위반한 불법 구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법률을 무시하고 깡패 짓에 곤봉을 보탠 수단을 써서 무도하게 박했다.

둥한제는 세뇌반에 6개월 동안 불법 감금된 후 구치소에 50일 동안 불법 감금되었다. 게다가 사회치안을 어지럽혔다는 죄명을 뒤집어씌워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 재연:전기봉 충격

노동교양소의 교도관은 그를 더욱 잔혹하게 박해했다.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하였으며, 그를 창문에 꼬박 5일 동안 채워놓고 잠을 자지 못하게 하여 그의 두 다리가 물통처럼 부어올랐다. 또 끈으로 묶기 고문(꽁꽁 묶은 다음 다시 맥주병 두 개를 끈 속에 넣어 끈이 팽팽해지게 하고는 전기봉으로 전신에 충격을 가했는데, 10분 후에 끈을 풀어준 다음 형사범이 둥한제의 손을 잡고 맹렬하게 흔들었다. 이때 두 팔과손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형벌이 끝난 후에는 두 손을 움직일 수 없었으며, 움직이면 극심하게 아팠다.) 벽을 마주하고 세워두기 고문, 사인 침대(死人床)에서 잠자기 고문(두 손은 일인용 침대 머리의 양쪽에 채우고, 두 발은 끈으로 침대의 다른 양쪽에 묶어놓고, 몸은 끈으로 감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는 보름 동안 괴롭혔음)을 가했으며, 수갑을 라디에이터에 채워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네모난 의자에서 한 달간 생활하게 했다. 한번은 노동교양소에서 늑골 한 개가 부러지고 혼절했으나, 정신을 차린 후에 또 끈으로 의자에 묶어놓았다.

2002년 중공(중국공산당) ‘16기 인민대표대회’ 기간, 노동교양소에서 리다융(李大勇)을 우두머리로 한 도교관 10여 명은 둥한제를 가는 끈으로 묶고 수갑으로 매다는 등 여러 가지 고문을 가하며 그를 강제로 전향시키려 했다. 둥한제는 입에서 피를 흘렸으나, 그들은 전기봉으로 그의 고개를 받치며 계속 전기 충격을 가했다. 둥한제는 전기충격으로 벌집처럼 온몸에 갈색 반점이 생겼으며, 몸에는 가는 끈으로 묶였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후 둥한제를 라디에이터에 채우고 두 발을 겨우 땅에 닿게 했는데,이런 식으로 1개월 이상 시달리게 했다. ‘엄격한 관리반(嚴管班)’으로 간 둥한제는 매일 강제로 18, 19시간의 노예 노동을 했다. 2003년, 둥한제는 강압적인 ‘전향’을 폐기한다고 성명했다. 교도관은 그에게 끈으로 묶기, 전기봉 충격, 나무 몽둥이 구타 고문을 가했다. 같은 해 8월 6일부터 9월 6일까지, 리다융은 둥한제가 답안을 고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철제 난간에 1개월 동안 매달아 놓았다. 이 때문에 두 다리가 부어올라 두 사람이 부축해 가야 했다. 그 후 피부병(옴)이 있는 죄수와 함께 수감되었는데, 옴이 올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가려웠다. 불법 노동교양 기한이 끝난 후에도 석방되지 않았으며,기한을 초과하여 또 1개월 이상 불법 감금되었다.

2003년 12월 3일, 줘저우 시 공안국과 ‘610’ 사무실과 광산국은 둥한제에게 심장 쇠약과 신장 쇠약 증상, 무릎 이하에 부종 증상이 나타난 상태에서 그를 바오딩(保定) 샤오바이러우(小白樓) 세뇌반으로 보냈다. 이튿날, 그를 바오딩 제2병원으로 보내 건강 검진을 받게 했는데, 그는 몸이 불합격 판정을 받아3일 후에 병원에서 나왔다. 바오딩 샤오바이러우 세뇌반에서 병원으로 온 3일 사이에, 광산국은 그가 샤오바이러우 세뇌반에 불법 감금된 이튿날 2만 위안(약 360만 원)을 샤오바이러우 세뇌반에 지급했다. 그러나 광산국은 사건이 발생한 후, 이 2만 위안을 둥한제의 개인 퇴직금 중에서 매달 1천 5백 위안(약 27만 원)씩 강제로 불법 공제했다.

2006년 5월 12일 저녁, 둥한제는 줘구로(涿固路) 타둥촌(塔東村)에서 진상 전단을 붙였다는 이유로 칭량사(清涼寺) 파출소에 의해 납치되어 줘저우 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되었다. 그는 단식으로 박해를 저지하다가 줘저우 시 제2캉푸 병원(第二康復醫院)에서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그는 몸이 극도로 허약해져 서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5월 26일, 줘저우 시 국가보안대대의 리밍(李明), 예쥔(葉軍), 양위강(楊玉剛) 등에 의해 바오딩시 바리좡(八里莊) 노동교양소로 강제 이송되어 계속 박해받았다. 혈압과 심장에 심각한 이상 상태가 나타난 후 또 줘저우 난마 세뇌반으로 보내져 박해받았으며, 생명이 위급해져서야 가족이 데리고 돌아가게 되었다.

