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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회피 신청으로 리쥐메이에 대한 자허현 법원의 재판 저지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후난보도) “나의 의뢰인은 신앙인으로 신을 믿습니다. 만약 판사, 검사가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면 회피 신청을 요구합니다. 무신론, 유신론 두 가지 사상체계는 대립되는 것으로 이러면 필연적으로 정확한 사건 처리에 영향 주며…… ”

11월 17일 오전, 후난(湖南)성 천저우시 자수현 파룬궁수련생 리쥐메이(李菊梅)는 자수현 법원에 의해 불법적인 재판을 받았다. 개정한 후 대략 10분 쯤, 변호사는 법률 절차에 의거해 중국공산당 법원, 검찰원에게 회피 신청을 했다. 20분도 되지 않아 재판장은 휴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진선인(眞ㆍ善ㆍ忍)’을 믿는 좋은 사람에 대해 재판 방식을 박해하려는 시도는 이렇게 저지당했다.

리쥐메이의 남편 궈후이성(郭會生)은 자허현 정부 법제사무실 간부로, 2009년에 불법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을 구출한 것 때문에 납치돼 혹독한 구타로 사망했다.

湖南郴州嘉禾县教师李菊梅及丈夫郭会生
후난 천저우 자허현 교사 리쥐메이 및 남편 궈후이성

병원치료로효과 없던 골육종(뼈암), 파룬따파 수련으로 완쾌

리쥐메이는 후난 천저우시 자허현 주취안완(珠泉完) 초등학교 교사로 올해 58세다. 그녀는 예전에 ‘골육종(뼈암)’ 환자였다. 사방에서 명성이 있는 의사를 찾아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그녀는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자살로 이 생을 벗어나려 했다. 처음에는 창사(長沙)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철로 위에 드러누워 자살하려 하다가 목적을 이루지 못했고, 돌아온 뒤에 중수이하(鐘水河)에 뛰어들었지만 역시 성사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대량의 수면제를 삼켜 중독됐지만 친척에 의해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아 살아났다.

바로 그녀가 살려 해도 살 수 없고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하는 상황에서 리쥐메이는 운 좋게 파룬따파(파룬궁)를 수련했는데 1개월도 되지 않아 기적이 나타났다. 몸의 각종 불편하던 증세가 전부 사라졌고 약물과 세균으로 괴사됐던 손톱과 머리카락이 전부 새롭게 자라났다. 3개월 후 그녀는 성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았는데 검사결과 각 항목의 지표가 정상임이 밝혀졌다! 리쥐메이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곧 “파룬따파가 제 생명을 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알고 있는 많은 사람은 모두 파룬따파가 좋다고 말했다.

리쥐메이는 수련해 10여 년 동안 국가의 의료비 한 푼도 쓰지 않았고 하루도 휴가를 내지 않았으며 근무에 열심히 일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아 책임자, 교사, 학부모의 호평을 받았다. 그녀의 생생한 사례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파룬궁을 신뢰하게 했다.

재차 납치돼 불법 재판을 받았지만 변호사가 회피신청을 하다

2015년 10월 23일 오후 4시쯤, 리쥐메이는 거리에서 한 무리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려 당단대(당원, 단원, 소선대)에서 탈당을 권고하고 있었다. 국가보안 4명이 중국공산당 고위층의 조종을 받고 그녀를 납치해 천저우시 구치소에 감금했다. 리쥐메이의 딸은 변호사 두 명을 선임했는데 한 사람은 현지 변호사 리둥성(李東生)이고 한 사람은 베이징의 장촨리(張傳利) 변호사였다. 가족은 11월 17일 오전 8시반에 개정을 진행하기로 정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날 친척과 변호사는 모두 제시간에 자허현 법원으로 가서 기다렸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두 시간이나 지체했다. 같은 법정에서 다른 사건을 심리하려 할 때 변호사는 법원 측이 여러 사람의 시간을 지체하고 신용을 지키지 않은데 대해 항의했다. 그 후 가족이 양보한 상태에서 10시 10분에 재판을 진행했다.

파룬궁수련생 리쥐메이는 수갑에 채워지고 법정 경찰에게 좌우로 통제당했으나 여전히 몸에서 정기를 내뿜었다. 그녀는 비굴하지도 않고 거만하지도 않으며 미소를 짓고 대중에게 “저의 신앙은 무죄합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眞善忍)은 좋습니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피고인을 대조 확인하고 사건의 원인은 ‘사교를 이용해 법률 실시를 파괴한 것’이라고 선포했다. 리쥐메이는 재판을 승인하지 않았기에 전부 대답하지 않았다.

