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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원이 요금을 내 장쩌민 고소장을 재발송하다

[대륙투고] 2015년 6월 초, 나는 장쩌민에 대한 ‘형사고소장’을 발송했고 잇따라 주위 수련생들을 도와 고소장을 정리해주고 우편으로 발송해주었다. 우리 여기의 파룬궁 수련생들은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고 서로 다른 시기에 수련에 들어왔다. 그 중에는 퇴직한 대학 부교수, 회사 회계 주관, 시 정부 국장급 퇴직 간부, 전문대 학력(과거에 사장)을 가진 사람, 가정주부 등 남녀노소가 모두 있다.

나는 글쓰기에 서툰 수련생을 도와 고소장 초안을 잡기 위해 모두 직접 만나 도와주었는데 수련생이 말하면 기록하고 다시 정리했다. 그때는 바빠서 먹을 시간도, 잘 시간도 없었다. 마침 70여세 되신 부모님이 며칠 동안 오셨다. 부모님은 내가 장쩌민을 형사 고소하는 일에 바빠 아무 것도 돌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장을 보고 식사 준비하는 것을 도맡아 하셨다. 덕분에 집중하여 고소장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집안일은 너희들이 할 필요 없으니 답안지(고소장 쓰는 것)를 잘 작성하거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연속 3박4일을 일한 후 마침내 해외인권법률 협회에서 제공한 양식에 따라 쓴 두 개의 서로 관련된 형사고소장을 처음으로 완성했다. 우리는 이치에 맞게 조리 있고 근거 있게 정리했는데 제7종죄 ‘불법 구금죄’만 해도 15개를 예로 들었다. 동시에 두 부분의 고소장에 모두 우리의 ‘고소요구’를 인쇄하여 원흉을 즉시 징벌할 것을 요구했다.

재물통계업무를 책임진 적이 있고 지나치게 까다로운 아버지도 우리의 문장을 보더니 여러 가지 방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다고 하면서 꽤나 만족해하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분은 질경이 만두를 빚어주셨고(이는 처음이다) 먹은 후 우리는 고소장을 우편으로 발송하러 갔다. 두 분은 “자네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만두를 먹고 고소를 하러 가니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7월 7일, 우리는 우체국 EMS로 송부했고 7월 12일 최고인민법원에서는 도장을 찍고 이 77쪽 되는 고소장을 수령했다고 서명했다.(형사고소장 정본, 사본, 신분증 복사본을 포함)

배달원이 요금을 내 장쩌민 고소장을 재발송하다

[허베이 투고] 우리 지역에는 자그마한 우체국이 하나 있다. 6월부터 파룬궁 수련생이 장쩌민을 고소하기 시작한 이래 장쩌민 고소 택배를 발송하는 것이라면 우체국 택배 점원은 모두 열정적으로 처리해주었다. 거의 모든 택배가 착오 없이 배달됐다. 가끔 나이가 많으신 파룬궁 수련생이 택배를 발송하러 가면 배달원은 수련생이 떠날 때 모두 “조심히 가세요.”라고 한마디 한다.

9월 10일, 한 수련생이 장쩌민에 대한 ‘형사고소장’을 우편 발송하러 갔는데 수속을 마친 후 배달원은 수련생에게 말했다. “모모에게 말을 전해주겠어요? 우체국에 오면 23위안을 내라고 하세요.”라고 말했다.

배달원은 자세한 사정을 말했다. 8월 25일, 모모가 택배 하나를 보냈는데 제대로 배달되지 못했고 9월 4일 이 우편은 우체국으로 반송됐다. 이 배달원은 즉시 원래 명세서에 따라 다시 한 번 택배 수속을 하여 배달차가 떠나기 전에 발송했고 23위안을 직접 지불했다.

듣고 나서 수련생은 매우 감동했고 이 배달원의 높은 책임감에 매우 감사했다.

9월 6일, 이 고소장을 발송한 파룬궁 수련생은 고소장이 제대로 배달되었다는 메시지를 베이징으로부터 받았다.

문장발표: 2015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13/3190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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