2007년 10월 12일 저녁, 허베이 바오딩과 줘저우 공안의 악독한 경찰은 네 갈래의 길로 나누어 파룬궁수련생 둥한제, 가오춘롄(高春蓮), 싱쥔화(邢俊花)의 거처로 가서 납치와 가택 수색을 감행했다. 둥한제 등 3명은 먼저 줘저우시 형사 경찰대에 불법 감금되어 꼬박 6박 5일 동안 쇠 의자 고문을 받았으며, 그 후 저우 구치소로 이송되어 불법 감금되었다.

둥한제는 3년의 불법형을 선고받고 2008년 4월 18일 지둥 감옥으로 이송되어 계속 박해받았다. 지둥 감옥의 옥정처(獄政處)에서는 직접 그를 2지대 ‘엄격한 관리반(嚴管班)’에 불법 감금했으며, 구치소에서 박해로 몸이 이미 매우 허약해진 그에게 강제 체벌을 가했다. 그는 이 때문에 두 다리가 부어오르고 아팠으며, 마비 증상과 가슴 떨림 증상이 나타났고, 한때는 생명 위험이 나타났다.

2014년 2월 25일 저녁, 둥한제는 베이징 국가보안요원을 거느린 줘저우시 국가보안대대 양위강(楊玉剛)에게 납치되어 줘저우 구치소에 불법 감금되었다.

2014년 7월 31일, 둥한제와 가오춘롄 등 파룬궁수련생은 줘저우시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다. 검사가 둥한제의 범죄 증거를 나열하자, 변호사 장촨리(張傳力)는 검사에게 “어느법률에 파룬궁이 ×교라고 규정했습니까? (파룬궁은 사람에게 선을 행하도록 가르치며, 중공이야말로 진정한 사교임) 둥한제의 신앙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인데, 도대체 국가의 어느 법률 실시를 파괴했습니까?”라고 날카롭고 엄숙하게 질문했다. 검사는 말문이 막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변호사는 “신앙은 모든 국민의 자연적이고 정당하며 합법적인 권리로, 부모조차도 간섭할 권리가 없습니다. 법률에는 신앙의 자유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라고 했다.

변호사는 또, 공안기관에서 둥한제를 체포할 때 어떠한 증명서도 보이지 않았으며, 둥한제의 거처에서 수색해낸 운전면허증, 식량·식용유 증서(糧油證), 호적부, 일상 생활용품도 범죄 증거로 인정되어 불법 압수되었다고 지적했다. 둥한제가 당시 탔던 전동차와 몸에 지녔던 물건들도 어딘지 모르게 사라졌고 수색 명세서에 없었다. 그리고 ‘증거’상의 동일한 사건은 오히려 서로 다른 시간이었으며, 서명은 필체가 서로 달랐는데, 이것은 공안기관이 조작한 것임을 뚜렷이 나타낸 것이었다.

2014년 12월 25일, 둥한제, 가오춘롄, 왕윈(王雲), 장하이양(張海洋), 궈즈쥔(葛志軍), 중쥔훙(涿州市)은 법원에서 거듭 불법 심리를 받았다. 둥한제와 장하이양의 변호사는 개정 통지를 받지 못해 법정 심리에 참가하지 못했음에도 판사는 재판을 진행했다고 한다. (법률에는 변호사가 법정에 도착하지 않으면 개정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음) 둥한제는 자신을 변호할 때 시종 미소를 띠고 헌법 등 관련 법률 조항을 이용해 파룬궁은 합리적이고 합법적임을 논리적으로 증명했다. 또한, 파룬궁은 사람에게 선을 행하도록 가르치며,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한 고덕대법으로서, 파룬궁수련생은 어떠한 조직이 없이 순전히 자발적으로 수련하여 집착을 없애고 끊임없이 자신을 승화함을 알려주었다.

두 차례의 불법 법정 심리를 거친 후, 2015년 2월 11일, 줘저우시 법원은 파룬궁수련생 5명에게 불법형을 선고했다. 둥한제와 가오춘롄 등 파룬궁 수련생 4명은 상소를 제기했다. 2015년 6월 15일, 바오딩 중급 인민법원에서는 개정하지 않고 1심의 판결을 유지했다.

2015년 6월 1일, 둥한제의 변호사는 또 줘저우 구치소로 가서 그를 면회했는데, 그의 정신 상태와 몸이 좋아 보였으며, 단지 좀 수척해졌을 뿐이라고 했다. 2015년 8월 16일경, 가족은 구치소로 가서 그를 면회하였다. 둥한제는 지둥 감옥으로 이송되었는데, 결국, 2개월이 되지 않아비보가 날아들었다. 지둥 감옥에서는 둥한제가 갑작스러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다. 2015년 11월 20일까지 196,994명의 파룬궁수련생과 그 가족이 최고 인민검찰원과 최고 인민법원에 원흉 장쩌민을 기소하여, 이번 박해를 멈추고 장쩌민을 법으로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바른 믿음에 대한 박해는 역사상 성공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사악함은 사람의 선량함을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파룬궁수련생이 진선인(眞善忍)의 이념을 받들고 행한 일체는 점점 많은 세인의 인정과 찬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사악한 장쩌민 집단을 따라 국민을 박해한공범자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반드시 역사의 심판대에 올라 죄악을 갚아야 할 것이다.

문장발표: 2015년 11월 2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26/3196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