관련 소송권리 의무에 대해 알려주며 회피 신청을 제기할지를 문의했을 때, 재판장은 피고가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묵인한 것이고 다른 의견이 없음을 표시했다고 인정했다.

이때 장촨리 변호사는 말했다. “제 의뢰인은 신앙이 있는 사람으로 신을 믿습니다. 만약 판사, 검사가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면 저는 회피 신청을 합니다. 무신론, 유신론 두 가지 사상체계는 대립되는 것으로, 이러면 필연적으로 사건의 정확한 처리에 영향 주며 제 의뢰인에게 불리합니다.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 민사소송법’에 의거해 회피 신청을 하겠습니다.”

판사들은 서로 상의하고 잇따라 자리에서 떠나 법정에서 내려갔다. 그들은 뒤에서 상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보고했다. 계속 재판을 진행할 이유를 찾지 못해 10시 39분에 그들은 다시 법정으로 되돌아왔으며 재판장은 휴정을 선포했다.

리쥐메이의 친척과 친구들은 변호사가 한 마디로 핵심을 딱 맞게 말한데 대해 칭찬했다. 리쥐메이는 끌려갈 때 비굴하지도 않고 거만하지도 않으며 미소를 띠고 “당신들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ㆍ善ㆍ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셔야 합니다!”고 말했다.

좋은 사람으로 되려 하고 진상을 알리기를 견지하다 거듭 잔혹한 박해를 당하다

장쩌민이 중국공산당을 조종해 파룬궁을 박해한 것 때문에 리쥐메이의 시달림은 끝없이 이어졌다. 아래 사례는 그녀 본인이 밍후이왕에서 폭로한 사실이다.

1. 2000년 7월 3일, 밤중에 납치돼 40일 동안 감금됐고 4천 4백 위안의 벌금을 부과당했다.

2. 2000년 10월에 납치돼 180일 동안 감금됐고 5천 2백 위안의 벌금을 부과당했다. 그리고 몸에 지녔던 3백 위안을 강탈당했고 6개월 월급도 지급이 박탈됐다.

3. 2001년 12월에 보름 동안 불법 감금당했고 직장도 연루돼 2천 위안의 벌금을 부과당했다.

4. 2002년 11월, ‘16기 인민대표대회’ 명목으로 30일 동안 인신자유를 박탈당했다.

5. 2004년 4월에 박해로 6개월 동안 유랑생활을 한 후 1년 6개월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2년간 월급 지급을 박탈당했다.

6. 2007년 6월에 1년 6개월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1년 6개월 치 월급 지급을 박탈당했다.

7. 2009년 8월에 남편 궈후이성과 함께 납치됐다. 궈후이성은 감금돼 2개월도 되지 않는 사이에 박해로 사망했다. 그녀 본인은 큰 출혈로 구치소에 혼절한 뒤 ‘자궁암’ 진단이 내려졌다. 당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병보석 수속을 밟아 집으로 데려감을 허락했다. 대법 수련을 거쳐 그녀는 또 한 차례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왔다.

8. 2008년 8월부터 강제로 정직시키고 월급을 공제했다. 이미 퇴직 연령을 넘겼으나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에서는 그녀의 퇴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9. 2013년 7월, 리쥐메이는 자신이 당한 박해 상황을 써 ‘밍후이왕’에 발표했다. 자허현 정법위 두목 리더샤오(李德笑)는 크게 화를 내며 여러 판사에게 지시해 병원으로 가서 문의하고 그녀의 사건을 다시 재판하려 했다. 9월 16일, 자허현 법원 청장 황젠룽(黃建龍)은 리쥐메이에게 이튿날 아침 8시에 법원으로 가서 재판을 받으라는 통지를 내렸다. 황젠룽은 “리쥐메이를 판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상부의 지시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리쥐메이는 어쩔 수 없이 타향으로 가서 이 재난을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리쥐메이가 박해당한 경과와 이번 납치 경력은 11월 4일의 밍후이왕 보도 ‘남편은 박해로 사망하고 리쥐메이는 또 납치돼’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11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22/3194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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